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정자나 난자를 생명체라 하지는 않는다.

그럼 나는,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무에서 생겨난 것이다.

없던 '생명' 이 갑자기 생겼으니 말이다.


당연히 내 부모의 가족계획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내가 관여했을 리 만무하다.

한편 이렇게 생각해 보자.

존재하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빼앗는 것이 잘못되었는가?

그렇다면 없던 생명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왜 잘못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는 살인을 벌하는가?


한 가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이 삶을 행복하게 여기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또는 이 삶을 잃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만인이 만인에 대해 일종의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이다.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는 행복을 얻기 위해, 살인을 하는 것이지, 불행해지기 위해 살인을 하는 이는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 삶은 어디에서 왔는가?

죽음이 그렇게 고통스럽다면, 그 죽음보다 덜한 고통을 받을지도 모르는 삶을, 시작시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괜찮을지 몰라도, '절대적으로' 괜찮은가?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저주임에 틀림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고등의 생명은 저주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 쾌락과 고통도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로써 뇌에서 분비되는 각종 화학물질들이 곧 쾌락과 고통인 것이다.

그 화학물질을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마약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는 마약을 금지한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은, 분업 체계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돈을 받는 것, 그 방법으로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경구조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어떤 것으로 쾌락을 느낄지, 어떤 것으로 고통을 느낄지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우리의 물리적 신체를 위태롭게 한다면, 공학의 힘으로 그 신체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신체가 인조화되고, 쾌락과 고통이라는 감정만 느낀다 뿐 기계와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쾌락과 고통의 의미가 모호해진다.

기계 덩어리에 각종 호르몬이 무슨 쓸모란 말인가.


그렇다면 역으로 말해 보자.

우리가 느끼는 쾌락과 고통도 각종 호르몬일 텐데 왜 우리는 그 호르몬의 분비를 위하여 계속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인가.


진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다수 개체가 죽지 않고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쾌락과 고통의 개념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렇게 유전자를 전달하면, 또 그 개체는 쾌락과 고통의 굴레 속에서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태양의 진화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생명이 멸종하거나, 아니면 우주가 열죽음에 이르러 모든 에너지원이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무엇을 위해 그래야 하는가?

난 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우리 모두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어느 누가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알겠는가?


삶이 진실로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죽음보다 낫다는 이유로 죽지 않을 뿐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끝내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죄악이고, 애초에 고통일지 쾌락일지도 모르는 삶을 시작시키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애초에 이 지구상의 생명도 우연히 생겨났을 것이다.

지구는 축복받은 행성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이라는 저주를 탄생시킨 악마의 행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