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이전에 다른 챈에 썼던 정보글, 이 챈에서도 통용될만한 글이기에 다듬어서 올립니다. 세계관을 만드는 것, 그리고 GM 입장에서 PL이 '~~컨셉 가능해요?' 라는 얘기를 했을때 '아무튼 됩니다!'를 외칠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전에 즉흥플 관련해서 쓴 글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A라는 세계관이 있다. A는 무언가로 가득채워져있어 평범한 프리셋들은 대부분 정의되어있고, 왠만하면 그냥 골라 쓰면 된다.
B라는 세계관이 있다. A와는 반대로 핵심이 되는 뼈대만 만들어져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빈공간이다. 무언가를 상상하면 코어 설정 몇 개와 연관지으니 있을 법 하긴 한데, 따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지향하는 세계관은 A보다는 B이다. 왜냐면 A로 만들면 이후에 수정하기가 어렵다. 대신 B로 하면 나중에 즉석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스킬이 필요하지만 그건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
예를 들어 흡혈귀에 대한 설정을 짠다고 하자.
A의 방식은 이렇게 될 것이다. '흡혈귀는 평균 수명 500년에 햇빛을 받으면 피가 끓어올라 불타 죽는다. 이는 신화와 연결되어 있는데, 신이 내린 저주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였다. 또한 반드시 하루에 한 번 500ml정도의 피를 마셔야만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이성을 잃고 눈에 보이는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게 된다.'
B의 방식은 이렇게 될 것이다. '흡혈귀는 장수하며 햇빛을 받으면 불타 죽는다. 원인은 불명이다. 하루에 한 번 피를 마신다고 한다. 인간을 습격하는 케이스가 종종 보고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봐도 A의 설정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이건 PL 캐릭터로 바라봤을 때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GM이 A의 방식을 채용한다면 PL은 색다른 흡혈귀를 짜기 어려워진다. A의 세계관에서는 햇빛을 받아도 불타지 않는 흡혈귀가 나오기 굉장히 어렵다, 신화의 저주라는 이름으로 못박았기 때문. 하지만 B의 세계관에서는 불명이라 하였기에 적당한 핑계만 있으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PL 입장에서 자유도가 커지는 셈이다.
PL이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공식 설정이 뭔가요?' 라 물어볼 수 있다. 그럼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이 캠페인에선 여러분이 만든게 공식 설정입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하지만 또한 멋진 말인가?

물론 이 말은 무책임하게 죄다 뒤로 미뤄두라는 말이 아니다. 그 만큼 '이건 안됩니다.'라고 말할 절대불변의 코어는 유기적이고 탄탄하게 만들어두고, 그 안에서 PL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목초지 같은 세계관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