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설정만 찍어내는 양반들 까려고 만든 SCP.

그렇기 때문인지 딱히 쓸모가 있어보이진 않음.


사실 재단의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그들을 조롱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들지 않는 한, 역시 모로 봐도 무능 그 자체고.


그 외에도 SCP-2020의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냥 보이는대로 '3류 작가 외계인'이라고만 생각해보자.

재능이 심히 부족하고, 그러면서도 이야기를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외계인 말이지.


그런데 챌린지 때문에 문서를 보다가 갑자기 얘가 정말로 아무 쓸모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생각해보면 사실 상상이라고 하는 건, 온갖 재해를 무시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지 않을까?


이 부분은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라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론 인식재해든 정보재해든, 혹시 그런 재해를 일으키는 존재가 실존하는 건 아닌지 상상하기만 해서 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함.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자신의 정체를 알면 죽이러 오는 강력한 괴물' 정도의 상상만 했는데 SCP-3125가 반응해서 달려들까?

물론 그걸 자세히 파고들다가 SCP-3125 문서 수준의 정보에 도달해버리면 큰일이 나겠지.


하지만 그건 SCP-2020의 허접한 재능이 막아줄 거임.

이놈은 '밈적 어쩌고 때문에 인류를 몰살시킬 수 있는 괴물이야!' 정도밖에 설명 못할 테니까.


근데 이 뜬구름잡는 설정이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내가 잘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항밈학과 쪽에서 SCP-3125를 잡는 데 썼던 기계의 최대 문제점이 '정작 3125의 위험성을 모르면 만들 생각을 할 수가 없다'였던 걸로 기억함.


그렇지만 '정체를 알면 죽이러 오는 강력한 밈적 어쩌고 괴물'을 상상하고 있다면 어떨까.


3125의 특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괴물이지만, 정작 3125와 정보나 밈적인 의미로는 딱히 관련이 없는 거임.

왜냐하면 이건 3125를 전혀 모르는 놈이 멋대로 지어낸 상상 속의 괴물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수렴진화 같은 느낌.

비슷하긴 하지만 명백히 SCP-3125는 아닌 존재인데 이 경우에도 위험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물론 세세한 정보까지는 얻을 수 없겠지.

하지만 그 가능성을 떠올리고 '밈적 어쩌고 괴물'에 최소한의 대비는 해둘 수 있지 않을까?

앞서 말한 기계를 연구, 개발해보는 정도로 말이야.


그리고 SCP-2020은 창의력도 애매하다는 특징이 있음.

2020이 말하고 있는 것들이 죄다 이미 전부 재단 작가들이 내놓은 소재들임.


자기 딴에는 창의적이고 독특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미 한참 전에 다른 작가들이 생각했던 요소인 거임.

평범한 작가로서는 엄청난 단점이지.


근데 이건 2020을 진짜 평범한 작가로서만 봤을 때의 이야기임.


2020이 말한 '우주법사'는 SCP-2085의 마이너 카피에 불과함.

근데 잘 생각해보면 '2085의 작가'와 '우주법사의 작가', 그러니까 SCP-2020은 위치한 서사층이 다름.


'상위 서사층의 작가가 낸 아이디어를 매번 뒤늦게 따라하는 수준의 재주'라고 하면, 오히려 엄청나게 높은 확률로 이쪽 서사층의 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말 아님?

게다가 SCP-2020의 관심분야를 감안하면 이놈의 아이디어는 거의 모두 변칙적인 개체 혹은 현상과 관련이 있을 거임.


게다가 더욱 유용한 건 이놈이 외계인이라는 점.

육체적인 건 물론이고 정신적, 문화적, 밈적으로 인류와 거리가 멀다는 건, 그런 걸 타고 이동하는 변칙개체에게서도 안전하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아무튼 재단 어딘가에서는 SCP-2020의 헛소리 목록을 정리해놓고, '이건 진짜 있을지도 모르니 이러이러한 폭탄을 미리 개발해두자'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