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혁명적 길이 있을까? 하나라도 있을까? 사미르 아민이 제3 세계 나라들에 충고하듯, 세계 시장에서 파시스트적 ‘경제해법’이라는 기묘한 갱신 속으로 퇴각하는 것? 아니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말하자면 시장의 운동, 탈코드화와 탈영토화 운동 속에서 더욱더 멀리 가는 것? 왜냐하면 아마도 고도로 분열적인 흐름들의 이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보면, 흐름들은 아직 충분히 탈영토화되지도, 탈코드화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경과에서 퇴각하지 않고, 더 멀리 가야 한다. 니체가 말했듯이, <경과(Prozeβ)를 가속하라.> 사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신은 <랍스터> 또는 이중 집게, 이중 구속이다."


"언표는 그것이 실행되는 수만큼 있다. 또 하나의 언표가 실행되면 그 안에는 언표들 전체가 현존한다. 그래서 변주의 선은 잠재적이다. (...) 연속적 변주를 만들어라!"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들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라고 불리는 기관들의 이같은 조직화와 대립한다. 아르토는 분명 기관들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가 싸움을 걸고, 싸움에 걸려 한 것은 유기체에 대해서였다. '신체는 신체이다. 신체는 혼자이다. 또한 기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유기체는 신체의 적이다'(Artaud, "The Body is the Body")"


"즉 코스모스적 힘은 이미 재료 속에, 거대한 리토르넬로는 소박한 리토르넬로 속에, 대규모 조작은 소규모 조작 속에 들어 있다. 그저 우리 자신이 그만큼 강한 힘이 있는지 확신이 없을 뿐이다. 우리는 체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선과 운동들을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유목민 또는 혈거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빠르건 느리건 운동만으로도 종종 다시 매끈한 공간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물론 매끈한 공간 자체가 해방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매끈한 공간에서 투쟁은 변화하고 이동하며, 삶 또한 새로운 도박을 감행하고 새로운 장애물에 직면해서 새로운 거동을 발명하고 적을 변화시킨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의 매끈한 공간만으로도 충분하다고는 절대로 믿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