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됐다. 

게임이나 소설 같은데 빙의한 사람의 입에서 좆됐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편이 이상하다만, 나는 진짜 좆됐다. 



-짜악! 


"대체 왜 그런짓을 벌인겐가?!" 


"윽!" 



고풍스런 사무실 한가운데서, 마치 아카데미상 시상식 무대와 같은 찰진 싸다구가 날아오고, 눈앞에 선 군복차림 중년 남성이 분노한체 내게 소리를 질러대도, 별 감흥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이상한곳에 떨어진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씨발. 날씨는 드럽게 좋네.' 



눈앞에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고함 치는 중년 아저씨 하나. 


주변으로 시선을 슬쩍 옮기니 눈앞의 남자와 같은 군복을 걸친체,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남녀 몇명. 


그중 한명은 목발을 짚고 있다. 뒷쪽에도 더 있는듯 하지만, 뒤를 돌았다간, 싸다구 하나 더 날아올것 같아, 시선을 중년 남자 뒤쪽의 창문으로 보냈다. 


개같은 상황임에도, 날씨는 완벽하게 화창한 초가을의 오후였다. 



"어!? 계속 무표정으로 서있지만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불난집에 기름 붓는건가?! 지금 이게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내 사과에 더더욱 분노한 중년남자는 내 멱살을 잡고, 미친듯히 흔들어댔다. 


솔직히 말해 억울했다. 애초에 난 그 어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이게 다 내 몸뚱이의 주인이 벌인 짓이다 이말이야. 그런건 이 세상 어딘가로 사라졌을 원래 몸주인한테 가서 따져. 난 그런거 몰라. 



'씨이발 좆됐네.' 



다만 창문에 비쳐진 현재의 내 모습이 다시금 눈에 들어오자, 또다시 극심한 두통과 속쓰림이 올라왔다. 


능력과 지성 빼고 모든걸 다 가진 주제에, 왜 이년이 신경질적인 성격을 갖고 사는지 알 것 같다. 허구한날 이런 두통과 위경련을 달고 사니깐, 성격이 그모양인거다. 괜히 야겜 초반부에 리타이어 당하는 허접 삼류 악역이 아니다. 



'근데 존나 이쁘다.' 



하지만 초반에 리타이어 당함에도, 원작의 19금 팬아트 지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잘록한 허리와 우수한 볼륨감의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빛나는 백금빛 장발과 맑디 맑은 푸른눈, 전체적으로 부드럽지만 또렷한 이목구비까지. 


동양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서양 미녀 그자체다. 


하긴 그럴수 밖에 없다. 



'크흑, 하필이면 왜 이 게임인건데! 차라리 혈압 터져서 죽어도 좋으니, 전쟁번개에 던져줘! 안톤 제발 날 구원해줘!' 



난 지금 일본산 야겜에 빙의해버렸으니깐. 



'카이제린 라이히 1936' 



이거 정말 똥겜입니다. 


일단 겉으로는 수집형 RPG에 턴제 배틀 시스템을 차용한 게임 플레이에, 판타지 요소와 실제 역사를 섞은 대체역사  설정의 스토리를 가진 게임이다. 야짤을 기대하며 신나게 플레이했다가, 후반부 벨런스 붕괴에 기겁해 쌍욕을 퍼부었던 똥겜이다. 



'베를린 공방전은 어케 이기라는거냐? 이 시발럼들아.' 



하지만 의외로 나쁘진 않았다. 



여군 설정을 위해, 이능력과 각성자 정도의 약간의 판타지 요소만이 추가 됐을뿐. 


나치 독재 타도를 목적으로 왕당파와 민주파가 손잡고 나치를 몰아내고, 입헌군주정 제 4제국을 건국해, 2차대전에서 승리하는게 주내용인 뻔하디 뻔한 2차대전 독일 대체역사 왕도 스토리. 


그럼에도 나치 타도 실패, 2차 독일 내전, 공산주의 독일, 나치 승리, 2차 대전 패배 등, 여러 분기점 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배드엔딩. 


이능력을 세계관내에 추가했음에도, 마냥 만능으로 여겨지지 않고, 이에 대항할 전차와 항공기 개인 화기등의 연구와 테크트리 개발을 통한 캐릭터와 군대 육성. 



하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온갖 하드코어 페티시를 만족시키는 주인공과 조연, 악역을 가리지 않은 온갖 여캐들의 능욕씬이었다. 고증 그대로의 복장을 갖춘, 완전군장 차림의 여캐 벗겨서 능욕하는게 사실상 게임의 존재의의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완벽했다. 


그것도 모자라, 오스트리아 짤쟁이는 인류사 최악의 빌런이니, 다른 짤쟁이들에게 연좌제를 걸며 착취한 양, 루트별로 튀어나오는 온갖 하드코어 소재와 장르를 넘나드는 야짤과 서비스씬은 방대했다. 


그덕분에 나도 신세 좀 졌다. 하나 같이 자극적이고 화끈한게 환상적이었다. 



"우으..." 


"어디서 질질짜는건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앞날이 어둡다못해 딥다크해진 현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나왔다. 


왜 하필이면 이 년인건데요. 차라리 콧수염 놈 몰아내고, 여제 되는 여주나, 하다못해 그년이 언제나 데리고 다니는 조연들한테 넣어주세요. 


여자가 된 것보다, 이 악역 캐릭터가 된게 더 슬펐다. 

왜 하필이면, 모든 엔딩에서 배드엔딩이며, 혼자서 게임에 나오는 하드코어 야짤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캐릭터가 된 걸까? 


루이즈 안토니아 에베르트 폰 마켄젠. 



유저들이 지은 애칭은 '전범이' 혹은 '디스펜서'. 


모든 군인들의 존경을 받는 원수의 늦둥이 딸로 태어나 금지옥엽으로 커온 아가씨이며, 그 때문에 각성자면서 가진 마력이나 이능력은 보잘것 없는데도, 프라이드는 쓸데없이 높다.  



'독일군 정예 각성자가 티거2 한대의 전투력을 가질때, 이 썅년의 전투력은 무려 97식 치하 한대의 전투력!' 



거기다 초반에 리타이어해도 스토리 중간중간마다 튀어나와서는 주인공의 속을 벅벅 긁는데다, 모든 루트에서 나치즘과 게르만 우월주의에 열광하는 전범이며, 모든 엔딩이 배드엔딩인 희한한 캐릭터. 



소련이 이기는 엔딩이면, 어디론가 끌려가서 슬라브 디스펜서가 되거나, 군장을 배에 품는 군장 디스펜서 혹은 아사나기식 오뚝이 인형겸 장작. 


미군이나 영국군한테 잡혀도, 전범이라 윤간후 현장사살. 


심지어 독일이 이겨도, 파벌 잘못 서서 숙청후, 레벤스보른으로 끌려가 게르만 디스펜서 행이다. 


그나마 행복한 엔딩이, 평범하게 전범재판후 사형, 신분세탁과 잠적에 성공해서 홍등가 창부로 살거나, 동부전선에서 낙오된후 소련군한테 잡혀서 강간·조교 순애 찍는 정도. 



즉 나치와 전범은 인권이 없어, 아무리 굴려도 논란은 없으니,  거의 모든 루트가 디스펜서나 끔살일 정도로, 하드코어하다 못해, 게임 기획자들이 가진 음습한 성적 취향을 전부 때려박은 그런 캐릭터라 할수있다. 



'난 지금 좆이 없지만, 제대로 좆되버렸다. 씨팔.' 



다만 문제가 있다. 


지금 시기가 언제지? 


지금 루이즈 이 년이 친위대에 그것도 아인자츠그르펜 들어가서, 전범 된 시점이면, 뭘해도 좆된거다. 


만약 지금의 마켄젠이 전범이라면, 바로 이 방에다 수류탄 까서 모조리 날려버린다. 

루이즈 열사로서 썅년 마켄젠을 비롯한 다른 전범들과 동귀어진 하여, 더러운 낙지스깜들을 처단한다. 



"넌 퇴학이야! 당장 나가!" 


"와 정말요?!" 


"이런 미친년이!" 


-짜악! 



너무 기뻐서 말실수 했다가, 또 다시 싸다구를 맞았지만, 존나 행복했다. 


다행히 초반 스토리 대로, 독일 국방군 각성자 사관학교에서 퇴학 당한 시점이다. 아직 아빠 빽으로 친위대 입대한 시점은 아니다! 


사고를 쳐봤자, 자신과 그 똘마니들을 무시한 남주가 좆같다고, 몇몇 융커 자식들이랑 같이 공격 했다가, 역관광 당하는 아주 깜찍하고 앙증맞은 실수. 


물론 그 실수가 수류탄이랑 각성자용 무기에 장난질 쳐서, 교관과 생도 10명 가량이 크고작은 부상을 입고 훈련장이 개판된 사고였지만, 전쟁범죄보다는 귀엽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그 교관과 생도들은 미래의 낙지스껌들이니 오히려 착한일 한거다. 



"당장 끌고가!" 


"옙!" 



이후 나는 개 빡친 교장의 명령에 교관들에게 양쪽 팔이 구속된체 끌려나갔다. 



"마켄젠 생도....아니 프로이라인 마켄젠. 대체 왜 그런 짓을 한건가? 그리고 귀녀의 아버님의 명예를 더럽힌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가?"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가요?" 


"도저히 이해가 안되서 그렇다네. 귀족으로서의 프라이드가 있다해도, 그렇게까지 한 평민 생도에게 모질게 굴 이유는 없지 않은가?" 



끌려나가던중, 내 팔을 붙잡고 있던 교관중 한명이 내게 물었다. 

하나 같이, 지금의 내가 답하기 어려운것이었다. 다만 우리집이 귀족으로서 이름에 '폰' 달기 시작한게 얼마 안됐으면서 이게 뭔 지랄이냐고 까는건 알아먹었다. 


역시 더러운 폰은정 새끼들. 



"대답하기 어려운건가?" 


"일단은 그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못했다는것만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쯧." 



내 대답에, 교관은 혐오스럽다는양, 나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 나도 걔 이해 안되. 

암만 야겜 스토리라해도, 그 인성이랑 지능으로 친위대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어. 


아 생각해보니, 와꾸가 운터멘쉬인 아동성범죄자도 친위대 장교한 전적이 있으니, 와꾸랑 집안빨로 들어갔다하면, 이상한건 없구나. 



진정으로 디스펜서 엔딩이 어울리는 애였네. 

이제야 납득했다. 



'아니 아니! 이딴걸 납득할때가 아니잖아!' 



다만 그 디스펜서 엔딩을 내가 맞이 한다는건, 변함이 없으니 뭐라도 해야했다. 



"입소때 입고 온 옷으로 환복하고, 떠날 짐 챙기게. 그리고 생도복은 벗어서 정리해서 반납하도록." 


"옙." 



다행히 교관들이 날 끌고간 곳은 내 방이었다. 


교관들 전부다 게르만 슈파- 솔다테 그자체들이라, 그들의 손짓으로도 초반 리타이어와 동시에 순결이 날아갈줄 알고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내 평판이 나락갔어도, 막 건들일 정도는 아니구나. 



"후우......입고 있는것만으로도 기분 더러웠어."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불결한 제복부터 벗었다. 

모자와 재킷부터 시작해 와이셔츠와 넥타이까지 속옷빼고 전부 벗어던졌다. 


디자인적으로는 뛰어나다 하긴 충분하지만, 너무나 많은 피가 흐르게 한, 이 끔찍한 제복을 내가 입고 있었다는게, 소름끼쳤다. 



"빌어먹을." 



제복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나는 창 밖에서 자랑스럽게 펄럭이는, 마치 저주스럽고 두려우며 역겹기 그지없는 20세기를 형상화 한듯한 붉고 검은 깃발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차라리 나치가 없는 대체역사 시나리오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내가 무언갈 주도할수 있는 위치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못해, 마음 편이 독일에서 도망칠수 있는 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건 몰라도 동부전선만은 피해야하는데. 



"씨발 담배 마렵네." 



동부전선으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공포와 안심할수 있는 장소의 괴리감 덕분에, 이제야 멘탈이 터져버렸다. 

이후 옷을 모두 갈아입고, 짐을 챙겨 정리해둔체, 집에서 날 데리러올 사람들이 올때까지, 나는 멍하게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 

갑자기 생각나서 써봄. 


더 쓸지는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