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가 내 눈앞에 있는 그로테스크한 무언가를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이 레이드를 보고 있던 몇몇 친구들의 채팅이 머릿속에 꽂혀왔다.

[매지컬느낌표: ?????????]
[심리물리치료사: 이게 왜 됨????]
[듀얼리스트: 사기치지마 닭대가리야]
[오이소박이: 무친련무친련무친련무친련]
[프리미엄매칭: 어캐이겼냐 야발련ㄴ아]
[아니시에이터: 아니 거미 무섭다고 눈감고 깨는 미친놈이 왜 진짜 있냐고 야발]
[빅파워맨: 거미 무섭단 놈이 왜 스파이더 센스 쓰고있는데]

VR RPG '루나틱 테일'의 최강 중 하나로 군림하던 솔로잉 전용 보스 몬스터, '틈새의 거미'가 최초로 공략되었다.

그것도 눈 감고 레이드 뛴 나한테.

그치만 거미 너무 징그러운걸.

보스가 거미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충격과 공포였다. 잡몹은 인간형이었잖아 씨발. 왜 보스가 거미인데.

그래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아무리 꼴리는대로 키운 개잡캐라고는 해도 순위권 랭커인데 도전도 안 해보면 쓰나.

난 답을 찾았다

"못 보겠으면? 안 보고? 잡을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 아닐까?"

[오메가고: 미쳤습니까 휴먼?]
[아니시에이터: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거임?]
[국립국어원: CRAZY(제정신이 아닌)]

다들 농담이라고 생각했고, 진짜 도전했을 때는 썩은물이 드디어 정신줄을 놨다느니 뭐니 별 소리를 다 들었지만 예로부터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실패해도 병신이고 성공해도 병신이라면 성공한 병신이 되라고.

나는 그 큰 뜻을 잘 받들고 있다 자부한다. 암, 그렇고말고.

"그래서 저거 사라졌음?"

[혼돈파프리카망고: ㅇㅇ 눈 떠도 됨]

나는 혹시 낚시일까 눈을 살짝만 떴다. 거미의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니까 심안 그거 마스터 찍을 만 하다니까."

<심안>

이 짓거리 하려고 스킬레벨을 최대치까지 올리고 레벨상한돌파권까지 발라버린, 아무나 쓰지만 마스터까지는 아무도 안 찍는 효율 개떡인 패시브 스킬.

'어차피 1만 찍어도 공격방향이랑 형태 예측 다 해주는데 뭐하러 마스터 찍음?'

정답이다.

마스터 찍어도 극적인 성능 상승은 없다. 이걸 하려면 그거라도 필요해서 한 거지. 눈을 못 쓰는데 다른 감각이라도 동원해야 할 거 아냐.

근데 막상 해 보고 나니까 있으니 좋더라고.

[심리물리치료사: 또또또또 지랄병 도졌다]
[물맛소믈리에: 썩은물도 너무 썩었는데]
[상식이상식인건상식: 즈어는 그냥 눈 뜨고 잡을게요]

뭘 모르시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시스템에서 이 미묘한 감각으로 알려주는 게 정확하다니까?

필드에 좆같게 깔리는 가느다란 거미줄들만 해도 그냥 시야로는 잘 안 보인다. 전투에 집중하면 더 안 보이고.

"아무튼간에, 왜 클리어 문구 안 뜨냐?"

[듀얼리스트: 그러게]
[빅파워맨: 잡몹 남아있는 거 아님?]

"그런가?"

루나틱 테일의 보스 공략전은 보스룸 내 모든 몬스터를 처치해야 클리어 판정을 내 주니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심안에 적대 판정으로 잡히는 오브젝트가 없는데?"

[오메가고: 심안이 병신스킬인게 이렇게 또 증명됐다]

"그럼 네가 와서 찾아보든지."

[매지컬느낌표: 저거 아니냐?]

"저거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 아저씨야."

[매지컬느낌표: 아저씨가 아니라 마법소녀임]

"지랄하지 마시고요, 아저씨."

[매지컬느낌표: 아저씨 아니라고 개새1끼야]

"어, 나도 하와와 마법소녀 되고 싶어. 아무튼 '저거'가 뭐냐고."

[혼돈파프리카망고: 저 고치 말하는 거 같은데? 보스전 입장씬에서 사람 하나 빨려들어간 거]

'틈새의 거미'는 본편 스토리에 영향을 안 주는 보스 몬스터, 즉 외전격 보스다.

'죽음의 숲'의 레이드 보스 몬스터인 '타락한 페어리퀸'의 드롭 아이템인 '추억을 비추는 거울'을 사용하여 과거를 체험하는 게 '틈새의 거미' 토벌 퀘스트의 발단이기 때문이다.

아무튼간에 과거의 '죽음의 숲'인 '고요한 숲'에서 실종 사건과 특이 마물의 출현이 이어지는데, 이것을 조사하고 특이 마물의 정점인 '틈새의 거미'를 처치하는 게 이 퀘스트의 스토리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보스전 입장씬이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변장한 '틈새의 거미'가 실종된 사람을 고치에 넣어버리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애용하는 한손검을 꺼내들고, 왼손 건틀릿의 방어 버프를 활성화시킨 채로 고치에 다가갔다.

"이거 적대 오브젝트 아닌데? 근데 타격 가능 오브젝트는 맞네."

나는 거기까지 확인하고는 심안을 비활성으로 돌렸다. 계속 켜 두고 있자니 들어오는 정보량이 많아서 피로감이 꽤 쌓인다.

[혼돈파프리카망고: 그럼 그거네. 토벌 퀘스트에 보스룸 탐색 조건 달려있잖냐]

"아 그건갑다."

보스 토벌 퀘스트에 보스룸 탐색 조건도 달려있어서 보스 잡고 보스룸에 있는 건 다 열어봐야 클리어 뜨는 구조의 보스전.

카이세리움 탈환전 때도 이거 붙어있어서 클리어 조건 찾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 뜯어봐야지"

나는 칼을 고치에 가져다 대고는 아래로 좍 그었다. 고치는 생각보다 단단해서 완전히 쪼개려고 했는데 앞부분만 터져나갔다.

"아 생각보다 단단-"

촤악-!

"엥?"

뭔가가 내 몸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나더니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뭔가 끈적한 물체가 온몸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시여?

[매지컬느낌표: ????????ㅋㅋㅋㅋㅋㅋ]
[국립국어원: STUPID(멍청한)]
[물맛소믈리에: 병ㅋㅋㅋ신ㅋㅋㅋㅋㅋㅋ]
[심리물리치료사: 썩은물아 또 속냐!!!!!ㅋㅋㅋ]
[아니시에이터: 아니 이걸 이렇게ㅋㅋㅋㅋㅋㅋ]
[오이소박이: 제작진 무친련들ㅋㅋㅋㅋㅋ]
[혼돈파프리카망고: 아무튼 내 탓은 아닌 듯ㅋㅋㅋ]
[스피드퀴즈OX: 뛰는 썩은물 위에 나는 제작진 있다]
[오메가고: 당신의 클리어, 함정기믹으로 대체되었다]

채팅으로 웃음세례가 쏟아진다. 아 이것들을 (인터넷) 친구랍시고 데리고 있는 내가 레전드다.

사실 이건 함정기믹이 아닌 게 아닐까? 사실 뭔가 이벤트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행복회로를 돌려 봐도 바뀌는 건 없었다. 자살마렵다.

[빅파워맨: 근데 얘는 왜 말이 없냐ㅋㅋㅋㅋ]
[심리물리치료사: 그만큼 신난다는 거지]
[듀얼리스트: 오레와 신난다!]

현자타임에 돌입하니 말도 안 나온다. 긴장이 확 풀리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너무 집중력을 많이 썼나보다.

[빅파워맨: 보니까 근접에 있는 놈 끌고들어가는 함정인 거 같은데 그럼 원거리에서 터쳐야 하나?]
[매지컬느낌표: 걍 한 방에 못 터쳐서 걸린 거 아님? 미믹도 극딜로 녹이면 안 나오잖음]
[아니시에이터: 근데 왜 적대 오브젝트로 안걸림]
[오이소박이: 심안이 병신이라]
[오메가고: 원래 미믹 계통 몹은 적대 오브젝트로 안 잡힘]
[국립국어원: LOGICAL(논리적인)]

여기서 공략 회의하지 마, 개자식들아.

아, 영상공유 꺼야 하는데 잠이 온다. 영상을-

*****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눈을 떴을 텐데 감고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방금 깨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나 생각했다.

아, 어이없이 클리어 실패하고 현타와서 그대로 잤지.

들어오는 채팅은 없었다. 까만 화면만 나오고 대답도 안 해주니 그냥 나간 것 같다. 일단 영상부터 꺼야겠다.

...? 근데 왜 부활이 안 됐지?

죽고 얼마 있으면 자동으로 마을로 돌아가는데.

설마 안 죽은 건가 싶었지만 시야 하단에 보여야 할 HP/MP바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는 죽은 게 맞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시스템을 부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버그인가?

그 때 투둑하는 소리가 들리며 시야에 약간의 빛이 들어왔다. 고치에 틈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움추리고 있던 몸을 쫙 펴며 힘을 주었다. 의도한 것이 아닌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투둑 툭하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리며 고치의 틈이 조금씩 벌어져 간다.

드디어 한계에 달한 고치는 그 입을 활짝 벌리며 내 몸뚱이를 토해냈다.

나는 바닥에 꼴사납게 내팽겨쳐졌다. 몸을 감싸고 있던 끈적이는 액체가 기분나빴다.

나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팔이 움직이기까지 아주 잠깐이지만 지체되는 감각이 있었다. 무엇이 '손'인지 판단하는 듯이.

거기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어야 했다.

내 시야에 보이는 것은 다섯 손가락에 손톱이 달리고,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마다 2개의 관절이 있으며, 총 54개의 뼈로 이루어져 살갖으로 덮여 있는 손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손이었는지 깨닫는 데에는 채 1초가 걸리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악!
"크르르르르르르륵!"

목에서 나오는 건 비명이 아니라 괴기한 소음이다.

나는 이번에는 다리를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나는 몇 번째의 다리를 움직일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능적으로는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인식한 순간 내 머릿속은 표백된 것마냥 탈색되어 생각을 정지했다.

알고 싶지 않아도 머릿속에 때려박히는 나의 지금 모습.

8개의 다리와 8개의 눈, 머리가슴과 배로 나누어지는 신체, 어떤 절지동물의 그것이다.

거미.

눈을 감는 것조차,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된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하며 정신을 잃었다.

이것이 단순한 악몽이길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