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Su-15 요격기


이 새끼는 대한항공을 상대로 두 번의 큰 병크를 터뜨렸다.


첫번째 병크는 1978년 4월 20일 소련 카렐리아 공화국 상공에서의 대한항공 902편 격추사건


(당시 착륙사진)

승객 97명 중 2명 사망, 13명 부상, 승무원 12명은 피해가 없었다.


당시에는 GPS는 없고 관성항법장치가 겨우 생긴 시절이라 대한항공 902편인 보잉 707에는 관성항법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LORAN이라는 방식을 썼다. LORAN은 GPS와 반대되는 방법인데, GPS는 여러개의 위성으로 위치를 파악한다


반면 LORAN은 지상 기지국의 전파수신으로 위치를 구하는 것이다.


근데 하필 LORAN이 그때 고장났다.(정확히는 기지국이 고장나서 정확한 위치파악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당시 항법사는 나침반과 태양위치로 이동방향을 파악했는데...


문제는 이 비행기가 파리에서 앵커리지를 경유한 뒤 김포로 가는것이었다.


왜 이게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텐데, 이는 지구의 자기장 때문이다.


지구는 크게 2가지 북쪽이 존재한다. 지구가 자전하는 축과 지구표면의 한 점인 진북, 그리고 지구자기장에 의한 지자기북.


문제는 지자기북의 위치는 진북의 위치하고 같지 않아 지자기북하고 진북의 위치가 차이난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위치의 차이를 편각이라 하는데 이 편각은 극점에 가까워지면 존나 커진다. 이 편각이 커지면 기존 항로에 비해 크게 비틀어진 항로로 주행하게 되고


(사고 당시 지구자기장. 굵은 붉은 선과 푸른 선이 자북극에 가까울 수록 빽빽하다. 굵은 선이 가까울 수록 자기장이 강해서 편각이 커진다. 즉 경로를 이탈한다.)

그래서 소련영공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 물론 민항기를 요격하는 병신일 정도로 소련이 병신은 아니다. 


(물론 이런 병신짓을 하는 단체는 있다.

2010년대 생긴 우크라이나 반군이 쏜 BUK에 맞아 떨어진 2014년 7월 7일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사건이나 자국민이 절반이상인 항공기를 토르로 격추한 이란의 2020년 1월 8일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사건가 대표적인 예시)

(+미국도 이런사건을 일으켰다.)


문제는 당시 보잉 707의 프로토타입에서 파생된 C-135, 여기서 다시 나온 정찰기 RC-135.


(R)C-135는 보잉 707과 프로토타입이 같아 얼핏보면 비교가 안된다. 그러면 스크램블떠서 이륙한 뒤

애프터버너 빵빵하게 틀고 고속으로 올라온 Su-15TM 조종사는 어떻게 보일까?


뭐긴 뭐야.

조종사:아메리끼 새끼들 씨발 정찰기 보내고 지랄이네. 라고 생각하지


문제는 902편이 편각때문에 오차난 항로로 가는 도중 있던게 바로 해군기지.


그럼 조종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도 민항기인 대한항공의 도색을 한 비행기 일지라도 이건 


'RC-135가 소련 군사기지를 정찰한다!'가 되버린다.


맨 처음에는 902편도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노르웨이 NATO방공망 주파수로 기지하고 교신을 2번이나 했는데 그대로 진행하라는 교신을 받는다.


여기서부터 회항의 기회는 놓친다.

(당시 소련 방공군의 기체 배치. Su-15TM이라 적힌 Afrikanda의 431방공연대와 Poduzhemye의 265방공연대가 출격했다.)


20시 54분 소련 영공 400km 밖에서 오는 902편을 보고 25분이나 교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를 본 소련 방공군은 902편을 RC-135로 오인하고 21시 11분 Su-15TM을 발진한다.


여기서 증언이 갈린다.


소련 측은 431방공군 소속의 알렉산드르 보소프 대위의 Su-15TM이 소련 영공으로 들어온지 5분이 된 902편을 좌우롤링등의 행동으로 유도했으나 902편이 이를 무시하고 핀란드로 기수를 돌렸다고 한다.


여기서 기수를 돌린 후 6분 뒤면 당시 중립국인 핀란드 영공에 들어가게된다. 


902편이 기수를 돌린다는 무전을 받은 431방공연대의 상급부대인 21방공군단장이 다시 상급부대인 10방공군장에게 허가를 받아 보소프에게 격추명령을 내린다.


보소프는 항명했지만 결국 미사일을 쏘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902편의 기장은 902편의 속도를 늦추고 모든 기체 외부 항법등을 틀고 지시에 따르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국제 공용 비상주파수 121.5MHz로 연락을 했으나 교신이 없었고 갑자기 미사일을 맞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신이 없을 수 밖에 없다. Su-15TM은 300~600MHz의 교신범위를 가졌다.)


그 외에 승객들의 증언으로는 19A좌석 일본인 시오자키 세이코의 증언으로 발진한 Su-15TM을 보고는 Su-15TM이 기체 외부를 전후좌우 훝어가며 비행하자 902편의 외부 항법등이 다 켜졌다고 한다.

(시오자카씨는 그 이후 비상착륙까지 모두 기록하였다.)


그 근처의 프랑스인 장 샤를 포리는 승객들은 Su-15TM을 본 승객들이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는등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


암튼 어떻게든 Su-15TM에서 발사된 소형의 R-60미사일 2발에 의해 902편은 피격되었다.


처음 발사된 R-60은 빗나가지만 차탄은 좌익말단에서 4m지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생긴 파편은 기체를 덮쳤고 24E 좌석의 당시 대우건설 리비아 건설본부 차장인 36세 방태환씨가 머리에 파편을 맞아 즉사하였다.


그리고 23A좌석의 일본인 스가 요시타카씨는 어깨와 오른팔에 의한 중상으로 착륙 후 사망한다.


피격당한 902편은 고도를 35000피트에서 3500피트로 줄였다.(미터로는 10000m에서 1000m)


그러면서 구름사이로 들어간 902편을 본 보소프 대위는 격추했다 생각하고 265방공연대 Su-15TM과 교대한다. (이때 시오자카씨는 죽는 줄 알았다고)


이 교대한 4기는 902편의 파편을 보고 스파이장치로 파악후 미사일로 격파하였다.


22시 45분경 265방공연대 소속 아나톨리 케레포프대위가 2600피트(800m)에서 저속 비행하는 902편을 본다. 그 뒤 12분 뒤 같은연대의 알렉산드르 겐베르크 소령도 이를 보게 된다.


이 두 사람은 902편을 Afrikanda 공군 기지로 유도하나 가는 도중 꽝꽝 언 호수를 보고 자신들의 Su-15TM으로 날개를 눌러 비상착륙하게 한다.


(이때 까지가 피격 후 1시간 20분정도)


이때 김창규 기장은 당시 오고있던 기차를 피하고 아무 사망자도 없이 기체를 착륙한다. 

(다만 위에서 말한 일본인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당시 902편의 착륙을 본 소련은 주목할 만한 사례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 기적적인 착륙은 메뉴얼에 따라 행동한 결과 이기도 하다.


 당시 방공군내 지대공미사일로 묵사발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규정대로 진행하여 소형의 R-60이 발사되어 피해가 적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초대형의 지대공미사일이나 Su-15TM에 탑제된 R-60보다 더욱 큰 R-98미사일이었다면...



비상착륙한 후 2시간 동안 추위에 떨던 승객과 승무원들은 급히 후송되어 급진한 대우를 받았다.


 장교클럽으로 승객들을 후송하였으며 한국인, 일본인에게는 쌀로 밥을, 유럽인들에게는 감자, 햄버거 패티등이 제공되었다.


(여담으로 한 프랑스인이 오이와 바나나를 요청하자 바로 찾아주었다고. 소련에서 바나나를 그것도 깡촌에서 바로 찾아준 것을 보면 정말로 급진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그 다음날(21일) 아침 KGB는 기장을 제외하고는 간단한 신문을 하였다.


KGB는 기장에게는 고도의 심문을 했다. 기장은 소련 Su-15TM의 붉은 별을 보고는 소련영공에 온 걸 알았다고 했으나 KGB는 5번에 걸친 심문으로


'민항기에 첩보설비를 달아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할려는 정보공작을 방공군이 진압했다.' 로 바꿨다.


즉 KGB는 민항기 격추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날조했다고 봐야한다.


암튼 22일 승객들은 미국의 중재로 팬암의 보잉 727기를 타고 헬싱키에서 다시 대한항공의 707기를 타고 돌아왔다.


기장과 항법사는 추가 심문 후 돌아왔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김창규 기장은 조종사 자격이 취소된 후 사표를 냈으나 반려되고 지상근무로 전환된다.


그리고 다음해 1월 다시 조종사 시험에 합격해 707기 조종사가 되었다. 그리고 5월에는 대한항공 최고 상인 창공금상과 7월에는 미국 AVG-CNAC 항공인 상을 외국인 최초로 받는다.


그리고 김창규 기장은 그 후 소련 붕괴 직전 보잉 747기 902편 기장으로 모스크바 항로의 기장이 되었다.


부기장하고 기관사 또한 사표가 반려되었으나 항법사인 이근식씨의 사표는 통과되었다.


 이근식씨는 그 후 30년 뒤 2009년 2월 공개된 정부 비밀문서의 내용이 날조라고 주장하였다.


암튼 902편은 이 뒤에 일어날 사건의 전초였으니


다음 항공기는 팬암기를 타고온 승객들을 헬싱키로 가서 데리고온 007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