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감마와의 짧은 통신이 종료된 이후, 사령관은 아직까지는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역시 자신이 예상한 대로 그녀가 도발에 넘어가 직접 전투에 나서려는 모습을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또한 제타가 오르카 호에 빌붙으려고 했던 것 또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큰 변곡점만 없다면 먼저 감마의 함대를 격파한 이후 두 레모네이드를 체포하면 되는 일이었다.


"역시 모두의 예상대로 감마가 미끼를 물었네요. 근데 어째서 제타를 먼저 건드리라고 한 건가요?"


"비록 중립의 위치에 있다고는 하나, 자기 자매인 제타가 배신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감마가 행동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지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마는 부사령관님이 깨어나시기 전부터 맞붙었던 상대였던지라 웬만한 도발에는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기에, 간접적인 방식이라면 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게 사령관님의 판단이었죠." 아르망이 부사령관의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공략하는 것보다 조금 방향을 틀어서 상대를 공략하는 게 우리에게 더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일부러 제타를 자극한 겁니다."


"그런가요. 근데 앞으로는 예정에 없던 대사 하게 하시지 말아주세요. 말할때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사실 방금 전 제타에게 한 '폭격 맞기 전에 무조건적으로 투항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발언은 사령관이 미하일보고 말하도록 지시한 것이었다. 그가 하는 도발이 더 잘 먹힐 것이라는 게 이유라나.


"그래도 애드립하고 포커페이스 잘 하시던데요. 특히 마지막에 잡히고 나서 후회하지 말라는 부분은 원래 계획에 없던 대사였는데 덕분에 감마가 자극받았으니까 효과가 더 좋았고요. 배우 하셔도 되겠어요."


"후우.." 뽀끄루 대마왕의 연기 연습을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득한 결과였다. 가장 긴장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차분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와 연습을 하며 익힌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연기 실력을 칭찬하는 건 이쯤 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감마의 함대가 움직이고 있소."


"알겠어. 부사령관님, 가시죠."


사령관과 부사령관이 용의 전함으로 발길을 옮기려던 그때, 아자즈가 급하게 달려왔다.


"부사령관님! 잠시만요, 이거 가지고 가세요!" 하고 그녀는 슈트케이스를 하나 내밀었다.


"아자즈 씨, 이게 뭔가요?" 그것은 별다른 자물쇠가 밖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치 경첩에 단단한 접착제를 붙여 놓은 듯 열리지 않았다.


"곧 알게 되실 거에요. 문제는 그게 아직 테스트도 거치지 못하고 드리는 물건이라는 게 좀 찜찜하긴 하지만.."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는 말에 미하일은 조금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부사령관님이라면 그걸 잘 다룰 수 있을테니까." 이 말을 남기고 아자즈는 갑판을 내려가려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그 케이스 출항에 맞추어서 열리니까 그때 미리 꺼내서 준비하고 계시면 돼요!"


"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저럴까요? 신형 총? 라이트세이버? 아니면.. 변신 기구?"


"지금의 기술력이라면 진짜로 변신 가능한걸 만들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뭔지 궁금하긴 하네요. 전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물건이면 좋을텐데.." 고민하는 사이에 용의 군함은 항구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향해 출발했다. 


출항한지 정확히 5분 만에 수트케이스가 달칵 하는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잠금을 해제하였다. 부사령관은 그 즉시 내부에 들어 있던 '물건'을 확인하고 즉각 대처가 가능하도록 외투 안에 넣어두었다. 배는 빠르게 지브롤터를 향해 나아갔다.




출항한지 얼마 되지 않아, 네리가 적 함대의 접근을 알렸다.


"대장님! 좌현에 적 군함과 AGS가 출현했습니다!"


과연 수 대의 전함을 비롯한 포세이돈 인더스트리의 해상 전투용 AGS인 트리톤이 가시적인 거리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갑판에는 감마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용, 오는구나! 드디어 제대로 된 싸움이라는 걸 할 수 있겠군. 발포하라!"


"타겟. 록 온. 사격 및 섬멸 개시."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각종 미사일과 머신건이 사령관이 있는 호라이즌의 함선을 향해 발사되었다.


"호라이즌, 물러서지 마라! 반격하라!"


"라저!" 


호라이즌 소속 바이오로이드들도 일제히 감마의 함대를 향해 집중 포화를 개시했다. 그와 동시에 메이와 슬레이프니르는 둠 브링어와 스카이 나이츠를 대동하고 공중 지원을 개시했다. 


트리톤 몇 기를 격침시키고 전함들도 화포들을 무력화하는 등 어느 정도 막는 건 가능했지만 지휘관인 감마를 잡지 않는 이상은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다.


"부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사령관이 물었다.


"네. 시뮬레이션 해전과는 확연히 다르네요."


"어디까지나 가상현실로 구현한 것 뿐이니까요, 그보다도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마가 우리 쪽 갑판으로 넘어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과연 감마는 자신의 함선 위에서 미하일이 있는 쪽으로 뛰어넘어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기관총으로 견제하고 미사일을 쏘는 것은 역시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하앗!" 하는 소리와 함께 도움닫기를 한 감마는 순식간에 호라이즌의 군함 갑판에 착지했다. 목을 우두둑 꺾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호기롭게 외쳤다. "용! 이제 미사일과 대포는 지긋지긋하니, 우리 둘이 1대1로 붙어보자!"


"바라던 바요." 하고 용도 허리춤에 차고 있던 세이버 두 자루를 뽑아들고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면서 부하들에게는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 숙적은 거리를 두며 상대의 움직임을 잠시 관찰하고 나서 결투에 돌입했다. 감마의 건틀렛과 용의 세이버. 두 무기가 공중에서 부딪히며 큰 금속성 소리와 함께 불꽃을 내뿜었다.


"하하하! 그래, 이래야 내 호적수답지! 좀 더 전력을 다해 봐라!" 하고 감마는 건틀렛에 70%가량의 파워를 충전하여 용을 가격했다. 갑판의 한참 뒤로 밀려났지만 자세에 흐트러짐 없이 그녀는 다시 균형을 잡고 검을 겨누었다.


"좋소. 여기에서 기필코 그대를 막도록 하지." 하고 용은 세이버에 부착된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자즈의 개조 덕분에 광검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이제는 웬만한 금속도 종이 자르듯 벨 수 있을 정도였다. 


두 바이오로이드는 다시 서로의 전력을 다하며 전투에 임했고, 그와 동시에 서로에게 조금씩 상처를 입혔다. 곧 감마의 건틀렛이 용의 광검으로 인해 부서졌고, 

무기를 잃은 감마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었던 양날 광검을 꺼내 다시 싸움에 임했다.


용과 감마의 사투 동안, 사령관과 미하일은 총을 한 자루씩 들고 감마의 함대를 조금씩 무력화시키며 나아갔다. 공중 부대의 지원 덕분에 트리톤들의 파괴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고, 나머지 호라이즌 팀원들은 함선 내에 타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의 제압에 성공했다.


"사령관, 부사령관! 내부에 타고 있던 브라우니들 제압 성공했어!"


"잘했어 운디네. 이제 용과 감마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가 만약 감마가 불리해지면 곧바로 생포할 준비를 해!"


"용 대장님을 도와서 지원사격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감마도 그렇고 둘다 물러나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멈추지 않을 거에요."


"만약 지금 지원사격을 가하면, 감마는 더 길길이 날뛸 수가 있어. 그러니까 일단은 주시하고 계시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싸움이 계속될 기미가 보인다면 그때 개입하시면 될 것 같아." 스카이 나이츠를 이끄는 리더 격인 슬레이프니르가 무전을 통해 말했다.


"알겠어."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그때 하늘에서 어디선가 전투기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추가 공중지원이 올 리는 없는데.. 설마!"


구름을 뚫고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제타가 직접 모는 전투기였다. 감시기지 내부에서 대기하라는 감마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직접 처리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타임 이즈 머니라 전투기까지 몰고 나타나고 싶지는 않았다만.. 내 신변이 위협받을 위기인데 그대로 손가락 빨면서 있을 수는 없지!" 역시 자기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으려는 제타다운 행동이었다.


"저 미친년 기어코..!" 자매의 무모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보며 감마는 잠시 싸움을 멈추고 이를 갈았다. 


"잠깐, 제타 혼자서 온 게 아닌 것 같은데.." 용의 말대로, 지브롤터로 오는 길에 제타를 호위했던 AGS 몇 기도 따라와 지원공격을 개시했다. 


"공격 개시! 최대한 많이 격추시켜!" 메이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둠 브링어 또한 폭격을 개시했다. 훈련된 정예 요원들이어서인지 AGS들은 금방 파괴되었다. 하지만..


"꺄악!!" 제타가 몰던 전투기가 쏜 기관총으로 인해 스트라토의 제트팩 왼쪽 엔진이 맞아 그만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언니!!" 동생인 나앤이 추락하는 스트라토를 붙잡아 호라이즌 함선에 착지했다. "일단 여기에 있어요. 더 이상은 비행할 수 없으니까."


"나앤! 스트라토! 둘다 괜찮은 거야?"


"저희는 괜찮습니다. 사령관님과 부사령관님 모두 조심하세요. 제타는 지금 자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감마 포함 누구라도 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요."


"젠장!" 하고 미하일은 제타가 타고 있는 전투기를 향해 총을 연사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먼 탓인지 닿지 않았다.


"미하일, 사격 훈련 좀 더 해야겠구나? 그런 거리에서 쏘면 탄 낭비인데." 하고 제타는 미하일이 있는 방향으로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런 씨ㅂ-!" 미하일은 빠르게 날아오는 죽음을 실은 납덩어리를 피해 뒤로 몸을 숨겼다. 더 이상 사격으로 제타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거기다 용과 계속 싸우고 있는 감마도 막아야 했고. 아무래도 아자즈가 건네주었던 '그것'을 사용할 때가 온 것 같았다.


"...." 부사령관은 일전의 슈트케이스를 꺼내 안의 내용물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황금색 단검 하나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미하일이 그것을 꽉 쥐자 곧바로 장검 길이로 길어졌고, 은은하게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는 수밖에 없어." 미하일은 검을 그러쥐고 제타의 전투기 쪽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본 그녀는 전투기를 몰아 그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왔고, 미하일은 그것을 놓칠세라 전투기 위로 점프하여 그 위에 매달렸다.


"뭐.. 뭐 하는 거야! 너 미쳤어?"


미하일은 말없이 한쪽 엔진에 검을 쾅 하고 내려찍었다. 전투기는 곧바로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쳤고 그는 물에 빠지기 전 최대한 빠르게 제타의 비상탈출장치를 작동시켜 낙하산을 타고 건너편에 있던 선박 위에 착륙했다.


그리고 나선 낙하산 줄로 제타를 포박하고 찢어낸 낙하산으로 입에 재갈을 물린 후 조용히 있으라는 경고를 남긴 채 용과 감마의 교전 장소로 달려나갔다.



계속


*TMI: 저 검은 GARO: VERSUS ROAD라는 특촬물에 나온 마계기사 가로가 쓰는 검임


원래는 미하일 가면라이더로 변신시킬까 하다가 나중에 쓰려고 생각해둔 장면이 있어서 가로로 변경함


https://arca.live/b/lastorigin/56767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