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밀크티]



"어? 차나 씨, 이거 신메뉴? 근데... 띄어쓰기 틀렸어요."



메뉴판을 새로 주문하는 것도 귀찮아 칠판에 대충 끄적인 메뉴. 



무슨 국밥집도 아닌데 아메리카노 단일 메뉴만 파는 카페는 의외로 장사가 잘되었다. 문만 열었다 하면 좁은 가게가 꽉 들어차 길게 줄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커피가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해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매일 아침마다 이 집 커피를 못 마시면 죽는다는 듯 사람들이 몰리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메뉴도 적고, 가격도 비싸고, 맛도 그저 그런 모든 단점을 상쇄할 장점이 있었으니.



"잠깐만요오."



아름답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외모의 여성이 카페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카페 사장들이 예쁘거나 잘생긴 알바를 웃돈을 주고서라도 쓰는 이유와 같았다. 



메뉴판을 지적하는 시아의 말에, 구석에 앉아 있던 여사장이 몸을 일으켰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이 달빛을 뽑아내 늘어뜨린 것처럼 반짝거렸다.



그녀는 칠판 지우개를 찾는지 새빨간 눈동자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5초나 찾아보았을까. 지우개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손바닥으로 메뉴판을 대충 문질러 닦아냈다.



현세에 강림한 여신 같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털털하다 못해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행동. 보다 못한 시아가 제지하고 나섰다.



"아니, 칠판 지우개 없어요?"

"어... 있을걸요. 아마도?"


뽁뽁뽁ㅡ


"근데 왜 그걸 손으로 지워요. 피부에 안 좋은데."

"하암... 닳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요오."



작게 하품하며 메뉴를 고쳐 적는 그녀를 빤히 보던 시아는 문득 부아가 치밀었다. 저 얼굴 저렇게 쓸거면 나나 주지.



그러나 시아는 몰랐다. 카페 [이름짓기귀찮아서대충길게지어봄]이라는 간판을 당당하게 내걸고 배짱 장사를 하는 카페의 주인은 원래 남자였다는 걸.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대한민국의 A급 헌터 박기찬. 그녀의 원래 이름이자, 원래 인생이었다. A급 위에 S급이 있다지만, A급도 절대 무시할 만한 등급이 아니다. 한국 전체를 통틀어도 A급은 300명 정도에 불과하며, 그들 하나하나가 인간 병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괴물들이다. 



그랬던 그가, 특수 게이트에 휘말려 모든 능력을 잃고 성별까지 바뀌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명성, 지위, 힘을 잃는 것도 모자라 남자조차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그... 아니, 그녀가 모든 일에 흥미를 잃는 것도 당연했다.



흐느적 흐느적, 칠판에 적는 글씨조차 주인을 닮아 구불거리며 힘없이 풀어졌다. 



[수제밀크 티]



"또 틀렸는데요?"

"으에?"

"밀크티를 직접 만들었다는 거 아니에요? 밀크를 직접 짜는 것도 아니잖아요."

"...."



고개를 갸웃거리던 차나는 말없이 자신의 거대한 흉부를 내려다보다, 양손으로 아래에서 받치듯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이 부드러운 살덩어리에 푹 파묻혔다. 



저건 흉기다. 뭇 남성은 물론 같은 여성이라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 사회적 죽음으로 내모는 흉기. 시아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자신의 가슴을 모아 올린 차나는 무력함과 나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시아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나와요?"

"나올 리가 없잖아요!"

"에이... 그럼 이 무겁기만 하고 쓸모도 없는 거 왜 달고 다니는 거에요? 귀찮네 정말."



툴툴거리며 가슴을 받친 손을 빼는 차나. 잔잔한 바다에 풍랑이 일듯 가슴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부익부 빈익빈. 더러운 세상. 시아는 자신의 운동장 같이 평평한 가슴을 대신해 울분을 담아 외쳤다.



"그럴거면 나 줘!!"

"아우, 귀 아파아. 빨리 커피 사서 게이트나 가요오... 오늘은 엘프링 DLC 다 깨야 한단 말이에요오."



카페 [이름짓기귀찮아서대충길게지어봄], 개점.


반응조으면 비정기로 챈에 끄적여봄... 오늘 일이 좀 있는 바람에 자괴감들어서 그거 잊으려고 대충 써봣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