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대제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초라하고 볼품없는 외모와 좋게 말하면 군사적이고 실용적인, 나쁘게 말하면 싸구려 국밥충 취향 때문에 당대 유럽의 비웃음거리였으나


아들 대의 전쟁기계 프로이센의 영광의 토대를 쌓았다고 볼 수 있는 왕임.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이라는 게...






1. 모든 남성은 2년간 군복무를 시킨 뒤 예비군 복무를 하도록 개병제를 실시.


예비군 복무는 20년간 매년 2개월 씩.


군법은 전열보병 시대 기준으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가혹하지만 의외로 탈영은 총살이 아니었는데


기껏 훈련한 병사를 총살하는 것은 아깝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딱 반송장 까지만 팼다.


국왕은 종종 점호에 참관하며 맘에 안 드는 병사를 손수 패고 다녔다.



2. 프리드리히의 세자교육 커리큘럼을 직접 작성했는데


오전 5시에 기상해서 아침 기도를 포함한 모든 신변 준비를 15분컷, 아침 식사를 7분 컷 해야 했다.


이 짓거리를 감시하라고 불러놓은 씹꼰대 튜터도 이 참상을 차마 견디지 못하고 소년 프리드리히의 사정을 봐주고 간식이나 책 같은 걸 챙겨주다 걸려서 쳐맞고 귀양갔다.



3. 아들이 영국으로 탈출하려 하자 아들의 동성 애인을 참수하고 그 꼴을 아들에게 강제 직관 시켰다는 썰은 꽤 유명한데


이때 가족들을 불러모아놓고 알면서 눈감아줬다고 추궁하다 동생 프리드리히를 아끼던 빌헬미네 공주가 대들자 몽둥이로 후려치고 밟아버리려 했다. 아니 비유 아니고 진짜로 왕이 공주를 몽둥이를 들어서 후려 갈기고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공주를 밟아서 막타 갈기려 했는데 가족들이 뜯어 말리고 빌헬미네 공주의 시녀가 목숨을 걸고 공주를 감싸 안아서 간신히 살았다. 사도세자 죽인 영조도 딸들은 끔찍하게 사랑했다.



4. 독실한 기독교도지만 동시에 호색한에 바람둥이이던 프리드리히는 어린 시녀들에게 툭하면 껄떡댔는데


좀 만 성질 뻗치면 주먹 갈기는 비만 노인네가 개수작 부리는 걸 견디다 못해 퇴사한 어느 시녀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궁정에 취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운슈바이크에 아들의 결혼 문제로 방문한 프리드리히는 이 시녀를 다시 마주치게 되었는데


도대체 뭔 생각을 한 건지 외교 귀빈의 신분으로 그 자리에서 시녀의 가슴골에 손을 밀어넣고 성추행을 시전했고


바로 시녀의 손빨래 펀치를 쳐맞고 죽탱이가 아구창이 되었다.


평소에 자식들과 신하들을 개패듯 패던 주제에 딸 뻘 여자 성추행하다 쳐맞았다는 게 쪽팔렸는지, 아니면 그래도 당대의 명군이긴 했던건지 프리드리히는 의외로 이를 문제 삼지 않았고 시녀는 이후로도 잘먹고 잘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랄을 다 겪고 난 후 마침내 프리드리히가 죽자 가족들은 드디어 자유라고 오열을 하고


특히 남동생 지키면서 여기저기 쳐맞은 딸들은 기념 연회를 열 정도로 기뻐했는데


정작 일점사 당한 프리드리히는 장례식도 성실하게 하고 아버지를 크게 원망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는데



아마 아버지가 남긴 8만 정예군과 내탕금 800만 탈러 때문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테레지아는 빚만 1억 굴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