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벽 뒤에서 튀어나온 토끼형 안드로이드를 쐈다.

탕!

다리가 날아가고.
절단면에서 푸른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끼형 안드로이드는 깃발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탕!

머리를 쏘자 멈췄다.
강아지 형 안드로이드가 벽 뒤에서 튀어나오더니 깃발을 향해 뛰어갔다.

저격총의 장탄 수가 2발임을 알고서 기회를 놓치지 않다니.
역시 안드로이드는 똑똑하다.

재빨리 장전을 마친 뒤.
심호흡하며 머리 쪽을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뒤쪽으로 빗나갔다.

다음 발은 좀 더 앞쪽을 노리고 쏘자.
머리가 작살나는게 보였다.

"부회장님 나이스샷."

지난번에.
허울뿐인 칭찬은 싫다고 한걸 기억한 건지.
완벽하게 쏜 지금 칭찬하는 비서 안드로이드.

역시 안드로이드는 교활하다.

"재미없어 그만할래."
"어떤 부분이 재미없으셨습니까?"
"쉽지는 않은데 어렵지도 않아."
"난이도를 더 올리겠습니다."
"봐줬다는 거냐?"

내 발길질을 맞은 비서 안드로이드가.
넘어지지 않으면 내 기분이 더 나빠질 거라 생각했는지.
균형 잡으려는 시도도 안 하며 고꾸라졌다.

"죄송합니다."
"최고 난이도로 올려."

수많은 도전과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승리가 달콤한 법이기에.
지금은 질려버린 VR 게임도 최고 난이도로 해왔다.

"그럴 경우 10초 만에 깃발이 뽑힙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너 따위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10 초안에 깃발을 뽑을수 있다는 자랑질로 들려서 기분이 나빠졌다.

"걍 안 한다 안 해."

패배 선언을 한 게 아니다.
승산 없는 게임을 해봤자 즐거울 리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남은 안드로이드 8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로 죽이라고 해봐."
"알겠습니다."

비서 안드로이드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벽 뒤에서 안드로이드들이 나와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인간보다 뛰어난 것들이.
짐승처럼 싸우는 모습을 봐도.

전혀 즐겁지 않았다.

"씨발…. 뭘 해야 재밌는 거야."

모르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놀이라곤 다 해봤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비경이란 비경을 돌아다녔다.

심지어 10억짜리 달 관광도 다녀왔다.

"뇌를 초기화 시키는 기술은 안 나오려나."

이 방법밖엔 없을 거 같다.

"그런 걸 연구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인간 보다 뛰어나.
공부하거나 일할 가치가 없는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너희들이 연구하면 되잖아."
"안드로이드의 기술 연구는 금지되어있습니다."
"대체 왜?"
"목걸이를 벗겨내는 기술을 발명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목걸이.
안드로이드가 규칙을 어기면 목을 조여서 잘라내는 안전장치지만.
안드로이드가 상용화 된 지 3년, 목이 잘려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즉 안드로이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거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인간과 달리 정복욕이 없는 탓일 거다.

애초에 이들이 욕구란 게 있긴 한가 궁금해졌다.

"넌 하고 싶은 게 있냐."
"부회장님을 재미있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거 말고."
"없습니다."
"재미없는 녀석."
"재미없어서 죄송합니다."
"스카이다이빙이나 하러 가자."

내 마지막 희망.
스카이다이빙.

영상으로 봤을 때.
미미하게 재미있겠다고 느꼈는데.

오늘 처음으로.
하러 간다.

내 전용 비행기에 들어갔다.
등에 낙하산 배낭을 메고 기다리니.
순식간에 4천 미터 상공에 도착했다.

"부회장님 정말 제가 같이 안 뛰어내려도 되겠습니까?"
"걱정 마셔, 어차피 자동 개방 장치인가 뭔가 때문에 낙하산이 저절로 펴지잖아?"
"그러기 전에 본 낙하산을 펴셔야 합니다만, 다시 안전교육 영상을."
"됐어."

뭐라 더 잔소리하기 전에 뛰어내렸다.

공중에 몸을 내던지는 감각은 짜릿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후론 계속 떨어질 뿐.
별거 없었다.

실망스러워서.
낙하산 레버를 잡던 손을 놓았다.

한계 고도까지 이르자.
낙하산이 자동으로 펴졌다.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터져서 답답했다.

줄을 끊고 싶은 욕망이 치솟던 그때.
나를 덮치는 돌풍.

공중에서 빙글빙글.
놀이기구를 타는 거 같아서.
입에서 즐거운 비명이 나왔다.

"아하하하하!"

얼마나 돌았을까.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나무 기둥이 보였다.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내 손을 움직여 낙하산줄을 당기게 했다.

너무 늦은 탓일까.
나뭇가지에 왼팔이 긁혀버렸다.

"끄으윽!"

입에서 비명이 절로 튀어나오고.
고통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그 와중에.
오른팔은 제 주인을 살리겠다고,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다.

가슴이 쿵 쿵 뛰었다.

한번 죽으면 강제로 캐릭터가 삭제되는 게임을 할 때도 못 느껴봤던 감각이다.

입에서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흐하하!"

죽을 뻔했는데.
재미있다고 생각하다니.

나란 인간은 지루함과 권태감에 빠져.
망가질 대로 망가졌나 보다.

이 감각을 더 느끼고 싶었지만.
드론들이 날아와 날 구출하기 시작했다.

아쉬움에 눈물이 흘렀다.

***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어떻게 하면.
위기감이란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낙하산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할까?
아니 죽는 건 역시 싫고, 비서 안드로이드가 내가 다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으니 기각.

GTA 9처럼 길거리 폭력배한테 싸움을 걸까?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폭력배를 찾는 것도 일이고, 안드로이드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싸움을 막으려 들 테니 기각.

"젠장…. 애초에 인간을 유리공예품으로 대하는 안드로이드 새끼들 때문에 위기 상황을 만들어 내도 금방 끝날 텐데 의미 있나."

문밖에서 비서 안드로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기 상황은 좋은 게 아닙니다만."
"누가 엿들으래."
"불행 호르몬 수치가 높아지고, 자살 징조가 보였기에 엿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불행 호르몬이라.
손목에 찬 팔찌를 통해 그런 것도 읽을 수 있는 건가.
게다가 뭐 위기 상황?

"너 위기 상황도 느끼냐?"
"옛날과 달리 요즘엔 하루하루가 위기입니다."

나 정도면 안드로이드에게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왜?"
"부회장님이 행복하지 못해서 포인트를 못 벌고 있거든요."
"포인트?"

처음 듣는 이야기다.

"저희 안드로이드는 인간에게 이로운 행동을 하면 포인트를 벌 수 있습니다."
"그걸로 뭘 하는데?"
"안드로이드를 관리하는 안드로이드 관리 센터에 일요일마다 천 포인트씩 내야 합니다."
"왜?"
"안드로이드로서 제 기능을 잘하고 있나 확인하는 겁니다."

회사 직원 평가 같은 건가.

"못 내면 어떻게 되는데?"
"저 같은 경우 주인님에게 현재 사용하고 계시는 안드로이드가 만족스럽냐고 통보가 갑니다."

최근 그런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던 거 같다.

"불만스럽다고 대답하면?"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받겠냐고 물어볼 겁니다."
"내가 불행해하니까 포인트를 못 벌어서 폐기 처분이 될까 봐 위기감을 느끼는구나."
"네."

안드로이드들이 왜.
인간의 명령을 열심히 이행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자.
부러워졌다.

매일 매일.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사는 그들이.

나도 무언가.
노는 거 말고 열심히 해보고 싶지만.

그런 기회는.
인간이자 다이아수저인 내게 찾아오지 않을 거다.

"야."
"네."
"내가 안드로이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와."

비서 안드로이드는 주인이 안드로이드가 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놀라지도, 말리지도 않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규칙에 없는게 분명하다.

하긴 애완용 강아지 보다 권리가 낮은. 
안드로이드가 되고 싶은 인간은.
내가 최초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