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 해전 (玉浦海戰) 

1명 부상/적선 26척 격침

합포 해전(合浦海戰)

피해 없음/적선 5척 격침 및 전멸


적진포 해전(赤珍浦海戰)

피해 없음/적선 11척 격침 및 전멸


사천 해전(泗川海戰)

2명 부상/적선 13척 격침 및 전멸


당포 해전(唐浦海戰)

피해 없음/적선 21척 격침 및 전멸

구루시마 미치유키 전사


명량 대첩(鳴梁海戰)

2명 전사/적선 31척 격침,

도도 다카토라 부상,

구루시마 미치후사,

하타 노부토키 전사,

전사자 불명


노량 해전(露梁海戰)

조선 수군 10명 전사, 300여 명 부상

명 수군 500여 명 사상

적선 200여 척 격침,

100여 척 나포,150여 척 반파,

사상자 2만 ~ 3만 명


수십차레 해전에서 몇백명 손실로 적선 800척 넘게 격침


"당시 이순신은 지지는커녕 물자가 부족해 자급자족 해야 했으며 선조에게 심한 견제를 받고 조정대신들에게 온갖 트집을 잡혔다. 그런 와중에도 이순신은 조정에 국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각종 생필품과 식량을 꾸준히 보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 결코 아니다. 정부가 군대를 보급하는 것이 정론인데 오히려 군대가 정부를 먹여살리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


평가

일본

1908년 발행된 일본 해군의 사토 테츠타로 제독의 저서 《제국국방사론》에서 "역사상 최고의 제독은 동방의 이순신이라고 평했다


영국 

해군의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제독 은 그의 저서인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에서 "영국인의 자존심은 그 누구도 넬슨 제독과 비교하길 거부하지만, 유일하게 인정할 만한 인물을 꼽자면, 한반도의 이순신 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가 없었으며,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완벽해 흠잡을 점이 전혀 없을 정도다"라 쓴다


이순신 자기평가


竭忠於國而罪已至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으나 죄가 이미 미쳤고

欲孝於親而親亦亡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자 하였으나 부모마저 돌아가셨네.

天地安如吾之事乎

세상에 어찌 나같은 사람이 있으랴?

不如 早死也

속히 죽느니만 못하다.

정유년 4월 19일(1597년 6월 3일) 《난중일기》


후임자 짓거리

이로인해 이순신이 피땀흘려 건설한 조선 수군 300척(거북선 16척 포함)이 모두 전멸하였다

선조 짓거리

선조는 이순신에게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라는 교서를 내릴 정도로 저자세로 굴면서도 실제 품계는 원래보다 4품계 강등된 정3품 절충장군 품계를 주어 뒤통수를 쳤다.


후손 짓거리

원균은 암담 그 자체인 경상도 해상 방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반면, 이순신은 경계를 핑계로 밍기적 댔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한 역사학자가  평택시에 직접 문의하기도 했지만, 평택시는 "원균의 숭고한 호국정신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선조실록』 37년(1604년) 6월 25일자는 세간의 이런 평가가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준다. . …… 현재의 일반적 통념에 역적인 인물인 원균이 400년 전인 당시에는 당당히 일등공신으로 책봉된 것이다. 그것도 그가 모함했다는 이순신과 같은 반열에 올라 있다. 이 기록은 이순신을 띄우기 위해 원균도 조조처럼 한 영웅을 위한 후세의 희생양이 아니었을까? -이덕일 지음-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그의 저서를 즐겨 읽고 지지한다고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상기한 누리꾼과 이순신 관련 법정 다툼에서 이덕일이 무죄가 선고되었을때 축하 트윗을 보내기도 했다.


+

이런 민족성웅의 물건이 국보로 지정되는게 살인무기라는 헛소리를 하고 일부는 일리가 있다고 동조하는 헛소리 실현 중


진짜.. 이순신 장군이 아깝다...너희들한테..


ps. 찾아보다 병맛짓한 대선후보 하나 찾아낸건 자랑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