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재단 아카라이브 자주 구경하다가 이 기회로 처음 글을 써 봄. 그림 그리면서 파는 스타일이라서 글을 잘 안쓰는 편인데 각자 생각 올리고 얘기해볼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뭔가 좋은듯. 암튼 각설하고 시작해보겠다.


 SCP-5000을 재단 입덕하고 대략 반 년 쯤 지나서 봤는데 대략 2회차 정독때부터 최애작이 된 듯. 미스터리 경연답게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그 일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은 채 단서인지도 모르는 것들을 던져주면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 5000임.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해석이 다양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작가가 단서를 꽤나 일관되게(?) 해놔서 지금 5000의 해석은 대략 하나로 정해진 느낌임. (http://scpkrsandbox.wikidot.com/5000-declass)


  • 재단이 프로젝트 프뉴마를 진행하던 중 인류의 정신공간에서 '무언가'를 발견함. 
  • 그 '무언가'로 인하여 재단은 공포에 빠지고, 윤리위원회도 이에 합세하여 인류의 말소에 찬성함.

추가로 프뉴마 프로젝트 중 발견한 '무언가'에 대해 레딧 유저가 제시한 단서. 윌슨이 유일하게 재단이 적대하는 변칙 개체를 본 부분이 있는데, 그 변칙 개체가 바로 프뉴마 프로젝트에서 찾아낸 '무언가'라는 해석임.


  • 독립체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존재하며, 인류의 무의식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 그 독립체는 고통을 포함한 인류의 여러 부정적인 측면에 책임이 있습니다.
  • 그 독립체는 원래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먼 과거 어느 날에 인류에게 "침입"했습니다.
  • 그 독립체는 사람들의 행동에 미묘하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사람들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왜냐하면 그럴 경우 애초에 O5를 막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SCP-682는 이 독립체에 대해 알고 있으며, 그것이 인류를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암튼 이렇게 5000의 진상이 밝혀지는 듯 했는데, 문제는 이 '독립체'가 대체 무엇이고, 재단은 왜 거기서 겁이 질렸냐는 거임. 여기 대해서 꽤 많은 추측들이 있던데, 공감, 고통, 인간성, 원죄, 2718에서 언급된 죽음 이후의 삶, 049가 언급한 질병 등등, 그런데 나는 '프뉴마'가 하나의 단서라고 봄. (여기서부터 개인적인 추측.)


 프뉴마(πνεύμα)는 '숨', '호흡'을 뜻하는 그리스어임. 이게 기독교에서는 '성령(spirit)'의 의미로 쓰이고. (이건 좀 여담인데, 최근에 정식 등급이 된 등급 아폴리온도 기독교 악마 '아바돈'의 그리스식 표기였다고 함. 아바돈은 서닌장 제안 1에서도 등장하는데 파라곤 작품보면 아폴리온 왕가가 언급되는 등 뭔가 엮으려는 것 같기도 함.) 개인적으로는 '성령'의 의미로써 뭔가 프뉴마라는 단어 자체가 힌트를 주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성령은 삼위일체 중 3번째 위격으로, 흔히 '거룩하신 영', '성신' 등으로 묘사됨.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자 불(또는 빛)으로 된 비둘기가 내려왔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게 성령의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함. 사실 성령 자체가 삼위일체랑 많이 엮여있는 개념인데, 삼위일체는 그리스도교의 신에게는 총 3개의 위격이 있으며, 이 위격들인 성부와 성자, 성령은 모두 하나님(야훼)이자 셋은 구별된다는 것이 삼위일체의 기본적인 내용. 사실 여기까지 가기에는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으니까 성령만 한 번 보겠음.  성령은 대략적으로 영혼 비스무리한 개념으로 일컬어짐. 복음을 받은 자 안에 내재하며 또 사랑, 마음, 의지, 생각 등 인격적 속성을 지닌다고 되어 있는데, 성경 중에 육(신체)에게는 방탕등의 죄악이 있고, 성령은 사랑과 평화를 낳으며, 예수는 이 중 육의 죄악, 즉 원죄를 짊어지고 희생했다는 내용이 있음. 여기서 중요한 건 성령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종의 '인간다운 것'을 의미한다는 거임. 사랑과 평화, 인내와 호의와 선의 등등.


 그래서 나는 그 '독립체'가 성령 비슷한 게 아닐까 함. (좀 신성모독적인가) 사실 이건 위에서 나왔던 고통, 공감, 원죄 등의 해석을 포함하기도 함.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 '사랑'의 개념을 겨냥했다는 생각이 듬. 즉, 재단은 프로젝트 프뉴마에서 프뉴마(성령)을 발견했고, 그것이 인간이 원래 지닌 본질이 아니라 그냥 인류에 기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거.  사랑, 평화, 자유와 같은 인류가 추구하던 가치는 가짜며,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해석. 레딧 해석에서 독립체가 피에트로 윌슨에게 말을 건다고 해석되는 부분(망가진 라디오)에 이런 말이 있음.


목소리: 칠. 오. 들리나? 네 눈꺼풀 사이 구멍이 빛나고 있어. 난 베르사유에 가본 적이 없어. 사랑 받고싶어. 구. 네 뒤에 서 있어. 오. 난 네 뒤에 서 있는 둘이야. 여신이 바다의 도시를 삼킨다. 구. 바닥의 구멍 속에서 답이 기다리고 있어. 칠. 봐, 너 부화하고 있어. 너 부화하고 있어! 


 이 부분은 독립체가 피에트로에게 갈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기도 함. 5, 7, 9의 숫자로 대표되는 SCP-579, 베르사유(파리를 질주하는 1048), 여신(올림피아)과 바다의 도시(간지르), 바닥의 구멍(SCP-579) 등등. 그런데 여기서 "사랑받고 싶어"는 딱히 무언가를 의미하는게 없음. 아마 독립체가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성령 비슷한 개념이라면, 재단이 인류를 몰살하면서 사랑을 잃고있다는 말도 됨. 반대로 재단은 사랑을 포기했고, 그래서 비인간다워지는 것. (물론 독립체가 인류에 기생하고 있었을 뿐이라면, 5000의 재단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워진 것이겠지만.) 보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묘사가 있는데 난 이 부분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은 결과가 아닐까싶기도 함. 


 사실 이렇게 되면 재밌는 해석이 몇 가지 생기는데, 682가 대표적임. 레딧 해석에 따르면 682는 이 독립체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고, 그로 인해 인류를 증오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독립체가 사랑의 원천이라면 682는 독립체 때문에 증오하는게 아니라 독립체에게서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증오밖에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됨.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증오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그래서 '도마뱀에 동의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테고.


 다만 이렇게 되면 모순점이 하나 생기는데, 그렇게 치면 재단이 인류를 '구제'한다는 거랑 살짝 안맞게 됨. 재단 얘들은 제딴에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이 사단을 냈는데 정작 독립체가 빠진 상태의 재단이라면 그럴 대의명분의 근거가 없음. 호의가 없는데 왜 인류를 지켜야 됨? 여기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대답은 '이성'만 남아버린 결과가 아닐까라고 생각함. 즉, 인류를 구하겠다!보다는 독립체에게서 떼어내는, 또는 해방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모든 변칙 개체를 동원한 몰살을 택했다는 거임. 지혜랑 지식이 다른 것처럼, 애정없는 이성이 낳은 결과라는 것.


 여기까지가 개인적인 해석. 원래는 성령이 영을 뜻하기도 해서 '영혼 자체'가 독립체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렇게 되면 작중 나오는 재단들은 혼없는 육신만 남은 셈인데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너무 이상해져서 사랑으로 대표되는 '인간성 자체'로 좀 희석하긴 했음. (껍데기만 남은 육신에도 정신은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내가 이과라서 잘 접근을 못하겠다. 만약 정말로 영혼을 뜻하는 거라면 '영혼 자체'가 기생충이었다는 좀 소름끼치는 해석이 되기도 함.) 기존 해석에 프뉴마에 대해서 기독교적인 접근으로 한 게 다라서 뭔가 너무 쓸데없이 장황하게 쓴 것 같은 기분도 듬. 에반게리온 보더니 성경 용어 나오면 눈이 돌아가게 된듯. 


 사실 5000의 묘미는 단서는 주어지는데 하나의 중심된 키가 없는 것이기도 함. 즉 조합해볼 단서는 많은데, 방향성은 여러 가지임. 이것 말고도 미스터리한 부분은 굉장히 많다. 개인적으로는 사무엘 로스가 언급한 'GOC가 아벨(076 맞음)을 쏜다'라는 문장을 꼽고 싶다. 이건 진짜 모르겠음. 암튼 여기까지 그 중에서 중심 소재가 되는 프로젝트 프뉴마에 대한 뇌피셜 헤드카논이었음.


세줄 요약

1. 프로젝트 프뉴마에서 찾은 독립체의 정체는 인간성(성령 또는 영혼)이다.

2. 재단은 그 인간성을 잃고 남은 이성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다.

3. 이것 말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독자들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