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순간부터 반했습니다. 저랑 사귀어주세요!"


"저기요, 제가 원래 남자였다는 것은 알고 계세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요?"


"네."


"제가 남자였다는 것을 알고 계시다면, 남자인 제가 같은 남자에게 고백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지도 아시려나요?"


"......"



그와의 첫만남은 최악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가 갑자기 고백해온다면 평범한 여자라도 질색할 것이다.


물론 그녀는 평범한 여자 조차 아니며 원래는 남자였던 사람이기에 더 기가 찼다.


돌발성 ts 증후군. 그녀가 앓았던 병이다. 건장한 남자가 하루 아침에 일어나보니 여자가 되었더라, 하는 웃기지도 않는 병.


꽤나 유병률이 있는 병인지라 나라에서 신분 변경 절차를 바로 마련해주었기에 지내는 데 큰 불편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의 내면은 모르고 외모만으로 판단해 다가오는 이런 사람들에게 고역을 겪는 일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녀는 괜히 심술이 나 그 남자를 골려주고 싶어졌다.



"좋아요."


"정말입니까?"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요."


"...조건이라는게?"


"앞으로 100일 동안 제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것. 그러면 사귀어 드릴게요."



말도 안되는 조건이었다. 대놓고 갑질을 하겠다 선언한 것이다. 노예로라도 부리겠다는 셈인가.



"100일 동안이나..? 말입니까?"


"네, 자그마치 100일 동안이나. 중간에 포기하시면 그걸로 끝"



100일이란 말을 재차 강조하는 그녀. 당신이랑 사귈 생각 없으니 객기 부리지 말고 꺼지란 소리였다.



"그 정도 각오도 없으면서 초면에 대뜸 고백하셨나요?"


"......"



그러나 남자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하더니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네, 하죠. 100일 동안 당신이 시키시는 일,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하?"



예상 보다 미친 남자였다. 오냐, 내 경고를 무시하고 그렇게 나오겠다면 지옥을 맛 보여주마. 그녀는 그 당찬 대꾸에 되려 오기가 붙었다.



"그럼 일단 제 짐부터 들어주시죠. 그리고 역 앞에 카페에서 단거 좀 마시고 싶은데 함께 가시죠. 물론 계산은 그쪽 돈으로."



그녀가 예고도 없이 가방을 휙하고 던졌기에 남자는 가방 모서리에 코를 찧였다. 화가 날 법도 하였으나 그 남자는 아픈 코를 살짝 어루만지더니 "그러죠."라고 사람 좋게 대답하며 생글생글 웃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 표정에 기분만 묘하게 더 나빠졌을 뿐이었다.



*******



그렇게 그녀와 그 남자의 주인님과 노예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날은 짓궂게 굴었지만 그녀는 사실 사람을 괴롭히는 취미가 없었기에 얼른 그 남자가 제발로 떨어져 나가주기를 바랬다.


그렇다고 그녀는 무리하거나 창피한 요구를 할만한 위인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등하굣길에 그녀의 짐을 들게하거나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사달라 하는게 그녀가 요구하는 전부였다.


누가 보면 평범한 연인 사이로 보일 지도 몰랐다. 갑을 관계가 있는 정도만 빼면.


그렇게 일주일 넘게 그가 하는 말에는 대꾸도 건성건성 해주며 짐꾼으로 부려 먹었으나 이 남자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자꾸만 그녀 곁에서 싱긋싱긋 웃는다.


열흘이 지나도 떨어져나가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 몰래 벽돌을 집어넣었다.


갑자기 무거워진 가방 무게에 그 남자는 의아해 하는 듯 했지만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등에 메고 그녀를 뒤 따랐다.


그래서 하나 더 넣었다. 또 하나 더 넣었다.


어느새 그녀의 힘으로는 드는 것조차 불가능해져 집밖으로 가방을 질질 끌고 나와야했다.


이쯤되면 뭐가 들었나 물어볼만이라도 한데 대쪽 같은 그 남자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도 이런 유치한 짓을 하는 것을 그만뒀다.



******



20일 째 되자 그녀는 그에게 돈이 잔뜩 든 봉투를 내밀었다.


그녀의 힘으로는 그 남자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미안했어요. 저는 앞으로도 당신이랑 사귈 생각 없어요. 당신에게 이것저것 뜯어낸 액수 보다 대충 어림 잡아서 3배 정도 많을 거에요. 더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그 남자는 당연히 사양하였다. 그녀는 돈봉투를 어디 아무 주머니에나 쑤셔박고 자리를 뜨고 싶었기에 그와 몇분간 투다투닥하였지만 그 남자는 끝끝내 받지 않았다.



"뭐, 마음대로 하세요."



그 후로 그녀는 그 남자가 뭐라하던 한마디도 대꾸 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지만 그녀는 더 이상 가방을 건네지도, 카페에서 디저트를 사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남자는 항상 웃었다.


스토킹으로 확 신고라도 해버릴까 했지만 여태까지 부려먹은게 미안해서 그러지는 못하였다.


애정의 반댓말은 혐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무골호인이라도 무관심에는 대책 없을테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어느새인가 그녀에게 그 남자의 정체를 묻는 사람들도 없어졌다.


처음에는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왜 따라다녀?' '스토커 아냐?' '신고해!'와 같은 소리를 들었으나, 그때마다 '괜찮아.' '무시해.' '없는 셈쳐.'로 아무 일 아닌듯 대꾸해왔다.


사연을 듣고는 그녀를 보고 야박하다고 질타하며 그 남자를 동정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웬 미친놈에게 걸려 스토킹 당하고 있다며 그녀를 안타깝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그 남자의 존재는 그녀의 주변인들의 관심 밖으로 나가게 됐다.


그녀 또한 그 남자의 존재를 종종 잊을 때도 있었다.


그 남자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는지 서서히 아침 등굣길에 찾아 오는 일도 없어졌고 오며 가며 마주치는 일도 적어졌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다.


그녀는 그렇게 빠르게 본래의 일상을 되찾아 가는 듯하였다

.

그리고 어느덧 그와의 첫만남으로 부터 40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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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바구니  안 쓰고 직접 쓸 시 장점


- 내가 하고 싶은 말, 묘사 다 집어넣을 수 있음


단점


- 아무도 안 봄



다음화 : https://arca.live/b/tsfiction/53866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