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리즈의 2차창작입니다.




히키코모리 밤피르




 001




  기나긴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아라라기 코요미(阿良々木あららぎ 暦)こよみ라는 사람을 말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구원 받은 나는. 분명 그럴 의무가 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그가 없다면 설명조차 할 수 없으니 당연하다.


 그런 이유에서, 이 길고 긴 이야기는 대부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 전에, 말해 둘게 하나 있다. 


 내가, 그와 만나게 된 계기. 


 바로 괴이에 관한 이야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사건이 시작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해서 마무리가 이루어 졌는지. 나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말 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사건을 되짚어 보는 지금에 와서도 지금의 시점조차,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신적인 존재가 나타나 이 모든 일이, 사실은 자신의 허접한 말장난이라던가, 구닥다리 속임수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 놓더라도, 나는 역시 그렇지 하며 납득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때의 체험은 신비하고, 신기했다. 


 혹은 괴이했다. 괴상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이런 말을 꺼내 미안하지만. 결국에는, 나는 내가 체험한 일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놓을 것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내가 본 일을, 내가 본 것이라 믿는 것을, 말할 뿐이다. 하지만. 애당초 그것은, 괴이는 그런 것이다. 그런 존재인 것이다. 관측 한 사람에 의해 존재 한다. 관측 한 사람만이 만난다. 관측 한 사람에 따라 존재가 달라진다. 


 또 다른 사람을 끌어당긴다. 


 또 다른 괴이를 끌어당긴다.  


 그것이, 괴이. 


 괴이의 왕, 흡혈귀.


 나는 그녀와 만났다. 만화나, 영화에서나 보던, 그녀 같은 존재들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지고, 오히려 특정 시기에 없다면 아쉬울 느낌이 들 정도이다. 물론 실제의 그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정도로 너무나 많이 팔려서 이미 진부해진 존재인 것이다. 적어도,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는.


 뭐랄까. 살짝, 연식이 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조금 싸구려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단지 낡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야 그럴게. 정말로 낡은 것이니까. (뱀파이어. 1819년. 존 폴리도리)


 아무튼. 지금에 와서 알 수 있던 사실이었지만.


 그때의 나에게 흡혈귀라는 존재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자택 경비를 넘어, 지박령에 가까운 자택 수호를 담당하고 있는 나에게 흡혈귀라는 존재는,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한 존재이며, 가까운 존재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닮은 존재 일지도 모른다. 


 그 존재가 나에게 덮어 쓰여질 만큼. 


 그렇다. 나와, 흡혈귀. 


 나와 그녀-키스샷 아세로라오리온 하트언더블레이드 사이에는. 닮은 점이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면, 밝은 태양 아래에서는 살지 못한다던가, 스스로의 생명이 죽지 못해 살고 있다던가, 인간이 싫어한다던가. 타인의 피를 갈취하며 살아간다던가.


 어찌됐든,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녀에게 덮쳐졌다. 


 씌였다, 라고 말해도 좋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그녀에게 씌인 것 일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나의 정신이 그녀의 몸속에 들어간 것이니까. 그녀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올바른 말이겠지. 


 그리고, 흡혈귀 사냥꾼에게 덮쳐졌다. 정확히는 그녀를 찾던 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나와 그녀의 차이를 구별 할 수 없었을 테지. 그리고 몸의 일부를 하나씩 빼앗겼다. 그리고 도망쳤다. 추한 모습으로, 피를 흘리며. 


 그리고, 나는 그와 만났다(出会った). 마주쳤다(向き合った). 마치, 상상조차 하지 못한 교통사고처럼 충돌했다(ぶつかった). 그만큼 그 만남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할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나 스스로, 멋대로 구해진 것이라 말하지만, 내 생각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분명 아라라기 코요미라는 사람은 나라는 사람을 구원했다.


 이야기가 일단 한 번 마무리 된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면, 그때 나와 마주친 그는 무척이나 운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행운과 불운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웃기지도 않는 농담같은 말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이치를 관통하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무렴.


 말하자면, 그래. 불운 속의 행운, 진흙 속의 진주, 흡혈귀에 씌인 히키코모리 정도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완전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틀렸다.


 틀린 것이라고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내가 바랐기 때문에 일어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 또한 바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 또한 바랐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겠지. 


 괴이(かいい)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신(かみ)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신에 가까운 괴이는 그런 것이었다. 괴이의 왕은 그런 것이었다. 


 흡혈귀(きゅけつき)는 그런 것이다. 


 격이 높은 존재는 그런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의 간절한 바람따위는 간단하게 이루어 버린다. 마음을 먹지 않아도 인간의 하찮은 바람따위는 간단하게 이루어 버린다. 


 거기에 그 자신의 바람이 섞여있었다면 더 더욱 간단히. 마치, 바람이 불듯이 말이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쩍 이루어 버릴 수도 있다.


 그래, 이것은 흡혈귀(きゅけつき)에 씌인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의 이야기(ものがたり). 


 조금 더 정확히는, 죽을 장소를 찾아 헤멘 고귀한 흡혈귀- 키스샷 아세라오리온 하트언더블레이드에 씌인, 자신의 이름도 잊어버린 히키코모리-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를 구원한 아라라기 코요미의 이야기다.


 이야기 전에 해두는 말 치고는 상당히 길어진 것 같지만, 이 정도는 양해 해줬으면 좋겠다. 자고로 불안하거나, 불안정 할때에, 쓸모 없는 말이 많아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니까. 


 흡혈귀다, 괴이다, 구원이다, 의무다 잘난 듯이 말했지만, 어차피 사람이 되다 만 것의 헛소리일 뿐이다. 이쯤 되면 별로, 유쾌하지도 않다.


 미리 도망칠 복선을 깔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나에겐 이 이야기를 끝낼 용기 따위는 없다. 아마, 일생에 걸쳐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에 곁에서 기생하는 지금. 여전히 성장하지 않는 나에게는 질릴 뿐이다. 


 이 것을 읽고 있을 존재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렇게 글로 남겨, 스스로를 되돌아 보려는 생각도 조금은,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튼, 그런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적어도, 지금은.



002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와 흡혈귀(きゅけつき)의 공통점이 뭘까. 굉장히 쓸모 없지만, 잠깐 그런 생각을 해봤다. 커다란 소리를 내며 도움을 구하고, 아무리 도움의 신호를 보내도 아무도 오지 않는 사이에 말이다.


 태양을 싫어한다, 낮을 싫어한다, 거울을 싫어한다, 교회를 싫어한다, 사람을 싫어한다. 살아있는 것을 싫어한다. 이 세상을 싫어한다.


 아니,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그냥 내가 싫어하는 것 뿐이잖아. 아무튼, 분명히 이것들 말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공통점을 알고 있다. 아니, 내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아주 직관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 먹으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활발히 움직이며 그들의 전력을 다해 살아가는 낮에는 구석진 곳에 숨어있고, 해가 떨어져 하루가 끝나고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하는 틈을 타, 어둠 속에서 사람 잡아 그 피를 빨아 먹으며 살아가는 괴물. 


 그래. 괴물


 그것이 흡혈귀, 그것이 히키코모리. 


 물론, 이것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히키코모리들은 고독사로 죽을 지언정, 누군가를 죽이지는 않을 위인들이니까 말이다. 


 또한 현대화 된 일본의 땅 위, 사면이 막혀버린 섬 나라의 땅위에 사는 사람이란 것들은, 이제는 모두 기본적으로 초식성을 띄고 있으니,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다. 


 보통이라면 그렇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피와 땀을 빨아 먹으며 살아가는 괴물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극악무도하며 구제불능인 최강 최흉의 흡혈귀-히키코모리가 아닐까. 바로 나처럼.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굴리며, 나는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무가치하게 같은 질량의 금보다 귀중한 시간을 내다 버리고 있었다. 


 아니, 이유라면 있다. 혹시, 눈치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흡혈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영문 모를 상황에 복잡해진 머릿속으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쓸모 없는 생각만 지껄이고 있었지만. 아무튼.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것이 사람의 말로 나타낼 수 있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구태어 나는 말하고자 한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말할 뿐이었다. 아니, 누군가가 들어 줬으면 좋겠다. 어처구니 없는 일에 휘말리고만 나의 이야기를.


 괴기스럽고 이상하고 낯설고도 두려운 그 이야기를. 그래 괴이한 이야기였다. 괴물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에 눈을 감고, 느즈막한 저녁이 다가오자, 위장이 배고프다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해 눈이 떠졌다. 대단히 일상적이다. 나와 같은 히키코모리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흉부'에 낯선 무언가의 질량이 느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남성의 흉근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내 가슴에 흔들리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해서 거울 찾아 보려 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모두 깨버린 것을 떠올리고, 다른 것을 찾아봤다.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유리로 된 모니터이었다. 


 놀랍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의 모습을 제외한 것들만이 모니터에 비추고 있었다. 


 금색의 기다란 머리카락, 검은색과 흰색, 붉은 색의 드레스. 커다란 가슴과 흰 피부. 내 눈에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이 유리에는 맺히지 않았다.


 귀신이라도 되어버린 걸까. 히키코모리 한 명이 고독사 하는 것은 이제 뉴스의 소재 조차 아니다. 일본의 어느 현이나 일어나는 일이고, 아직까지는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가 부족하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내가 죽어서, 나 자신이 죽는 것조차 모른 채로 귀신이 되었다는 것을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아니, 가장 말이 되는 이야기다.


"이 모습은...귀신이 맞는 걸까"


 고풍스럽게 나팔 거리는 드레스의 끝자락을 쥐고 조금 흔들었다. 딱히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 그냥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


 흔들리는 드레스 아래로 바람이 들어가 굉장이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입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올 만큼 당황했다.


"...민감하네... 귀신이라는 건... 아얏.."


 말을 하기 위해 혀와 턱을 움직이자, 날카로운 무언가가 입 안을 긁었다. 비릿한 쇠의 향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피가 나는 것 같았다.


"...상처, 피..?"


아마 이빨로 긁은것이겠지, 입 안에는 이물질같은 것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오른손의 손가락을 입에 넣고 이빨을 상태를 확인하자, 검지의 끝에 붉은 선이 하나 그어졌다.


"송곳니가... 뭔가 칼날 같, 뭐야 벌써 나았네"


피가 흐르는 오른쪽 검지 대신 왼쪽 손가락으로 이빨의 상태를 확인하는 찰나, 줄줄 세던 오른쪽 검지의 피가 멎고 상처가 사라졌다.


"이건 귀신보다는..."


 흡혈귀, 그 단어가 머릿속을 꿰뚫었다. 내게 그제서야, 내가 무엇이 되어버린 것인지, 무엇이 되어 버렸는지,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 깨닫고 말았다. 막아야 했다. 멈춰야 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것, 보다는 배가 고프네. 배가 고파."


 새삼스럽게, 나는 내 단잠을 방해했던 무언가를 깨달았다. 


 바로 공복, 허기, 식욕 ,어쩌고 저쩌고. 그것은 생물이 살아가는 것에 필수적인 욕망이었다.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고, 해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라?"


 무언가 먹을게 없으려나, 하고 냉장고 문을 열 생각이었다.


 적당히 어제 먹던 걸로 때우자, 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연 것은 베란다의 유리문이었다. 나는 자신의 바보 같은 행동이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흘렸다. 방범창이 굳게 닫혀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문을 닫았다.


"..."


 유리로 된 문을 닫으니, 창 밖의 반대편. 집 안쪽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 아무도 찾지 않게 된 이 곳. 이 곳에는 나의 모습이 비춰지지 않았다. 그


 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내가 아니었으니까. 이상한 소리였지만, 나는 그렇게 납득하고 고개를 돌렸다. 돌리려 했다.


"...아"


 창 밖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여기는 아파트 14층이니까. 대략 50미터, 3초 남짓한 시간으로 생명을 끝내버릴 수 있는 높이다. 누군가 나를 부를 수 없다. 그러면 누가 나를 불렀을까. 그것은 유리 창 안에 있었다. 내 곁에 있었다. 나였다.


"..."


 어제까지의 내가. 나를 불렀다. 어째서, 그렇게 물어봐도 대답을 들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는. 그 소년은.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두고, 모든 것을 끊어 버렸으니까?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쪽이 더 가능 성이 높을 것이다.


"..."


 소년의 모습 뒤로, 나의 모습이 지나갔다. 나의 과거의 모습이 지나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버린 부모님의 얼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버린 친구들의 얼굴도, 나의 이름을 빼앗아버린, 나의 얼굴도. 


 주마등을 겪어본 적은 없었지만, 분명 이것과 크게 다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죽음인 것일까? 


 나는 조금 웃으며 유리를 몇 번 두드렸다. 어쩐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나뉘어 바닥에 흩어졌다. 이제 보이는 것은 방범창의 창살과 바깥의 밤 풍경 뿐이다.


"..."


 그런 것 보다 배가 고팠다. 분명, 편의점이라도 갈 생각이었겠지. 냉장고에는 별게 없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되뇌였다.


 낯설고, 새로운 몸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이 정전식인 탓에 눌러도 인식을 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런 늦은 밤 시간에 계단을 이용할 사람은 없을 테니. 그런데,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무엇이, 어떻게?


"..."


 계단을 내려간 끝에 공동 현관에 도착했다. 어둠을 밝히는 새하얀 빛이 조금 어색하지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다만, 현관의 통유리로 만들어진 자동문이 열리지 않아서 고개를 기울였다. 거울에 모습을 비추지 못 하듯, 엘리베이터의 정전식 버튼을 누르지 못 하듯, 자동문의 적외선 센서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배고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유리로 된 문 앞으로 걸어갔다. 자동문 주제에 나를 거부하듯, 나를 이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는 것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이대로 손을 뻗어 간단히 깨버릴 수 있을 만큼 얇은 유리문인데도 말이다.


 "..."


 이윽고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갔다. 그 거리까지 가니 오히려 유리 문 밖의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안과 밖의 빛의 총량의 차이에 따른 매직 미러 현상이었으니까. 어두운 밖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밝은 이곳의 모습이 유리에 반사되어 거울 처럼 된다. 그 거울 속에 나는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대신, 그곳에는 내가 있었다.


 초라하고, 비참한. 세상 밖으로 나가길 포기한 내가, 보였다. 이 세상을 어설프게 살아갔던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 소년은 다른 사람들에게 맞고, 넘어지고, 굴러서 상처 투성이인 채로 나를 바라봤다.


"..."


 유리에 맺힌 그 모습에, 이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다른 거울들과 다름없이 그걸 깨버렸다. 서로 다른 높은 소리를 내며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 분명 환상을 본 것이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본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나는 찬찬히 걸음을 떼었다. 낯설기 그지없는 골격과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신체 구조이지만 한 걸음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의 원래 몸은 아니지만 내 의지로, 나의 발걸음으로 밖을 나가는 것은 얼마만의 일이려나, 이런 뜻 밖의 일로 외출을 하게 되다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아아..."


 크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어디서인가 아려오는 목과 뱃속의 갈증과 허기를 자극하는 달콤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위치를 알았다. 그리고 걸음을 내딛었다. 


 한 발자국, 한 발,


 한 발.


"..."


 어두운 밤의 거리를 한 발자국.


 가로등 몇 개만이 길을 비춘다. 두 발자국.


 조금은 시끄러운 거리를 벗어나, 세 발자국.


 조용한 도보 위로, 네 발자국. 다섯 발자국


 저기, 앞의. 여섯 발. 자 국.


 손을, 뻗으면. 일곱. 여덟. 아홉. 아홉?


"앗..."


 그 순간,


 나는 나의 심장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뺏앗겼다, 같은 은유적인 표현은 아니었다. 정말로 심장( )을 빼앗겼다.


"...크윽..!"


 찰나의 순간, 심장을 가져간 도둑을 향해 손을 뻗어 붙잡으려 했으나, 손에 남은 건 몇 방울의 피와 옷 조각이 전부였다.

 

"...아파"


 마음을 굳게 먹었다면 팔을 뜯어낼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사람의 팔을 간단하게 뜯어버린다니, 그것은 정말-


"괴물...이잖아"


 그래 괴물. 하지만 나는, 괴물이 아닐까?


 아니, 나(僕)의 심장(心)을 빼앗은 그 사람들이 괴물이 아닐까. 나의 심장을 깨부수고, 찢어버려, 방 안에 가두어 버린 그 사람들이 괴물이 아니었을까.


 나는, 조금 어설플 뿐이었는데, 조금 어색했을 뿐인데, 조금. 조금 조금.. 


"...아악, 아아악....!"


 나의 가슴(心)속 심장(心)이, 부서진 마음(心)이 아프다. 


 이미 누군가 빼앗아갔지만, 너무 아팠다. 피가 끓어 올랐다, 심장이 없는데도 피가 끓어 올랐다. 이유도 원인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난 비명을 질렀다.


"여기 있었구만, 아. 저건 내꺼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무슨 소립니까. 제가 먼저 발견했지 않나요"


"... 상태가,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군, 빨리 처리하지"


 내가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는 사이, 또 다른 도둑들이 나의 것을 가져가려 왔다. 다들 각기 다른 칼을 들고 내 것을 찢어가려 다가왔다.


 그런데, 나에게 가치 있는 것 남아 있는가, 내게 빼앗길 만한 것이 있는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도대체 무엇을, 나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건 동감. 빨리 빨리 썰어버리자, 고..?"


"...!..위험해!"


"온다. 피해!"


 그렇다면, 빼앗아 버리자. 


 분명 그런 생각을 했다. 했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겼다면, 다시 빼앗아 오자. 소중한 것들을, 다시 되찾아 오자. 


"...이럴 때는 합이. 제법 맞군요. 나름 동업자라는 건가요?"


"입 닫아 반푼이. 어따대고 동급 취급이야"


"...일단, 눈앞에 집중하지"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또다시 빼앗기고 만다. 


"일단, 하나."


"다음은요?"


왼팔을 빼앗겼다. 어깨죽지부터 깔끔히 잘려나갔다.


"...다리, 이상하네. 재생하지 않아. 뭔가 잘못 먹은거 아니야?


"...흡혈귀가 음식을 잘못 먹을 리가 있을까, 멍청이! 그렇지만. 아까 전, 비명을 지르던 것과 관련 있어 보이는군. 계속하지"


오른다리를 빼앗겼다. 무릎 아래부터 무참히 뜯겨나갔다.


"...이상하네요, 정말 이상해. 당신 정말 묵시록급 흡혈귀 맞나요? 저는 죽음도 각오했는데."


"...일단, 퇴치부터. 해답은 나중에 찾아도 늦지 않다"


 오른팔을 빼앗겼다. 팔꿈치부터 끊어졌다.


"뭔가, 허무한 걸. 이런 게 우리의 정점 이었다니"


"마지막 까지 방심하지 마라, 이건 사냥이 아니다-"


 퇴치다. 


 그들을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으로 왼다리를 빼앗아 갔다. 나는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애원해도 그들은 자비 없이 나의 일부를 빼앗아 갔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다리 하나를 버리고 하늘 높이 날았다. 어떻게 했나고 물어본다면, 뭐랄까. 대답해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뛸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걸 알았더라면 그냥 도망쳤을 텐데.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뭘 말하려 했더라. 


 아 그래.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서,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와 흡혈귀(きゅけつき)의 공통점이 뭘까. 이제는 답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답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다.


 괴물.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괴물.


 괴물이니까, 퇴치 당하는 거다. 


 괴물이니까, 빼앗기는 거다.


 굉장히 쓸모 없지만, 잠깐 그런 생각을 해봤다. 아까까지만해도, 이런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지만. 아마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인생을 되돌아 봤다. 유리에 비치던 그 소년의 삶을 되돌아 봤다. 그러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삶이었다. 


 부모는 자신의 최선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버렸다. 친구는 자신의 것으로는 인정하지 못하고, 결국 버렸다. 사랑은 자신의 마음을 채우지 못해 못해 결국, 버렸다. 자신은 이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결국 버렸다. 


"..."


 결국에는 자신이 버린 것이다. 


 이제 보니, 결코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빼앗겨 버린 것이 아니었다. 이것도 저것도 모든 것도, 결국 자신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이름조차도.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사람은 마지막에 와서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더니, 괴물도 마찬가지잖아. 그렇게 자조하며 중얼거렸다.


"..."


 그때였다.


 한 소년이 내 눈동자 비춰진 것이.






003





"...거, 거기, 당신"


 나는 삶에 대한 마지막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를 불렀다.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의 목소리는 찢어지고 갈라져서 알아듣기 힘들었을 테니 당연했다.

 

 그러니, 나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아무런 관련 없는 그를 불렀으면 안됐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불렀다. 나는 다급해진 마음에, 큰 소리로 그를 부르고 말았다.


"당신! 나.. 나를 도와줘....!"


 몸을 돌려 나를 보는, 그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가로등이 몇번 깜빡인다. 


 착지 할 때의 충격으로 부서진 모양이다.


 그 몇 번의 깜빡임 사이, 그가 내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가, 빼앗겨버린 내 몸의 일부의 흔적을 훑는다. 그리고 격렬하게 흔들렸다.


"어, 어이! 너, 너! 괜찮은 거냐!"


"... 괜찮아"


 이제 아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날카로운 삶의 고통 대신, 부드러운 죽음의 감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구, 구굽. 구급차를 빨리...!!"


"아니, 필요 없어, 다만...."


 피가 필요할 뿐이야,  점점 멍해지는 의식 속에서, 어쩐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지가 잘린 사람도 피가 필요하고, 사지가 잘린 흡혈귀도 피가 필요하단 말이야. 재미없는 농담 같은 상황에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니까..! 구급차를 부른다니까! 살아야 하잖아! 죽고 싶지 않잖아...!"


"살아있는, 인간의 피... 그, 게 필요해"


 나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조금은 내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곧 죽으니까. 이것도 별로 필요 없는 감정이겠지.


"그래 피가 필요하잖아! 그런건 초등학, 생이 봐도.. 잠깐. 뭐라고..? 살아있는-"


"살아있는, 인간의 피"


 나는 그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검은색 머리에 검은 색의 눈. 한쪽 눈은 가리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 아프다. 사실 졸리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흡혈귀의 존재가 흔들릴 만큼. 어지럽지만, 맑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잠깐. 잠깐....금발에"


"...그림자가 없는"


"아름다운 여자..."


"흡혈귀..."


 그래서, 그의 말을 잘 들을 수 없었다. 죽음이 코 앞까지 다가 오다니. 그럴 수 밖에. 하지만. 그러니까. 구급차로는 안돼. 그러니까, 빰은 때리지마. 아프니까. 아파. 미안해요. 다시는-


"뺘, 뺨 때린 건 미안! 나중에 사과할게! 무릎이라도 꿇을 테니까... 어이! 정신차려! 피, 피는 얼마나 필요한데? 젠장! 줄 테니까 눈 좀 떠봐! 흡혈귀!"


"... 대략, 한 명 분...?"


"그래? 한 명 분, 이면 나 혼자서... 잠깐? 혹시 한 명 분이라는게"


"그래, 한 사람의 모든.... 피. 그거면, 살 수 있...어"


"모든, 피...? 그럼, 내가 피를 다 줘버리면..."


 그의 떨리는 목소리애 옅어져가던 의식이 조금 되돌아 왔다. 


 그 흔들리는 목소리에 대한  대답이 순순히 흘러 나왔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이 대답을 한 것 같았다. 


 차분하게, 침몰하고 있는 의식이 대답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참으로 편리한 몸이었다. 


"너는, 죽겠지"


".....그런.."


 그래서 이 말을 했다. 그가 멀어지도록 말했다. 괴물에게서 멀어지도록, 아무런 관계 없는 사람이 멀어지도록. 


"그러니, 가던 길. 가. 나는... 괜찮으니까. 나는, 괴물이야. 그, 러니까. 이런 최후가. 어, 울려"


"..."


 피가 대부분 빠져나간 지금은, 아까부터 느껴지던 증오나 혐오같은 것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애초부터 그랬어야 했다. 나같은 것이 그런 감정을 가지고, 표현해선 안됐다. 


 내가 잘못했기에, 


 내가 버려진 것이니. 그렇지만,


"....도와 달라고 말하지. 말, 았어야 했어, 아무 것도 말하, 지. 말았어야 했어. 나, 같은게. 그런 마음을 품었으면 안, 됐어.. 미안, 미안해. 그러니, 까...그러니까. "


"..."


 가로등이 몇 번 깜빡인다. 


 아니, 내 시아가 깜빡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생명의 불꽃이 깜빡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그의 인기척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점점. 점점. 이제는, 


 아아. 정말,로. 나는.


"...시, 싫어... 싫어....! 죽, 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주, 죽고  싶지 않아!! 제발, 도와줘! 도와줘.. 살려줘! 죽는건.. 싫어.. 싫어.. 싫단 말이야...!.. 도와줘. 제발.. 제발... 이대로,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아. 없어지고 싶지 않아!! 아무나 누군가 제발!"


그의 발걸음이 멀어지자, 단숨에 의식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슴에 쌓인 것들이 터져나왔다. 심장을 빼앗겨버린 나 같은 괴물도 죽음이 정말로 바로 앞까지 쫒아 오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정말로, 나의 앞에 찾아 온 것이다.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내게 손을 뻗는다.


 정말로, 바로 앞이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미안..."


 바로 앞까지 찾아온 무언가에게, 나는 계속해서 사과했다. 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하는 사과의 말인지는 모르는 채로 계속해서 사과했다. 그저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 마지막.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었다. 그때 였다. 


"포기하지마 이 멍청이!"


"...에?"


 그 순간, 내 입가에 어느 남자의 목이 들이밀어졌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죽어가던 몸을 잠시, 다시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눈을 다시 떳다. 


 방금 전의, 그였다. 이름도 모르는 그였다.


"이, 이 다음은 전부 네가 할 일이잖아..!"


 그가 자신의 목을, 나의 이빨 앞에 가져온다. 나는 잠시 동안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해, 당황했다. 가로등이 세 번 깜빡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그 의미를 간신히 깨달았다.


"...괘, 괜찮아?"


"괜찮지. 않은 게 당연하잖아...!"


 어째서. 나는 그런 말을 입에 담으려 했었다.


"어, 어째서 인지는 잘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지금 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 그저 무책임하게 삶을 살아갔을 뿐이라고!"


 그는 내게 소리쳤다.


 아니, 자신에게 소리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소리치고, 화를 내며 슬퍼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


"무리를 해서, 살아가야 할 이유 따위는. 정말 하나도 없거든! 자신의 목숨을 우선해야 하는 이유 따위는 없다고. 나 따위가 죽든지 말든지.이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을 테지!"


 그렇게 되는 대로 지껄였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따위는 있을 수 없는데. 그리고 정말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괴물에 불과한 나인데.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너는 다르잖아. 너는 아름답잖아. 너는 살아갈 가치가 있어...!"


"...!..."


 모순 투성이의 말,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가, 그 음절이, 그 몇 마디가 나에게 날아왔다. 살아갈 가치가 있다. 그 말을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 생에는 좀 더 요령 있게 살아 갈 거야, 적당히 사람과 사귀고 적당히 고민하고, 모든 일 하나하나에 죄의식 품지 않고, 적당히 다른 사람 탓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테니까"


"..."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까까지 흘렸던 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그의 몇 마디 말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 아니다. 말 뿐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널 살려주마! 내 피를 마셔!"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나를 위해 목숨을 건네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 본 사람이라도 망설이지만, 흔들림 없이 구원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주마, 한 방울도 남김 없이 짜내라고...!"


"고, 마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괴물도, 


 진심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그럼에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일까. 


 나에게 살아갈 가치가 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목숨을 건네고, 자신의 삶을 포기 했기 때문이었다. 


"..."


 그의 인생이라는 부를 수 있는 것이 녹아있는 붉은 것, 그 감미롭고 부드러운 것이 내 목을 지나 나의 살이 되어가고 있는 것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로, 내게 목숨을 건네 주었다. 나를 구했다. 나를 구원했다. 정말로. 정말로. 아아. 정말로. 이 기분을,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래 마치...


"...안녕 흡혈귀 짱.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모두 빨아 먹으면 정말로 죽어버린다고. 식욕왕성에 건강한 건 좋지만, 뭐랄까. 기운도 좋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그의 피를 모두 빨아버리기 직전,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이런 한 밤중에 반쯤 찢어진 사이델릭 알로하셔츠를 입고, 붕대링 칭칭 감고다니는 다니는, 그를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그래. 지나가던 아저씨. 실제로, 지나가던 중이었던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단지, 그에게는 그 수식어가 잘 어울렸다. 무척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