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네를 소재로 한 그림이 너무 고프다

커미션하고 싶은데 어딜할지




하이퍼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도 5단계가 있다. 부정과 분노의 과정은 당연히 말하기 싫어하기에, 나루가 아니면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반면 협상을 어떻게 하는지는 대부분 알고 있다. 급식을 먹을 때마다 양 가지고 말다툼하고, 이정도는 괜찮다며 큰소리치고 내보냈지만 실수로 생각보다 훨씬 큰 방귀를 터트리는 건 일상이었다.

과거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울과 자기혐오에 빠졌지만, 친구가 있는 지금은 아니었다. 그저 웃으며 자신의 하이퍼를 완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아, 물론 대가로 교실, 복도 환기와 페브리즈를 매일 뿌리는 역할도 하고. 이제는 이런 짓까지 가능했다.

"너 위해 특별히 준비했어! 이거면 코스튬 대회 바로 1등이라고!"

상자 안엔 검은색과 하얀색 복슬복슬한 털로 덮인 귀와 꼬리가 있었다.

"스컹크 코스튬이야? 귀여워 보인다!" 가람이는 활짝 웃었다. "근데 이미 마녀 코스튬 쓰려고 준비했는데..."

"그럼 둘 다 하면 되지!"

동네 공원에서 열리는 할로윈 파티, 북적거리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역시 가람이의 옷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 정체를 알아채고 키득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가끔 험담하거나 너무 놀리는 아이들도 말 한 마디면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다. 

"스컹크는 방어기제로 스프레이 쏜다는 거 알지?"

그리고 복실한 꼬리를 올리면 모두 도망치기 일쑤였고, 둘은 키득대며 그 광경을 보는 걸로 만족했다. 

물론 사탕을 마음껏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용돈을 좀 털어 여러 코너를 전전하니 사탕과 초콜릿이 어느새 바구니 가득 쌓였고, 둘은 사람들이 적은 공터로 가 만찬을 즐길 참이었다. 그러나 그 때 한 무리의 초등학생인 듯한 어린아이들이 맑은 눈망울로 둘에게 다가왔다.

"언니 오빠, 사탕 좀 나눠주면 안돼요?"

"사탕은 저기 축제 가면 많잖아."

"저희 용돈이 다 떨어져서요..." 말을 흐리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나루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눈망울을 못 이기고 사탕 한움큼을 쥐어 주려는 순간, 가람이가 손을 막으며 말했다.

"그래, 줄게. 근데 그거 알아? 이 사탕은 마법의 사탕이야. 먹으면..."

스컹크 마법사 소녀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 코스튬에 충실해질 작정이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이렇게 된단다~"

스컹크의 복실한 꼬리, 마녀의 보라색 스커트 밑에서 터져나온 누런색 바람은 정직한 소리와 함께 땅을 진동시키며 반경 몇 미터의 풀을 살랑이게 했다. 가람이에겐 워밍업 방귀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은 지금까지 본 것 보다 몇십배는 큰 방귀를 아무렇지 않게 뀌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 진짜 마녀를 본 것 마냥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에이, 아이들은 원래 이런 거 좋아하지 않나...?" 10초가 지나고 아무도 보이지 않자, 가람이는 실망해 한숨을 쉬었다.

"재밌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이것도 최대한 조절한 거거든." 가람이는 장난으로 삐졌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이정도도 안되면 그게 방귀야."

"언니... 진짜에요?"

그러나 그 때 갑작스럽게 들린 다른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 둘이 다시 돌아보니 도망간 줄만 알았던, 꽁지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코도 막지 않고 둘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그 사탕 먹으면 그렇게 돼요?"

"아니. 사탕이랑 관련 없고 그냥 얘가 원래 하이퍼여서 그런 거야."

"언니도요?"

"너도 이 냄새 버틸 수 있는 거 보니까 하이퍼인가보네?" 가람이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언니보다는 훨씬 약한데 그래도 애들이 자꾸 놀려요. 요즘 조절도 잘 안 되고..."

그러자 가람이는 그저 작은 소녀와 눈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런 건 나루 전문이었지만, 지금은 가람이도 할 수 있었다.

"걱정 마. 원래 사춘기 쯤엔 다 그래. 하지만 아무리 이상하다 해도... 누군가는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거든. 얘처럼."

"맞아. 얘도 나 만나기 전엔 완전 외톨이-"

푸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락!! 뿌푸아아아다다다닥!! 푸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어쨌든, 희망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 싫어하지도 말라고. 스트레스 받으면 더 나빠지니까. 알겠지?"

"네. 그런데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방귀 뀌면서도 말을 잘 해요?"

"나한텐 이 정도는 뀐 축에도 못 드는데. 그리고 방귀는 엉덩이로 뀌는데 왜 말을 못해?"

~푸라라라라락!! 뿌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륵!! 푸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득~!!

그제서야 가람이는 나루 쪽 다리를 다시 내리고, 나루가 입을 열 틈도 없게 소방호스처럼 계속 뿜어내온 가스를 멈췄다. 그 말을 들으니 여자아이조차 꽤 겁을 먹었는지 얼어붙은 것 같았다. 가람이에 대한 공포일까, 아니면 자신도 미래에 이렇게 될 수 있단 걱정일까.

"ㄱ...그럼 언니가 진심으로 뀌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러자 가람이는 오랜만에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활짝 웃음지었다.

"곧 알려줄 거야! 따라와!"

나루가 시계를 보니, 때마침 코스튬 경연대회를 할 시간이었다.

셋은 어둑어둑한 할로윈 밤, 색색으로 빛나는 공원 중앙의 무대로 향했다. 이미 각기각색의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차례로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가람이의 차례는 천만다행으로 맨 마지막. 모든 참가자들이 끝나고, 마침내 스컹크 마법사 소녀는 옷을 가다듬고 무대를 올랐다. 몇 년 전이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가람이의 모습과 목소리를 알아본 몇몇 사람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소리지르기도 하였다.

"본격적인 시작 전 카메라는 꺼주세요! 초상권 이슈거든요~"

제대로 지킨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가람이는 상관하지 않고 마이크에 계속 말하였다.

"제가 할 건 참여형으로 간단한 뽑기입니다! 여러분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어요! 누가 뽑으실래요?"

그와 함께 가람이는 뒤집은 카드 4장을 내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지만, 가람이의 눈에 들어온 건 어느새 맨 앞까지 와 뛰고 있는 그 여자아이였다.

"그래. 잘 뽑아! 잘못 뽑아도 탓하진 마시고요~!"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여자아이는 마침내 한 장을 뽑았다. 카드 뒤, 적혀있는 글자는 "소리"였다.

"잘 뽑았네! 이제 스컹크 마녀의 마술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들 잠시만 귀 좀 막고 계세요~!"

그 말과 함께 가람이는 즉시 허리를 숙이고, 마이크를 치마 밑에 갖다 대었다.

빠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당!!!!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공원 전체에 울렸다. 스피커조차 이정도 볼륨은 감당 못해 조금 먹먹해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면 정말 귀가 나간 사람도 있었을 테니. 단 5초간의 분출로 전 공원이 조용해졌고, 소녀는 그 사이 산뜻이 인사하고 유유히 무대를 내려왔다. 그 광경이 정말 마녀와 같았다.

"다른 거 뽑았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소녀가 내던진 다른 3장의 카드엔 각각 '세기', '길이', '냄새'가 적혀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가람이는 옷을 가다듬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루를 찾았다. 하지만 어쩐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깜짝 선물이라도 사러 갔나.

어디냐고 메세지를 남기고 답을 기다리던 때, 건너편 가로등 밑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드라큘라 복장의 남학생이 보였다. 여깄었구나. 마침 주위에 사람들도 없겠다, 장난기가 발동한 가람이는 조심스레 그 소년에게 다가가, 바로 어깨를 걸고 '장난스런' 분출을 시작했다.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당~!!! 푸아악!

"...?!"

하지만 이상하리라마치 반응이 없었다. 어깨도 평소보다 낮아진 느낌이었다. 옆을 돌아보자, 가람이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나루가 아닌, 우연히 비슷한 코스튬을 입고 온 가을이였던 것이다.

아무리 다른 하이퍼 여름이의 방귀에 단련되었다 한들 역부족이었다. 체급부터가 작은 가을이는 태풍같은 가람이의 방귀에 연약한 낙엽처럼 휩쓸렸다. 코를 터뜨릴 듯 욱여 들어오는 풍성한 구린내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열면 함부로 닫을 수 없었기에, 불쌍한 소년은 그 온전한 힘을 1초도 아니고 1분 넘게 감당해야만 했다. 둘 모두 그 1분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람아! 무슨 일이야?"

그 때 진짜 나루가 찾아왔다. 가람이는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와 황급히 있는 힘껏 괄약근을 조이고, 불쌍한 친구의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나 가을이의 팔은 끝나자마자 축 처졌다. 둘은 황급히 가을이를 근처 푹신한 잔디밭에 눕혔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가을아! 나 왔ㅇ-"

말이 씨가 된다. 그 말을 하자마자 실험복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머리를 헝큰 여름이가 나타났다. 가람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여름이에게 사과했다.

"미안... 옷이 비슷해서... 착각했네..." 

여름이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다 그 모범생 소녀는 가을이와 나루를 번갈아가며 힐끗 보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감히 내 가을이한테? 그럼 방귀에는 방귀로 갚아야지."

"무슨-" 하지만 나루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바로 범생이 여학생의 단정한 검은색 스커트로 겨우 가려진 엉덩이에 막혔으니까.

뿌푸푸푸푸우우우우우우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나루는 가람이 외의 여자에게 방귀를 맞아보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람이의 방귀를 좋아한다는 걸 알자 다른 반 친구들이 장난으로 자기도 '뀌어 줄까?'라고 몇 번 던지긴 했지만, 가람이의 보복이 두려워 실제 시도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아무리 가람이보다 약하다 해도 하이퍼는 하이퍼였다. 분수처럼 쏟아져나오는 뜨끈하고 진한 가스에 얼굴은 새빨갛게 달궈졌고, 머리카락은 휘날렸다. 일반인이 맞았다면 머리가 백지가 되었겠지만, 나루에게 이정도는 익숙한 것이었기에 여유롭게 분석할 수 있었다.

냄새가 뇌에 전달되기 전까진 말이다.

푸우우르르르르뿌푸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푸라라라라락!

다른 모든 냄새는 가람이의 5%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든 익숙함을 뚫고 뇌를 직격한 건 바로 순도 100% 같이 농축된 진한 커피 썩는 냄새였다. 사향고양이 똥 커피에서 커피콩을 골라내 씻는 게 아닌 똥을 그대로 달이면 이런 냄새이지 않을까. 스트레스로 인해 가람이보다 훨씬 더한 축축함과 아슬아슬함은 그 위력을 배로 했다.

대학생도 다시는 아메리카노를 먹지 못하게 만들 듯한 냄새에 장장 1분간 휩쓸리니 그동안 쌓은 면역도 무용지물이었다. 나루는 곧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고, 서둘러 받쳐준 가람이의 품에서 잠들었다. 그 모습을 매드 사이언티스트 여름이는 팔짱을 끼고 비로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너 청소도 학교 끝나고 바로 했잖아. 난 진작에 사탕을 많이 먹어서 장에서 발효되어 가스가 많이 생겼다고! 지금 먹어도 효과는 한두시간 지난 후에야 생기겠지." 여름이는 문제풀이하듯 깔끔히 설명했다. "오늘은 동점으로 하자."

하지만 가람이는 그저 안경 낀 소녀의 어깨에 손을 올릴 뿐이었다. 마녀와 같이 더없이 예쁘지만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역시 넌 아직 초보구나." 그리고 스컹크 마법사 분장의 소녀는 살포시 뒤를 돌아 꼬리를 들었다.

"그정도 발효는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고."

뿌푸우우우우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아무리 가람이가 착해도 방귀에서 자리를 내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었다. 소녀는 그자리에서 자기 이미지나 주변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사실 원래도 신경쓰지 않았긴 했지만 그대로 축제 한복판을 향해 괄약근을 풀었고, 출렁이는 마녀 로브 밑에선 말 그대로 가스의 쓰나미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 길이, 세기, 냄새는 일반인보다 몇 백 배 커졌을 뿐 방귀의 정석을 그대로 따라갔다.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시끄러운 틈을 타 몰래, 남자친구를 향해 참았던 방귀를 내뿜는 여자친구. 차이점은 가람이의 배출은 절대 비밀일 수가 없었단 것이다.

~푸다다다다다다다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랑!!!

여름이는 공포에 질려 다리에 힘이 풀릴 뻔 했다. 하이퍼라 냄새에 면역이 강한 자신에게조차 똥산이 한여름에 발효된 듯한 냄새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엄습해오는데, 다른 사람들에겐 어떨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여기 최소 몇백명의 사람은 의지와 상관없이 그 쓰나미에, 끝을 알 수 없는 발효된 공기의 흐름에 휩쓸려야 했다.

이런 게 진정한 하이퍼 방귀 사건이구나. 그날 학교에서 터뜨린 일도 지금에 비하면 일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2분 동안 사건의 중심 스타로 가람이가, 자신보다 공부도 잘할 게 없는 평범한 친구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으면 안 되었다.

가람이가 가볍게 재앙의 밸브를 닫고 치마를 털자, 여름이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아랫배를 쓸어내리고 이를 꽉 악물었다. 더 이상 가을이 관련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 문제였다. 지금이 아니면 더 기회는 없었다.

"으으... 그래, 하지만 오늘은 피자도 잔뜩 먹었다고!"

그리고 여름이는 모범생이라면 꿈에도 못 꿀 자세로 엉덩이를 활짝 들었다.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오토바이 떼가 경주하는 듯한 소리가 공원 전체를 뒤덮을 때, 세가지 감정이 여름이의 머리를 지배했다. 인생에 다시 못할 짓을 했다는 수치심, 그럼에도 처음 느껴보는 배가 싹 청소되는 듯한 시원함, 그리고 그 둘을 누르고 공부할 때처럼 불타오르는 경쟁심. 그것만으로 앞뒤 생각 없이 계속 이어나가긴 충분했다.

작정한 이번 방귀는 그날과 다르게 시작부터 기세도 남달랐다. 시험은 기세라는 조언을 여기도 적용해보니 진득한 가스가 세차게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강해져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점점 모범생이어야 하는 자신이 타락하는 것 같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게 바로 할로윈의 스피릿 이니겠는가.

~뿌아아아다다다다빠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푸라라라라락!!

생각해 보니 어차피 연속된 방귀 테러에 멀쩡한 사람도 거의 없겠다, 모범생 소녀는 마지막까지 쥐어짜냈다. 방귀가 아닌 다른 게 나와도 이길 수만 있다면 상관 없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밤새 공부해 전교 1등을 할 때 보다도 온 몸이 엉덩이를 중심으로 공명하는 지금의 쾌감이 더 짜릿했다. 정말 이 맛에 가람이도 뀌는 걸까.

3분을 찍고 보니 그제야 냄새가 코에 느껴졌다. 가람이의 것마저도 짓누른 모범생의 능력과 스트레스를 응축한, 어떤 의지보다 독한 썩은 커피와 피자 냄새. 여름이의 공부욕심보다 의지가 강하지 않은 한 이걸 버틸 순 없었고, 여름이가 아는 한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진갈색의 커피빛 구름 속에서도, 단 한 사람만은 서 있었다.

"...인정할게."

"ㅁ...뭐...?" 기진맥진해 쪼그려 앉아 있던 여름이는, 동그래진 눈으로 다시 앞을 보았다.

스컹크 마녀는 꼬리를 살랑이며, 인간을 초월한 듯 아무렇지 않게 냄새를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에게 진짜 마법은 전혀 없었다. 단지 좀 특별한 반 친구 여학생, 가람이였을 뿐이었다.

"이제 좀 제대로 뿜어내 볼까~?"

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덩~~!!!!

공원을 휩쓰는 소리, 코를 묻어버리는 압도적 썩은내 빼고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치마 밑에 분뇨처리장 바닥과 통하는 포탈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도 될까. 하지만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람이에겐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걸.

...

여름이가 눈을 떴을 때 축제는 거의 끝나 있었다. 남은 걸 떨이하고 있는 몇몇 코너가 밝히는 불빛, 자신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 조용히 웃는 소리만이 들렸다.

"...야, 카메라 안 내려놔?!"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자기를 안고 곤히 잠에 빠진 가을이가 있었고, 그 광경을 최후의 승자 가람이가 찍고 있었다. 자기도 무릎맡에 나루를 얹은 채.

"싫은데~ 사이좋게 내 방귀에 당한 기념이야. 뭐 너희 잘 어울리기도 하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대신 자기도 핸드폰을 꺼내놓고, 스컹크 마녀 가람이와 주술사 나루를 찍었다. 소녀는 얼굴을 가리면서도 남자친구와 볼을 맞대고 포즈를 취했다. 

"아 근데 축제 우리가 망친 거 알려지면 어떡하지..."

"걱정 마. 내가 다 했다고 할게." 가람이가 웃으며 말했다. "저번 놀이공원 사건 보답이야."

"뒷감당 되겠어? 너 이 공원에서도 쫓겨나면 뀔 때마다 산 올라가야 하잖아."

그러자 가람이는 자신있게 다시 뒤돌아 복실한 꼬리를 들고, 아직 반도 넘게 남아있는 사탕 바구니를 흔들어 보였다.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