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ts물 리뷰 모음


https://novelpia.com/novel/26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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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생 백우유 교수님의 일상>, binibig 작가.


 약칭 "백우유", "백우유 교순니" 닭장




 * 본 소설에대한 스포일러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전 유의 바랍니다. 


# 서론

 

대충 보닌쨩 불호 취향

 

피폐 못먹음, 

자살’ 잘 못봄

장애 소재 좀 꺼려짐

현대 잘 못 봄. 

특히 현실적이고 핍진성 짙은 현대물 힘듬 

학교 배경 힘듬. 


현대 배경에 핍진성 꽤 짙고 학교 배경 = 각혈함. 

 

 

“???? 벼ㅇ신새123끼  Tlqkf 그럼 이건 왜 봤냐??”

 

 

 그래서 너무 힘들었쪄 ☆

 

 


 근데 진짜로....속이 안좋아요..

 

 


 

# 이 소설의 미덕, 장점.

 

 

 1. 문체

 

 잠깐 딴소리 좀 하자면. 신념이나 철학이라고 표현하면 같잖지만 리뷰에 대한 기조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리뷰, 거창하게 얘기해서 비평하는 글은 결코 쉽게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작품이라는 건, ‘수필드립’을 차치하더라도 그 작가님과 완전히 분리 될 수 없는 것이고.

 

 글에 대한 의견과 비판은 본의 아니게 작가에게 가닿을 수도 있는 법이고.

 

 그런 우려를 논외로 치더라도, 한 사람이 나름의 노력과 정성으로 빚어낸 산물을 몇 줄 글로 가치를 내린다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되도록 존대로 작성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구요.

 

 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저는 그런 마음으로 리뷰를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걸 리뷰를 써도 되나 생각이 많았습니다. 

 

 암타 잘 안 읽고, 현대 배경 안좋아하고, 피폐 안좋아하고. 되려 폐가 아닐까 생각이 됐고.

 

 스스로도 리뷰를 쓰려면 각잡고 봐야할 텐데라는, 그러면 내상 세게 입겠다 싶었는데.

 


 쓰고 싶더라구요. 

 


 

 그 제일의 이유가 문체였습니다.


 

 웹소설에서 문학성과 문장력을 논하는 게 하등 무익할 지도 모르지만,

 

 필력이라 부르는 것이 실체가 불분명한 허상에 국한한 걸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게 아니었으면 이 소설 안 읽었어요. 

 

 과장 섞어 말해, 달갑지 않은 태그를 소화불량과 미슥거림을 참아가며 억지로 욱여넣은 이유는 필력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소설 작법에서 현대문학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몇몇 작품이나 풍조 때문에 도외시되고 저평가 받는 부분이 많고, 그 지점까지 두둔하고 그러고 싶진 않지만.

 

 (Welt로서의)세계에서 문제적 의식을 가지고 이를 고찰한 바를 서술하는 방식. 

 

 그런 내용적인 측면보다도 형식적인 측면 – 문장, 문체, 표현에서는 전문가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대문학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92년생 백우유 교수님의 일상> (이하 ‘본 작’, ‘소설’ 등으로 약칭)은 물론 웹소설이고,

 

 웹소설스러운 연출이 많이 있지만 그 문장은 현대문학에서 느낄 법한 것이 많습니다. 

 

 이후 얘기하겠지만, 본 소설의 내용도 장르소설보단 현대문학으로 접근하는 게 유의미하기도 하구요. 

 

 짧게 몇 가지 예시와 함께 짚어보자면. 

 

 * 독자가 곧바로 파악하기 힘든 관계는 이후 회차에서의 회상씬으로 설명하여 압축적이고도 효과적인 인물 전달.

 

 * 관찰자의 시점에서의 대상을 자연물과 함께 비유하는 것. 대사가 이뤄지기 전에 외적 묘사를 곁들여 분위기를 조성.

 

  햇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

  뒤에는 빼곡하게 책이 꽂혀있는 책장.

  그 속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까닥이는 우유.

  - 22화 中

 (여담이지만, 고전 시가의 무용함을 역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전 시가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식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문학사적인 의미를 떠나서도, 서정적인 기법의 전형성을 구축하였고, 이런 텍스트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 관조적인 어조로서 등장인물의 면모를 강조하면서 화면(씬)을 전환하는 방식.

 

 

 * 유사한 뜻을 지닌 단어를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서 의미를 부각하는 서술. 

 

   어색하게나마, 어설프나마.

   어떻게든 선우를 위로하려는 마음이 참 곱다.

    - 70화 中

 

   불합리하다.

   부조리하다.

   가족들이라는 울타리에서, 그녀는 벗어나있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되고 만다.

   - 72화 中

 

   비린내가 조금씩 사라져간다.

   두려움이 조금씩 사그라진다.

   외로움이 조금씩 수그러든다.

   - 74화 中

 

 

 * 서로 다른 시점을 일부러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전개. (목차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좁은 소양과 식견으로 꼽아본 건 이러합니다만,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문학 텍스트는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명제에 가장 들어맞는 예시일 겁니다. 

 

 이렇게 해체하여 부분 발췌한 것은, 본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필력’의 극히 일부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피폐 못먹는 맵찔이가 엉엉 울 각오로 읽었다니까요?

 

 

 

 2. 인간에 대해서 

 

 당연한 말이겠지만. 등장인물들은 인간입니다. 

 

 부연하자면, 사람은 ‘단독 개체’이며, 인간은 사람이 집합적인 존재 – 사람과 사람끼리의 관계에서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 소설에서 등장인물은 단지 성격과 외형만 부여된 꼭두각시가 아닌, ‘인간’으로 볼만한 여지가 많습니다. 

 

 


 본 소설의 주인공 백우유는 부유한 인물이 나오는 작중에서도, 소위 말해 독보적으로 잘난 인물입니다. 

 

 무엇 하나 모자람 없는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고. 그로서 백우유의 자아(Ego)는 통합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냉철하고 까탈스러우며 빈틈없고, 본인이 맡은 소임은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독자가 볼 수 있는 실상은 허술하고 당황도 하고 유약한 부분도 있으며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갖고 있죠. 

 

 가령 단 걸 좋아하는 천진한 모습 뒤에는 쓴 것에 대한 짙은 혐오와 고통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이중적인 모습이 통합되지 못하고 불안정한 자아의 일종의 알레고리이자, 미성숙 – 이라는 표현보다는 ‘어리다’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어린 모습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합니다. 

 

 백우유가 ‘백우유의 삶’을 살게 된 것은 14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단순 산수로만 친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어리죠. 

 

 백우유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45화 中)이 아니라, 사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소설 초반부터에 등장하기도 하고, 후술하겠지만 작품 내외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인물인 현선우는 백우유와 안티테제, 대립항의 존재입니다. 

 

 한 쪽은 너무 차분했고, 다른 쪽은 너무 쾌활했습니다.

 한 쪽은 모두에게 까발려졌고, 다른 쪽은 깊숙이 감춰졌습니다. 

 한 쪽은 아버지가 내치지 않았고, 다른 쪽은 부친이 외면하고 배격합니다. 

 한 쪽은 고요 속에서 외롭게 지냈고, 다른 쪽은 상처를 주는 사람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쪽은 나이가 많고, 다른 쪽은 어렸습니다.

 한 쪽은 고된 순간을 넘겨왔고, 다른 쪽은 이제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아직 나오지 않은 내용을 예측해보면, 

 한 쪽이 새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다른 쪽은 두 번째 삶을 꾸려나갈 수도 있겠군요.

 

 사실 이런 인물은 작중 장치로 쓰고 버려질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아니면 까불거리고 얼쩡거리는 양아치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가님께서 이 인물에게 ‘어느 속성’을 부여하였고, 그 덕에 다면적인 면모를 보이는, 작중에서 등장하는 ‘TS 변이자’를 대표하는 ‘인간’이 되었죠. 

 


 또한, 현선우에 대해서 백우유가 예전 모습이 ‘비쳐보인다’라는 식의 서술이 많이 등장합니다. 

 

 반복적으로, 노골적으로. 

 

 이게 연재분 당시에는 호감의 표현이라 보였겠죠. 과거의 내 모습에 지금의 내가 마음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지금까지 전개된 내용을 보건데, 잔혹한 암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학에 갓 들어가 청춘을 바라던 청년은, 어려진 채로 이제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어린 자신을 보호해줄 마땅한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 곤혹스럽겠네요.

 

 

 


 오태민은 백우유 만큼은 아니더라도 남부럽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라와. 표면적인 모습에서는 우러름을 받고 있고. 작중에서는 가장 높은 학년에 있으며 (욕망이야 어떻든) 학문적인 소양도 높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적 요소의 충족이 충분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어른이라 단정짓는 데에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죠. 

 그 역시, 완전한 ‘어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안…해서, 어쩌죠.”

 

   “미안하실 게 뭐 있습니까. 동행 교수님 보필하는 게 총대의 역할인데요.”

 

   그럼 나중에 저녁이라도 드시죠.

   이런 상황에서 꺼낼 말도 아니었거니와 우유의 상태는 그런 어줍잖은 농담이 통할 만한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 적어도 태민은, 타인의 상황을 악용하지는 않을 만큼의 양심은 가지고 있었다. 

   - 35화 中

 

 

   “과대를 제가 맡게 되었어요.”

 

   “흠? 선우 학생이 아직 어떻게 할지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만.”

 

   “예. 그렇긴 한데… 태민 선배님도 선우가 학교를 다시 나온다 하더라도 과대 일을 계속하기는 좀 어렵지 않겠느냐고 해서.”

    - 46화 中

 

 

 표현만 않더라도 속으로는 욕망을 꿈꿉니다. 가지고 싶은 것은 좌절했더라도 계속 열망합니다. 보기에 혐오스럽고 건들기도 두려운 것은 외면합니다. 위험하고 불결한 것은 과감히 배제합니다. 


 이런 면모까지를 ‘어리다’라고 하는 것은 어른의 기준을 너무 높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저도 들기는 합니다만. 오태민은 어립니다. 주도면밀하고 용단을 내리더라도 그 동기는 어립니다. 행동의 기저 원리는 서투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오태민 역시 인간입니다. 인간 존재의 추악함을 역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을 짚고자 함입니다. 

 


 

 

 남상혁은 유독 이질적이어서 재밌는 인물입니다. 남상혁은 앞서 논의했던 인물과 궤가 다릅니다. 

 

 삐딱하게 쓰자면, 남상혁은 작중 인물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요건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남상혁은 고아입니다. 

 

 

 그렇기에 남상혁은 현실 논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남상혁은 ‘이상적으로 보일만한 언행’을 합니다. 

 

 친구라서, 모두가 꺼리는 사람과 어울리고 포용합니다. 과제라서, 단순 노동의 반복쓰기도 성실하게 이행합니다. 더러운 것은 치워야하니까, 혼자더라도 열심히 청소합니다.

 

 그렇지만 그조차도 다른 면모, 특히 사회성에서의 서투른 면모가 보입니다. 야시시한 캐릭터를 보이는 우를 범하기도 하고. 조악한 패션 센스도 그러하지요. 모두가 꺼리는 존재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넒은 인품으로 볼 수 있지만 결핍된 사회성과 배타성의 반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어립니다. 미처 쓰지 않았지만, 선우의 부모도 변화 앞에서는 어린 티를 냅니다. 명진선은 사랑의 개념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에 미숙합니다. 유연유도 남상혁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겠군요. 문득 차후 전개를 생각해보건데, 유연유는 남상혁의 반대항으로 존재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작중에서 아주 어르신인 분들도, 자기 것을 좀 더 봐주고 지키고 싶어하는 원초적인 욕망을 표현합니다.

 

 결국 드리고자 하는 바는, 등장인물 모두가 어립니다. 모두 미숙합니다. 많이들 서투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사랑 역시 서투를 수 밖에 없습니다.

 

 

 

 3. 사랑에 대해서.

 

 그들은 어리기에, 미숙하기에, 냄새나고 물컹거리는 토사물 (40화-41화 中) 에 손대고 싶지 않아하는 시기이면서 연인과의 동반자살 (34화 中)이 로망으로 보일만한 시기라서. 그들은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미숙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소설이 주인공 백우유가 사랑을 하고 받아들이는 게 큰 줄기이자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는 본 작품에 대해 ‘느린 암타’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암타. 암컷타락.

 

 '암컷'과 '타락'이라는 각각 어휘의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인상 때문에 그 의미가 간과되는 바가 있습니다. 

 본 소설에 맞게 ‘암컷타락’이라는 표현을 달리 쓰자면 여성으로서의 수용 정도가 어떨까 싶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앞서 표현했듯,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외면하는 백우유가 사랑을 알고 사랑을 느끼며 끝내 사랑하게 되는 것. (결혼은 사랑과 다르다는 첨언을 붙이고 싶군요.)

 

 

 그렇기에 백우유의 앞으로 좀 더 깊고 진한 고통이 언뜩 보입니다.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으니까요. 



 더구나, 윤서림이라는 장치로 예고된 시련을 고려한다면 그 깊이는 많이 짙겠지요.

 

 꼭 백우유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서투르게 사랑을 건드려보고 만지기도 하고 데이고 또 울고, 분노하고. 넘어지고. 어린 사람들이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 아닐까요.

 

 

 여담으로, ‘사랑’에 관련되어서 우리는 너무도 많이 이상한 사건들을 들어왔습니다. 친한 사람에게 이야기 하더라도 “야 시123발 그게 말이 되냐?” 싶은 것도 종종, 아니 생각보다 흔히 있습니다. 소설로 변환하여 풀어놓는대도 개연성 어디다 가져다 버렸냐고 소리를 들을 이야기가 현실에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건 그런 건가봐요.

 


 

 대학에서의 사랑. 좋을 때죠. 쓰다가 갑자기 화나네. 왜 다들 잘났지. 나는 왜. 하여튼. 아. 아이 씨, 아.

 

 


 

 4. 불편한 세계에 대해서. TS에 대해서.

 

 

   그냥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여자애가 되어있었다고 상상해보자.

 

    거울속에 비친 모습에서, 당신은 어떻게든 당신 본래의 모습을 찾고자 할 것이다. 

    그것은 본능이고, 눈 앞의 존재가 본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찾아내려 하기 떄문이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거울 속의 당신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고, 원래의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비슷한 것이라 한다면 단 하나, 눈이 두 개이며 코가 하나, 입이 하나라는 사실이 전부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조차 본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의 주변인들은 당신이라는 존재를 당신으로 인지할 수 있는가ㅡ

      - 44화 中

 

 예전에 TS는 저주다라고 선언하며, 물의 성격이나 요소에 대해서 서술(https://arca.live/b/tsfiction/94376451)한 적이 있습니다. 


 난잡한 글을 요약하자면, TS는 그 인간(주변 세계와의 관계)으로서 파괴하고, 사람으로서 파괴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페니스와 팔루스의 거세라는 표현도 좋지만, 하여튼. 


 본 소설은 이런 맥락에서, '저주로서의 TS'를 제대로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독자들이 본 소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에 이 점도 분명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백우유가 살아가는 작중 세계는 ‘불친절한 세계’입니다. 

 

 TS 변이자를 다루는 양상은 말할 것도 없지요. 제가 주목한 것은 TS 후에 대한 묘사입니다.

 

 시선의 변화, 무관심보다도 더한 멸시와 장소 및 소재로 표현되는 소외감 등도 일품이지요.

 

 현대문학에서 묘사를 악(惡)으로 규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TS에서 이런 묘사는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TS 이후의 신체의 변화 서술 및 묘사는, 비교적 섹슈얼리즘한 부분을 많이 부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본 작에서는 보다 세세하게, 비체(卑體, abject)로 치부하여 생략해도 무방할 것까지도 조명합니다.

 

 


 짧아진 요도 탓에 참을 새도 없이 오줌이 흘러 허벅지를 적십니다. 

 

 육중한 무게감 때문에 상체 균형이 어렵고 자꾸만 어깨가 앞으로 쏠립니다.

 

 원래 쓰던 숟가락 옆날에 입술 양쪽이 긁힙니다.

 

 국이 너무 뜨겁고, 입안에 들어간 밥과 반찬이 씹기 버겁습니다. 

 

 머리를 감을 때 물기를 짜줘야하고, 수건을 하나 더 써야 합니다. (이상 60-61화 中 부분 발췌) 

 

 생리 주기를 캘린더에 표시 해두며, 생리대를 사고 질에서 피가 흐릅니다.

 


 

 친절과 호의는 순수하지 않고.

 

 내 인생이지만 남의 비중이 적지 않고.

 

 사랑이란 알고 싶어도 잡히지 않으며. 

 

 누적된 경험이 단번에 의의를 상실해버립니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20대다.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20대다. 

    되돌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지 않을 20대다. 

    TS 변이증이 모조리 박살내고 짓밟고 흐트려버린 그녀의 20대는, 되돌릴 수도 없지만 되돌리고 싶지도 않은 시간들이었다. 

       - 30화 中

 

 젊음의 향연 속에서 백우유가 느끼는 감정은 이러합니다.

 


 불친절한 세계. 현실을 닮은 세계. 크고 작은 아픔이 서려있는 세계.

 

여기서의 ‘세상’이란 맨 처음 서술하였던 Welt로서, 인간관계를 포함하여 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백우유가 살아왔고, 살아가며, 살아가야하 세계는 그런 곳입니다.






 본 소설은 미려하고 아름다우며 효과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고, 불친절한 세계를 설정 한 다음 그 위에서 여러 알레고리를 통해 인간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TS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제가 <92년생 백우유 교수님의 일상>를 읽으며 발견한 문학성입니다.


 

 


 

 # 기타

 

 - ‘예전 이슈’에 대해서 말을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구태여 관련 링크를 달지는 않겠습니다. 연재 작에서는 내용 삭제 공지, 몇몇 화의 작가의 말 등 흔적으로만 남아있습니다. 

 논의 자체가 실례가 되려나 생각이 들지만, 리뷰라는 건 그 작품에 대해서 다룰 수 있는 건 다뤄야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때문에 이전 내용을 다시 읽어봤는데. 모르겠습니다.


  현선우와 관련된 존재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비호감과, 편애 이 두 가지 요소라고 생각되는데. 전자는 관점에 따라 다르고 ‘묘한 현실감’은 되려 잘 썼다는 방증으로 작용하겠지요. 가만 생각해건데, 흔치 않지만 학과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편애였는가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되었듯, 현선우가 부각된 것은 차후의 추락을 위해서였으니 넘어가도 무방하겠죠. 차후 플롯이니 전개에 대해서는 얘기할 게 없습니다.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은 이제 무용해졌으니까요. 


 당시에는 방관하는 입장에 가까웠지만, 이 소설을 완독한 지금은 작가님께서 계속 집필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 간간이 일본학 관련된 내용이 등장합니다. 일어일문과 엘리트 교수라는 백우유의 역량을 돋보이는 부분이자, 작가님이 갖고 있는 지식의 폭을 엿볼수 있는 서술입니다. 작품의 핍진성과 현실감을 상승시키기는 하지만, 관련 지식이 많지 않은 저로서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조심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어투가 시니컬한 백우유가 화자기도 하거니와, 서술로 쓰여진 부분 (다자이 오사무 연구 주제 논의 등)에서도 정말 맞는가 싶었거든요. 


 특히, 20화에서 나온 백우유의 강의 내용에 대해서 그나마 전공인 지인에게 확인을 부탁했는데…… 지인 분이 동의한다고 하더라구요……. 작가님이 갖고 있는 지식의 폭에 새삼 감탄하게 됐습니다.



 - 대명사 '그'와 '그녀' 의 사용이 곱씹어보면 인상적입니다. 특히 현선우의 변화 이후에 대명사를 생각해보면, 관조적인 서술임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대해서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 이전에도 어디선가 논했는데. 개인적으로 잘 쓴 피폐에 대해서 이영도 작가가 했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계속 쓰여졌고 쓰여질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이야기에 대한 타자의 기대는 ‘더 허둥거려. 더 비참해져. 읽는 사람이 잠시 딴청 부리게 만들어.’입니다. 일반적으론 단숨에 다 읽었다는 말이 글에 대한 찬사겠지만 타자는 이런 이야기에 대한 좋은 찬사는 읽기 힘들어서 잠깐 멈췄다는 말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본 소설을 읽으며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다만 이 표현을 빌릴 때, 단숨에 읽은 건 문장 덕이었고, 저어되는 건 내용이었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조아라의 <기생이라 합디다>가 인물 조형, 사건 전개, 서술 및 묘사 등 필력의 최고 작품이라고 꼽았습니다. 이 소설을 다 읽어보건데, 여전히 요소가 어렵고 예정된 고난에 속이 미식거리지만, 그 최고봉의 자리를 바꿔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하빈다

 

 

 - 가슴이 꽤 큰 틋녀를 보고 싶다.

 

 - 잘 쓴 소설을, 문학이라 부를 만한 소설을 보고 싶다.

 

 - TS가 현실적으로, 비교적 피폐하게 다뤄지는 것을 보고 싶다. 

 

 - 웹소설에서 구현할 수 있는 기법, 연출을 배워보고 싶다. 

 

 - 느긋하게 진행되는 소설,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많이 나오는 소설을 보고 싶다. ** 추천

 

 


이런 분들은 안맞을 수도 있을 거 같스빈다

 

 - 나는 말랑말랑 부드러운 소설을 보고싶다.

 

 - 나는 소설 읽으면서 내상 입는 거 싫다.

 

 - 전개가 늘어지거나 답답한 거 보기 싫다. * 중요

 

 - 등장인물이 헤어나기 힘들 정도의 시련을 겪는 건 버겁다.

 

 - 등장인물에 깊게 몰입하면서 보는 편이다. - 이건 조금 갈릴 거 같습니다. 저는 최대한 관조적으로 거리 두고 봤거든요.

 

  - 나는 부호층, 부르주아를 보면 공산혁명이 너무 마렵다. ** 중요

 


  # 여담 

 

 깊게 읽다보니 글도 늘어져버렸습니다. 하지만 분량과 무관하게, 이 따위 글로는 본 소설이 갖고 있는 가치를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리뷰나 많은 글이 그렇지만, 문제 시 삭제될 수 있습니다.


 본 리뷰에서 질문이나 이건 좀? 하는 거나 피드백 해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너무 좋은 말만 한다구요? 

 내가 좋은데 어떡해? 원래 리뷰는 그런 거잖아요...?




 말이 많고 탈이 좀 있었던 작품이지만. 부디 이 졸고가, 작가님께서 쓰신 글의 가치를 빛내는데 조금의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이 글이 안닿을 확률이 가능성이 높겠지만, 작가님께서 앞으로도 건강히 글 써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니가 뭔소리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읽을만 함??"이란 생각이 든다면

  

 분명 좋은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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