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일본 사무라이들이 카타나를 두개를 패용하고 다닌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임

하지만 이 이유를 보통 많은 사람들은 "카타나는 사철을 사용해 잘 구부러지므로 예비용으로 하나를 더 차고다녔다"

라고 알고있는데 이는 사실과는 다름.


보통 사진과 같이 사무라이를 기록한 그림, 사진에서는 긴 칼과 짧은 칼을 섞어서 패용했는데.

정말로 예비용이라면 이렇게 길이의 차등을 둘 리 가 없음.

저 긴 기장의 카타는 평상시에 사용하는 우치 카타나로서 평균 90cm의 기장을 가진 카타나의 표준이었음.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저렇게 긴 우치카타나만 가지고 다닐 경우, 상단베기와 횡단베기를 할때 천장에 걸린다던지, 

기타 실내 기자재에 검이 막히는 일이 발생함.


그렇기에 실내용으로서 "와키자시" 라고 불리는 기장이 짧은 실내용 카타나를 패용하고 다닌것임.

지금으로 따지면 특수부대원들이 라이플과 권총을 같이 가지고 다니는 용도라고 볼 수 있음.


또 와키자시는 이 외에도 한가지 용도가 더 있었는데, 사무라이들이 명예에 손상을 입어 결투를 할때, 칼이 없는 상대에게 

이것을 쓰라고 빌려주는 용도로도 쓰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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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주제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인데, 카타나의 내구성은 동 시대의 검에 비해 좋은 편에 속했음.

보통 에도시대 이전, 전란이 끊이지 않은 시기에는 고품질의 철을 한반도나 중국대륙에서 수입해와서 만들었기 때문임.

정말 카타나가 내구성이 안좋고 구린 칼이었으면 선종이 직접 만들라고 지시한 '무예도보통지' 에 '왜검' 이라는 이름으로 실렸을리 없음.


이런 내구성 평가절하의 이유로는 에도시대에 이르러 시대가 평화로워지면서 점점 카타나가 치장용으로 발달,

칼날에 굳이 질 좋은 철을 쓸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