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인들은 보통 세 종류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종족과 성별을 막론하고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우리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전생자'.

원래 그들의 세계에서 그대로 이동해온 '전이자'.

마지막으로 기존의 우리 세계의 존재에게 깃드는 '빙의자'


허나 그들은 모두 각자만의 특별한 힘, 기술, 지식 등을 가지고 있어, 그들의 행보는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당장 과거 이름을 떨쳤던 영웅들, 대륙을 지배했던 거대한 제국의 국부 등도

꽤 많은 수가 이계인들 본인이거나 최소한 연관성이 짙다고 추측되고 있으니까.


과거 마왕과 싸웠던 용사 역시 이계인을 다른 세계에서 소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한때는 그들 역시

이 세계와 공존하며 서로 번영을 이루어냈으리라.


허나 그들은 너무 강했고, 또 너무 많았다.

세계라는 그릇은 수많은 강자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지도, 튼튼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과거의 용사와 같은 정의로운 영웅과 다르게 그들 중에는 범인, 악인들 역시 섞여 있었다.

갑작스럽게 그런 자들의 손에 주어진 거대한 힘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부른다.


제국의 붕괴로 시작된 거대한 전쟁은 이세계 전체를 초토화시키며 큰 상처를 낳았다.


한때 이계인인 용사를 소환하여 

그를 중심으로 여러 영웅들을 모아 끝내는

이계까지도 위협하던 마왕을 토벌했던 성국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의 참화가 전 국토를 휩쓸었고, 한동안은 신성력의 사용마저 되지 않을 정도로

타격이 극심했다.


그러던 와중 혜성처럼 등장한 성기사가 날뛰던 이계인들을 막아 섰다.


빛나는 성갑을 입고, 공중에서 부유하는 성검, 성창, 성퇴, 성순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강력한 성기사.


과거 하나만 다뤄도 역사서에 기록이 남던 성물들을 복수로 다루는 그는

그들의 언어로 '치트'(사기)라고 부르는 힘을 다루는 이계인들과 싸우고, 역으로 사냥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신성력의 사용도 다시금 안정화 되었고

가장 날뛰던 이들부터 하나하나 죽인 성기사는 아직 남아 있던 성국의 세력들을 집결시켜

다시금 나라를 재건했다.


그리고 곧장 용왕을 필두로 하는 드래곤, 기타 세계의 강자들, 우호적 성향의 이계인들까지 모아

하나하나 세계의 공적들을 토벌해나갔다.


그렇게 비록 제국의 영토는 중앙이 붕괴된 채 과거의 봉신들에 의해 쪼개져 통치되고 있고,

세계수가 불타올랐으며, 최강의 종족이던 드래곤들의 수가 크게 감소하는 등 대격변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지만, 일단 사태는 어느 정도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허나 이계인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갑자기 기억이 떠오르는 전생자들, 당황한 표정으로 나타난 그들만의 복식을 갖춰 입은 전이자들,

기존과는 행동방식이 너무나 달라져버린 빙의자들.


이미 한 번 큰 전쟁을 치룬 이상, 이계인들은 이미 어느 정도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전생, 빙의자의 경우 내가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변해버린다는 사실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계인들이 발견되면 점차 그들이 선한 지, 악한 지는 중요해지지 않고 있었다.


허나 성국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성기사는 이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임을 알고 있었다.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점을 제외하더라도, 부당한 핍박은 이계인들을 뭉치게 만들고, 과격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서 힘을 얻게 만들어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킬 위험성이 충분했으니까.


그는 과거 영웅들 중 이계인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우호적인 이계인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의 위험을 강조하며 그들을 교단의 관리 아래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교단은 그 휘하의 성기사들과 심문관들을 보내 이계인들을 찾아내고,

때로는 그들을 토벌하거나 확보하여 보호하였다.


물론 지금처럼 그들만으로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경우, 새로 성기사단장으로 취임한 그가 직접 나서야 했지만.



하늘에서 내려친 거대한 번개가 불훼의 성순을 강타한다.

벼락이 사방으로 튀어오르며 빛을 번쩍이지만 그럼에도 신의 축복을 받은 무구에는 그을음 하나 남지 않는다.


성갑 속에서 적을 응시하던 그가 손을 뻗자 성창과 성퇴가 적을 노리고 날아든다. 나무들 너머로 숨는 적을

추격하여 거목들을 부수고, 땅을 뒤엎어 가며 적을 쫓는다. 끝내 적중한다.


꿰뚫리고 터지면서도, 이계인은 필사적으로 거구를 뒤틀어 창과 철퇴를 뿌리치고 구르며 뒤로 물러난다.

초록색 이형의 피부로부터 피가 쏟아지자 적은 다시 숨을 고르며 성기사를 긴장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어떻게든 상처를 마법으로, 몸의 치유력으로 아물게 하며, 반격의 기회를 엿보는 듯했다.


'고블린...이라고 할 수는 더는 없겠지.' 

그런 적을 지켜보며 성기사가 생각을 이어나갔다.


높은 번식력을 가지고 있지만, 개별 개체는 약해 숲이나 동굴 등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주변 마을이나

혼자 있는 모험가를 떼거지로 습격하는 존재들, 약함에도 그와 비례하지 않는 잔혹성으로 납치당한

존재들은, 특히 여성들은 험한 꼴을 당할 때가 많다. 때문에 국가, 모험가 길드에서도 단체로 인력을 파견해

그 뿌리를 뽑아내고는 했다.


문제는 그런 몬스터의 종족으로 전생한 이계인이 나타난 경우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원래 인간이었던만큼

종족들을 계도하여 인간들과 화합을 이끌어낸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이번 경우는 그저 그런 자신의 육체적 본능에 몸을 맡기고 폭주해버린 케이스... 크게 성장하여 외형은 오히려 근육질의

초록색 인간에 가까워진데다가 각종 마법까지 익힌 모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은 그 어떤 동족보다 고블린 같은 자다.


그 압도적인 힘으로 주변의 영지를 동족들을 이끌고 습격해 그곳 귀족의 영애를 납치했으며,

급히 토벌을 위해 달려온 그곳의 병력, 기사단까지 단신으로 전멸시킨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여기사들은 납치된 모양이고...

차오르는 혐오감에 성검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다음 순간 공중의 부유하는 무구들과 함께 성기사가 돌진한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계인 고블린은 재빠르게 기사단장으로부터 빼앗은 명검을 치켜들고 오러로 그것을 감싸 휘두른다.


성검과 오러에 휩쌓인 검이 충돌하자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오르고, 성창과 성퇴는 적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다. 그것을 땅을 뒤엎으며 만들어진 거대한 흙과 바위의 손이 붙잡지만 그와 동시에 무구에서 방출되는 성력이

그것을 폭발시킨다.


그 와중에 둥근 방패가 회전하며 사각에서 달려들자,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나며 그것을 피한다. 추격하여 한 번 더

성검을 크게 휘두르며 적을 압박한다.


적과는 그 어떤 말도 섞지 않고, 그저 계속 무구들을 휘두를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수의 무구로 압박해오는 성기사에 적의 대응이 조급해지고 이내 틈이 발생한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성창이 적의 팔을 꿰뚫고 그에 매인 팔을 성검으로 베어버린다.

검을 든 팔을 잃어버려 무방비해진 몸통을 성퇴가 강타하자, 뼈와 살이 터지고 적이 공중으로 튀어올려졌다.


'힘을 더 재볼 필요도 없겠군'


그저 힘만 강할 뿐, 그것을 휘두르는 경험도, 기술도 없다. 그저 뻔한 수준의 전생자..

허나 그런 뻔한 수준의 치트 전생자에게 수십의 기사들이 죽었다.


휘두른 검을 그대로 역수로 잡아 공중으로 빠르게 돌진한다. 빛나는 성검이 그려내는 직선의 진로에 공포에 질린 표정의

적의 목이 놓여진다.


분리된 몸통과 머리가 힘을 잃고 땅으로 추락한다.

죽어가는 적에 다가간 성기사에게 녀석의 마지막 유언이 들려왔다.


"..어..어째서.. 이세계 전생.. 치트인데... 주인공인데..."


목이 잘린 것 치고는 잘 나불거린다는 감상이 반, 언제나 같은 이들의 사고방식에 질린다는 감상이 반.

성검을 들어올려 그대로 머리에 꽂아 넣어 절명시킨다.


이내 무구들에서 방출된 성력으로 시신을 완전히 태워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전투로 초토화된 일대를 둘러보며, 성기사는 녀석의 본거지로 접근한다.

고블린만 부하로 쓰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힘으로 굴복시킨 숲의 마수들도 자신의 세력에

복속시킨 모양이었는지 온갖 짐승들의 시신을 여러 성기사들이 옮기며 처리 중이었다.


"단장님! 무사하십니까?!"

공중에서 내려오는 성기사를 맞이하는 신관이 말을 걸었다.


"괜찮네. 그렇게 부담스러운 적은 아니었어."

전쟁 중에는 그보다 훨씬 강한 전생자들과도 여러 번 싸워본 적이 있는 그였기에 그말은 진심이었다.


"..다행이군요.. 일단 납치당한 영애와 여기사들도 무사한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로군. 항복 권고에도 무시하며 달려들 정도로 오만한 놈이라 무슨 일을 당했을지 걱정이었는데.."

특히나 이런 유형은 본인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에 막나가는 경우가 많아 특히 위험하기 마련이었다.


"예.. 습격당한 공작의 영지에서도 그냥 영애와 바로 마주친 터라 납치 과정에서 영지 자체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 아가씨를 지키던 호위 병력도 아가씨가 그냥 물린 모양이고요."


그 말에 잠깐 성기사가 멈춘다.


"...그 공작 영애.. 몇 살이라고 했지?"


"예? 이제 13살인가라고 들었습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아니... 아주 영민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 나이대에는 지나칠 정도로.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다."


그 말에 신관도 성기사의 의중을 짐작한다.

"예? 하.. 하지만 영지에서는 아무런 말도.."


"지금까지 주변인에게 정체를 잘 감출 정도로 뛰어날 수도 있겠지... 독대를 준비해주게."


"예! 아.. 알겠습니다."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성기사가 다시 한 번 몸을 긴장시킨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도 미래에 어떻게 자랄 지가 보이는 아름다운 소녀가 예를 갖추어 그를 맞이한다.


"어린 나이에도 침착하게 대처해주신 덕분에 피해가 줄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 모습 하나하나를 살피며 성기사는 그녀를 칭찬하는 동시에 상대를 파악해나간다.


"영웅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쁘네요."


"과찬이십니다."


"과거에 하나만 다뤄도 영웅이라 일컬어지던 성물들이 아닌가요? 그걸 5개나 다루시는 분께서..."


"여신님의 은혜 덕분이지요."

사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만, 그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성기사는 그저 의례적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그건 순수하게 기사님의 능력인걸요."


그 말에 성기사가 잠시 멈춘다. 성물은 신의 축복임이 명백한데 그것을 굳이 자신의 능력이라 말해주는 것은...

그저 어린 아이의 동경인가.. 아니면.. 자신의 '비밀'을 아는 것인가.


"...그 발언은 여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주의를.."


"죽은 분께서 굳이 그걸 화내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안다. 이 소녀는... 아니 이계인인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체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존재는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


성물들을 다시 꺼내며 무장하는 기사를 진정시키려는 듯. 소녀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시면... 제가 어떻게 이걸 알고 있는지... 그리고 기사님께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정보들까지.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널 죽이거나 고문해서 정보를 캐낼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그럴 성품이 아니시라고 믿고 있기도 하고.. 제가 죽으면 다시 되살려주시겠죠?"




"......죽은 신조차 부활시키시는 최고의 네크로맨서시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