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빡할 새에. 이렇게 가까워졌네"


"뭐가, 말이야"


 이미 땅에 닿아버린 태양이 지나간 연구실의 옥상. 조금 있으면 밤이 찾아올 시간에 '그녀'에게 불려서 이런 곳까지 와 있었다.


"..........."


 그녀는, 긴 머리칼을 의식적으로 흐트러뜨리며, 입고 있던 백의를 흩날리며. 이미 저물어 버린 태양을 등진 채로, 슬며시 내게 다가왔다.


 내딛는 발걸음이 하나씩 늘어날 수록, 우리 사이의 거리는 짧아져 간다.


 조금은 높지만,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로 말한 '눈 깜빡할 새'의 의미가 조금 궁금해 졌지만. 금방 깨달았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에 있었던 일. 


 믿을 수 없게도 그가, 그녀가 되었던 일.


 그 일이 있었던 날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일 테지. 


그녀의 말 대로,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이 지나간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서로 간의 신뢰와 갈등 속에 붙잡혀 길게 늘어나기만 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랑은, 이런 관계에 도달할 일 따위는 없을 줄 알았는데"


"동감이야"


 무심결에 쓴웃음을 지으며 안 주머니 속에 손을 뻗었다. 집어넣은 손이 무안하게도 그 속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그녀와 똑같이 입은 백의. 그 속에 손을 댈 사람을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눈앞의 그녀는 그 흔하지 않은 사람이고.


".....치사하게 너만 피우니까. 내가 빼뒀어"


"너무하네. 정말"


 조금, 눈에 힘을 주어 노려보자, 찔린듯이 말을 토해냈다. 바뀌어버린 몸으로 구름과자 따위는 받아들일 수 없는지, 그녀는 강제적으로 금연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담배를 가져가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


"........."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지나간 별자리에 담배라도 그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말을 꺼내기에는, '그녀'가 나를 이런 장소로 부른 이유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있지. 그...그러니까."


 그녀가 그 조그마한 입을 오물거렸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던 '그'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아마 언제 까지고, 나는 '그녀'와 '그'를 겹쳐 볼 것 같았다.   


 그야, 그녀 와 그는 같은 사람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아니, 아니야"


"........"


 그녀가 며칠 밤을 고민하며, 준비 했을.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삼키자, 나는 그녀를 배려해 침묵을 삼켰다. 


 무안하지 않게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으니까.


"..."


".."


 우리는 그 어렸을 때처럼, 무한에 가까운 하늘을 바라봤다. 


 무수히 많은 별과 은하들이 내뿜는, 수천 년에서 수십억 년 전의 빛을 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한 느낌이었다.


 별은 딱히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시료가 될 수 있다. 그 상대성 이론조차, 공간의 휘어짐을 별빛으로 증명했으니까.


"..."


"........."


 그러니. 아무런 말 없이, 의도 없이, 의미 없이, 저 별들을 보고 있더라도. 언젠가는 위대한 증명에 밑거름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저기, 말야. 뉴턴은 질량을 가진 물질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수식과 과학으로 나타냈어"


 커다란 달이, 보였다. 


 그녀는 조금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준비 해뒀던 대사 따위는 이미 잊어버렸는지. 한 밤에 어울리는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끌림이, 상황에 따라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도 함께 증명했지. 마치 마법처럼 말이야"


 조용한 밤 바람에, 그녀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단순하게 그녀의 머리카락과, 티 없이 하얀 백의가 흔들릴 뿐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그렇게 보였다.


"정작. 그것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지만" 


 태양의 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천체.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내는 별보다, 그저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가장 밝게 빛나는 달 아래.


"분명 어떠한 법칙이 있다는 것 만은 알아냈어"

 

 마치, 사랑의 법칙을 깨달은 소녀처럼, 말이야. 그녀가 그렇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