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던 게임의 주인공에게 빙의 당했다.


[정원사]라는 간단한 이름의 성인게임. 수려한 도트풍 그래픽과 높은 퀄리티의 CG, 그리고 짜임새 있는 게임내용.


많은 사람들이 '야'와 '겜'을 전부 잡았다고 칭찬하던 올해의 야겜.


그런 게임에 빙의되다니 좋은 일이 분명했으나... 나에게는 아니였다.


비록 능욕계 게임인지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기엔 어려운 게임이었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


나는 이 게임을 한번 플레이 했으며, 그마저도 15분만에 베드엔딩으로 직행했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


마지막 이유로 여장을 하고 여학교에 몰래 들어가서 학생인척 연기하는 주인공이라는 설정과는 전혀다른 완벽한 여자의 몸이 된 나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착한 심성을 가진 히로인들의 도움을 받아 잘 적응하고 여자로써 제 2의 인생을 보낼 수 있었다.


등교를 하면 서로 인사를 하고, 시험 공부가 힘들다고 투덜거리고, 이유는 아직도 모르지만 굳이 함께 화장실을 가고,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는 학교가 끝나면 함께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헤어지는 그런 평범한 일상.


비록 홀로 넘어온 세상이지만 홀로 남았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생각보다 즐거운 1년을 보냈었다.


"당신 정체가 뭐예요? 말해보세요 박우리!"


보냈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당신 남자라면서요?"


게임의 히로인중 한명이자 반장인 최율이 나에게 전단지같은 종이뭉치를 던지며 나를 추궁한다.


종이에는 내가 남자라는 이야기와 내가 남자처럼 나오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우리 쟤 학교에 등록되어있지도 않다는데?"

"으... 더러워. 여학교에 남자가?"


같은 반의 학생들과 다른 히로인들이 마치 오물을 보는 듯한 혐오의 눈빛을 보낸다.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알 수 없는 데자뷰를 느끼던 나는 1년 전에 봤던 베드엔딩의 한장면이 떠올랐다.


남자가 아니라면 옷을 벗어서 증명해 보이라는 최율.


"박우리. 벗으세요."


다른 학생들이 가위나 커터칼등을 들고 나에게 다가온다.


"아니야... 얘들아 아니야. 내 말을 들어줘..."


나의 부탁에도 애원에도 그녀들은 다가온다. 친구였잖아. 함께 즐거웠잖아.


"안 벗겠다면 어쩔 수 없지."


도망치지 못하게 잡히는 팔다리. 두눈에서 넘처버린 눈물. 멈춰달라고 애원하는 내 목소리. 시끄럽다며 무언가 채워지는 입 속.


서걱서걱. 무언가 잘려나가는소리.


"남자라며 머리는 뭐하러 관리해?"


여름에 더우니 자르려던 나를 아깝다며 말리던 아이.


투두둑하고 블라우스와 셔츠의 단추가 뜯겨 나가는 소리.


"애액 꼴에 여자 속옷도 입고 있어. 더럽게."


삭둑.


함께 쇼핑을 가서 어울린다며 골라준 속옷이 가위에 잘려나갔다.


"어...?"


내가 나체나 다름 없는 엉망진창인 모습이 되고 나서야 나를 조롱하던 소리가 멈췄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하고 하나 둘 잡고 있던 팔다리를 놓고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저 교실에는 입안이 가득차 소리를 내지 못하는 내가 헐떡이며 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 뒤로는 어찌저찌 지내고 있던 집에 돌아왔다.


나는 행복했고 즐거웠는데, 이 세상은 그저 게임이 맞다는 것을 내게 상기시키 듯, 내가 기억하는 베드엔딩을 그대로 나에게 선물했다.


===


그 날 이후로 내 생활이 달라지진 않았다.


엉망이 되긴했지만 짧아져서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든 머리를 빗는다.


엉망이 된 춘계 교복 대신 하계 교복을 입는다. 조금 춥다.


내가 도착하면 조용해지는 교실에 들어가서 아무 말없이 자리에 앉는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니 나도 아무 말없이 가만히 하례시간을 기다린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어서 남게된 시간엔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는다.


굳이 보지도 않는 동영상따위를 크게 틀어둔 채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겨우 게임이니까 상처 받지 않아. 놀이니까, 이렇게 끝나는 것이 정해진 놀이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만 무언가 생리적인 이유일 것이다. 절대로 믿음을 배신당해서도 나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당한 충격때문도 아니다.


===


두달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더 이상 하계 교복을 입어도 춥지 않다. 나도 점점 극복하고 있다는 증거가 분명해.


"우리야."


반에서 나에게 말을 걸 사람이 있던가. 천천히 나를 부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2학년이 되고 나서 다른 반이 된 이유라가 있었다.


무엇이 그리 기쁜지 미소가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얼굴과 붉게 상기된 뺨이 그녀가 매우 즐겁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

"오늘 학교 끝나고 시간 있어? 있지?"


즐거워 보이지만 어딘가 싸한 기분이 드는 그녀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면 끝나고 집에 갈거야?"


집.


아무도 없는 집. 조용한게 싫어서 굳이 동영상을 틀어 두는 집.


가기 싫다. 조용하더라도 사람이 다수 있다면 완전히 조용해지지 않으니까 굳이 학교에 나오는 거니까.


아무 말 없이 나를 보고만 있던 그 침묵이 생각나는 게 싫다. 집에 가기 싫어 혼자처럼 남겨두지마.


"...아니."

"그럼 나랑 놀러 가자? 가는 거야. 알았어?"

"응..."


그래서일까. 그녀의 권유를 승락했다.



===


1년 전, 내 사랑을 처음 만난 그날.


어딘가 불안한 듯 떠는 모습이 마치 소동물 같아서 귀여운 갈색 머리카락의 아이.


몸도 작고 여리해서 마치 동생같은 느낌이 강한 동급생 박우리.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하고 학급에서 겉도는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하지만 어느새, 누구보다 반짝거리며 학교생활을 보내는 그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운 한 편,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가 너무나 미웠다.


나만을 보고 웃어. 내 이름만 불러. 내 품에만 안기고 나만을 바라봐.


그녀와 같은 반이던 내내 비틀린 독점욕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 사랑과 같은 반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서 참아 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아쉽지만 덕분에 내 사랑이 더더욱 반짝거리며 아름다워졌으니까.


하지만 2학년이 되고 그녀와 반이 갈라졌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2학년이 된 그녀는 여전히 반짝거리며 같은 반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으니까.


안돼. 넌 내거니까. 그래서 한 번 부셨다.


더 이상 반짝거리지 못하는 다가가면 다칠 망가진 유리구슬로 만들어서 나만이 독점하기 위해서.


그런데 우리야. 넌 어쩜 그러니.


어떻게 부셔지고 나서도 그리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니.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너의 눈동자에 내가 비치는 지금 흥분이 되서 참기 힘들정도야.


이 곳이 학교가 아니였다면, 만일 휴일에 내가 너의 집에 찾아간 거였다면 현관에서 너를 넘어뜨리고 마구 탐하고 말았겠지.


넌 내거야. 나만의 것이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있게 할 거야.


산산조각난 유리조각을 내 입맛대로 칠하고 붙혀서 하나의 스테인글라스로 만드는거야.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내사랑으로 만드는거야.


"그럼 방과후에 교문에서 기다려."

"응..."


내말을 아주 잘 듣는 귀여운 아이가 되어줘. 내사랑


===


유라와 어울리면서 지내기 시작한 뒤로는 더이상 괴롭지 않아졌다고 한다.


“유라아…”

“후훗. 나 여기 있어.”


어느센가 유라가 우리의 집에서 지내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의 품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집 잘보고 있어. 알았지?”

“응… 일찍와…”


더 이상 학교는 가지 말라고 한다. 혼자 있는건 외롭지만 참을 수 있어.


혼자 집에 남는 것은 외로워서 멋대로 학교에 따라간 날에는 유라가 정말 크게 화를 내고 일주일간 나를 찾지 않았으니까.


겨우 몇시간 못참아서 유라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


나에게 유일하게 온기를 전해주는 유라가 필요해.


날 떠나지마. 날 혼자 두지마. 베드엔딩이 나버린 나를 여전히 품에 품어주는 네가 필요해.


널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게.


나에게 해오는 입맞춤을 피하지 않아. 나도 행복해.


내 몸을 쓰다듬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아. 나는 행복해.


너의 손길이 내 몸속에 들어올때 기쁘게 맞이 할게. 나는…


네가 원하는 걸 말해줄 때, 나는 행복해. 행,복…? 응. 행복해.


유라가 나의 유일한 해피엔딩이니까. 나는 행복한게 맞아.


나를 사랑해줘. 유라야.


나는 오늘도 의미없는 동영상을 틀어두고 스스로 은밀한 곳에 손을 가져간다.


몇시간이고 축축해진 상태로 쾌락에 몸을 맡긴 채로 유라를 기다리면 어느때보다 기뻐하며 나를 안아주니까.


나는 분명 행복해.


***



공백 미포함 3000자쯤 되는 것 같은데 잘 몰?루


주인공은 행복해요. 해피엔딩와 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