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기팔괴

(三奇八怪 : 3가지 기이한 물건과 8가지
신기한 풍경)중 
삼기에 해당하는 세 번째 보물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이(紀異)편'에서
만파식적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신문왕이 즉위한지 이듬해(682년), 동해에서
작은 산이 감은사 방향으로 떠내려 왔는데


이에 신문왕이 천문을 담당하는 
관리 김춘일(金春質)을
시켜 점을 치게 하였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대왕(문무왕)께서 참으로 
거룩 하시옵게도, 용이되어

삼한의 바다를 지키고 계십니다. 


거기에 김유신 공 께서도 삼십삼천
(불교에서 제석천이 다스리는 곳)의 
신이 되어 신라에 내려왔습니다.


두 분이 장차 신라를 지킬 보물을 내리려 하시니
행차 하시면 둘도 없는 보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왕이 이견대(利見臺 : 현재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에
행차하여 섬을 보았는데


거북이 처럼 생긴 섬에 대나무가 솟았는데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 밤이되면 
합쳐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폭풍이 몰아쳐 천지가 진동하니
왕이 감은사에 며칠 머물다 잠잠해진 
틈에 섬으로 갔다.


 


섬에 들어간 신문왕 앞에 용이 내려와 
옥대를 바치자, 왕이 섬의 내력에 대해 물었다
용이 말했다.


 


"섬이 갈라졌다 합쳐지는 것은 손뼉을 치는
원리와 같습니다. 떨어지면 소리가 안 나지만


합쳐지면 박수 소리가 나는것과 같습니다.
여기 솟은 대나무도 합쳐진 후에야 소리가 납니다


이는 거룩한 왕이 소리로 천하를 다스릴 
징조이니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입니다. 
이는 용이 되신 선대왕과
김유신 공이 내리는 것입니다."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고 월성의 천존고
(天尊庫 : 신라의 보물창고)에 보관하였는데


적이 올 때 불면 적이 스스로 물러가고 병이 돌면
병이 나았으며 폭풍과 재해를 물리칠 수 있었다.


 


효성왕 때인 693년, 화랑 부례랑(夫禮郞)
이 낭도들과
강원도에 놀이를 갔다가 오랑캐에 붙잡혀


죽을뻔 하였는데, 이 때 만파식적을 
불려 했으나 잃어버려
부례랑의 부모가 백률사 관음상에 빌었더니


잃어버렸던 만파식적이 돌아오고 부례랑도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 났으므로


만파식적이라는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 으로 
고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