전편 모음

28화


***


적막한 숨소리.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긴장은 이내 모두에게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총열을 수리하고.

총알을 장전하고.

모든 시선과 집중을 한데 모으고.

언제 시작될지 모를 전투의 때를 기다리며.


그녀들은 그렇게.

그렇게 적막속에 살아갔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색채는 눈 하나 깜짝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는 상당한 이변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거지? 공격조차 하지 않다니."


"그러게나 말이야... 먼저 공격을 해야하는건가?"


"아니... 섣불리 공격했다가 도리어 피해를 받으면 어쩌려고..."

"수상쩍지만 일단 지금은 이렇게... 대치 상태를 유지하는게 맞아보여."


히나는 천천히 방아쇠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발사할 수 있게, 대비를 하려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색채는 움직이지 않았다.

공격조차 하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녀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의구심에 찬 목소리가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왜 아무도 공격을 안 해?"


"자, 잠깐만 기다려...! 저 녀석이 무슨 일을 벌일지 어떻게 알고..."


"그. 러. 니. 까! 지금 공격 해야지!"

"너희들, 모두 봤잖아? 색채가 어떻게 아코를 공격하는지..."


"물론 알긴 한다만..."


"그러면 뭐, 별 수 없잖아?"


그 말과 함께, 미카는 생긋 웃으며 천천히 색채를 향하여 나아갔다.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더불어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한데 집중되었다.


"봐봐. 괜히 쫄아서는! 이렇게 다가왔는데도 움직임 하나 없잖...


그 순간.


꿈틀.

비록 잠깐이였으나 색채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에 그녀들 사이 미약하게 나마 흐르던 여유도 모두 사라져, 불현듯 찾아온 긴장의 홍수에 떠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


이윽고 기나긴 침묵 끝에 마침내 두 눈을 뜬 색채.

이에 본능적인 두려움, 그리고 죽음의 공포가 마치 전염병처럼 그녀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덕분에 완벽했던 그녀들의 준비 태세도 끝끝내 그 질서를 잃고 서서히 빈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 젠장....!!"

"모두 물러나!!!! 이 녀석이 깨어났...!!!"


퍼엉.


미카의 단말마를 끝으로.

어마어마한 충격파와 함께 잠시 세상이 암전 되었다.


사실 그 자리의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마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 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비를 할 수 있었느냐하면 또 다른 문제였다.

이번에 그녀들을 찾아온 재앙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삐이- 하며 귓가에 울리는 이명소리.


히나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다행히 별 다른 피해나 상처는 입지 않은 듯 했다.


'...뭐, 뭐지? 분명히 나는 충격파에 나가 떨어ㅈ...'

'아... 아니야. 위치는 그대로야...! 다만... 다만 내 몸이...!'


안심한 그녀를 반겨준 것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몸.

보이는 광경이라곤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굳어버린 모두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두들에는 히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거야? 마치 몸이 딱딱한 돌이 된 것 마냥...'

'다른 사람들은...? 젠장... 설마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렇게...? 안 되는데...!'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고 싶어도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몸은 더 이상 그녀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대신 소름끼칠 정도로 잦아든 주변의 소음과 느껴지는 적막에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읏... 크읏...!!!!'

'움직여... 움직이라고!!!! 하아...!! 하아...!!'


만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끄떡않는 몸.

그러나 야속하게도 색채는 아니었다.


터벅. 터벅.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색채.

이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데에 관한 형용할 수 없는 공포심이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눈을 질끈 감고 싶어도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으니 모두 헛된 희망일 뿐 이었다.


'아아... 이렇게 죽는거야...?'

'이제서야 모든 것이 끝나려니 했건만... 또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고 마는거야...?'

'안돼... 싫어...! 선생... 선생님... 난 어떡해야해...? 보고 있다면 답을 알려줘...!'


명백하게 느껴지는 살의.

그러한 살의를 피할수도,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히나.

그녀의 감정이 서서히 타들어간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였다.


터억.

그녀를 붙잡는 색채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 안돼... 안돼안돼안돼...!'

'이렇게 죽는건 싫어... 죽을 땐 죽더라고 싸우다 죽고싶어...!'

'이토록 허무하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로 죽기는 싫단 말이야...!'


과거 에덴조약의 기억.

눈 앞에서 쓰러졌던 선생의 가녀린 몸.

이후 며칠이나 지속 되었는지도 모를 폐인 생활까지.

모든 기억들이 그녀의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어쨰서... 어째서 나는 이토록 무력하기만 해...?'

'나는 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거야...? 왜... 왜...!!'


비록 눈물이 직접적으로 흘러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히나는 그러한 눈물을 가슴 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과 설움이 담긴 깊고도 뜨거운 눈물이.

지금 그녀의 두 눈에서 속절없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매번 이래서 선생을 구하지도 못하고...'

'나는... 나는 선생을 다시금 만나지도 못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거야...'


드르륵.

그녀의 옷깃을 쥔 색채의 손길이 방향성을 가진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그것의 날카로운 손길이 자비없이 그녀를 산산조각 낼 터.


어느덧 죽음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운 순간.

히나의 굳어버린 가슴 속 고동도 마치 발작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싫어... 안돼...!!!'


그러나 무슨 일에서인지.

정말 무슨 이유에서인지 색채는 히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단지 언제 이동한건지 모를 먼 발치에서, 그녀를 멍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 이었다.


'뭐야... 왜 아무런 공격도...'


문득, 히나는 자신의 시야가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찰나의 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히나는 비로소 자신의 위치가 이동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뭐지... 날 끌고온건가.'

'그건 그렇고 아코... 사오리... 모두 나처럼 굳어 버렸구나...'

'대체 무슨 속셈인거야... 이렇게 우리들을 굳혀서 뭘 어쩌려고...'


그 순간.


저벅. 저벅.

이내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그녀들의 머리 뒷편으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하지만 색채의 발걸음과는 조금 다른, 타인의 발소리.


저벅. 저벅.

그것은 맨발이라기 보단, 일종의 구두가 또각거리는 소리에 더 가까웠다.


저벅. 저벅.

그리고 마침내.

이어지던 발걸음 소리가 히나의 뒤에서 그쳤다.


'...'


꿀꺽, 하고 침을 넘기는 히나.

겨우 죽음의 문턱을 넘었나 했건만, 또 다시 찾아온 위기에 그녀 가슴의 발작도 다시금 시작되었다.


쿵쾅. 쿵쾅. 

머릿속을 흐트려놓는 일정한 주기의 충격음.

동시에 히나의 이성도 점차 제 형태를 잃고 깎여나가던 그 순간.


.

.

.






https://www.youtube.com/watch?v=epicS8VHog8











"뭐야, 나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이질적인, 그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뒷편으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살짝은 청량감이 느껴지면서도 진지함 한 스푼, 그리고 비장함까지 겸비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히나 기억속의 누군가와 일치 하였으나, 동시에 한없이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저 목소리는... 리쿠하치마 아루???'

'아루가 왜 여기에... 아니, 그 전에 아루는 이미 색채에게...'


"한참 찾아 해맸잖아. 숨바꼭질이라도 하려고?"


색채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히나의 얼굴을 슥, 하고 둘러보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나아가는 아루.

겉으로만 보았을 때 그것은 마치 오래된 친구, 혹은 연인 등 오래된 인연의 재회처럼 보였다.


"...역시, 너라면 영향을 받지 않을 줄로 알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많이 화난 것 같은데."


"...화는 나지 않았다."

"단지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너가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뭐야, 어투가 또 바뀌었네?"

"결국은 또 진화다~ 뭐 그거야? 이제 적당히 그만 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아루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제각기의 자세로 딱딱하게 굳어있는 상황.

그럼에도 그녀들의 헤일로는 은은하게 그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

"얘들은 또 왜 멈춘거야? 어이~ 살아있어?"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 있어 너 이외의 신비는 더 이상 내게 필요치 않기에. 불필요한 살육은 지양하고자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살육?"

"그래. 참 일찍도 깨달으셨네. 그토록 많은 생명들을 죽여댔으면서...."

"이제와서 뭐...? 참으로 같잖아 죽겠어. 정말로."


언뜻 바라보기만 하여도 섬짓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아루의 살기어린 시선.

이 모든 것들을 히나는 마치 자신이 경험하는 것 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끝을 보자."

"내 몸과 신비를 빼앗으면서까지 인간이 되고 싶다면... 어디 한번 그렇게 해보라고."


"천만에. 더 이상 너에게서 빼앗을 신비는 남아있지 않다."

"...단지 이 세상에 두 명의 리쿠하치마 아루가 존재해선 안되기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색채의 검은 형상도 서서히 변모하여 아루와 같은 그것으로 탈바꿈하였다.

그것의 말마따라 정말로 두 명의 리쿠하치마 아루가 생겨난 셈 이었다.


"뭐야, 그런 제주도 부릴 줄 알고... 이거 꽤나 기분 나쁘네."


피식, 하고 입가로부터 새어 나오는 헛웃음.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한없는 증오와 살기로 가득차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거지...?'

'저 둘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건가?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있어야지...!'


히나는 지금 흘러가고 있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이는 그 자리에 있는, 철저한 방관자로 전락한 다른 모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아루가 바닥을 가볍게 툭툭 걷어차며 말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너라고. 따라서 끝맺는 것도 나여야만 한다고."

"모든 일의 시작... 그것이 나이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너도 훗날 무슨 의미인지 알게될 것 이라고..."


"...무슨 의도의 말이지."


"아니, 뭐... 별거 아니야."

"단지 이제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런 뜻이였어."


펄럭.

아루의 코트가 바람에 흩날리듯 펼쳐졌다.

그 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고유무기, '와인레드 어드마이어'.


"이번에야 말로. 널 확실하게 내 손으로 찢어줄게."

"하늘에 대고 맹세코... 그리고 선생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굳게 겨눈 날카로운 총구를 빤히 바라보던 색채는 이윽고 천천히 한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날숨에는 이전에는 없던, 인간적인 떨림과 두려움이 은은하게 배어있었다.


"이것이... 떨림이라는 감정이군."

"두려움에 이어 새로운 느낌... 덕분에 많은걸 배울 수 있었다. 리쿠하치마 아루."


"...너 따위가 부르라고 지은 이름 아니야."


"..."

"...그럼, 시작해볼까."


일순간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암전되었던 주변이 환하게 타올랐다.

두 아루가 격돌하는 굉음은 정처없이 퍼져나가 이내 D.U 전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차가운 금속과 유기체가 맞붙으며 생겨나는 스파크.

그리고 자비없이 튀겨져 나오는 붉은색 혈액의 흐름까지.

뿌옇게 퍼져나가는 흙빛 안개 너머로 이따금씩 반짝이는 헤일로의 섬광만이 그녀들의 존재를 증명할 뿐.

수많은 싸움을 반복해온 히나조차도 두 사람의 격돌을 차마 두 눈으로 쫒을 수가 없었다.


살벌함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두 아루의 합은 가공할만한 속도로 한참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지형이 바뀌고, 건물이 무너지고, 여기저기 구덩이가 생김과 동시에 주변이 초토화 되었다.


그럼에도 히나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이 다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전투의 궤적조차도 마치 철저하게 계산된 것 마냥, 절묘하게 그녀들을 피해갈 뿐이었다.


'젠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지...?'

'아니 그 전에... 아루가 저렇게 강했었나? 나도, 사오리도... 하물며 미카조차도 버거웠던 색채이거늘...'

'거기다가 지금의 색채는 역대 최강... 도대체 어떻게 대등한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건데??'


모든 상황이 의문점 투성이라 미칠 노릇인 히나였지만, 그녀라고 별 다른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상황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어진 자리에서 가만히, 최후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큿...!"


그 순간.

단 한 번의 빗나감이 치열하던 공방에 이변을 만들어냈다.

곧이어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두 아루들 중 어느 한 쪽이 나가 떨어져 지면에 처박혀버렸다.


"콜록... 콜록..."


'뭐, 뭐야...! 누가 떨어진거지...?'


이윽고 연기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루였다.


여기저기 찢어진 옷 사이로 서서히 흘러나오는 피.

수많은 타박상으로 붉게 물든 피부와 여기저기 세겨진 멍자국까지.

아루의 상태는 차마 전투를 속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그 아루는 원본 아루.

복제품 아루, 즉 색채가 아닌 리쿠하치마 아루 본인이었다.


'아... 안돼...!!!'


"하아... 하아..."

"꽤나 강하네... 너..."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는 아루.

척 봐도 그녀의 중심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였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리쿠하치마 아루."

"분명히 이전 싸움에서의 너는 잔머리는 좋을지언정, 신체적 능력은 나보다 한참 아래였다."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단기간만에 이토록 강한 힘을 얻게된 것이지?"


"하아... 키킥... 몰라, 그런거..."

"알아도... 하아... 알려줄까보냐. 너같은 복제품 따위에게...!"


"..."

"취소해라. 그 언사는 나에게 있어 꽤나 모욕적이었으니."


"싫은데...? 사실이잖아?"


"...취소하라는 뜻을, 나는 이미 표하였다."

"지금의 나는 너와 외형도, 목소리도, 하물며 보유한 신비마저도 일치하다."

"하물며 강함은 내가 너보다 한 수 위인 상태. 오히려 너가 나의 열화판이나 다름 없다."


침착한 어조를 유지하는 색채였지만, 그녀의 얼굴은 아니었다.

요란하게 일그러진 미간과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보아 내심 크나큰 분노를 느끼고 있는 모양세였다.

눈썰미가 좋기로 유명했던 아루이기에, 그녀는 이 미세한 변화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키킥... 키키킥..."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그 사실을 인정이라도 해줘?"


"뭐라... 고...?"


"백날 네놈이 나라고 주장해봤자... 널 받아들여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쿨럭...!! 인간은... 그리고 사회는 말이야... 너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되는게 아니야..."

"서로 관계를 맺고... 사랑도 하고... 때론 후회도 하면서..!!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게 인간이라고...!!"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울려처지는 아루의 절규.

생전 처음 보는 광경, 그리고 감정에 색채는 꽤나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냐."


"그. 러. 니. 까!!!"

"아무리 네놈이 떠들어봤자...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넌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내가 될 수 없어...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닥쳐라."


"신비?? 그릇??? 아무리 모아봤자 뭐해!!"

"타인을 해쳐서... 타인을 죽여서 얻은 몸과 인격따위, 인정할까보냐...!!!!!"


"닥치라고 했다!!!! 리쿠하치마 아루!!!!!!"


"넌!!! 절대로!!!!"

"우리들, 키보토스의 일원이 될 수 없어...!!!!!!!"


그 순간.


푸욱.


"커억...!!!!"


누군가의 짧은 단말마와 함께 조용한 침묵이 찾아왔다.

전장의 안개가 걷히고, 가려져 있던 히나의 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다름 아닌 아루의 몸이 색채의 팔에 의해 관통 당한 모습이었다.


***


'아... 안돼....'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히나의 소리 없는 절규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내 색채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아루의 두 눈동자도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갔다.


'아... 안돼... 이런...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인데.... 어째서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이 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분노하며 절규하고 싶었지만 이 또한 허락되지 않았다.

한없이 고통스러운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히나는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끝없는 무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의미없는 자책들 뿐.


"하아.... 하아.... 하아..."

"그, 그러게 닥치라고 하지 않았나..!!! 이... 이걸로 나의 승리다! 너의 패배다, 리쿠하치마 아루!"


그동안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색채의 흥분한 모습.

이를 바라보던 아루의 피로 가득한 입가에도 점차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쿨럭. 헤헤."

"지금의 네 모습... 꽤나 인간 다운걸..."


"...뭐? 그게 무슨 의도냐?"


"그렇게... 허접하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

"...헤헤, 쿨럭... 그런 불완전함을 인간다움이라 부르는거다... 애송이..."

"네 모습을 봐... 분노로 이성을 잃어 무슨 짓을 한건지도 모르잖아..."


"내가... 뭘...? 어떻게...?"


의미심장한 말에 그것이 당황하던 바로 그 순간.

빛을 잃어가던 아루의 동공에 다시금 생기가 돌아와 그녀를 붙잡았다.


죽어가는 사람의 것이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는, 가공할만한 정도의 악력.

이에 색채는 다시 한 번 크나큰 당황의 수령으로 빠져들고야 말았다.


"...!!!!!"

"뭐, 뭐냐...!!! 분명히 널 꿰뜷었는데...!!"

"리쿠하치마 아루...!! 널 분명히 이 손으로 꿰뜷었는데...!!!"


"후후... 그래....?"

"리쿠하치마 아루... 로 보이나보지?"


"...무,무슨!!!"


퍼엉.

한 움큼의 연기와 함께 아루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갈 곳을 잃은 채 떠도는 색채의 손날에는 오직 자그마한 여우 인형만이 꽂혀있을 뿐 이었다.


"이... 이건...??"























https://www.youtube.com/watch?v=0hPOvejAD0s













"이즈나 류 인법, 그림자 분신의 술...!!!!!"

"아루 공... 지금입니다!!!!!!!!!"


색채의 뒷편, 불현듯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이에 급히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한 명. 아니, 두 명. 아니, 세 명.

그 수를 감히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아루들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젠장, 대체 무슨 수를 쓴거냐 리쿠하치마 아루!!!!"


"너가 말했잖아!! 난 잔머리에 뛰어나다고!"

"그. 래. 서~ 특기인 잔머리 좀 열심히 굴렸지~!"


"잔머리..? 그래... 그랬던건가....!!"

"수많은 분신들로 한 합 씩... 그렇게 한 사람인 것 처럼 날 속인거였나...!!!!"


"속였다기 보다는 뭐, 눈치가 빨랐다고 해둘게!"

"...그치? 이즈나?"


자신의 머리 위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입을 모아 떠드는 아루들의에 양기에 정신이 팔려있던 탓일까.

그 순간, 색채는 자신의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살기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잘도... 잘도 날 속ㅇ..."


푸욱.


"끄으흑..!!!!"


색채의 가슴을 꿰뜷은 금속질의 무언가.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총열의 끝에 장착된 녹슨 총검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또 한번 느껴지는 공포에 천천히 뒤를 돌아본 색채를.

깨져버린 여우 가면 틈새로 새어 나오는 붉은 안광이 맞이해 주었다.


"어때...? 아파?? 아프세요???"

"후후...❤️ 그 볼썽 사나운 꼬락서니의 눈빛으로 보니 제대로 들어간 것 같군요...???"


"뭐, 뭐야... 너... 너는 대체....!!"


"아아... 저 말씀이신가요?"

"그야 당연히..."


서걱.

색채의 가슴에 꽂혀있던 총검이 궤적을 그리며 드높게 솟아 올랐다.

이와 동시에 색채의 몸도 깔끔하게 썰려 하이얀 신비를 군데군데 흩뿌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악!!!!!!!"


"널 죽이려 지옥에서 탈옥한 저승사자지 이 씨발년아!!!!!!!"


터엉.

이어진 발차기에 색채는 중심을 잃고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느라 그나마 성했던 몸조차 상한건 덤이었다.


이윽고 재액의 여우, 와카모의 총알이 사정없이 그것을 향해 빗발쳤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색채는 차마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떄요...? 아프죠????"

"이걸 넌 우리들에게 수도 없이 퍼부었잖아요... 이렇게 직접 당해보니 어때요?? 짜증나죠? 죽이고 싶죠??"

"그러니 죽일게요..!!! 저도 당신이 너무나도 짜증났고 죽이고 싶었으니까... 어때요. 괜찮겠죠....????"


"하아...!!! 하아...!!! 자, 잠ㄲ..."


"아니, 안 괜찮다 해도 그렇게 할거니까...!!!"

"그러니까 부디... 저랑 똑같은 고통을 느끼기 전 까진 죽지 말아주세요...? 응? 그래주실거죠...?"


아마 그녀 스스로도 세상에서 가장 선생을 사랑한다 자부할 수 있었기에.

그렇기에 그녀로 부터 선생을 앗아간 장본인인 색채를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기에.

와카모의 공격은 그녀를 죽이기보단, 끊임없는 고통을 선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감히 내 낭군님을.... 감히 나의 선생님을...!!!!!!"

"같이 데이트도 하고... 초콜릿도 나누고... 번듯한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도 하고...!!!!!!"

"때가 되면 범죄계에서도 손을 씻고 모범 시민으로 돌아가 함께 사랑을 고백하고 아름다운 결혼식도 최고로 좋은 예식장에서 단 둘이 남몰래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끅... 아아악..!!!"


"그런데 네 년이.... 네가 모든걸 다 망쳐버렸어!!!!!!!!!!!!!!"

"어쩔거야...? 응? 나의 선생님... 나의 당신을 너가 죽여버렸는데... 뺴앗아갔는데!!!! 이걸 어떻게 보상해줄거야, 응????"

"어떻게 책임질거냐고오오오오!!!!!!!!!!!"


절규하는 와카모의 두 눈빛은 살의를 넘어선 광기로 가득차 있었다.

이에 느껴지는 고통도 잊어버린 채, 한없는 공포에 시달리던 색채는 그대로 그녀를 걷어찬 뒤, 도주하기 시작했다.


"...어머, 숙녀를 걷어차놓고선... 이대로 도망가시려구요?"

"쿠훗... 그렇겐 안 되죠... 거기서 죽어버리도록 하세요...!!!!!"


탕탕탕탕탕 탕!


자비없는 그녀의 탄환이 색채의 육신 곳곳에 꽂혔다.

도망치던 색채가 성대하게 넘어져 버린 것은 덤 이었다.


"크흐읏...!!!"


퍼엉!


"끄아아아아악!!!!!"


"푸훗....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핫!!!"

"아주...!! 아주 재밌어요... 그 꼬락서니... 그 추태..!!!!!"

"어디 한 번 더 날뛰어 보시죠.... 그래야 가지고 노는 보람이 있을테니...!!!!!!"


"히... 히익...!!!!"


처음으로 마주하는 규격 외의 유형, 그야말로 순수 광기.

이에 색채의 완벽했던 행동에도 차츰 빈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제, 젠장...!!! 갑자기 어디서 저런 미친 녀석이...!!"

"어서 빨리 치료를 하고 후퇴해ㅇ... 끅....!!!"


그 순간, 색채의 가슴에 작렬하는 고통.

또 한 번 누군가에게 찔렸다거나, 총격을 받았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어째서인지 완벽하게 치료 되었어야할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 어째서...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거지...?'

'서, 설마... 이제 더 이상 내게 신비가 남아있지 않은 건가...???'


"인법, 수리검!!! 에잇!"


콰직.


"끄아아아악...!!!!!"


그러나 세상은 색채에게 사색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수없이 날아드는 수리검과 탄환,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아루들까지.

그야말로 완전히 어린 아이 손에 쥐어진 구슬과도 같은 신세였다.


'대...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거지...?'

'분명 이즈나는 나와 함께... 굳었을텐데... 어떻게 다시금 풀려나서 저런...!'


한편, 히나는 그대로 굳어있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수많은 사람들. 하물며 자신과 함께 굳어버린 동료마저도 풀려나 가세하는 와중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라니.

분명히 전세가 역전된 기쁜 순간임에도, 히나는 그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매번 이랬어. 중요할 때 나는 무력하고... 그 일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몫이고...'

'젠장. 어째서 나는 이토록 한심한... 어째서 그때와 비교해서 변한게 하나 없는거지...?'


"크윽... 아아아악!!!!"


"멈추지마!!! 더 때려!!! 더 밟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 녀석을 붙잡아 둘 수 있을지 몰라!!! 지금 잡아야 해!!!"


정말이지, 처참할 정도로 두들겨 맞는 색채.

그 정도가 어찌나 심했던지, 그것으로 부터 흘러나온 신비가 건조한 주변을 가득 적실 정도였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그토록 염원하던 신비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대로 포기할쏘냐..!!!!'


"...후우웁."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큿...!"


"우웃?!?"


귀를 찢는 함성과 함께 색채의 몸이 빛을 발했다.

그러자 잠시 뒤, 그동안 지긋지긋할 정도로 보아왔던 줄기, 가지와 같은 색채의 수하들이 다시금 속속히 부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색채에게서는 더 이상 이전과도 같은 여유 넘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아...!!! 하아...!!"


안 그래도 부족했던 신비를 과도하게 쏟아부었던 탓일까.

수하들 틈으로 모습을 드러낸 색채는 이전보다도 더욱 수척한 형상을 한 채 말없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젠장... 또 이거냐!!"

"이젠 지긋지긋 하다고!! 이즈나, 부탁해!"


"넵...! 알겠습니다!!"

"이즈나 류 인법... 오의 발동!!"


퍼퍼펑!

이즈나가 어마무시한 속도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사이, 아루와 와카모는 천천히 색채를 향하여 접근하였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생명의 존폐 위기에 몰린 색채의 간절함은 그녀들의 상상이상이었다.


"앗!! 도망친다!! 저 녀석 도망친다!!"


"거기 서세요!!!! 누구 맘대로 도망쳐도 된다고 했죠???"


"하아..!!! 하아!!! 하아..!!"

"꿀꺽... 그,그래도 어찌저찌 따돌렸나...? 휴우...!"


한참 동안 달린 끝에, 다행스럽게도 와카모의 발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이에 한 시름을 놓은 색채는 근처 골목 사이 벽에 기대어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요상한 장난질을...!"

"그, 그래도 이 틈에 마저 신비를 축적해서 회복을 한다면 아마 이길 수 있을지도...!"


"아앙~? 누구 마음대로?"


"????"

"히, 히익!!!!"


철컥, 하고 겨누어지는 기관단총 소리.

이에 색채의 두 눈동자도 점차 미친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여긴 이미 내가 맡아놓은 자리라고?"

"...그나저나, 우리 구면이지 않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붉은 눈빛과 앙증맞은 눈물점.

척 봐도 성격이 나빠보이는 그녀는 다름 아닌 미카모 네루였다.

공포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하는 색채를 보며, 네루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헤에~ 이 녀석 잔뜩 쫀거 봐라. 이러면 재미가 없다고?"

"그나저나... 아루 녀석. 아프면 쉬어야 한다고 누누히 말했거늘, 꽤나 성대하게 벌려 놓았잖냐."


펄럭, 하고 나부끼는 스카잔과 은빛 사슬.

뒤이어 백색의 메이드들이 한 명 한 명, 그녀 뒤에서 속속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려 앉은 어둠 속, 빛나는 제각기 다른 빛깔의 눈동자에 색채의 낮빛도 점차 어두워지는 듯 했다.


"뭐어, 솔직히 이해는 가. 살고 싶었던거잖아, 그치?"

"하지만 말야... 그렇다고 해서 네놈의 행동이 정당화 되는건 아니라고?"


"...꿀꺽."


"그러니 네가 인간이고 양심이 있다면 말이야..."

"부디 그냥 이대로 죽어주라? 색. 채. 씨?"


"으... 으으...."


이윽고 채념했는지, 색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네루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이에 질세라 다시 모인 C&C또한 전투를 준비하며 투지를 불태우려던 그 순간.


"앗! 찾았다!"

"와카모! 여기야!!!!"


먹이를 찾아 주변을 배회하던 포식자들의 눈에 그만 그 광경이 들어오고야 말았다.

이에 살벌했던 색채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풀어져, 이내 한 없는 두려움으로 변모하였다.


"히... 히이이이익!!!!"


방금까지의 기백이 무색하도록, 색채는 또 다시 몸을 돌려 추하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고곳에 더 이상 완벽함과 카리스마의 상징인 색채는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뒤늦게 불타오르는 생존본능에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 아이만이 존재할 뿐.


"...하아? 뭐야 저 녀석...?"


얼타버린 네루는 덤이었다.


***



색채야! 추하다! 이제 그만 죽자!!

예상보다 분량이 조금 늘어졌는데, 그래봤자 앞으로 2화 정도면 완결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래서 일부러 넘버링도 상 중 하로 나누었어ㅋㅋㅋ


그리고 시리즈 구분이 좀 복잡해졌는데

"사랑하는 학생들이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가 1부.

"사랑하는 학생들이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FINAL" 이 2부.

그리고 이번 회차부터 진정한 최종장임...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는게 느껴져.

그런 만큼 열심히 불태워 볼테니...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힘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