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외전 5-3. 수치심 없는 퍼플 헤이즈 6. 퍼플 헤이즈 디스토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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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후, 카르파초가 도착해 두 사람과 마약 팀의 시체를 수거했다. 몇 시간 후 실라E는 과다출혈로 죽기 직전에 병원에 도착, 왼쪽 눈을 잃는 대가로 살아날 수 있었다. 다음날, 두 사람은 다시 나폴리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죠르노를 만난 것은 푸고였다. 죠르노는 손수 퍼플 헤이즈의 바이러스를 뒤집어써 상해버린 푸고의 몸을 고쳐주었다.


“죠르노, 왜 저였나요?”


“네?”


“실라E의 처형인 말입니다. 나란차나 미스타, 당신도 있었는데 굳이 절 보낸 이유 말입니다.”


죠르노는 말없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당신은… 조금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셔야 합니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당신이라면 충분히 느꼈겠죠. 그녀는 스스로 굴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부러 위험한 일을 택하고, 목숨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행동했죠. 이른바… ‘방황하는 칼날’이 되어있었습니다. 언제 누군가를 찔러 죽일지 모르고, 그 자신마저 죽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된 거죠. 전 그녀에게 살아갈 이유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스타나 나란차가 아니라 당신을 보낸 겁니다.”


아직도 푸고가 이해를 못 한 눈치이자 죠르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원시시대부터 존재하던 치유 방법이지요.”


잠깐 침묵이 돌고, 푸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그런데 죠르노. ‘마약팀’의 시체는 무엇을 위해 수거하라 한 건가요?”


죠르노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별거 아닙니다. 당신이 신경 쓸 문제는 더더욱 아니고요.”


푸고는 죠르노의 생각을 알 지는 못했지만 그 결단력은 언제나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죠르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끝났습니다. 실라E를 불러와 주세요.”


푸고가 나가고 왼쪽 눈 주변에 붕대를 감은 실라E가 들어왔다. 파시오네의 건물이 아니라 레스토랑에서의 만남. 마치 상관과 부하의 만남이 아니라 비슷한 위치의 사람끼리 만나는 느낌이었다. 죠르노는 자기 앞에 나온 오리고기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새고기, 그 중에서 오리고기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기 주방장이 가끔 자기 최고의 요리라며 오리고기를 내놓아서요. 싫다 해도 전혀 듣지를 않으니 원.”


죠르노는 오리고기를 한 점도 먹지 않고 실라E에게 앞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실라E가 앞에 앉자 죠르노는 그 오리고기를 권했다.


“나폴리를 출발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들었는데 조금 드세요.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오리고기 꽂이를 두고 가버린 기억이 있으니 이거야 원. 입에 안 맞는군요.”


실라E가 말없이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자 죠르노는 냅킨 한 장을 뽑으며 말했다.


“좀 아플 겁니다. 참으세요.”


순식간에 냅킨에 생명의 고동이 뛰더니 죠르노는 망설임없이 실라E의 붕대를 걷어 눈이 있던 자리에 꽂았다. 실라E가 고통을 삼키는 순간, 그녀는 다시 왼쪽 눈이 보이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죠르노 죠바나’의 ‘스탠드’였다.


“칼에 베인 흉터도 원상복귀 했습니다. 다만 문신은 조금 일그러졌군요.”


“GIO님, 부탁이 있습니다.”


죠르노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죠르노’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럼… 죠르노, 당신의 ‘스탠드’로 혹시 ‘문신’을 지우는 것도 가능합니까?”


죠르노는 놀란 눈치였다.


“되기는 합니다만… 왜죠?”


“그… 그건…”


실라E는 일그러진 왼쪽 눈의 문신을 어루만지며 얼굴을 붉혔다. 죠르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녀의 문신을 만졌다.


“뭐, 끝났습니다.”


실라E는 자리에서 일어나 죠르노를 바라보았다. 한평생, 그녀는 자신의 언니 이외의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언니가 비명에 죽은 뒤로 그녀는 분노에 사로잡혀 방황하였으며 복수의 ‘대상’이 사라진 뒤로는 자신조차 해칠 ‘방황하는 칼날’이 되어 떠돌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칼날은 그 주인을, 그리고 함께 칼날을 제어할 동료를 찾게 되었다. 분노와 복수에 사로잡혀 항상 한 발자국 뒤에 서 있던 실라E는 반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죠르노의 발치에 무릎을 꿇으며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잠시 후, 그녀가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을 땐 푸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렸습니다, 실라E. 다친 곳은 다 고쳤나요?”


실라E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라고 불러줘.”


푸고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네? 지금 뭐라고…?”


“실라E가 아니라 ‘실라 카페츠토’라고 불러 달라고. 이젠 복수라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푸고는 옅게 미소를 짓다가 그녀가 아직까지 왼쪽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나저나 실라, 왜 아직 붕대를 감고 있나요? 죠르노가 눈이랑 흉터도 고쳐줬을 텐데.”


푸고는 팔을 뻗어 그녀가 채 막기도 전에 붕대를 풀어버렸다. 푸고가 그녀의 왼쪽 눈을 중심으로 뻗은 태양 모양 문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너무 당황한 실라는 말을 엄청나게 더듬더니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어, 어차피 문신이 일그러지기도 했고…! 그… 그…”


그러나, 오히려 푸고는 그녀의 없어진 문신이 아니라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가 본 그 어떤 때보다도 다정한, 그리고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뭡니까 실라, 이렇게 예쁜 눈을 가지고 있는데 여지껏 가리고 있던 건가요.”


실라는 푸고의 말에 잘 익은 사과보다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푸고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실라, 제가 잘 아는 카페가 있는데 말이죠. 같이 한잔하지 않겠습니까?”


실라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말했다.


“자, 잠깐만…! 손목 세게 잡지 마!”


두 사람이 사라지자 그걸 창문 너머로 다 보고 있던 죠르노는 거북이 안의 남자, ‘장 피에르 폴나레프’에게 말했다.


“두 사람, 잘 어울리는 것 같죠?”


폴나레프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정열적이구만~ 보기 좋아, 아주.”


골목길을 나란히 걷는 판나코타 푸고와 실라 카베츠토에게 초여름의 태양이 찬란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에필로그


어느덧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휴가철도, 무더운 여름도 지난 9월이었다. 나폴리를 달리던 자동차들 중 한 차량에는 세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초록색 머리의 남자, 그리고 뒷자리의 주황머리 남자와 갈색 단발머리의 남자였다. 그 중 갈색 머리를 한 남자는 한 눈에 봐도 갓 어른이 된 티가 날 정도로 젊었다. 주황머리 남자가 말했다.


“그래서, 네 이름이 뭐라고?”


“’잔루이지 그리시니’입니다.”


운전하던 초록 머리 남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잔루이지~? 그 ‘유벤투스’의 골키퍼랑 이름이 똑같네?”


“얀마 주케로. 앞이나 똑바로 봐.”


주케로가 다시 운전에 집중하자, 주황머리의 남자 ‘살레’는 다시 그리시니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그리시니. 우리 ‘파시오네’에 온 것을 환영한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우리 ‘팀’에 대해서 설명하지. 우리 팀은 이곳 나폴리의 특정 구역을 관리한다. 파시오네의 간부들은 특정 직종을 관리하는 녀석과 특정 구역을 관리하는 녀석들이 있고, 나와 주케로는 구역을 관리하는 간부다. 우린 그 구역을 관리하는 놈들 중에는 제일 급이 높지. 우리의 관리 구역에는 다름 아닌 ‘GIO님’과 그 ‘호위대’의 거주지가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야. 아무튼 우리는 구역 안의 물류, 유통, 도박, 밀수 등에서 돈을 벌고 있어. 뭐 질문 있나?”


“마피아라면 ‘마약’에도 손을 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마약은 취급하지 않는 건가요?”


그 단순한 질문에 두 사람 모두 눈빛이 확 바뀌었다. 살레는 그리시니의 멱살을 잡으며 고압적인 말투로 윽박질렀다.


“이 자식, 설마 ‘마약’이라도 하고 있는 거냐?! 아니면 ‘마약 유통’을 하는 놈들과 커넥션이라도 있는 거야!”


그리시니는 겁에 질려 말했다.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냥 제가 살던 ‘시칠리아’의 갱단들이 마약을 유통하는 걸 알고 있어서 물어본 겁니다!”


그 말에 둘 모두 안심했다. 살레가 말했다.


“잘 들어라, 신입. 우리 ‘파시오네’에서 ‘마약 유통’의 ‘마’ 자만 꺼내도 ‘숙청’당할 수 있다. 아직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 군.”


그리시니는 두 사람 모두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온 몸에 소름이 잔뜩 돋아 있는 것을 알았다.


“이건 네가 들어오기 전, 7월쯤의 일이다. 어느 날 우리 팀의 아지트로 택배가 왔지. 발신지는 ‘GIO님’이었어. 우리는 택배의 포장을 뜯었고, 그와 동시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레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포르말린에 절여진…! ‘한 노인의 머리’였다! 칼로 자른 것도 아닌 몸에서 뜯겨진 상태의 상처투성이 머리였지! 그리고 그 안에는 GIO님의 친필로 된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 ‘머리’는 ‘마약팀’의 리더 ‘블라디미르 코카키’다. -죠르노 죠바나”


그 편지로 모두가 알아 차렸다. 이건 GIO님이 파시오네 전체에게 주는 ‘경고’라는 것을 말이야. 마약을 다루는 놈들은 모두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경고’였어.”


살레가 몸서리를 칠 때, 주케로도 거들었다.


“이건 내가 아는 녀석이 있는 ‘도박 팀’의 이야기야. 우리랑 비슷한 시점에 그녀석들도 ‘GIO님’ 발신으로 택배가 왔었지. 그 녀석들이 본 건… 한 소년의 ‘알몸 시체’였어. 그것도 그냥 시체가 아니었지. 몸 전체가 상처투성이인데다 곳곳에 총알 구멍이 나 있었고 목에는 큼직한 구멍이 뚫려 있었지. 게다가 피를 모조리 뺀 건지 몸에 피는 한 방울도 없었어. 역시나 ‘GIO님’의 친필로 편지가 적혀 있었지.”

“이 ‘육신’은 ‘마약팀’의 멤버 ‘비토리오 카탈디’다.”


“아마 다른 팀들도 비슷한 ‘내용물’이 든 ‘택배’를 받았겠지. 1달도 채 지나지 않아 조직의 모두가 알게 되었어. ‘마약’을 유통하던 ‘마약팀’은 그 마약으로 인해 ‘GIO님’과 그 호위대에게 ‘숙청’을 당했고, 본보기가 된 거라고. 그 후로 어느 누구도 마약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


그 뒤 자동차 안은 조용했다. 어느새 자동차가 멈추자 살레가 말했다.


“도착했군, 내리지. 여기가 우리 팀의 아지트다.”


주케로와 살레의 팀’이 모이는 아지트는 한때 부차라티가 정말로 좋아했던 레스토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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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도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