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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스는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나는 작은 금속음을 들으며 미소지었다.


그래도, 고민을 해주셨구나.


'퍽-' 


블랙 맘바에 내장된 소음기 때문에 나는 특유의 둔탁한 총성이 방 안에서 퍼지며 다소곳히 정좌를 한 채로 눈을 감은 리리스 뒤의 벽 뒤에 주먹만한 구멍을 뚫었다.


리리스의 옆에 서 있던 노움이 놀란 토끼 눈을 한 채로 리리스와 블랙맘바를 든 남성을 번갈아 보았고, 남성은 여전히 총구 끝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새어나오는 블랙 맘바를 양손으로 들고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


마치 칼로 벨 수도 있을 듯한 긴장감이 가득차 방 안의 시간이 멈춘듯,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 시간이 잠시간 이어졌다.


"...이런 씨발... 진짜 미친년 같으니라고..."


남성이 조준하고 있던 블랙 맘바를 내리고 침대로 주저 앉자, 그제서야 노움은 참고있던 숨을 조용히 몰아 쉬었다.


리리스는 감고있던 눈을 뜨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령님."


남성은 리리스를 슬쩍 보고는 침대에 걸터 앉아 얼굴을 감싸쥐었다.


"...하... 이젠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젠장, 그렇게 세계를 뒤엎어 놓고는 불과 몇 십년 만에 외계인한테 쓸려 나가다니... 어이가 없어서, 나 참..."


그렇게, 잠시간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있던 남성은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 나보고 하라는 그 '지휘관'의 역할이 뭔데."


남성의 질문에 옆에 서있던 노움이 말했다.


"아, 인간의 명령이 없이는 조직적으로 싸울 수 없는 바이오로이드 저항군을 이끌어 주시는 거에요. 지금 바이오로이드 저항군은 극소수 멸망 전 지휘관 개체들에 의해 간신히 통제만 되는 상황이라..."


"아니, 내가 예전에 봤을땐 니들은 인간 없이도 잘 싸우더만. 그, 유능한 콘스탄챠 개체 정도면 바이오로이드 대대까지도 이끌고, 블랙리버 소속 마리 개체는 사단에서 군단까지도 지휘 한다던데?"


그 말에, 리리스가 대답했다.


"전쟁전에 모든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에게 부여된 권한의 정식 명칭은 사실 '지휘 보조' 입니다. 물론, 지휘와 관련된 지시는 모두 해당 바이오로이드가 내리지만, 결국 인간님이 최종적으로 승인을 내려줘야만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지요."


남성이 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허. 하긴, 바이오로이드가 다 해먹는걸 실적이라면 가족도 팔아넘길 임원들이 두고 볼리가 없지."


"대부분의 기업에서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에게 부여한 권한은 '지휘 보조' 권한이 다였고, 위급한 상황일 경우 '임시 자율 지휘' 권한이 주어지지만, 이마저도 지휘 가능한 병력을 더하거나 맘대로 뺄 수는 없는 반쪽 짜리 권한이었어요. 그 때문에 인간님들 대부분이 돌아가셨던 멸망 전쟁 때는 대부분의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에게 해당 권한이 부여되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손실은 점차 늘어나는데도 신규 생산된 바이오로이드에게 지휘 권한을 더해줄 수 있는 인간님은 전부 돌아가셨으니 체계적인 지휘가 어려워졌죠."


"그래서, 니들 한테 신규 생산된 바이오로이드들 지휘할 권한만 주면 되는거야?"


"네, 그정도만 해주셔도 저희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될거에요."


남성은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닫고는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잠깐... 고민좀 해보지. 지금 당장은... 너무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의 말에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소령님. 마음이 충분히 정리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마침내 정좌 자세를 푼 리리스는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고, 애매하게 서있던 노움도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뒤따라 나갔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 홀로 남게 된 남성은 침대에 털썩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조국을 멸망 시키고, 그의 모든 불행의 시발점이나 마찬가지인 그것들이 그에게 '저항군'을 이끌어 달라고 애원한다. 


이제 그들의 생사여탈권이 그에게 넘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남성은 그들의 지휘관이 되어 그들을 위해 좋은 판단을 내려줄 자신이 없었다. 


바이오로이드에 관련한 생각만 하다보면 저절로 마음 깊은 곳에서 1차 연합 전쟁때의 기억들이 마치 곰팡이처럼 세를 불리며 머릿속을 잠식했고, 그 기억들은 대부분 그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감정들, 대부분이 분노와 후회인 그 감정들을 수면 위로 되살아나게 하였다.


물론, 지금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때의 바이오로이드와 동일한 개체가 아니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성격과 모습이 다른 인간과는 달리 동일 모델 바이오로이드는 외모는 물론이고, 성격조차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옛 기억의 바이오로이드들과 지금의 동일 모델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을 겹쳐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이 애꿎은 화풀이를 하는 것이거나 과거를 놓아주지 못하는게 아니라, 이건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라고, 남성은 스스로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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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여기는 21스쿼드 소속 레프리콘 입니다. 아무나, 저항군 소속 바이오로이드는 응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치지직...."


"아무도 없습니까?!"


등대 꼭대기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무전기에 한참 동안 소리를 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백색 소음 뿐이라는 현실에, 레프리콘은 들고 있던 무전기의 수화기를 내려놓고 크게 한 숨을 쉬었다.


"하... 정말, 마침내 인간님을 찾았는데 정작 인간님이 이끌 저항군은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서 연락도 안된다니... 통신 수단이라고 가지고 있는 건 이 구형 스틸라인 무전기밖에 없고..."

 

레프리콘은 바닥에 놓인 투박한 직사각형 모양의 진한 국방색 무전기를 보며 탄식했다.

 

"으으... 오르카 호의 통신 장비만 쓸 수 있었더라면 이 근방 저항군은 다 모을 수 있을텐데 말이죠."

 

그때, 백색소음만 내뱉던 수화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치직....기는....칙....리폰-310...치지직...리면 응답..."


"?! 여기는 저항군 21스쿼드 레프리콘-1102 입니다! 들리십니까?!" 


허둥지둥 수화기를 다시 붙잡은 레프리콘이 귀에 바싹 가져다댔다.


"지직...위치를...칙...말...치직...그쪽으로...칙..."


"현재 등대에 있습니다! 144번 등대요! 예전에 LRL양이 살았던 곳!" 


"치직... 알았... 내가 그쪽... 치직.... 칙..."


그렇게 백색 소음에 섞인 짧은 음절만을 내뱉은 무전기는 툭- 소리를 낸 뒤, 다시 백색 소음만을 내기 시작했다. 


"어어...? 통신이...!"


레프리콘은 당황한 표정으로 마치 그러면 통신이 조금이라도 더 잘되리라는 양 무전기와 수화기를 번쩍 들어 이방향 저방향에 가져다 대었다.


어느 순간, 수화기에서 레프리콘이 그렇게나 고대하던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 들려? 여기는 21스쿼드 그리폰-310. 그 쪽으로 가니까 이제 좀 통신이 되네!"


"드, 드디어...! 그리폰님! 살아계셨군요!"


"내가 왜 죽어? 난 블랙 리리스...양...은 빼고 니들이 먼저 죽을까봐 걱정 했구만! 아니, 여튼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네 지금 144번 등대에 있는거 맞아? 그 절벽해안 근처에 있는 거?"


"네, 맞아요. 위치는 아실테니, 빨리 모여주세요! 인간님을 구출했다구요!"


잔뜩 신이 난 레프리콘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지만, '흥, 인간 하나 있으나 마나 뭔 상관이야!' 라고 말하면서도 기뻐할 평소의 그리폰 스러운 반응 대신 잔뜩 당혹한 그리폰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뭐, 뭐어?! 진짜?! 으으, 그래서 이 난리가 난거였네!" 


"네...? 난리라뇨?"


"지금 대규모의 철충이 정확히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네에?!"


그리폰의 충격적인 말에 레프리콘은 하마터면 무전기를 떨어뜨릴 뻔 했지만,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처, 철충이... 이쪽을 향해서 말인가요?!"


"그래! 예전 철충의 활동기 이후로 이런건 본적이 없어! 마치 자기들이 어딜 향해서 가야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이상한 연결체 같은것도 있고!"


"연결체까지요?! 이, 이런건 계획에 없었는데...!"


"여튼, 병력은 몇이야? 다른 스쿼드는 있어?"


"어, 그러니까... 그렘린 6명이랑 포츈 기술장 님으로 구성된 오르카호 정비팀 이랑... 블랙 리리스님이랑 저, 노움양이랑... LRL양... 정도입니다."


"...그게 끝이야?"


"네... 저항군 지휘부가 지금 침묵이라 다른 스쿼드들 하고 연락이 안돼서..."


"아~! 진짜!! 겨우 11명?! 하늘에서 대충 봐도 철충이 한 200은 됐다고!!! 너희들, 절대 버틸 생각 말고 오르카호 시동 걸어서 당장 도망쳐! 못해도 1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으니까 당장 짐싸!"


"네, 넷!"


무전기 상으로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리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그냥 지나가는 철충 무리면 대충 숨어 있으려 했더니만... 진짜 미치겠네...! 지금 나하고 콘스탄챠도 거기 등대로 합류한다! 예상 도착시간 20분! 통신 끝!"


툭- 하고 끊기는 통신 소리와 동시에, 레프리콘은 거의 날 듯이 등대 꼭대기에서 지상으로 이어진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양 손에 무전기와 기관총을 든 레프리콘이 등대 거주 구역의 문을 거의 박차듯이 탕-! 하고 열자, LRL과 노움이 깜짝 놀란 눈으로 토마토 수프를 떠먹던 수저를 멈추고 레프리콘을 바라보았다. 


"무슨일 있나요? 레프리콘. 엄청 급한-"


"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엄청 위급한 상황이라...! 지금, 연결체가 있는 200개체 규모의 철충 무리가 이 등대로 향해서 이동중이라 합니다! 1시간 정도면 도달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노움의 표정이 일 순간 패닉과 당혹감으로 물들었고, LRL은 울상이 되어 다시 등에 매고 있던 곰돌이를 꼬옥 껴안았다.


"히...히잉! 처, 철충이 그렇게 많이와?! 우리 어떡해!"


"리, 리리스님은 어디계시죠?! 어서 말해야...!"


"지금 포츈 기술장 님을 뵈러 격납고에 가셨어요. 우선 단거리 통신용 이어피스로 호출하세요!"


노움의 말에 레프리콘은 이제서야 생각난 듯 귀에 꽃혀있던 이어피스를 급히 만지작 거렸다.


"리리스님?! 블랙 리리스님, 들리십니까? 레프리콘-1102 입니다! 비상 상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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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 또각. 콘크리트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넓은 공간에 굽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못해도 수십 미터 높이와 수백 미터 너비의 강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평범한 등대 지하에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도 못할만한 크기의 이 공간은 저항군의 이동 기지 오르카 호의 임시 격납고 였다. 


격납고의 한 가운데에는 회색 빛 일색인 격납고와 대조되게, 마치 군용 함선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최고급 크루즈 선과 같은 곡선을 가진 순백색의 거대한 잠수 항모 오르카 호가 그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정말, 언제 봐도 라비아타 님이 어떻게 저런걸 구해오셨는지 신기 하다니까요.


리리스는 오르카 호의 정박용 입구를 향해 걸어가며 생각했다. 정박용 입구에는 여러가지 정비용 기계들과 부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입구에서 용접기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부품을 수리하던 그렘린 하나가 리리스를 보고는 용접용 마스크를 들어 올리며 웃는 표정을 내보였다.


"리리스님! 인간 님은 언제쯤 오르카호에 타신대요? 빨리 잠항 좀 해보고 싶은데!"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셔서 잠깐 생각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 하신듯 해요.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준비 되실 거에요."


"흐흐, 좋아요 좋아! 인간 님이 뇌파만 인증 해주신다면 비상 항해 기능만 작동하던 오르카호를 완전히 통제해서 선내의 모든 고급 통신 장비, 출격 포드, 전자전 장비, 고출력 소나와 레이더까지 만져볼 날이 머지 않았어요... 으흐흐...!"


"으음, 잘 됐네요... 그럼, 저는 포츈 기술장님 좀 뵈러 가볼게요."


음침한 표정으로 실실대며 자기만의 기계적 판타지에 빠진 그렘린을 보며 리리스는 함 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리스가 걸음을 옮긴 함 내의 중앙 함교실에는 3D 홀로그램을 띄울 수 있는 지휘 패널 위로 설계도면을 잔뜩 펼쳐둔 포츈 기술장이 한 손에는 전압 측정기를 들고 도면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포츈 기술장님."


"어멋!"


리리스의 호명에 포츈은 깜짝 놀란 듯 들고 있던 전압 측정기를 떨어뜨리며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리, 리리스! 언니 정말 깜짝 놀랐거든?! 맨날 그렇게 발소리 죽이면서 왔다간 언니 심장마비 걸릴것 같거든?!"


포춘의 감정 풍부한 반응에 리리스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후후. 죄송합니다, 제 임무 특성상 버릇이 되어버려서요."


"리리스 요새 잠입 임무나 은신 정찰 임무 안하는 거 누나가 잘 알거든?!"


그렇게 말한 포츈은 바닥에 떨어뜨린 전압 측정기를 집어 들며 물었다.


"휴, 정말... 근데, 인간 님은 좀 괜찮으시니? 누난 너희가 인간님 모셔왔다는 얘기만 들었지, 얼굴도 못 뵙고 그 뒤 소식도 못들었거든..."


"괜찮으세요. 다만, 조금 혼란스러우셔서... 생각하실 시간을 달라고 하셨어요."


"리리스... 이런 질문, 하면 안되지만... 언니는 인간 님이 지휘관으로 적당하실 분일지 걱정되는데 그나마 제일 가까이서 본 리리스 생각이 궁금하거든?"


"으음~~"


리리스는 잠시 생각 한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군인으로서의 경험도 많으신 분 같구... 결단력도 있으신 것 같구... 행동력도 있으시구... 비록 과거에 대해 상처가 많으신 분이지만, 바이오로이드도 소중히 여기실 분 같아요."


"휴... 리리스가 그렇게 말하니 좀 안심되거든. 혹시나, 좀... 악랄한 인간 님이시면 어떡하나... 했거든."


"뭐어, 저희를 아주 자애롭게 보듬어 주며 좋은 말만 해줄분은 아니지만, 재미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바이오로이드를 사지로 내몰 분은 절대 아닌 것 같아요."


리리스의 말에 포츈은 한 숨을 쉬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정도면 언니는 다행이라 생각하거든... 그런데, 리리스가 무슨 일로 오르카 호까지 온걸까?


"혹시나 주인님이 마음을 결정하시면, 언제쯤 출항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죠."


"으음... 리리스도 알다시피, 지금의 오르카호는 반쪽짜리, 아니 반의 반의 반쪽 짜리 잠수 모함이거든. 바이오로이드의 권한으로는 전자 장비도 대부분 켤수 없고, 비상 항해 모드만 간신히 할 수 있는 형편이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이 격납고에 있는거야. 하지만! 인간 님이 뇌파 인증을 해준다면, 그 뒤 부터는 카탈로그의 성능 그대로를 내며 바다를 질주할 수 있을게 분명하거든! 물론, 처음이니 이것 저것 설정하고 잠항 하기까지 세 네 시간 정도는 걸릴것 같지만."


"세 네시간 정도면... 주인님이 마음을 정하시고 나면, 오르카 호의 통신기를 이용해 흩어진 저항군을 모으는 과정에서 하루는 꼬박 소비할테니 별 상관 없겠군요. 그런데, 몇 개월동안 여기에 그대로 있었는데도 세 네시간 만에 출항할 수 있는 상태라니. 정말 정비팀 분들의 노력이 대단하시네요."


리리스의 칭찬에 포츈이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그렘린들이 정말 고생 많이했거든~ 이런 만재 수십만톤 규모의 선박을 7명이 관리하는거, 정말 장난 아니거든! 요전엔, 갑자기 예비 리튬 축전지에 불이 붙었는데, 제일 가까이 있던 그렘린 하나 혼자서 십분 동안-"


그 때, 리리스의 귀에 달린 이어피스에서 무전소음 소리가 나며 숨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리스님?! 블랙 리리스님, 들리십니까? 레프리콘-1102 입니다! 비상 상황 입니다!"


"여기는 블랙 리리스. 무슨 일이죠?"


"지, 지금 철충 무리가 이 등대를 향해 전진 중이라는 공중 정찰 정보를 받았습니다! 수는 약 200! 연결체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에, 리리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철충 세력의 예상 도달 시간은요?"


"하, 한 시간 입니다!"


레프리콘의 숨 가쁜 말에, 리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어피스로 무슨 긴박한 정보가 오가는 지 알 턱이 없는 포츈은 리리스의 표정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포츈은 리리스가 대부분의 경우에는 얕은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다닌 다는 것을 알았고, 전투 중인 리리스의 희열에 찬 웃음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험악한 표정의 리리스는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 정말 이례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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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연합전쟁 당시 삼안 산업에 배속된 스카이나이츠 67항공단 소속 P/A-00(R) 그리폰-2281. 기존 그리폰 모델과는 달리 레이더 흡수 도료와 정찰용 EOTS 모듈이 장착된 은밀 정찰용 모델이다. P/A-00 그리폰은 1차 연합 전쟁에서 기업측 공군의 주력 정찰기 모델이었다. 놀라울 정도의 저속 기동성과 양호한 최고 속력을 갖춘 P/A-00 모델은, 기업들의 전선의 눈이 되주었으며 양호한 공중전 능력과 지상타격 능력 덕분에 공중과 지상을 가리지 않고 전선의 소방수로 투입되기도 했다.

1차 연합전쟁 이전에 정부군에서도 많이 도입을 했던 기체기에, 군복의 색깔만 다른 그리폰들이 하늘에서 맞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본 개체들은 매우 싫어했지만, 인간 병사들은 그녀의 인페르노 미사일을 발사할 때의 소리, 바이오로이드 치고는 독특한 성격 둘 다 때문에 '떽떽이'라 부르고는 했다.


신입사원 OJT가 이제 끝나서 시간이 좀 나는데스우...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데스...

발령 대기 상태인 2주동안 열심히 쓰는 데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