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조기상환(바이백) 취소

     

2017년 11월 14일. 다음날(15일)로 예정된 국채조기상환이 입찰 하루 전 전격 취소되었다. 입찰계획을 하루 앞두고 취소하는 일은 국채시장이 개설 된 이후 처음이었다. 규모는 1조 원.

     

전례 없었던 사건에 시장금리는 상승했고, 언론에서는 기사가 쏟아졌다. 스왑시장에서도 금리스와프(IRS)와 이종통화스와프(CRS) 금리가 올라갔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혼란을 겪어 국채를 매도하고 있다고 보도되기까지 했다.

     

민간 누구도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정부가 밝히지 않았으니. 국고채 입찰을 대행하는 한국은행에도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었고, 한동안 채권시장의 혼란은 말할 수 없었다. 추측성 기사들이 나왔다. 감사하게도 11월 말로 예정된 금통위의 금리상승에 대비하여 금리조정 수단을 보유하려 행한 판단이라는 정부에 유리한 분석도 그중 있었지만, 대부분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들이었다.

     

국채시장은 기관이나 중앙은행이 주로 투자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억 원 단위 이상의 돈이 오고 가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그 국채시장에서도 1조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더군다나 상환계획은 이미 10월 말에 정부 보도자료로 공고된 건이었다.

     

1조원의 채권 상환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고 국고채 PD(Primary Dealer)들은 일정에 맞추어 채권을 준비하였을 거다. 국고채 브로커들은 정부에게 매각할 채권을 구해 놓았을 것이다. 1조원 규모로 말이다. 그게 하루 전날 취소된 것이다. 국가의 정책을 믿은 누군가는 큰 손해를 보았던 날이다.

     

조기상환 취소가 발표된 이 후 세종시에 있는 국채과 사무실로 기자들이 들어와 따졌다. 로이터통신의 L 기자 등이 들어와 지금 국채시장 뒤집힌 것 알고 있지 않냐면서, 왜 바이백을 취소했는지 당연히 설명해야 한다고 캐물었다고 한다. 사무실에서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담당 사무관 선배가 홀로 고초를 겪으셨다.

     

바이백 취소 발표 다음날. 부총리님은 기자들로부터 기재부의 바이백 취소로 외국인 투자자 등의 혼란을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그럴 만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외국인들과 기관이 투자하는 국고채 입찰 시장을 하루 전날 흔들고 별일이 아니라고????? 나라 운영이 우습나

     

부총리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의 리플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일이 왜 이렇게 진행되는지 몰랐다.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바이백 취소가 결정되는 장소에 함께 있었다.

     

보름여간 서울에 있으면서 차관보님과 국장님, 그리고 과장님과 함께 부총리님께 관련 보고를 드렸었다.

     

이미 그때부터 나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었다.

     

내 직업의 의미

     

2017년.

     

나는 국고국 국고과에서 국고금 관리 총괄이라는 업무분장을 받았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쳐 약 330조원 규모의 국가자금 지출의 스케쥴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매월 들어올 수입을 예상하고 부처에서 요청한 지출 규모, 전년도 실제 지출 규모 등을 고려하여 자금이 남을 경우 시중 금융사를 통해 운용하고 모자라는 자금은 국고채나 재정증권, 한국은행 차입 등을 통해 조달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민간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CFO 아래에서 수행하는 업무가 유사하다고 들었다. 회계연도가 끝난 후 세계잉여금이 얼마일지를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거창하고 중요해 보이는 일일 것 같지만 세수여건이 좋으면 딱히 큰 역할은 없는 자리였다. 세수여건이 좋아 자금이 많으면 개별부처에서 요청하는 지출요구를 그냥 수용하면 되었으니까.

     

2017년은 예산상 세수보다 실제 들어온 세수가 훨씬 많은 해였다. 2013년 세입예산 보다 실제 수납된 세입규모가 적어 결손이 발생한 이후부터 세제실에서는 조세예산 규모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전망하려 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외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소위 정무적 이유로- 세입예산은 실제 연도말 전망보다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2016년부터 국고금 관리업무는 예산보다 더 들어오는 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따라서 2017년 한 해 내 개인적 업무목표는 자금조달규모를 줄이는 것이었다.

     

재정증권(단기 자금 수급 차 해소를 위해 발행하는 국채)을 63일동안 1조원만 발행하더라도 이자비용은 거의 30억원이다. 재정증권 발행을 한 번만 줄여도 내 평생 연봉이 절감되는 거였다.

     

국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매년 세입예산 이상으로 세출예산을 편성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채 순상환이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채무를 줄이는 데 예산을 사용했다는 말은 당초 계획보다 국채발행을 줄였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있으니.

     

언론 등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채무상환으로 사용했다는 돈은 실제 채무의 순상환이 아니다. 기존에 빚진 돈이 10억 원이고 올해 5억 원을 새로이 빚지는 가계가 있다 하자. 기존 빚을 1억 원 갚았다 하더라도 새로이 빚지는 5억 원이 있다면 연도 말 그 가계의 빚은 줄어 들지 않고 오히려 4억원 늘어날 것이다. 그저 새로 빚질 채무의 규모를 줄인 것에 불과하다. 현대국가 대부분은 적자재정을 편성하고 있고 순채무상환이라는 것은 허상이다.

     

실질적으로 채무의 총규모는 감소하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적자 국채 발행이 한번 결정되면 그 이자는 국가가 존속하는 한 거의 영구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적자성 국채는 애초에 발행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 1조 원을 추가 발행한다면 이자율을 2% 라고만 가정해도 연간 발생하는 비용은 200억원이다.

     

2017년 업무를 처음 담당했을 때부터, 적자성 국채발행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명확한가.

     

5조원 발행을 줄이면 연간 1,000억 원이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평생 국가 세금을 받고 살아도 떳떳할 수 있을 업무였다. 채무를 줄이고 싶었다.

     

부총리 보고

     

2017년 정부가 국회로부터 승인받은 적자성 국채의 최대 발행 한도액은 28.7조 원 이었다. 그리고 상반기가 끝난 6월 말 내가 예상해 본 2017년 초과세수는 20조 원이 넘었다.

     

3월달 업무를 인계받았던 당시에 이미 발행한 적자성 국채는 15조 원. 추경 및 세수 변수 등을 고려해서 5조원의 추가 발행이 결정되었다. 총 발행액 20조원. 남은 적자성 국채 미발행 분은 8.7조원이었다. 당연히 이 돈은 발행할 필요도 없고 발행하면 안 되는 자금이라 생각했다.

     

추경에서 세입예산을 다소 상향 조정 했음에도 불구하고 6월말 전망한 초과 세입 규모는 15조원. 사실 8.7조 원 미발행도 초과 세입 규모를 고려했을 때 너무나도 적은 돈이었다. 10조원 정도는 미발행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국채과에서는 적자성 국채 미발행 분을 활용하여 기존 국가채무를 차환하여 국채 만기를 평탄화하려 했다.

     

기존 국가채무의 차환이란 국채는 발행하되 조달된 자금을 재정지출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2018, 2019년 만기 도래 국채를 조기에 상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국채 만기가 연장되어 해당연도의 국채 관리 부담이 감소하게 된다. 가계로 따지면 5년 뒤에 갚으면 되는 대출을 신규로 받아 내년에 갚아야 할 빚을 미리 상환하는 방식이라 할까. 이때 기존 채무의 조기상환(바이백)이 이루어진다.

     

만기 평탄화용 차환을 진행할 때도 국채 발행이 필요하기에 차환 규모를 늘리게 되면 적자성 국채 발행 가능 규모는 줄어든다.

     

당시 국고국장님은 관련 내용을 7월경 하반기 국채발행계획으로 정리하여 부총리께 보고드렸다.

     

부총리님은 당시에 뭘 이런 것까지 자신에게 보고하냐며, 국고국 선에서 결정해서 처리하라 했었다. 비서실에서 보고받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국장님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보고한 건이었다.

     

그리고 10월. 세수가 잘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였을 당시, 우리국은 적자성 국채발행을 8.7조 원 줄이는 중이며 이 경우 연도말 세계잉여금 규모는 얼마가 되는지 부총리님께 보고드리려 준비하고 있었다.

     

2차관님 보고까지는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 후 부총리 보고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내가 작성한 보고서는 초과 세입을 추경 예산 대비 15조 원 규모로 전망했었는데, 막상 조세 규모 예측을 담당하는 세제실에서는 10조 원 규모로 부총리께 보고드렸던 상황이었다.

     

당시 초과세수의 규모와 그 처리문제는 국감 때부터 국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쟁점이었기에 규모 차이는 생각보다 민감했다.

     

세제실은 1차관에 속해 있었기에 2차관님이나 재정차관보님의 업무 범위가 아니었다. 주 업무가 조세 규모의 예측이기에 다양한 세수예측 모델과 미시적 기초를 토대로 규모를 전망하는 세제실 조세분석과와 달리 기껏해야 국고과는 세입총량을 기반으로 한 선형 회귀분석 결과 정도로 세입규모를 전망할 수 밖에 없었다. 국고과 보고에서는 15조 원이라는 초과 세수 규모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부총리님은 어려운 분이다.

그리고 높은 분이시다 보니 사무관보다 과장이 과장보다 국장이 국장보다 차관보가 부총리를 더 어려워 했다.

     

부총리 보고에서 세제실과 다른 초과 세입 규모를 제시하면서 근거를 댈 수 없다는 것은 윗분들께는 큰 부담으로 여겨졌던 것 같았다.

     

세제실은 15조 원이라는 초과 세입 규모에 동의하면서도 아직 세제실장님 보고도 마치지 않았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보고는 늦춰줬다.

10월 보고가 11월로 넘어갔고 11월 13일까지도 보고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국채과에서는 국채발행 축소 규모를 빨리 확정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보고하는 것이 무서워 적시에 상급자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못하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부총리님이 무서워서 보고를 늦추었다는 것은 민간에서 보기 얼마나 우스울까.

     

문제 될 것 같은 내용은 보고 하지 않는다. 설사 보고를 하더라도 지적될 것 같은 내용은 보고서에 쓰지 않는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쉽게 쓰는 것이었다. 상사가 이해하기 어려울 내용은 가급적 보고서에 포함시키지 않고 최대한 쉽게 쓰는 것. 누락되는 내용이 그 속에 많았다.

     

뭐 이것은 민간 대기업들도 다 똑같다고는 하더라.

그러나 분명 옳지 않은 방식이다. 그리고 늦어진 보고 속에서 결국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11월 13일. 바이백 취소발표 하루 전

     

퇴근 무렵 차관보님께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에 부총리에게 보고해야 한다면서 적자성 국채 발행계획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라는 지시였다.

     

차관보님이 지시한 보고서의 톤은 이전 차관님께 까지 보고된 내용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부총리로부터 이미 지시받은 내용이 있었는지 남은 국채 8.7조원을 발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추가 발행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고서를 쓰라 하셨다.

     

물량 일부는 조기상환용으로 사용되었거나 사용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최대 발행 가능 규모는 4조 원에서 수준이었다. 차관보님은 그중 2조 원 정도는 발행하는 것으로 보고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다.

     

연간 400억 원의 재정부담이 국가에 추가로 주어지는 셈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대통령 정례보고에 해당 내용도 보고할 것이라 하시면서 대통령 보고자료도 준비하라 하셨다.

     

보고서를 마무리 한 후 차관보님이 물으셨다.

     

- ㅇ사무관은 어떻게 생각해? 이거 발행하는 게 맞는거야?

     

기회였다. 나는 당연히 발행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세수가 좋은 지금 발행할 실익이 없다고. 국회 등 외부에서도 지적이 들어올 것이라고. 연간 발생하는 재정부담도 말씀드렸다.

     

당연한 이야기었다. 일반 가계를 생각해도 자명했다. 월 100만 원의 수입을 거두는 사람이 300만 원을 지출하기 위해 200만 원의 대출계획을 잡았다고 하자. 당연하게도 만약 보너스가 들어와서 수입이 200만원으로 늘었다면 대출을 줄일 것이다. 200만 원의 대출을 유지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번 정권들어 처음 시도하는 정책도 아니었다. 정권과 관계없이 수십년간 반복되었던 국채발행 관리 방식이었다. 세수가 많으면 예정된 국채발행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 판단이었고 지난 정권 때도 지지난 정권 때도 그리고 그 이전 정권에도 그렇게 해왔었다.

     

당연하게도 차관보님께서 다 아시는 내용이었다. 차관보님은 확신이 필요하신 것 같았다.

     

차관보님이 지시하셨다.

     

- 보고서 결론 바꿔라. 적자성 국채 추가발행 안 하는 걸로 다시 써.

     

차관보님은 존경할만한 분이셨다.

     

11월 14일. 바이백 취소 날

     

차관보는 국회 옆에 위치한 수출입은행에서 부총리께 아침 일찍 보고한다 했다. 나는 보고자료를 준비하여 세종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첫차를 탔다.

 

당시 국고과장은 고위공무원 교육이 진행 중이었기에 국채과장과 함께 차관보님께 갔고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차관보님은 부총리님 보고를 위해 들어갔다.

     

국회에서 기재위가 예정되어 있었다. 국회로 이동하여 관련 내용을 국장님께 보고드렸다. 기다리는 동안 이상한 이야기가 흘렀다. 다른 1급들이 다 있는 앞에서 우리 재정차관보가 부총리로부터 말도 못할 정도로 심한 말을 들으면서 혼이 났다 했다.

     

차관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채과장과 수출입은행으로 오라 하셨다.

     

차관보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1년차 사무관이 과장님이나 국장님으로부터 페이퍼나 업무로 심하게 혼났을 때나 볼 수 있는 표정. 얼이 나가 있는 표정이셨다.

     

죄송스러웠다. 괜히 어제 마지막에 차관보님께 국채 추가 발행을 중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드렸나 싶었다.

     

차관보님께서는 그래도 침착하셨다. 공직 생활 중 제일 심하게 야단맞은 것 같다고 하시면서, 정무적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하셨다.

     

그놈의 정무적 고려.

나는 정무적 고려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차관보는 발행하는 것으로 보고서를 고쳐야 하겠다고 지시하면서 최대 발행규모가 왜 8.7조원이 아니라 4조원인지에 대하여 부총리가 화를 내셨다고 말하셨다. 오후에 발행하는 것으로 다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여드리자고 하셨다.

     

점심시간 동안 국회에서 적자성 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최대 한도로 추가 발행하는 것을 내용으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에는 결론만 있으면 안되었기에 추가 발행이 가지는 장점도 제시하여야 했다. 나는 추가 발행이 가지는 장점을 알지 못했다. 발행할 이유는 아무리 곱씹어봐도 없었다.

     

부총리님을 제외하고는 차관님 이하 간부님들도 모두 추가 적자성 국채발행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어찌저찌 보고서는 공간이 채워졌다. 최대 발행이 가능한 국채규모는 기존 4조원에서 5조원으로 1조원 늘려 보고하기로 했다. 국채시장에 큰 무리가 가겠지만 어찌어찌 발행하면 될 것도 같았다. 지금 국채시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셨다.

 

보고서와 내용을 바꾸고 차관보님 뿐 아니라 국장님과 국채과장님, 그리고 나까지 함께 들어갔다. 김동연 부총리께 대면보고를 하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애초에 부총리 보고에는 사무관이 잘 들어가지 않으니까.

     

부총리님은 아직 화가 완전히 누그러 들지 않아 보였다. 보고하러 들어가자마자 차관보님을 다시 질타하셨다.

     

-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면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국장이나 과장 입장에서는 국채 발행 안한다고 할 수 있어. 당연한 판단일 수 있단 말야. 그런데 당신은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니야? 1급까지 올라갔으면 역할을 해야지! 1급까지 올라가 놓고도 뭐가 중요한지 판단을 못해?

     

손에 잡히는게 있었다면 집어 던질 듯한 기세였다. 부총리의 질타는 계속 되었다.

     

- 그리고 왜 추가로 발행할 수 있는 적자성 국채가 8.7조원이 안되는 거야? 설명해봐. 그리고 발행가능 한도가 또 늘었네? 이건 왜 그런 거야? 늘어날 수 있구만! 발행할 수 있는 물량 최대로 확보해!

     

국채 만기평탄화를 위한 조기상환으로 일부 사용되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부총리는 보고를 들으면서 어찌되었건 최대로 발행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하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부총리님은 왜 적자성 국채 발행 중단을 멈추면 안되는지 설명하셨다.

     

정무적 고려!

드디어 그 말로만 듣던 정무적 고려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정무적 고려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정권말로 이어지면 재정의 역할이 갈수록 더 커질 것이기에 그 때를 위해 자금을 최대한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것. 국채 발행 후 세계잉여금으로 비축하여 다음 다음연도 예산편성에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두 번째는 금년 국채 발행을 줄이게 된다면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는 것. 정권이 교체된 2017년도에 GDP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둔다면 향후 정권이 지속되는 내내 부담이 가기에 국채발행을 줄일 수 없다는 이야기 였다.

     

두 내용 모두 납득이 가지 않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국가재정법 상 불가능한 예산편성 방법이었고 두 번째 이야기는 국민을 기만하는 내용 같았다.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국채 발행을 중단하면 안된다니. 부총리님께서는 앞으로 GDP대비 채무비율이 증가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계셨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경제여건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정부의 정책 수단은 제한적이었다. 정부내도 그랬고 국회에서도 재정의 역할은 갈수록 강조되고 있었다.

     

그렇게 될 때 비교 대상이 될 기준점이 박근혜 정권의 교체기인 2017년이 될 것이다. 미래를 고려해 본다면 2017년의 GDP대비 채무비율을 낮추어서는 안된다는 말이었다. 이시기의 GDP대비 채무비율을 낮추면 향후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부총리가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8.7조원의 국채를 발행하면 1년 이자 부담만 2,000억원 돈이다. 이자도 국민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아무리 부총리는 정무직이라 하나 재정당국의 수장으로 오히려 청와대나 정치권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 부총리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실망스러웠다.

고위 공무원이 가져야 한다는 정무적 고려, 정무적 판단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가? 정권이 유지되도록 기여 해야 한다는 것이 정무적 고려인 것인가? 공무원은 해당 정권의 정권 재창출을 사명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열심히 일해 승진하여 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1급 차관보가 되면 해야 하는 정무적 판단이란 것은 이런 것인가?

     

승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첫 번째 이야기도 말이 되지 않았다. 국가재정법 제90조에 따를 때 세계잉여금은 발생 다음연도에 법에 따라 처리된 후 잔액은 세입에 강제 이입처리 되도록 하고 있었다. 돈을 남겨둔다고 하여도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만 일부 활용할 수 있을 뿐, 다음 다음연도 예산편성에 사용할 수는 없다.

     

부총리님께 세계잉여금은 다음 다음연도 예산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부총리는 과거에 활용했던 기억이 있다고 예산실을 통해 확인해보라 하셨다. 연도초에 비공식적으로나마 법률자문도 받았던 건이었고 얼마 전까지도 자료로 확인해본 사안이었다. 적어도 최근 10년 내로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었고 부총리님께도 그렇다고 이야기 드렸다.

     

국가의 회계연도는 단년도이다. 국회로부터 승인받은 국채 발행 역시 당해 연도 예산지출에 있어 예상되는 세입부족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다음 연도에 예산을 편성함에 있어 자금이 부족하다면 다음 연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국채 발행을 포함시키고 국회의 승인을 받으면 된다.

     

세계잉여금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추가경정예산이 그것이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데 있어 야당의 주된 공격이 ‘재원을 어디서 구할 것이냐’라고 할 때 세계잉여금이 있을 경우 ‘국민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고, 국가의 남은 돈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편법에 불과하다. 국가 회계연도가 단 년도인 이상, 예산을 편성할 회계연도에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면 그 회계연도에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다. 추경예산편성이 필요하고 그때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면 그 당시 국회를 설득하면 될 것이다. 물론 국회를 통과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야당 의원을 설득하는 과정에 있어서 말도 되지 않는 반대급부를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비용이 연간 2,000억 원이나 발생하는 것인가.

     

더욱이 부총리님은 국채 발행 후 남은 자금을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하려 하는 것도 아니라 2년 뒤 본 예산에 활용하겠다는 취지셨다.

     

어찌되건 간에 부총리님께서는 GDP대비 채무비율 등을 고려했을 때 국채발행을 중단하여 이번 정권에 부담을 주는 것은 잘못되었다  하셨다. 현 시점에서 최대로 발행할 수 있는 규모를 확인하고 보고하라 지시가 내려졌다. 정무적 고려가 포함된 정책 판단이었다.

     

보고는 끝났지만 숙제는 남았다. 적자성 국채의 발행 가능 규모를 늘려야 했다. 일단 가능한 재원을 다 끌어올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로 예정된 1조원의 국채 조기상환을 취소하기로 했다. 이미 공지된 일이었기에 국채시장에 무리가 갈 수 있었지만, 지금 국채시장을 고려할 때가 아니라 하였다.

     

한국은행에 다음날로 예정된 국채 조기상환을 취소한다 통보하였다. 그렇게 2주전 이미 공지되었던 1조 원의 조기상환은 시행을 하루 앞두고 국채시장 마감 전 취소되었다.

     

국채금리는 현물 선물 모두 올라갔다. 국가에 매각하기 위해 채권을 준비해두었던 브로커와 딜러들은 앉은 자리에서 손해를 보였다.

     

그런 경우가 없었기를 바라지만 선물시장 등에서 금리 하락 포지션에 큰 돈을 투자했던 투자자는 손실규모가 컸을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포지션을 잘못 설정했다 직장을 옮겼었을 수도 있다.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장님과 과장님은 언론사에 열심히 연락하여 기사 톤을 낮춰달라고 사정했다.

     

- 기자님 이거 제목 뭡니까. 국가가 사기쳤다? 사기는 아니죠. 어떻게 국가가 사기를 칩니까. 이렇게 기사 나가면 국민들이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어디까지나 계획을 변경한 겁니다. 제목 워딩만 좀 부드럽게 해 주십시오.

     

시장을 안정화 시켜야 할 정부가 시장을 흔들었다.

그것도 국채 이자율 시장을.

사실 약속을 어긴 것이니 사기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가?

     

국채시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을 뵐 면목이 없었다.

     

적자성 국채를 추가 발행하면 국채시장은 더 망가질 터였다. 당시 국채시장 누구도 국가가 적자성 국채를 추가 발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십 년이 넘게 반복된 일이었다. 정권과 관계 없이 재정여건이 좋을경우 적자성 국채 발행 규모는 예산상 한도 보다 줄여 왔었다.

 

바이백 취소 이후

     

부총리님의 지시가 있기는 했지만 적자성 국채 8.7조원을 전액 발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국채시장도 버티지 못할 것이었고 현실적으로 조기상환에 일부 재원을 사용했었기도 했다. 국채시장 여건 등을 고려했을 때 최대 발행 규모는 5~6조원이 한계로 보였다. 발행 규모를 확정하여 다시 보고를 드려야 했다. 1주일가량 서울에서 묵었다.

     

국채 추가 발행 규모에 따른 GDP대비 채무비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모수인 GDP변화에 따라 GDP 대비 채무비율은 요동쳤다. 경제정책국으로부터 GDP규모를 받아 계산하라 지시받았다. GDP대비 채무비율은 나중에 확정 GDP에 따라 또 그 수치가 크게 달라질 것이었다. 이 분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며칠 뒤. 4조원 후반을 발행하기로 결론 내고 다시 부총리 보고에 들어갔다. 부총리 역시 기자들로부터 바이백 취소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 등 홍역을 치른 후였다. 부총리가 말했다.

     

- 난 분명히 조기상환 취소하라고 한적 없다? 내가 시장 흔드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시장에 공표한 거 알았으면 난 절대 못하게 했을 거다. 내가 그날 좀 세게 말해서 알아서들 조정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 그럴 필요 없어요.

     

그게 끝이었다. 국채시장과 금리를 흔들었던 국채 조기상환 취소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도 잘못했다 하지 않은 상태로.

     

갑자기 예전 행정법에 나오는 학설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국가 무오류설. 국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우리는 분명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채과에서 국채시장 국고채 우선 거래 딜러(PD) 등을 만나면서 사과하였다고 들었다. 그러나 국채시장에 어디 PD만 있으랴.

     

부끄러웠다.

     

보고

     

부총리님께 보고가 이어졌다.

     

부총리님께서 적자성 국채 4조원의 추가 발행 보고를 받으시고 예상되는 GDP대비 채무비율을 몇 번 계산해 보셨다. 이게 한계냐고 되물으시더니 아쉽긴 하고 부담되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발행하자고 하셨다. 추가 발행이 발표되면 국채시장은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12월 발행량이 기존 계획에서 4조 원이 추가되는 것이니.

     

국장님께서 나서셨다. 부총리님께 4조원을 발행하겠다는 보고를 드린 이후에 국채시장의 부담 등의 사유를 들면서 아무래도 국채 추가  발행은 부담이라 말씀하셨다. 부총리님이 말씀하셨다.

     

- 나중에 누군가가 추가로 국채를 발행하기로 한 의사 결정의 책임 물을까 부담되는거야? 나중에 실무진들이 다칠까봐? 그러면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안건으로 올려. 거기서 장관들이 결정한 걸로 할게. 그러면 나중에라도 실무진 다칠 일은 없을 것 아니야.

     

중요한 건 누가 다치느냐 다치지 않느냐가 아니었다. 그건 훨씬 미래의 일이었다. 그보다 이자가 발생하는 것.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순간 불필요한 이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이대로 가면 거꾸로 평생 무보수로 공무원 일을 해도 국가에 끼친 손해를 갚지 못하게 생겼다. 국채시장이 망가지고 금리가 오를 것도 뻔했다. 연도말에 그렇지 않아도 미국 금리인상이 가시화 된 상황에서 금리상승 충격을 가하면 좋을 일이 없었다. 그 피해는 고스라니 국가경제 전반으로 파급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총리님께 보고하는 와중에 사실관계에 대한 대답 외에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은 없었다.

     

경제관계장관회의 안건을 만들기로 했다. 발행 이유를 써야 하는데 나는 도대체 왜 세수가 넘쳐 흐르는 지금 이 11월 말에 적자성 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것인지 여전히 쓸 말이 없었다.

     

결정된 내용을 2차관님께 보고드렸다. 마침 예결위 예산 심의 도중 국회 기재부 집무실에 혼자 계셨다. 나는 국회 기재부 사무실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고 과장님께서는 이런 일은 빠른 보고가 중요하다 하시면서 차관님께 보고하라 전화로 지시하셨다. 털레털레 자료를 들고 보고드렸다. 2차관님께 혼자 보고 드렸던 것은 처음이었다.

     

2차관님께서는 가만히 듣고 계셨다. 2차관님께서 되물으셨다.

     

- 괜찮겠어?

     

나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뭐라고 답했는지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고 했던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었다.

     

정상대로

     

부총리님께 편지를 준비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적자성 국채가 추가 발행되는 것을 바라볼 수 없었다. 국채시장에 충격이 가해질 것이 눈에 보였다. 국채과에 있는 후배 사무관에게 내용을 보여주고 고쳐달라고 했었다. 같이 쓰자고 운을 띄었다. 부담스럽다면 나 혼자라도 좋았다. 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편지를 준비하고 있을 때 즈음.

당시 박성동 국장님이 나섰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발행하면 연간 이자비용만 천억 원이 넘어가는데 이거 누가 책임질 거냐고. 내가 지금까지 상부에서 시키면 어지간하면 시키는 데로 다 수용하고 하라면 하라는 데로 다 했는데 이건 아니야. 필요도 없는 국채를 12월에 발행해서 이자 물게 생겼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

     

페이퍼를 다시 준비하라 하셨다.

     

누군가가 부총리가 그렇게 강하게 주장한 건인데 결정을 다시 돌릴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국장님은 두 번 안되면 세 번 네 번이라도 보고해야겠다고 하시면서 광화문청사 부총리 집무실에 찾아갔다.

     

- ㅇ사무관. 클립을 페이퍼 양쪽에 둘 다 끼워두라고. 지금 우리는 부총리 한테 반기를 드는 거니까 부총리가 보고서 보다가 집어 던질 수 있단 말야. 집어 던지면 낼름 다시 가서 가져다 드려야 되는데 그 때 페이퍼 빠져있으면 안 된다고. 튼튼하게 꽃아.

     

국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웃으셨다. 멋있으셨다. 국장님같은 역할을 하는 공무원이 있기에 그래도 국가 정책이 큰 오류 없이 돌아가는 것 같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부총리 보고는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럽게 끝났다. 의외였다.

부총리님은 왜 추가 발행이 안되는지, 국채시장에 어떤 타격이 가해지는지 보고를 들으시더니 정말 발행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느냐 되물으셧다. 국장님께서 그렇다고 하니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는 알겠다고,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3부: https://arca.live/b/society/379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