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환상향을 살아간다 (57) 

당신은 환상향을 살아간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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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 환 ] 의 현재 장소는 [ 히에다 가 ] 입니다. ( 소지금 : 9,305,000 원 ) ( 물가 18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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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 환 ] 소질입니다. [ 솔직함 ] [ 불결무시 ] [ 달변 ] [ 황금의 페니스 ] [ 술고래 ] ( 금욕 100 일차 ) 

[ 곽 환 ] 은 환상향 기준으로 잘생겼다고 할만한 외모를 하고 있습니다 ( 호감도 배율 8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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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이 어디로 들어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을만큼 극도의 거북감을 느끼며 식사를 마친지 얼마나 지났을까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그릇임에도 절반 가까이 남은 밥과 찬에 히에다 가의 아가씨는 책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조금,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 헤어짐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 해도 이별한 상대와의 만남은 좀 많이 거북한 것이니까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옛 격언을 따르고 싶었을뿐인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일이 생길거라고

알았더라면 애초에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았을테지. 운명이란게 정말로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토록 피하고자 했었던

메리와의 만남을 강제받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앞으로는 그런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무척 간단한 일이다. 메리가 방에 들어와 앉은 직후 곧바로 당신에겐 재결합의 의사가 없음을 밝힐뿐인 간단한 일 

그럼에도 입안은 바짝바짝 말라붙어서 단내를 풍기고 있었고-손은 중증의 알콜중독 환자마냥 덜덜 떨려대고 있었기에

당신은 손을 방석 밑으로 집어넣어 엉거주춤 무릎걸음을 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제, 떨려대는 손바닥은 보이지 않겠지.  


왜 굳이 이런 이상한 짓을 하냐고? 당신이 메리를 완전히 떨쳐내기 위해선 메리가 없다 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오히려 메리와 억지로 재결합을 시도하는 것이 당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메리에게 전해줘야만 하니까

메리가 어떤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있던지 그건 메리의 기준에 불과한, 당신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이다. 


괜한 죄책감에 어중간한 표현을 사용했다가는 "선생님은 거짓말을 잘하니까요?" 같은 말과 함께 억지로 들러붙어오며

당신의 설득을 시도할터이고, 그것에 넘어가버리게 된다면 관련된 모두가 질척이는 구멍에 빠지는 꼴이 되어버리겠지

그런 일은 있어선 안된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길 것 같다면 그 이상의 대화를 끊어내는 한이 있다 해도 말이다.


"...그래도, 너무 굳은 표정이 아닌가요?" 


식탁을 물리고 나서도 옆에 앉아 당신을 쳐다보던 히에다 아큐였지만, 절로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분위기는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일까. 당신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로 방을 나서기 직전 남긴 말. "표정이 너무 굳었다." 란 말에 손을 들어서

스스로 입매를 만져봤지만, 잘 모르겠다. 곧 다가올 이별에 뒤늦은 아쉬움의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니다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9할의 죄책감과 1할을 밑도는 기대감 둘뿐이니까. 왜 죄책감이 9할이나 되는거냐고?

그야, 당연하다. 만약 당신이 명확하게 메리에게 이별을 통보했더라면, 설득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분명 지금쯤은 훌훌 털고서 우사미 양과 함께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 있었을테니까. 그것이 무척 죄스럽다.


나머지 1할의 기대감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이렇게 말하면 쓰레기로밖에 여겨지지 않겠지만, 새로운 연인이

생겼는데도 전() 연인이 근처에 있는걸 그 누가 좋아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연인이 보살 같은 성격을 하고 있다 해도

자기가 먼저 끊어내는 것이 올바르고. 또 괜한 책임감을 질질 끌어대는 것보다는 훨씬 상쾌한 기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 걸음의 주인공을 어쩐지 알 것 같단

생각을 떠올리며 당신은 그새 차갑게 식어버린 찻물이 들어있는 사기잔을 들고-그것을 모조리 목구멍으로 부어넣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입매를 녹여보려던 시도였지만, 찻물의 시큼하고 떫은 맛으로도 당신의 표정은 변하지 아니하였다.


발걸음 소리가 멈췄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상대 또한 깨닫고 있는 것이겠지. 지금 이 문을 여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이란걸. 그럼에도 문을 열지 않을 수는 없다. 시간이란 것은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해변가에서 고운 모래를 꼭 쥐고 있어도, 정신을 차려보면 언젠가 물에 모두 녹아 흘러가버린걸 발견할 수 있듯 말이다


"...선생님." 


당신이 눈을 감고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지 얼마나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울음기가 가득 묻어나는 메리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올린 당신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생각이 무척 물렀다는걸 깨닫고야 말았다.

뭐가 상쾌한 기분이고 뭐가 재결합의 의사가 없음을 밝히면 될뿐인가. 생각했던 모든 말들이 머릿속에서 무너져내린다


당신의 동정을 사기 위한 목적이나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가 아닌, 앞으로 있을 일을 분명하게 깨달았기에 그에 대한

슬픔을 토로하는 눈물젖은 얼굴. 이미 결정된 것이 바뀌길 바라면서도, 그것을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어그러지게 될걸

깨달았기에 차마 그것을 단어로 만들지 못해 삼켜야만 했던 씁쓸하고도 괴로운 감정들이 한가득 녹아들어있는 눈물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아아, 그래. 정말 한심하다. 진작에 결정했어야 하는 것을 제 알량한 사정에 맞춰서 계속

미뤄댔을뿐인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견딜 수가 없다. 이미 이렇게 될거란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직접 그것을

마주하자마자 도망치고 싶어진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하다. 이런 녀석을 선생으로, 그리고 남자로 봐준 상대에게 도망?


가능할리가 없다.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기에서는 메리...아니, 마에리베리 한이란 상대를 직접 마주하고

모든 것을 토해내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얼마나 되는 저주와 원망의 말이던, 당신을 잡고자 하는 말이던지간에

지장보살과 같은 묵묵함을 품고서 말이다. 이런 상황이 될 것이라 알았다면, 미요이에게 미리 말을 하고 올걸 그랬는걸


"...선생님. 저는, 정말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한순간의 로맨스와 연애. 남성과 연애를 해보는건 어떤 기분일까. 와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시작이지만-그럼에도, 선생님에게 한순간도 거짓을 말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생각해요.

선생님도 그건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하고요. 어떤 일이 있던지간에, 저는 언제나 선생님에게 진실된 자세로 있었어요."


차라리 울면서 저주의 말이라도 토해낼 것이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제 눈동자에 맺힌 눈물로 다다미 바닥을

적시는 모습에 위로의 말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올랐지만, 그래선 안된다. 괜한 희망 같은걸 남겨줬다간, 모두 바닥이

없는 검은 늪. 무저갱으로 빠져들게 될테니까. 모두가 손을 잡고 끝나는 데드 엔딩보단 새드엔딩이 훨씬 더 좋을터이다


"그렇기에 저는 절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요. 그 누구도 제게 선생님과 '밀당' 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약간의 흥미만으로 저질러버린 자신을요. 선생님은 알고 계신가요? 선생님이 타시는 전철이 갑자기 '실종' 되었다는걸

알게 되었을 때의 제 심정을.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무척이나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지만 이건 말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만약 제가 선생님의 번호를 차단하지 않았다면 뭔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다시는 선생님을 볼 수 없단 절망감

두가지가 잔뜩 섞여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였어요. 사실 알고 있었는데. 제가 선생님의 번호를 차단했던 것과 사고는

아무런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데도-그렇게라도 자신을 탓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분명 여기에 오기 직전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말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까 갑자기 말이 나오질 않아서.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로는 선생님에게 원망을

뱉지 않는게 힘껏이라서, 어떤 방법을 써야 선생님에게 제가 품고 있는 진심을 전부, 전부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제가 해야하는 말이 있다면 분명 그것은 사과의 말이겠지요. 그동안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에

감사를 표하기에는 제가 너무 어린건지도 모르겠어요. 원래는, 앞으로 선생님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멋진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는데...그동안 감사했다고 말을 하려 했는데...도저히 입에서 나오질 않네요. 이제, 정말로 마지막일텐데, 요."


"선생님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적어도 선생님이 언젠가 저를 떠올리면서 작게나마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그런 기억으로 남고 싶었는데...이래서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울음을 참는데만 급급한 욕심쟁이라고밖에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네요. 이러면 안되는데...선생님이 언젠가 저를 떠올리며 작게나마 웃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목구멍에 뭔가 걸린 것 같은 감각에 절로 가슴이 욱신거린다. 이 환상향에서 살아가기를 결정한 이후로, 자취를 감췄던

양심이란 녀석이 왜 하필 지금 기지개를 펴는 것일까? 그래, 정말로 왜 하필 지금인걸까. 길어봤자 몇 시간만 버틴다면

지나갈 일인데. 모두가 조금씩 상처를 받으면 최악의 불행은 닥쳐오지 않을텐데, 양심이란 녀석이 나와서 뭘 하겠다고.


이미 이 상황에 대한 최적해는 나와있다. "메리는 내게 있어서 분명히 좋은 기억이야" 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할텐데, 왜 이제 와서야 가슴을 콕콕 찔러오냔 말이다. 당신은 고작해야 하나의 마음을 담아내는게 전부.

그래...사람 하나의 애정을 오롯하게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가득 들어찰 정도로 좁아빠진 그릇을 가진 사람인데 말이다.


"...웃어주세요. 선생님. 선생님이 그렇게 울먹이는 모습을 보여버리면 제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잖아요?

정말이지...네. 이런 선생님이기에 저도. 그리고 그녀도 선생님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분명.

계속 그렇게 울고 계시면 말이에요. 선생님도 저만큼이나 이 이별이 싫은 것이라고 받아들일지도 모르는데 괜찮아요?"


생각해라. 당신이 왜 이별이란 선택을 내렸던 것인지. 자신도 이렇게 괴롭다고, 자신도 실은 이런 결말이 되어버리는걸

원하지 않았다고 떠벌리는 듯한 눈물이란 추하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의 극한임을 깨달아라. 감정에 모든걸 맡겨버리고

생각을 방폐하는 것을 두려워해라. 결정을 내렸다면, 설령 그 끝에 닿는 길이 괴롭더라도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선생님, 저는."


까득,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입 안에서 시큰한 통증과 아릿한 혈향이 번지기 시작한다. 무척이나 날카로운 통증.

머잖아 영원정에 찾아가서 진료를 보지 않는다면 악화되어 신경을 긁어내는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 분명한 통증이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그 통증이 고맙다. 적어도 당신이 연민이란 빠져나올 길 없는 늪에 빠져드는 것은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가요." 


당장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과 통곡을 눌러참은 탓에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 마지막 남은 숨결 한 줄기를 모아서

겨우 쥐어짜낸 이별의 말. 화려한 수식어구도 눈물도 곁들여지지 않은 "이젠 헤어질 시간이야." 라는 세 어절의 이별사

그렇기에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선고라는 사실을 당신도, 메리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


어쩌면 최선의 미래로 향하는 가능성을 담고 있었을지도 모를, 아직 입 밖으로 내어놓지 못했던 수많은 말은 이 선언을 

거쳐 단순한 소음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또 그것을 바꾸기 위해선 무척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잃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는 것에서부터 당신은, 메리는 눈을 돌렸다. 모든 것을 걸기에는 둘의 관계가 너무 많이 달라져버렸으니까.


당신에게는 미요이가. 메리에게는 렌코가 있다. 죽음이란 피하지 못할 이별이 다가오기 전까지의 동고동락을 결심했던

상대가 자신들에게는 있다. 만약 연민이란 독이 골수까지 치밀어오르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여기서 당신은 분명

메리의 손을 붙잡고 무저갱으로 기쁘게 뛰어들었겠지. 아아, 정말로. 세상사란 하나같이 예측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다


만에 하나라도 당신이 메리의 설득에 넘어갔다면. 만에 하나, 이 환상향에서 당신을 붙들어줄 수 있을 미요이라는 닻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분명-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되었을테지. 모두가 행복을 붙잡는 엔딩 따윈 없다. 미지근한 행복감.

제 주변이 견딜 수 없을만큼 뜨거워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망치지 않고 천천히 삶겨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은 꼬라지.


제가 머무르는 우물. 썩어가는 이끼들과 이따금 하늘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들을 허겁지겁 주워먹는 정저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당신에게도, 메리에게도 없다. 메리는 아직껏 보지 못한 다른 세계의 비밀들과 별의 빛남을 위해

당신은 당신을 믿고 지지해주는-환상향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함께 침전해가기를 택한 미요이를 위해 살아야만 하니까.


당신과 메리가 만났던 것은 메리가 좋아하는 형태의 비유를 빌리자면 "혜성과 소행성" 의 만남이라 해야하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마주하지도 않고, 설령 마주한다 할지라도 금방 스쳐지나가서 서로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조차 못하는

사무적인 관계조차도 되지 못할 만남. 우연이 필연이 될만큼 많은 시간과 계기가 있어 서로의 인연이 묶였던 것이니까.


그럼에도 그 인연의 중력은, 메리라는 자유로운 존재를 당신에게 묶어놓을만큼 강하지 못했기에-그 한순간의 뒤틀림이

지금의 결과를 불러온 것일테지. 아아. 안된다. 이미 결정이 났다고 말한 주제에 계속해서 미련을 끊어내지 못하겠다니.

싸구려 통속극에서도 쓰지 않을만큼의 고구마 전개 같은게 허락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미, 떠나간 것에 미련을 버리자.


"...그럼, 제가 먼저 일어나는게 나을 것 같네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메리. 채 마르지 않은 눈물과 열꽃으로 잔뜩 얼룩진 얼굴인데도, 방에 들어오기 직전에 비해

맑은 미소를 짓고서 당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였다. 메리. 마에리베리 한이란 이름의 소녀.

한때 당신의 학생이었고, 연인이었던 이가 당신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고 가만히 제 몸을 맡겨온 것은 말이다.


"선생님은 저를 혜성. 이라고 말하셨지요. 혜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주기 혜성과 비주기 혜성. 차이점은 태양을

향해서 다시금 돌아오는지의 여부이고요. 선생님의 생각 속에서 재거 어떤 종류의 혜성일지는 모르지만...아주 먼 미래

후생(後生)을 논할만큼의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같은 궤도에서 만나게 될테니까요, 기다려주세요?"


얌전히 물러나줄 성격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마지막의 마지막에 일격을 먹게 될줄이야.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하긴...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세상에 숨겨진 비밀을 찾겠다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목표를 <비봉클럽> 의 이름을

내걸고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후생을 논할만큼의 시간이라. 그래, 만약 후생이 있다면 그땐 받아들이도록 할게.


"다음에 뵙게 되는 곳이 '10년 전의 과거' 가 될지, 아니면 아직 보지 못한 미래일지는 모르지만-그때, 저를 발견하시면

먼저 인사를 부탁드릴게요. 이건 제자로서 선생님에게 하는 부탁이 아닌, 한때 환. 당신의 연인이었던 마에리베리 한의

이름으로 하는 부탁이니까-절대 잊으면 안된다구요?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기 전까지는 이대로 놓아주지 않을거에요."


처음 만났을 때의 그것과 같은 장난기가 섞인 미소로 당신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을 내밀어온 것에 당신의 새끼손가락을

천천히 옭아매는 것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당신과 메리의 연애는 이번 생애에서 완전한 끝의 결말을 맞이하였다

메리의 말대로 후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래. 그때는 메리와 언제까지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도, 꽤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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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결화를 앞둔 살아간다 시리즈입니다. 공포 7~8 천자를 대충 여섯 번 정도 지웠다가 다시 썼는데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출하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번 화도 스스로는 조금 아쉽다 싶은 부분들이 조금 눈에 띄기는 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상을 남겨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머잖아서 살아간다 에필로그로 돌아오겠습니다! 


+ 묘사가 부족하다 싶으면 작가가 경험이 부족해서 이러는구나 하고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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