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창작물검색용 채널

트리아이나는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맡는 심해 탐색이었기에 미소가 지어졌고, 자신을 믿는다는 사령관의 말이 그녀로 하여금 콧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녀는 포트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소형 잠수정에 뛰어들고, 이내 심연 속으로 다시 한 번 뛰어들었다. 그녀는 빠르게 '그것'에게 다가간 뒤 오르카호로 통신을 연결했다.


"여보세요, 사령관? 잘 들려?"


"응, 잘 들려. 잠수함의 상태는 어때?"


"흐음.. 카메라로 볼 땐 몰랐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은데? 깨진 창도 없고 중심부분은 변형도 적어. 내 예상이 맞다면 여기쯤에.. 찾았다!  리오보로스 때처럼 머리 굴릴 필요까진 없어서 좀 김 빠지는걸?"


사령관의 생각대로 트리아이나는 자기 분야에 한해서는 한없이 진지하며 유능해져 그녀를 감히 따라올 자매가 없었다. 처음 보는 잠수함, 처음 보는 손상일텐데도 능숙하게 분석해냈고, 이내 해치를 열어 내부탐색에 돌입했다.


"읏차,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사령관! 들려?"


잠수정의 분석에 따르면 내부에 산소가 남아있어 무거운 탐사장비는 잠수정에 둔 채 맨몸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다만 잠수함의 외벽이 방해가 되었는지 수차례 통신을 보내도 불분명한 소리만이 귀에 울렸다.


"사령관! 통신이 잘 안 되나봐! 괜찮은거지?"



"어.. 들려.. 계속 진행해."


마지막 통신에 겨우 답신이 들려오자 트리아이나는 안심하고 다시 한 번 내부를 둘러보았다.


외부 손상이 없던 탓에 안으로 물이 차지는 않아 그대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구조는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놀이공원에 놀러온 아이처럼 이리저리 눈을 돌리던 트리아이나의 시야에 독특한 물건이 포착되었다.


"오~ 시작이 좋은걸? 이건 뭐지?"


그것은 바닥을 뒹굴던 머리만 남은 상아 세공품이었다. 그리 비싸보이지는 않았기에 아마 선원중의 한 사람이 종교적인 이유로 들고오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할 수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결과라면 결과. 트리아이나는 초심자의 행운이라 생각하며 세공품을 가방에 넣고 일어서 통로 끝을 바라보았다.


오르카호와는 꽤나 동떨어진 내부 구조와 좁은 통로. 멸망 전 생존 개체인 트리아이나는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이 잠수함이 바이오로이드는 커녕 인류 역사에서도 연배가 있는 잠수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제일 가까운 방부터.."



"아니, 더 뒷쪽이야."


"어차피 다 돌아본건데 그냥 차례대로 가는 게"



"가."


"..."


트리아이나는 사령관의 말투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인간은 심해처럼 극단적인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사령관도 그런가보다 하고 그의 말대로 맨 뒷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트리아이나가 도착한 방에는 많은 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딱 봐도 창고네. 박스는 엄청 많은데 잘만한 곳은 없어. 대부분이 보존 식량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 보자.."


트리아이나는 높이가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박스를 꺼내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확인했다. 참치캔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다른 보존식품이라도 발견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며 박스를 열었다. 그러나


"죄다 상했잖아?.."


육포도 훈제 생선도 하나같이 힘없이 뜯겨나갈 정도로 썩은 음식들뿐이었다. 더 확인할 필요도 없는, 식량이었던 것들의 상태를 보자 트리아이나는 흥미를 잃고 옆에 놓아두었던 손전등을 들어 복도로 나왔다. 이후로도 몇 개의 방을 더 뒤져 보았지만, 발견한 것이라고는 옷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해진 천 무더기, 비스킷, 그리고 녹슨 구식 리볼버가 전부였다.


지나쳐온 방이 늘어날수록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이 잠수함에 들어오는 데 많은 수고가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잠수함의 상태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폐허 수준. 트리아이나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잠수함 탐색은 진작에 취소되어 오르카호도 이미 상륙을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령관은 자신을 위해 허가를 내주었다. 그렇기에 무엇이라도 좋으니 성과를 내고 싶었다.


"뭐라도.. 뭐라도 없나?.."


어느덧 탐색의 목적은 탐색 그 자체가 아닌 결과물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혼란하면서도 분주한 손으로 물건더미를 뒤지고 있자, 이제껏 잊고 있던 통신이 작동했다.



"역시 무리인가."


ㅡㅡㅡㅡ

장르가 장르다 보니 캐붕이 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재밌게?봐주시면 좋겠네요.


이번엔 좀 균형이 맞네요.


https://arca.live/b/lastorigin/56793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