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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호 여가시설 중 하나인 노래방. 오늘 그곳에선 스틸라인 인원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훌륭한 전투능력과 짬을 먹을대로 먹은 병사들로만 이뤄진 이 분대는 가장 짬이 낮다는 브라우니조차 멸망 전부터 살아왔던 개체인터라 무시무시한 레드후드 연대장도 그리 두려워하지 않고 분대 내에서도 마치 계급이 딱히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의 분대였다. 물론 이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들의 무시무시한 작전 수행능력과 실패할뻔한 작전을 수십번은 성공적으로 종결시킨 전과 앞에 겉으로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약장이 아니라 정식으로 훈장을 패용하면 가슴쪽도 부족해 등쪽에 달지 바지에 달지 고민하는 그런 부대에게 함부로 대할 정신나간 인원이 있을리가.


그리고 그런 분위기의 분대였기에, 사령관 역시 편한 친구들을 대하듯 대했다. 노래부르는 브라우니들을 바라보며 흥겹게 탬버린을 치는 사령관 옆에는 편하게 반쯤 드러누운 이프리트가 무슨 노래를 부를까~하면서 목록을 찾아보고 있었고, 노움은 과일을 깎으면서 별 기묘한 춤을 추는 브라우니들을 보며 미소지었고, 레프리콘들은 박수를 치면서도 사령관이 신경쓰이는듯 힐끗힐끗 바라봤다. 즐거운 분위기였다. 사령관도 간만에 가지는 휴식 시간에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브라우니들의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를 예약한 이프리트가 일어섰다. 작은 키의 그녀는 브라우니가 건네준 마이크를 받아들고선 숨을 고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령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감탄의 표정이 떠올랐다. 평시 졸린듯 늘어져서 질질 끄는 말투와는 달리, 노래를 부르는 이프리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노래를 전문으로 하는 스카이나이츠나 뮤즈와는 또 다른 매력. 철저하게 단련해 세련된 그녀들의 노래와는 달리 작은 소녀가 필사적으로 자기 마음을 담아 노래하는 진솔한 매력에 사령관은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본 브라우니들이 깔깔대며 이뱀 목소리 진짜 좋지 않냐, 공연에 나가면 스카이나이츠도 꺾을 수 있는 목소리다 이렇게 바람을 넣자 노래가 끝난 이프리트가 와선 그만두라고 툴툴대며 다시 사령관 옆에 앉았다.


이후로 사령관은 종종 이프리트와 단둘이 노래방에 가곤 했다. 브라우니들은 노래방도 좋지만 다같이 노래하는게 좋다고 내무반에서 과자 까고선 합창하는 쪽을 즐겼고, 다른 부대원들은 노래 말고 다른 취미에 몰두하곤 했다. 그렇게 단 둘이 노래방에 가는걸 보고 질투심에 불타는 리제가 한번 쳐들어온 적이 있지만, 그녀마저도 이프리트의 노래를 듣자 멍하니 서서 감탄할 뿐이었다.


그렇게 단 둘이 지내다보면 자연스레 눈이 맞는게 인지상정, 사령관과 이프리트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노래방에서 돌아온 얼굴이 발개진 이프리트를 브라우니들이 놀리는 나날이 흘러흘러 어느새인가 둘은 오르카 모두가 공인하는 한쌍의 커플이 되어있었다. 아직 몸을 섞지는 않았지만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고 기정 사실이라며 호드의 샐러맨더가 며칠 후에 이프리트가 첫 여자가 될지 참치캔을 걸고 도박장을 열었고 사령관도 모르는 사이에 도박장은 참치가 만단위로 오가는 전무후무한 카지노로 변화했고, 이를 눈치챈 시티가드의 리앤과 머리쓰는 일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토모가 협력해 오르카 최대의 수사작전이 펼쳐졌던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런 외부의 상황을 모르는 사령관은 어느새인가 자기 마음속에 너무나도 크게 자리한 이프리트의 존재에 번민했다. 어찌되었건 그녀는 스틸라인의 병사이고 최전선에 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다. 그녀의 분대가 적에게 노출될때마다 자신의 판단력이 급격히 흐려지고 오직 그녀의 안위에만 신경을 쓴다는 것을 지적한 마리의 직언에 그걸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작전이 끝나고 의자에 앉아 미간을 누르는 그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마리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부사관 지원 서류'


스틸라인에서 손에 꼽게 강한 분대의 일원이 빠지는 것은 아깝지만 사령관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에 비하면 구우일모에 불과하다며, 그렇다고 그냥 놀릴 수는 없으니 부사관으로 지원해 오르카 내에서 부대원 교육과 관리를 담당하게 만들면 사령관의 정서적 평안과 스틸라인의 전투 수행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마리의 발언에 서류를 받아든 사령관. 마리가 퇴장하고 홀로 앉아 서류를 노려보는 사령관의 머리 속에 이프리트와의 기억이 하나 둘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그녀는 언제나 자긴 이 전쟁이 끝나면 전역해서 실컷 잘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녀.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던 그녀. 같이 노래를 들었던 추억.


부사관 서류를 쓰는 것은 그녀 스스로의 의사론 하지 않을 것이다. 사령관이 말한다면야 도장을 찍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령관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 그녀 스스로의 의사는 아니다. 분명 싫어하겠지. 울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생각하자 그녀를 잃어버릴거란 생각 만큼이나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 억지로 임관을 시킨다면,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