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외전 5-3. 수치심 없는 퍼플 헤이즈 4. 돌리 대거


현지 시각 오전 7시 10분, 푸고와 실라E는 멕시코 북부 사막의 격리구역 근방까지 도달했다. 죠르노가 이야기했던 대로, 자동차 한 대와 중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푸고가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남자가 딴청을 피우며 중얼거렸다.


“날씨 좋죠? 바람도 적당한 게, 마치 ‘황금색 바람’이 부는 느낌이네요.”


푸고는 그가 ‘암호’를 말하는 걸 알아차렸다. 푸고는 조금 고민하다 그에게 맞장구를 치는 척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멕시코의 바람과 별개로 바다는 별로더군요. 파도도 잘 안치는 게 꼭 ‘돌로 만든 바다’ 같았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자 남자가 말했다.


“판나코타 푸고님이시죠? 그 옆은 실라E 님?”


둘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모자를 벗으며 고개를 숙였다.


“두 분 다 여기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GIO님을 따르는 ‘카르파초’라고 합니다. GIO님의 명령에 따라 멕시코까지 와서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에 타시죠.”


두 사람이 뒷자리에 앉자 자동차는 북쪽으로 난 도로를 타고 움직였다. 카르파초는 운전을 하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 가는 마을은 1년 정도 전에 ‘지도에서 지워진’ 마을입니다. 원래는 1000명 정도 살던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어느 순간 미국으로 마약을 유통하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중 하나가 그 마을을 점거하고 미국으로 마약을 유통하기 위한 주 거점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 즈음해서 ‘파시오네’가 미국으로 마약을 유통하기 시작했죠. 아마 그들에게도 ‘파시오네’가 눈엣가시였을 겁니다. 마약 카르텔들은 방해꾼이 나타나면 항상 거의 비슷한 레퍼토리로 행동하죠. 멕시코로 관광을 갔던 파시오네 간부 몇을 납치한 겁니다. 그런 다음 조직에 ‘선전포고’를 했죠. ‘미국으로 유통되는 마약의 양을 줄이지 않으면 죽이겠다’면서요. 물론 ‘디아볼로’는 쉽게 굴복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속 ‘친위대’를 마을로 급파했어요. 그자의 이름은 바로 ‘초콜라타’!”


푸고는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눈에 띄게 동요했다. 몇 개월 전, 로마로 향하는 길에서 자신들과 일반인들을 비롯해 로마 전체를 ‘녹색 곰팡이’로 뒤덮은 남자… 푸고를 비롯한 전원이 초콜라타가 가진 ‘능력’의 공포를 충분히 실감했었다.


“초콜라타는 비행기에서 곧바로 마을 중심부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지옥이 펼쳐졌죠. 초콜라타의 스탠드가 발동되었을 때, 마을에는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없었습니다… 마약 카르텔도, 시민도, 동물과 식물, 심지어 인질까지… 그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지워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죠. 초콜라타의 능력은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반나절이면 능력은 ‘몬테레이’까지 도달할 수 있었죠. 다행히 보스가 직접 나서서 그를 제압하였기에 능력은 마을을 중심으로 반경 3km까지 만 퍼지게 되었습니다. 조직은 온갖 뇌물로 멕시코의 군과 경찰, 언론 등을 구워 삶아 정체불명의 전염병이라고 속일 수 있었죠.”


어느덧 창문 밖으로 삼엄하게 세워진 장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차가 멈추고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이 푸고와 실라E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아마 에스파냐어 일 것이다.)로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실라E가 조용히 물었다.


“IQ 152의 천재라면서, 에스파냐어는 못해?”


푸고는 그녀가 말하는 것과 별개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불안이나 공포는 아니었다. 뭔가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법학이라서 영어는 몰라도 에스파냐어는 배울 틈이 없었습니다.”


카르파초가 소리쳤다.


“Can you speak English?!”


경비원은 표정을 구기더니 약간 어눌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영어는 푸고와 실라E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기는 통제구역이요. 허가가 없으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나는 휴스턴 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요. 뒷자리에 탄 사람은 내 학생들이고.”


카르파초는 위조된 신분증을 내밀었다. 경비원이 신분증을 유심히 보더니 뒷자리의 푸고와 실라E를 유심히 바라보다 말했다.


“그나저나 대학생 치고는 좀 어려 보이는데…”


셋은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잔뜩 긴장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경비원은 신분증을 다시 돌려주며 미소를 지었다.


“뭐, 딱히 문제는 없으니까 통과해도 됩니다.”


차는 격리구역 안으로 움직였다. 잠시 후, 폐허가 된 마을 가까이에서 자동차는 멈춰섰다. 카르파초가 말했다.


“마을 안으로는 두 분만 들어가셔야 합니다. 저는 스탠드가 없거든요. 두 분 다 행운을 빕니다.”


두 사람이 자동차에서 내리자 카르파초는 차를 몰고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푸고가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놈들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찾을까요?”


실라E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바닥을 살피더니 땅을 짚었다.


“부두 차일드!”


실라E의 스탠드, ‘부두 차일드’가 그녀와 똑 같은 자세로 나타나더니 마치 진짜 설치류라도 되는 것 마냥 바닥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렸다. 한참을 그러고 돌아다닌 끝에, 부두 차일드는 그 자리에서 앞발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땅이 약 30cm 정도 파지자 그 위로 발자국이 드러났다. 곧이어, 그 발자국은 마을 안쪽으로 주르륵 이어졌다.


“우리를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난 발자국이야. 구두를 신은 남자의 발자국인 걸 보니 아마 ‘마시모 볼페’겠지. 가자, 푸고.”


실라E가 앞장서 발자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몇 분 후, 마을을 빙빙 돈 끝에 두 사람은 발자국이 끊긴 그 자리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사막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하얀 코트와 털모자를 쓴 갈색 긴 머리카락의 남자, 그가 바로 ‘마시모 볼페’였다. 두 사람이 빠르게 스탠드를 꺼냈지만 마시모는 전혀 둘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왔는가, 보스의 끄나풀 들아… 그거 알고 있나? ‘마약’이란 건 말이야, 누군가를 중독시켜 나락으로 빠뜨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죽어가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도 하지. 우리 ‘마약팀’이 유통하는 마약은 일부가 병원으로도 들어가. 너희가 정의를 쫓으며 앵무새처럼 소리치는 ‘마약 근절’… 그건 허상이다. 우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 그 자리를 가지려 들겠지. 너희 잘난 보스와 부하들은 그걸 막을 수는 없어.”


푸고가 소리쳤다.


“시끄러워! 더러운 약쟁이 주제에 무슨 대단한 사상이라도 가진다는 것처럼 굴지 마! 당장 네놈의 ‘매닉 디프레션’을 꺼내!”


마시모는 그제야 뒤를 돌았다. 카랑카랑하고 고압적인 목소리와 달리 그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풍기는 ‘사악함’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곧이어 ‘매닉 디프레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시모의 절반 정도 오는 작은 키에 마치 아기 미라나 해골 언데드 같은 생김새에 툭 튀어나온 배의 배꼽에선 기묘한 관이 나와 있었고, 입에서는 하얀 토사물 같은 것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푸고는 마시모의 ‘매닉 디프레션’을 바라보며,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죠르노의 분석에 따르면 마시모 볼페는 ‘다른 사람’과 같이 다닌다. 허나 그 마시모 볼페와 같이 다니는 파트너, ‘안젤리카 아타나시오’가 보이지 않았다.


“이봐, 너와 항상 같이 다니는 ‘안젤리카’라는 여자는 어디 있지?!”


마시모는 기분 나쁘게 웃더니 두 사람과 거리를 두고 조금씩 양 옆으로 움직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집은 허울뿐인 귀족 가문이었지. 뭐 귀족이라는 존재도 할아버지 세대 즈음에 유명무실 해졌지만. 하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어. 가만히 앉아도 돈이 들어오는 것 마냥 사치를 부렸지. 그 덕분에 어머니가 다른 형은 의절을 선언했어. 자신의 어머니의 성, ‘트루사르디’를 쓰며 집을 떠났지. 몇 년 뒤, 나 역시도 집을 떠나 ‘조직’에 들어왔다. 동시에 나는 스탠드를 각성했고, 아마 지구 어딘가에 있을 형님도 똑같이 각성을 했겠지.”


푸고는 빠르게 주변의 폐허가 된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안젤리카를 만난 건 3년 전, 그녀는 11살이었다. 나는 우연히 ‘조직’이 지배하는 ‘창녀촌’에서 그녀를 발견했지. 또래들은 학교에 다닐 나이, 그녀는 그 어린 나이에 몸을 팔고 있었다. 누군가 납치를 했을 까? 아니면 부모가 가난을 버티지 못하고 팔아 넘겼을 까? 아무튼 확실한 것은 그녀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어. 중증의 약물 중독으로 ‘피가 거칠어지는’ 병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어떠한 의료 기술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어. 오로지 내 ‘매닉 디프레션’으로 강화시킨 마약으로만 병을 지연시킬 수 있었지. 나는 그녀를 데리고 와 동생처럼 길렀다. 그녀는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고, 나도 그녀 없이는 살아갈 이유가 없어.”


푸고도 실라E도 그가 일부러 말을 돌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마 안젤리카의 ‘스탠드’가 능력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을 버는 거라고 둘은 생각했다. 그때, 생명의 흔적이 없는 마을에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Lusy in the sky with diamonds… Lusy in the sky with diamonds… Lusy in the sky with diamonds…”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는 노래지만 분명 ‘비틀즈’의 ‘Lusy in the Sky with Diamonds’였다. 푸고는 재빨리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긴 회색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모퉁이 너머로 사라진 것이다. 푸고는 실라E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실라E, 죄송하지만 마시모 볼페를 맡아 주세요! 제가 안젤리카를 쫓겠습니다!”


실라E가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푸고는 안젤리카가 사라진 곳으로 내달렸다. 푸고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실라E는 마시모를 노려보며 전투 태세를 취했다.


“너를 쓰러뜨리고 ‘인정’을 받겠어! 마시모 볼페!”


마시모는 코웃음을 쳤다.


“인정을 받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겠다니… 가련하기 짝이 없구나!”


두 사람이 격돌하는 동안, 푸고는 안젤리카를 쫓아 몇 번이고 모퉁이를 돌았다. 얼마나 달렸을 까, 마침내 푸고는 안젤리카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윤기 없이 푸석푸석한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는 백지보다 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풀린 눈으로 실실 웃으며 푸고를 바라보았다.


“퍼플 헤이즈.”


푸고의 ‘퍼플 헤이즈’가 안젤리카를 노려보며 이를 갈고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안젤리카는 퍼플 헤이즈의 모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자리에 주저앉아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때,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날아오더니 안젤리카의 어깨에 앉아 짹짹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푸고는 안젤리카가 그 새와 대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다 ‘새’의 모습이 무언가 이질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일반적인 새와 달리 그 ‘새’는 ‘기계’같은 붉은 눈 여러 개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안젤리카는 푸고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나이트버드 플라잉.”


그 순간, ‘새’의 붉은 눈이 일제히 반짝이며 푸고를 노려보았다. 동시에 푸고는 마치 그 자리에서 깊은 수령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을 강하게 받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치 제자리에서 엄청나게 회전한 것처럼 너무나도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푸고의 두 눈은 안젤리카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젤리카는 푸고를 내려다보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너의 ‘기억’을 보았다. 너의 ‘감정’도 보았다. 가련하구나, 사랑받지 못해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하는 이여. 복수심을 이겨냈지만 ‘복수에 눈이 먼 소녀’를 사랑하는 이여.”


갑자기 안젤리카는 겉옷을 벗었다. 얇은 옷 한장만을 걸친 그녀는 백지장보다도 새하얀 피부로 푸고의 주위를 걸어 다니며 소름 끼치는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이것은 ‘현실’일까? 아니면 그냥 ‘환상’일까?”


안젤리카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푸석푸석하고 윤기 없던 머리카락에 윤기가 돌고, 점점 두피 안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검은색의 단발 머리가 되었다. 장대 같이 커다란 키가 푸고보다도 작게 줄어들고, 백지 보다도 하얀 피부가 갈색에 가깝게 어두워졌다. 얼굴도 끈임없이 피가 흐르던 입에서 피가 멎고, 눈도 초점 없이 돌아다니던 파란 눈동자가 생기 있는 검은 눈동자로 변했다. 마침내 변화가 멈춘 안젤리카의 몸은 더 이상 안젤리카가 아니었다. 푸고는 몹시 당황했다.


“시… 실라E?!”


푸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마시모와 싸우고 있을 실라E였다. 아니, 분명 안젤리카의 환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실라E인 탓에 푸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푸고… 마시모는 쓰러뜨렸어. 안젤리카도 조금 전에 내가 죽여버렸지. 이제 다 끝났어.”


푸고는 아직도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목소리조차 안젤리카가 아니라 실라E였다. 나체의 실라E는 천천히 푸고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더니 혀를 넣었다. 푸고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서 살짝 떨어지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으며 농염한 말투로 속삭였다.


“푸고… 사랑해. 정말로…”


그녀는 푸고의 귀를 가볍게 깨물었다. 푸고는 그녀는 진짜 실라E가 아니라 안젤리카의 환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푸고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환상이었다.


“나도… 나도 그래, 실라E. 나도 정말 사랑해…”


푸고의 욕망이 이성을 집어 삼키기 시작하더니 끝내 환영에 완전히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안젤리카는 이겼다는 듯이 생각했다.


‘마시모, 이제 네 차례야.’


푸고가 한창 나이트버드 플라잉의 환상에 빠져 있을 때, 실라E는 마시모와 계속 대치하고 있었다. 둘 사이로 마치 서부극 같이 회전초가 굴러다니던 그때, 실라E의 ‘부두 차일드’가 먼저 달려들었다. 부두 차일드는 빠르게 매닉 디프레션의 발차기를 피해 뛰어올라 그대로 마시모를 향해 주먹을 갈겼다.


“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에리!!”


묘하게 어린아이가 때를 쓰는 듯한 기함과 함께 갈긴 러시를 그대로 얻어맞은 마시모였지만 큰 부상은 입지 않은 듯 보였다. 마시모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자네 그거 알고 있나? ‘생물’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 수조개의 세포 하나하나가 생명활동을 하며 생명을 유지시키는 거야. 그런 세포의 ‘생명활동’을 차단시킨다면…? 당연하게도 그 세포는 죽겠지.”


실라E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세균이나 곰팡이 포자 같은 것들이 음식에 달라붙으면 말이야… 부패하거나 발효가 되지. 빵에 곰팡이가 피면 아깝게도 버려야 하지만 치즈를 만들 때 곰팡이를 넣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매닉 디프레션’은 안타깝게도 술이나 발효 음식에는 사용할 수가 없어.”


실라E는 마시모가 고의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음을 눈치챘다.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 그는 시간을 끌고 있었다. 실라E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마시모는 계속해서 공격을 막거나 피하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들의 몸에도 ‘세균’이 살고 있지. 어떤 종류는 몸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또 어떤 종류는 자신이 위치한 그 장기에 도움을 주기도 해. 왜, ‘대장균’이라고 알지? 그 녀석은 평범하게 대장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는 ‘비타민K’를 합성하는 등 도움을 주지만 다른 장기로 들어가거나 없어지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야.”


실라E의 부두 차일드가 주먹을 치켜들자 마시모는 매닉 디프레션을 꺼내 마찬가지로 주먹을 들었다. 순식간에 두 스탠드의 주먹이 맞부딪히고, 그 반동으로 둘 다 뒤로 밀려났다.


“흠… 생각보다는 효과가 빠르군.”


“무슨 소리냐?”


“다 알고 있겠지만 나의 ‘매닉 디프레션’은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 곧 ‘세포의 생명활동’을 억제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지금! 네놈의 ‘스탠드’와 맞부딪힌 그 순간! 체내 세균의 ‘생명활동’을 ‘억제’했다! 네놈도 느끼지 않나? 자네 얼굴이 참 노랗다만?”


실라E는 자신의 손이 심각할 정도로 노랗게 변한 것을 알았다. 거울이 없어 못 보고 있지만 마시모의 말에 따르면 얼굴과 동공도 노랗게 변했다. 곧이어 끔찍한 복통과 함께 일어서기도 힘들 만큼 어지럽기 시작했다.


“이… 이것이…! ‘매닉 디프레션’의…!”


“체내의 ‘대장균’을 제거했다. 생각보다는 효과가 빨라서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대장균은 ‘비타민K’를 합성하는 역할을 하지. 비타민K가 부족하면 ‘황달’이나 ‘췌장염’, ‘크론병’을 일으키고. 너는 적어도 ‘황달’이랑 ‘크론병’은 확실해 보이는군.”


실라E는 어떻게든 일어나려 들었다.


‘일어나야 해…! 저놈을 쓰러뜨리면… 쓰러뜨리면…! 매닉 디프레션의 능력도 해제된다…!’


그러나 일어서려고 해도 빈혈로 인한 어지럼증에 다시 쓰러질 뿐이었다.


“크론병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군. ‘크론병’이라는 건 말이야. 최악의 경우에는 ‘다발성 장기 부전’이라 하지? 다수의 장기 기능들을 잃고 죽음에 이른다고 하더군. ‘매닉 디프레션’으로 세균들을 억제해 놓았으니 네녀석에게 남은 시간은 아마… 3분 정도겠어. 다른 놈은 안젤리카가 잘 묶어 두고 있는 모양이니까.”


실라E는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전신에서 엄습하는 끔찍한 고통에 말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져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고통이기도 했고, 슬픔이기도 했다.


‘누… 누가 도와줘… 너… 너무 아파… 클라라 언니…’


실라E는 가장 처음으로 사랑하는 언니 클라라를 떠올렸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의 머릿속에 클라라 언니 사후로 그녀에게 가장 친절했던 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 소년은 붉은 옷에 노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푸고… 도와줘…!”


실라E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 소리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조차 너무나도 작아 마시모조차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음? 무어라 했나?”


실라E는 자신을 자책했다. 자신을 너무 과신했을지도 모른다. 푸고가 안젤리카를 쫓아가겠다고 했을 때 막았어야 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실라E는 더 이상 자책할 힘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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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볼페(Massimo Volpe)

생년월일 - 1976년 5월 이탈리아 나폴리

신장 - 190cm, 체중 - 85kg

스탠드 - 매닉 디프레션

좋아하는 것 - 안젤리카 아타나시오, 코카인, 여우 가죽

싫어하는 것 - 허세, 죠르노 죠바나

기타 - 현재 일본 모리오초에 거주하는 요리사 토니오 트루사르디의 이복동생으로, 몰락한 귀족 가문의 자식이다. 경증의 코카인 중독. 안젤리카 아타나시오와는 유사 남매이자 연인에 가깝다.

스탠드명: 나이트버드 플라잉 - 유저: 안젤리카 아타나시오

파괴력 - E 스피드 - B 사정거리 - A 지속력 - A 정밀동작성 - D 성장성 - E

능력 - 스탠드와 눈이 마주치는 인간을 환각에 빠뜨린다. 환각에 빠진 사람은 이것이 환각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이트버드 플라잉은 환각에 빠진 자의 생각을 읽고 그자가 가장 원하는 것을 환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절때 빠져나갈 수 없다. 빠져나가는 방법은 오로지 단 하나, 비가 오거나 물에 빠져 체온이 내려가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