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악당들의 심리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보통 악당들은 시작할 때부터 엄청나게 강하고 

그와는 반대로 주인공들은 시작할 때부터 엄청 약하다.


그럼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일행을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 말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마법소녀물 또한 마찬가지다. 마법소녀들은 시작부터 엄청 약하고 성장속도 느려서 작품 거의 끝자락에 가서도 사천왕 하나 잡는데 버거워한다.


그래서 매화마다 댓글을 하나씩 달았다.


"어째서 사천왕들은 한꺼번에 출전하지 않고 한명씩 출전하나요?"

"어째서 쓰러뜨린 마법소녀를 죽이지 않고 무력화만 시키는 거죠?"

"어째서 악의 총수가 처음부터 나서지 않는건가요?"

"어째서..."


"독자님, 이렇게 매번 악플 다시지마시고 빙의당하고 싶다고 솔직히 얘기하세요."


계획대로였다.



#2



눈을 떠보니 악의 세력 기지였다. 소설로만 보던걸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감미가 새로웠다.


그럼 누구로 빙의했는지 한 번 볼까? 

일단 팔다리 움직이는 걸로 보아 인간형 괴인인거 같긴한데 

악의 총수? 사천왕? 단역? 전투원? 그 누구로 빙의 했더라도 자신있었다.


나는 당당하게 실험실 유리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방금 했던말 취소하겠다.



실험실 유리창 속 저 여자애는 사천왕 디스가이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기를 생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최강의 사천왕


하지만 우리는 보통 저 소녀를 마법소녀 "블랙"이라 부른다.


블랙은 작품이 딱 2부에 들어설 때 새롭게 등장한 마법소녀로

등장 할 때부터 다른 마법소녀보다 엄청 강했다.


처음에는 다른 마법소녀들이랑 친해지려 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감이 있었는데 한 번은 블랙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동료들이 구해준 뒤로는 마음을 열었다.


그 뒤로는 다른 마법소녀들이랑 같이 괴인을 물리치고 끝내 악의 총수까지 다다르자 정체가 밝혀졌는데.


얘가 네번째 사천왕 디스가이저였다.


악의 총수는 "어서 마법소녀를 죽이지 않고 뭐해?" 라고 말했지만 지금까지의 마법소녀와의 추억 때문일까. 블랙은 마법소녀들을 죽이지 못 했다.


결국 '블랙'은 악의 세력을 배신하고 악의 총수에게 크게 한방 날렸지만, 블랙이 배신할 것을 대비해 악의 총수가 

블랙의 심장에 심어둔 폭탄으로 인해 블랙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면서도 분노한 마법소녀들은 결국 그 순간 마지막 각성을 이루어내고 결국 악의 총수는 마법소녀들한테 쓰러지고 만다.


이대로 가면 다른 마법소녀들의 각성 재료로 쓰이고 죽는다. 하지만 내게는 원작의 지식도 있고, 다른 악당들 처럼 무르지 않다.


작중에서는 블랙이 기지로 돌아간 적이 없다고 했으니 지금은 아직 2부 시작전 시점이 분명하니 아직 시간은 내 편이다.



#3



"도와줘서 고마워."

"고작 이정도 밖에 안되면서 마법소녀라고 잘도 말하고 다니네."

"너도 마법소녀야?"

"그래, 내 이름은 블랙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원작에서 블랙은 위기에 빠진 마법소녀들을 구해주면서 등장한다. 안 구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상대가 고작 잡몹인데다가 아직은  원작에서 벗어날 때가 아니다.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아직은 원작 그대로 따라갈 필요가 있다.


나뭇가지 하나를 부러뜨리는 것은 쉽지만 나뭇가지 여러개를 동시에 부러뜨리는 것은 어렵다.


마법소녀또한 마찬가지다.

마법소녀는 여럿이 뭉치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여 해치우기 상당히 까다롭다.


하지만 한명씩 따로 떨어뜨려서 죽인다면 어떨까?

나아갈 방향을 정했으면 이제 목표를 정할 차례이다.


첫 목표는 당연히 레드다. 가장 강하고 다재다능하며 열혈캐.

흔히 마법소녀에 레드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런 애.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데.


하나는 내 정체이다.

레드는 2부 중반부터 블랙의 정체에대해 깨닫게 되지만 그걸 다른 이들에게 밝히지 않고 블랙을 교화하는 쪽을 택한다.

물론 이대로 레드를 내버려두어도 내 정체를 불어버릴 가능성은 낮지만 변수는 적을수록 좋은 거니까.


또 하나는..


"그럼 블랙, 다음에 또 보자. 다음에 만날 때에는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쳐 적들을 무찌르는거야!"

"..그래."



#4



'이런 나이먹고 교복이라니.. 게다가 여자교복..'


원하는 무기에는 당연히 옷도 포함이다. 그렇기에 나는 레드가 다니는 학교의 교복을 생성해서 방금 막 입고 온 참이다.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복장을 하지 않고 레드가 다니는 학교에 잠입하는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그래."


지나가다가 선생을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지나간다.

조금 창피하긴 해도 얼굴을 들키지 않는 데에는 이것만큼 효율적인 방법이 없다.


쪽팔림을 무릎쓴 대가라도 되는 걸까.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않고 성공적으로 레드의 교실에 도착했다.

지금 레드의 반은 체육수업 때문에 전부 운동장에 있어 지금 교실에는 아무도 없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레드의 책상서랍에 편지를 한 장 넣는다.


내용은「네 여동생을 납치했으니 오늘 저녁 6시에 여기에 저힌 폐공장으로 올 것」


창밖을 내다 보니 아직 레드는 한참 수업중인 것 같다.


얼핏 보기에는 상당히 리스크 있는 계획 같지만 정의감과 가족애가 넘치는 레드는 원작에서도 이와 비슷한 편지를 받아도 친구들에게 짐을 짊어지게 하기 싫어서라는 이유로 혼자서 왔기에 사실상 리스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5



"내 여동생은 어딨어?"

"여기."

"살려줘! 언니!"


그녀의 여동생은 지금 팔 다리가 밧줄로 묶여있고 목또한 내 손에 잡혀있다.


"너.. 블랙이야..? 설마 네가 내 동생을 납치한거야..?"

"거기서 한발짝도 움직이지마. 안 그럼 네 여동생은 여기서 죽는다."

"우리 같은 마법소녀 아니였어? 여동생을 어서 풀어줘!"

"지금 하고 있는 그 변신 풀고 변신 마법봉을 내려놓으면 풀어주지."

"블랙.. 어째서 이런짓을.."


마법소녀는 변신을 풀 때에는 마법봉이 없어도 괜찮지만, 변신 할 때 반드시 마법봉을 들고 해야한다.


즉 변신이 풀렸는데 마법봉이 없는 마법소녀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내가 마법봉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네가 풀어준다는 보장은 어딨지?"

"그럼 믿지 말던가."


여동생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여동생은 "으겍" "윽" 같은 소리를 내며 바둥거렸다. 그 모습을 본 레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없어졌다.


"아, 알았어. 내려 놓을게."


천천히 마법봉을 바닥에 내려놓자. 나도 목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칼을 허공에서 생성해 밧줄을 잘라주었다.


"양손 머리위로 들고 그 마법봉 발로차서 여기로 보내. 그럼 이 손도 놓아주지."


레드는 잠시 멈칫 했지만 여동생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마법봉을 발로 차서 이리로 보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천장에 미리 설치해 둔 창들을 바닥으로 낙하시킴과 동시에 낙하 위치로 여동생을 던져 넣었다.


결국 레드는 변신도 하지 못 한 채 자신의 몸을 던져 여동생을 감싸안고 여동생 대신하여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창들을 대신 맞았다.


레드가 여동생을 감싸안고 웅크려 있는 동안 재빠르게 레드의 변신 마법봉을 주워다가 부러뜨린다.


나는 소년만화에 나오는 그런 허접한 악당이 아니다.

허공에서 칼을 더 꺼내어 더이상 비명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웅크린 레드를 향해 던진다.


-꺄아악


-끄악


-끅


-...


-..


비명소리가 완전히 조용해진 걸 확인하고 칼을 던지는 것을 멈추자 레드의 시체를 치우고 그녀의 여동생이 피를 쓴 채로 천천히 기어 나왔다.


그래 그 표정이야 그 표정이 보고 싶었어

그 절망스러운 표정 그 분노한 표정 그 겁에 질린 얼굴 그 우는 얼굴

그 아름다운 가족애 그 눈물겨운 희생정신 그 복수심 넘치는..


"복수할거야."


"반드시 복수할거야. 두고보라고."

"그건 무리네."


-푹


"너도 언니곁으로 보내줄거니까 말이야."



나는 "너는 이런 사건과 관련 없으니 그냥 가도 좋아" 같은 말을 하는 머저리가 아니다.


일을 처리할 때에는 당연히 후환이 없는 편이 좋은 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