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 에시르 신족의 첫번째 주신은 사실 거인족 히미르의 아들, 티르이며 그 다음은 토르이고 그 다음이 오딘이다

MCU나 드라마로 북유럽 신화를 접하거나 만화책에서 북유럽 신화를 접한 애들은

"만물의 아버지이자 신왕은 오딘이 첫번째고 토르랑 티르는 비중없는 오딘 아들내미겸 따까리 아니냐?"

하겠지만 원시 게르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티르가 티와즈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던 시기엔 모든 신의 아버지이자 신왕이었다]

라는 논문을 줄창 내고 있으며 실제로도 주신 자리 돌려쓰기 자체는 티르->토르->오딘 순으로 돌아가며 주신 티르의 통치에서 주신 토르의 통치, 주신 오딘의 통치까진 약 600년의 간극이 있다

이것으로 알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최고신 오딘이, 그의 아들로 알려진 토르보다 후발 주자이며 제일 막내이자 따까리었다는 것이다

"오딘 이새낀 우리중 제일 어린데 어째 이 형들보다 더 삭았냐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ㅋㅋ"



"기록말살형 [고려장] ON. 어서 타라 늙다리 게르만 할배들"


"저새끼 시동걸렸다 ㅅㅂ"


"좆같은 통수충새끼 또 시작이네;"




이렇듯 신왕, 신들의 아버지라는 개쩌는 스펙을 가진 티르는 이후 농경신이자 뇌신의 신격을 가진 토르 신앙에 밀려서 주신 자리를 내어줬으며

또 치고 올라와서 토르에게서 주신 자리를 긴빠이친 오딘 신앙에 2차로 치여서 오딘의 아들로 칭해질 정도로 신격이 떨어지게 되며 구 에다(서사시)에서도 주신의 신격을 지닌 티르의 이야기는 싸그리 실전되게 되지만

그래도 티르가 가진 자기희생적이며 인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일부 살아남게 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위의 짤들을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

과연 뭘까?


북유럽 신화를 좀 치거나 대충 지나가다 알음알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명색이 전쟁신이자 정의의 신 심판의 신 결투의 신이란 티르의 오른손은 어김없이 싸그리 잘려있고

창작물 속 티르도 설정이 어찌되었던간에 이름값 하려고 샹크스가 된 것을 볼수가 있다

그러면 전쟁의 신이란게 오른손이 왜 잘려있느냐?

알 사람은 알겠지만 그것은 바로 거대한 늑대 펜리르의 봉인을 위해서였다


거인족 볼바(무녀) 앙그라보다와 장난의 신 로키의 사이에서 태어난 헬과 요르문간드, 그리고 펜리르는 앙그라보다의 비호 아래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언젠가 로키의 자식인 세 마리의 요물들이 이 세상을 멸망으로 몰고 갈 것이다"


라는 예언을 들은 아스가르드의 에시르 신족은 이를 묵과할수 없었고, 숨어 지내던 이 셋을 강제로 끌고와 처분하기 시작했다


세계를 한바퀴 감고 자신의 꼬리를 물 정도로 거대한 요르문간드는 미드가르드의 바다로 던져졌으며


몸의 반은 살아있고 반은 망자의 것인 헬은 망자들의 세계인 차디찬 헬하임으로 던져졌고

댕댕이 펜리르는 아스가르드로 끌고 와서 통제하기로 결정했으며, 전쟁의 신 티르가 그의 양육을 담당했다

 
그러나 분명 데려올때까지만 해도 강아지 크기의 펜리르는 점점 커지더니 집채만해졌고

신들은 점차 펜리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시르 신족에게 배척당하고 경계를 사는 상황 속에서 티르는 펜리르의 유일한 친구이자 양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티르는 용기와 정의의 신답게 타 에시르들이 두려워하는 펜리르에게 서스럼없이 다가가 그에게 먹이를 주었고, 돌봐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에시르 신족의 시선에선 펜리르는 언젠가 세상을 멸망시킬 전쟁에 등장하는 괴물에 불과했다



에시르들은 결국 펜리르를 봉인하기로 결정했고, 각종 신물들을 펜리르에게로 가져가


"만일 이 밧줄들을 끊어 너의 힘을 증명한다면 너는 크나큰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따위의 말로 회유하며 그를 결박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첫번째로 준비한, 강철로 만든 레이딩이란 밧줄은 펜리르가 살짝 몸을 움직이자 바스라졌고

두번째로 준비한 더욱 굵고 튼튼한 드로미라는 힘줄로 만든 밧줄로 펜리르를 묶었으나 이 역시도 펜리르가 살짝 힘을 주자 바스라지고 말았다

이에 오딘은 난쟁이 장인들에게 절대 풀리지 않을 밧줄을 의뢰했고

난쟁이들은 고양이의 발소리, 여자의 수염, 곰의 힘줄, 산의 뿌리, 물고기의 숨결, 새의 침 등의 재료들을 사용해 리본처럼 부드럽고 가는 끈, '글레이프니르'를 만들었다

이제 에시르들에겐 이 글레이프니르로 펜리르를 묶는 일만 남았지만

막상 그들과 그들이 들고 온 글레이프니르를 본 펜리르는 너무 얇은 끈을 보자 그것이 마법적 처리가 된 신물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그것에 묶이는 것을 거부했다


난감해하며 더 큰 명예가 기다린다며 꼬드기던 신들에게 펜리르는

"누군가 오른손을 나의 입 안에 넣어 그대들의 선의를 증명하라"

라고 대꾸했고 신들은 어찌할 수 없어 서로를 바라만 보았으나

이때 티르가 담담히 나서서 펜리르의 입 안에 오른손을 넣었다

"전쟁신 티르라면 가장 믿을수 있고, 아스가르드에서 제일 용감한것은 티르밖에 없다"

며 신들을 비웃은 펜리르는 이렇게 글레이프니르에 묶이게 되었고,  다 묶이자 펜리르는 끈을 풀기 위해 힘을 주었다

그러나 끈은 끊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펜리르의 몸을 더욱 옥죄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풀리지 않자 펜리르는 결국 포기하고 자신을 그만 풀어달라고 요청했으나 신들은 비웃기만 할뿐 풀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펜리르는 길길히 날뛰었으나 차마 양아버지이자 친구와도 같았던 티르의 손을 깨물진 못했고

계속 망설이던 펜리르에게 티르는

"내가 먼저 맹세를 어겼으니 하거라. 괜찮다"

라는 말을 듣자 펜리르는 입을 다물어 팔을 잘라버렸고 티르는 결국 외팔이가 되어버렸다

이때 펜리르는 분노와 증오에 차 친우이자 양부였던 티르가 자신을 배신하게 만들었던 오딘을 저주하며 길길히 날뛰었다


티르는 전쟁의 신이고 결투와 법의 신이었으며 오른손은 그것을 담은 그의 신위이자 신격 그 자체였다

세상의 멸망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관장하는 직책과 신위, 그리고 신뢰를 포기했던 것이었다


모든 신들이 웃고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펜리르를 비웃을때, 티르만큼은 웃지 않고 묵묵히 대의를 위해 배신을 저지른 자신의 죄업을 직시했다

이후 외팔이가 된 티르는 세상의 종말인 라그나로크를 대비하며 조용히 지내다 라그나로크 개전 직후 지옥의 파수견 가름과 교전을 개시하게 된다

티르는 외팔이가 된 탓에 전쟁신으로서의 역량을 완전히 살리지 못했으나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살려 분전했고

가름의 심장을 찔렀지만, 동시에 달려든 가름이  티르를 물어뜯으며 동귀어진으로 그 끝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