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그 정이진이 기사가 되러 아카데미에 간다고? 뒤지게 신기한데?"


 놀림조의 목소리가 선명히 귀에 들려왔다.

 내 이름으로 날아온 통지서를 빼았듯 손에서 낚아채간 놈의 첫 반응은 그랬다.


 "우리 이진이, 맨날 우리 엄마밑에서 눈칫밥만 먹다 이제 집에서 나가겠네?"

 "......."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마. 너 뒤질뻔한 거 살려줬던 거 난데, 생명의 은인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되겠어?"


 팔랑.

 놈의 손에서 튕기듯 휙 내던져진 입학 통지서가 바닥에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동시에 녀석의 손이 내 턱을 슬며시 쥔다.


 "아, 우리 이진이 없으면 좀 심심할 것 같은데.이진아, 너도 나 없으면 심심하지 않겠어?"


 녀석의 이죽거림이 귀에 들려왔다.

 그러며 강제로 내게 입을 맞추려는 양태식의 뺨을 강하게 후려치니 살끼리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상황.


 "아......"


 녀석이 이죽 웃는다.

 그러더니 "이 씨발년이!"라며 강하게 내 뺨을 한 대 후려친다.

 일반인치고 힘은 강한 놈이라, 가벼운 몸이기에 고개와 상반신이 같이 돌아간다.


 "야 정이진. 뒤지고 싶냐?"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보니, 멱살 쥐었던 손이 뒤로 팽개치듯 날 밀어냈다.

 반쯤 강제로 일으켜져 있던 몸은 아래로 툭 떨어졌고, "좆같은 년이 진짜."라며 화가 난 듯 홱 돌아서서 내 방을 나가는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아직은 안 돼.

 기사 아카데미 입학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만."


 희미한 정신 사이, 누군가의 말끝을 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맡아 본 적 자체가 몇 번 없는, 깨끗한 병원의 약냄새가 살짝 맡아졌다.

 다만 일말의 힘 조차 줄 수 없어, 손 끝조차 까딱일 수 없었다.


 입과 코를 막은 마스크 같은 이건 뭘까.

 

 분명 여왕을 만나 죽었어야 했는데, 나 지금 살아있는 걸까.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살아있는 것 자체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때 입은 부상은, 아무리 발달한 현대의 워프 기술과 의료 기술로도 결코 살려낼 수 없는 중상임을 알고 있어서 그렇겠지.

 허면 난 지금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왜, 왜 그러시는 거죠?"

 "아닙니다. 그리고 아셔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에 몸이 반응한다.

 꿈틀.

 손에 드디어 조금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째선진 모르지만, 그냥 그렇다.


 다만 답답한 건, 지금 내 앞에서 대화하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 그게 너무 답답했다.

 무언가 걱정하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는 내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눈이라도 제대로 뜰 수 있으면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내 앞에서 대화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텐데.


 "환자분 성함이 정이진이라고 했나요?"

 "네."

 "아셔야 될 사실이 있는데......"


 정이진이라 말하는 걸 보니 내 이야긴 아닌 걸까.

 하지만 무언가 풍기는, 약간 다른 냄새가 맡아지는 걸 기점으로 조금씩 회복가던 정신이 다시 멀어져간다.

  팔에 무언가 날카로운게 꽂혀 몸이 살짝 움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오직 그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줄을 놓고 잠에 빠져들어갔다.


 이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알 수 있는 건, 날이 어두워졌다는 것과 내가 지금 병원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입과 코엔 호흡용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매어져 있는 듯 했지만, 그래도 기사의 힘에는 비하지 못할 터.

 생각보다 몸이 약해졌는지, 마스크를 떼는 손에는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간다.

 그래도 약효가 약해져, 몸에 기운이 아까 깨어났을 때 보단 제법 돌아와있어 다행이었다.


 헌데 여긴 어딘지 궁금했다.

 병원인 걸 몰라서 가지는 의문이 아니다.

 기사들의 치료가 필요하면 오는 군병원이 아니어서 가진 의문이었다.

 거기에 몸도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달라진 듯한 느낌이었고.


 설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내게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이는 아무도 없다.

 알 수 있는 사실은, 지금 걸친 옷에 적힌 문자로 보아 현재 내 위치가 유년시절을 보낸 국가에 위치한 병원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연합이라는 통합 인류 제국에 소속되어 사라져버린......


 숨을 쉬는 느낌부터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주변에 거울이 없나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어둠속에 눈이 익지 않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아침이 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쓰러진 이후로 시간이 제법 지났다는 것이었다.

 벽 한 켠에 걸린 디지털 시계에 띄워진 날짜는 내가 수도 탈환전의 선봉대로써 먼저 투입되어 죽은 날짜로부터 최소 10년.

 정확하겐 그 이상으로 지났음을 보이고 있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간다.

 창 아래에 보이는 야경은, 세상이 마치 평화로워 보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고 있었다.

 설마 괴수와의 전쟁이 끝난 걸까.


 내일 아침이 되면 대체 내게 무슨일이 생긴건지, 그리고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게 될 터.

 기다림이 필요하다면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행동이기에 다시 자리로 돌아오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유난히도 긴 머리칼이 어깨위로 내려오며,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놀라 손을 머리칼로 가져가니, 어딘지 모르게 가늘고 작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무기라곤 한 번도 쥐어본 적 없을 고운 손이.


 '이게 뭐지?'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잠시 머릿속을 뒤져, 죽기 직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왕을 만났던 그 순간을.


 허나 여왕은 내게 특별히 무슨 짓을 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저 자기 부하들을 끝없이 죽여대던 내게 부하들의 원한을 갚아줬을 뿐.

 내게 별 다른 짓을 할 이유가 도저히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내 몸에는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을, 상당한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하단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 의식이 희미했을 때 무슨 이름을 들었지?

 정이진이라 했었나?

 ......설마 난 지금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그런 황당무계한 일이 내게 터진 건가.


 혹시나 싶어 몸 안에 내재된 에고를 끌어내보지만, 내 안에 내재된 에고는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기사의 능력은 에고에 따라 결정되는 것.

 그리고 평생을 기사로 살아 온 내게 있어, 내가 단련해 갈고닦은 에고를 대부분 상실했단 사실은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덕분에 밤 내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뭐야 정이진 너, 일어났네?"


 날 정이진이라 부르는 남자가 어딜 갔었는지, 술냄새를 살짝 풍기며 병실 문을 열었을때도 무어라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힘을 잃었다는 사실에, 머릿 속 사고 회로가 정지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