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미하일은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철충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려와 각종 AGS를 감염시키고 사람들을 습격하던 날의 꿈을.

철충들은 도망가는 인간들을 쏘고, 찢어발기고, 밟아 죽였다. 살려달라는 애원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는 성 바실리 성당으로 보내진 수면관 앞에 서 있었다. 뉴욕에 있는 펙스 본사에서 회장이 보낸 것이었고, 그마저도 신형이 아닌 10년 전에 만들어진 구형이었다. 거기에는 회장이 녹음한 메시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네 냉동수면은 나중에 철충들이 모두 사라지면 해제될 게다. 그 동안은 여기 들어가서 잠들어 있어라. 깨어나는 즉시 오메가를 보내서 뉴욕으로 데리고 오도록 준비해둘 테니, 온다면 너를 내 후계자로서 삼고 펙스도 물려주도록 하마.]


"개소리 하고 있네." 증오스러운 아버지의 말을 들을 가치도 없다고 느낀 미하일은 바로 수면관에 들어가 냉동수면 상태에 돌입했다. 잠들기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차라리 죽어서 어머니 곁으로나 갔으면' 이었다. 


하지만. 무슨 기구한 운명인지 그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고 다시 깨어나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한 인간과 만났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와 펙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눈앞에 빛이 아른거렸다. 드디어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라도 온 것일까. 미하일은 손을 들어 빛을 잡으려고 했지만, 팔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다만 시야는 다시금 선명해져 빛의 근원이 똑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건 의무실 조명인데..?' 하고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엄습해 왔다. "끄으으윽..!"


"우왓! 작은 주인님! 깨어난 거야? 아직 움직이면 안 돼!" 옆에 있던 아쿠아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려고 하는 부사령관을 진정시켰다.


"아쿠아.. 뭐가 어떻게 된 거니?"


"지브롤터에서 감마랑 교전한 이후에 그 일대를 점거하고 스페인 지역으로 넘어왔어. 그동안 작은 주인님 치료도 했고. 근데 감마랑 육탄전을 벌인 것 때문에 뼈가 많이 부러진 상태라 너무 격하게 움직이면 큰일 난대." 아쿠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미하일을 진정시켰다. 


"그래.. 옆에서 내 상태 봐준 거구나. 고마워." 하고 그는 아쿠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했으나, 오른팔에 붕대가 감긴 탓인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윽.."


"너무 무리하시지 않는 게 좋아요. 그리고 당분간은 재정비 기간이니까 최대한 푹 쉬고 오시라는 주인님 말씀도 있었구요." 병실로 들어온 다프네가 말했다.


"네, 그래야겠네요.." 하고 다시 누우려던 찰나, 그는 다시 벌떡 일어나 속사포처럼 물었다. "용 대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사령관님은요? 함께 전투에 참가한 부대원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감마와 제타는요?" 마지막 부분에서 특히 더 흥분한 미하일은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상태에 링거조차 뽑지 않은 상태로 병실 밖으로 나설 기세였다.


 "진정하세요! 주인님께서 나중에 어느 정도 회복되면 설명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일단은 최대한 안정을 취하셔야.."


"전 지금 안정 못 해요." 하고 그는 팔에서 바늘을 뽑고 옆에 걸려 있던 겉옷을 대강 입은채 목발 하나에 의지하여 분연히 뛰쳐나갔다. 팔에서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렸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설마 내가 기절한 사이에 즉결처형 당한건가? 아니면 감옥 같은곳에 수감된 건가? 아니야. 어쩌면 다시 일어나서 오르카를 볼모로 삼았을 수도 있어.." 횡설수설하며 병실을 나서려던 찰나,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카엔이 촙으로 미하일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앰부쉬는..치사하잖아.."


"카엔. 주공 명령 따라. 작은 주공. 회복 전까진. 푹 쉬랬어." 다시 멀어져 가는 의식 속, 카엔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이 이러리라는 것도 사령관은 이미 염두에 두었던 건가..



그의 골절이 어느 정도 낫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하루 반나절 정도. 카엔에게 촙을 맞았다가 다시 일어난 후 그는 약 10번 정도 탈출을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페어리 자매들과 쿠노이치 자매, 그리고 리리스 등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나와 주세요."


"안 됩니다. 완전히 치료되기 전까지는 절대 작은 주인님은 밖에 못 나가세요."


"그럼 부사령관 권한으로 말하겠습니다. 당장 비켜 주세요."


"거부하겠습니다."


미하일과 리리스가 실랑이하는 동안, 펜리르와 포이는 옆에서 팝콘을 뜯으며 그것을 영화라도 되는 듯이 감상하고 있었다.


"우와, 재밌게 돌아가네. 과연 누가 이길지 궁금하지 않아?"


"주인님도 언니한테 이긴 게 몇 번 없는데, 과연 작은 주인님은 어떨지 궁금하네!"


두 바이오로이드과 재미있는 광경을 직관하는 동안, 부사령관과 리리스는 계속해서 서로를 노려보며 나가게 해달라 vs 안된다로 대립하고 있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무기라도 꺼내서 누구 한쪽이 쓰러지기 전까지 싸울 기세였다.


"하아.. 정말 이러실 건가요?" 리리스는 자신의 주 무기인 맘바 피스톨 두 자루를 꺼내들어 미하일에게 겨눴다. "제압용 고무탄이 들어있어서 죽지는 않을 거에요. 대신 죽도록 아플 수도 있지만."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어쩔 수 없네요." 하고 그는 짚고 있던 목발을 들어 야구 배트처럼 꼭 쥐었다. 풀파워 경호대장과 환자 부사령관의 싸움이라는 이벤트가 파이팅 넘치는 시작을 하기 직전, 알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하일 데리러 왔습...이게 뭐죠?"


"알파!! 리리스 씨 좀 말려줘. 빨리 나가야 하는데 나한테 고무탄 겨누고 있다고!"


"갈!!!! 애초에 작은 주인님이 10번이나 여기 빠져나가려고 하셔서 이럴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하아... 리리스 씨, 총 내려놓으세요. 미하일도 목발 내려놔. 이러다 더 다쳐." 알파의 중재에 두 사람은 모두 무장(?)을 해제했다. 하지만 리리스는 짜증이 안 풀렸는지 장난감 총 발사하는 정도의 강도로 고무탄 한 방을 미하일의 머리에 날려 주었다.


"아얏!"


"조용히 하세욧!" 리리스는 한 발을 더 날리고선 병실에서 컴패니언 둘과 함께 사라졌다.


"머리에 혹만 늘었어.."


"하루 반나절밖에 안 지났는데, 기다릴 수 있었잖아. 게다가 전력으로 싸우고 나서는 회복 안 한 상태로 다니는 것도 위험해. 아무리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했어도 골절은 쉽게 안 나아."


"알겠어.. 그래도 급한 일이어서 불안했단 말이야."


"감마랑 제타 얘기지? 그 둘은 지금 오르카 감옥에 수감되어 있어. 주인님 계신 곳에 가면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


알파의 부축을 받으면서 미하일은 병실 밖을 나섰다. 평소와 다름 없는 분주한 오르카의 하루 같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브라우니들이 창고로 무언가를 옮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건 어디에서 가져온 거야?"


"감마의 감시기지랑 제타가 주둔하고 있던 바르셀로나에 있던 물자들이야. 오메가로부터 지원받은 양이 엄청나서 필수적인 물품들만 모아도 하루가 지나도록 다 못 가져왔어.


감마와 제타 이야기가 나오니 미하일은 더욱 궁금해졌다. 그는 둘이 감옥에 수감되서 지금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물었다.


"감마는 감옥에서 계속 체력 단련중이야. 나가면 반드시 용 대장님과 1대1로 승부를 볼 거라나. 그리고 제타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부정하고 있어. 꺼내달라고 주인님한테 사정하는데도 그걸 들어주지 않아서 지금은 그냥 모든 걸 놓아버렸지."


"딱 그 두명답네.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없었어?"


"응. 상황을 지켜보던 베타가 넘어와서 우리에게 합류했어. 아마 지금쯤 주인님과 함께 있을 거야. 그 외에는 딱히 변한 부분이 없어."


이야기를 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샌가 회의실 앞에 가까이 와 있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사령관들과 지휘관들이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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