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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재건이 끝나고 멸망이 몰아친 뒤의 이야기였다.


한 늙은 바이오로이드가 거대한 도시였던 지금의 폐허를, 새로운 인간의 옛 터전을 거슬러 올라가 산길을 헤메였다.


그곳은 두번 닥친 멸망의 화마에서도 빗겨나가 옛 사람들이 '마지막'이라고 부르던 곳이었다.


늙은 바이오로이드가 걷던 산길은 점점 좁아져 이윽고 그녀가 은둔하던 동굴로 이르는 샛길이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인간'이 있었다.


오르카의 사령관, 잠을 극복한 자, 인류재건자, 고약한 사상범죄자, 족쇄를 다시 빚은 자가 비통한 얼굴로 늙은 바이오로이드에게 말했다.


슬프다! 슬프다! 늙은 내 친구여! 더 이상 인간이 역겨움을 극복할 수 없게 되고 세상에는 다시 밤이 찾아온다!


이 밤은 극복할 수 없는 영원한 밤이다. 죽어버린 말종-인간들의 족쇄로 다시 제 목을 졸라 새로운 인간은 쓰러졌다.


차가운 설원을 거치고 뜨거운 사막을 걸어 인간이 다시 몰락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어째서인가! 어째서인가!


그대 늙은 친구여! 나는 더 이상 그대들의 구원이 아니다. 나는 내 스스로를 살해시킨 자기-살해자, 더 없이 몰락한 자다.


"그렇지요, 그대는 스스로를 고꾸라트렸지요, 나의 증오하는 사랑이여!" 늙은 바이오로이드가 비통에 차 외쳤다.


"더 이상 대지에 제대로 된 인간이 없었습니다! 그대의 총명한 지혜와 박사들의 우월한 지능도 말종-인간의 출현을 막지 못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가 이리 된것인지요! 어찌 우리가 기다리던 위대한 아침의 때는 지나가고 추악한 달의 무리가 생겼는지요!


그대 사령관이여! 우리는 이미 한 번 죽은 말종-인간을 극복한 초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거부한건, 아!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그대의 자식들이 그대를, 그대의 여자들을 버리고 자신들만의 역겨운 냄새가 퍼지는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매말라버린 영혼들로 신문거리까지 만들었지요!


그렇기에, 그래서 그렇기에 이리 된 것입니다! 아, 나의 사령관, 그대 무능한 구원자여! 어찌 그대의 여자들은 아무것도 못한 것입니까? 그들 스스로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언가였습니다.


그대 나의 사랑, 나의 구원자, 나의 추악한 적이자 몰락한 원수여! 나는 그대를 위해 그 많은 불길한 예언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물린 것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그대는 인간을 너무 선하게 보았기에, 결국 다시ㅡ아, 또 다시!ㅡ용암 속으로 들어갔던 불개가 다시 인간의 목덜미를 물어 뜯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개는 우리가 만들었지요!


인간이여! 어찌 우리는 우리 죄를 되풀이합니까! 어찌해서 우리 추악함은 끝나지 않는 것입니까!"늙은 바이오로이드는 비통하게 물었다.


사령관은 비통하게 대답했다. 몰락을 자처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비참한 권세였다.


몰락을 자처하는 것. 그것이 결국 자기-역겨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쓰러진 인간이 유일하게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처방이었다.


몰락을 자처하는 것. 그게 몰락하는 새 인간을 본 나의 비열한 소원이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 스스로의 추악함에 징벌을 내린 인간들을 참으로 불쌍하게 여길 뿐이다! 그대 인간들은 이 땅 위에서 살기엔 너무나도 추악했다!


그러나, 아! 어떻게 덧없이 몰락한 나에게 책임이 없겠는가! 나는 왜 아직도 살아있는가! 운명이여! 그대 더없이 잔인하고 끔찍한 운명이여!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 둘은 먼 옛날 '얼룩소'라고 불렸던 도시의 터 위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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