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까, 이상하게 시야가 낮아. 평소엔 문고리가 가슴 쯤에 왔었는데 지금은 목에 닿는 거야.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단 걸 눈치채. 머리가 무거워. 자각하지 않고 있던 손을 뒤로 들어올려서, 머리 언저리를 더듬거려.

굉장히 부드럽고, 포근한 감각이야. 허리께에 닿을 정도로 길었어. 당연스레 이게 머리카락이란 것을 알고, 무언가 벅차는 감정이 들어.

쓸데없는 기대를 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을 아래로 돌려. 새하얀 다리, 자그마한 발. 슬쩍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귀여운 모습이야.

손도 들어봐. 오밀조밀하고, 얇게 뻗은 손가락에, 피부도 하얀 색이야. 믿기지 않아서 똑같게 생긴 반대편 손가락으로 손등을 꼬집었어.

" 아흣.. "

찌르는 듯 날카로운 통증이 먼저 느껴져.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손등이 분홍색으로 달아올랐어. 그게 믿기지 않아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머리카락이 슬며시 시야 안으로 흘러내려.

윤기가 있어. 자칫하면 푸석한 백발로 보일 수 있는데, 내 머리카락은 은발이야. 어두운 방 안에서도 빛이 흐르는 것 같아.

점점 더 많이 벅차. 손등을 꼬집었으니까, 이건 꿈이 아니야. 그러고도 깨지 않는 꿈이라면, 오랫동안 꿈을 꿀 수 있을 거니까, 어떻게 되든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방에는 거울이 없었어. 있으면 무서울 것 같기도 했고, 내 모습을 보기 싫었거든. 내 모습을 보려면 안방의 화장대로 가봐야 해.

오늘은 부모님이 모임이 있다고 나갔어. 집엔 나 혼자 뿐이고. 당당하게 나갈 수 있어.

문고리를 돌려. 예전에도 뻑뻑해서 잘 안 열리던 문이라, 더 힘을 주자 덜컹ㅡ! 소리를 내면서 열렸어.

가장 먼저 안방의 화장대로 갔어. 세로로 길쭉한 거울은 바뀌기 전의 모습도 다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길어서, 그냥 앞에 서.

너무 벅차서, 행복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

내 얼굴이 정면으로 보여. 작고, 살짝 쳐진 눈이 순한 인상을 줘. 이마를 덮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은발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발이랑 같이 빛나.

광택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정확히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이야.

오똑한 코가 귀여워. 그리고, 볼. 만져보고 싶게 생겼어. 누구라도 이 욕망을 참을 수는 없을 거야.

바로 손을 들어서 볼을 주물러 봤어. 말랑말랑한 느낌이 너무 좋아. 내가 직접 만지는 건데, 그래도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건드리고 싶어.

입술은 분홍색이었어. 입은 조막만했고, 귀여워. 슬쩍 미소를 지어봐.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이전엔 웃음이 어색해서 별로였어.

치열이 가지런해. 피부처럼 새하얗고. 송곳니가 날카로워. 그런 점이 더 귀여워. 설마 이종족이라는, 소설도 그렇게 쓰면 욕먹는 전개는 아닐 거니까, 매력적인 포인트라는 의미가 맞을 거야.

아까 고개를 내렸을 때, 약간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을 봤었어. 혹시나 거울로 보면 크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게 크지는 않네.

괜찮아. 가슴의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당장 이런 모습이 됐는데, 그런 걸 가지고 슬퍼할 수는 없잖아.

힘 풀린 다리를 조금 주물러. 늘씬한 다리가 말랑말랑해서 기분이 좋아.

다시 몸을 일으키고, 키에 대한 생각을 해 봤어. 150 중반쯤 되는 것 같아. 작고 귀여워서 마음에 들어.

아직 목소리는 못 들었는데, 앞으로 천천히 알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의 내 모습을 기뻐하고 싶어.

볼이 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