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다는 것.
그 간단한 행동이 어째서 날 이렇게 매료시켰을까?
이유는 모른다.
다만, 달리는 게 좋다.


마라톤 같은 장거리 레이스도 좋고, 폭발적인 스피드의 단거리 달리기도 좋다.
더욱 더 빠르게 달리고 싶어서 더욱 빠르게 달리고, 더욱 오래 달리고 싶어서 오래 달렸다.


그 결과, 나는 세간에서 괴물 신인이라고 부르는 초특급 육상 유망주가 되었다.
육상 선수 생활은 도저히 질리지 않았다.
열심히 달려서 이기면, 더 빠른 사람들과 경쟁할 수 있다.
선수가 되기 전까지는 나 혼자 달리는 게 좋았다면, 선수가 되고 난 뒤로는 다른 사람들과 경주하는 것의 재미를 깨달았다.
달리고, 달리고, 이기고, 또 달리고 싶다.


그렇게 더 달리기 위해 다음 경기의 준비를 하던 도중, 문제가 발생했다.
그냥 멍청한 짓을 저질러서 다리가 부러졌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다리가 부러진 이상 더 달릴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아.
재활 훈련을 끝마치면 또 달릴 수 있을 거야.
그런 희망을 품고 다시 달리기 위해 재활 훈련에 열중하던 중.


트럭에 치여 죽었다.
뭔가 좀, 허무하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실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여자아이의 몸이 되어서.


내가 깨어날 줄 몰랐던 것인지 병원은 아주 난리가 났다.
혼수 상태였어서 그런가?
내 기억이 없는 걸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후유증이 온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의사에게 현재 내 상황을 설명 듣길.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나는 무언가의 병 때문에 병원에 혼수 상태로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몸이 점점 굳어가는 일종의 희귀병이었다는데, 내가 빙의한 탓인지 지금은 아주 말짱하다.
그렇게 여차저차 퇴원 수속을 끝마치고, 유산으로 남겨진 집에 홀로 남은 나는 생각했다.


다시 달릴 수 있다고.
몸이 전보다 약해지긴 했지만, 그건 다시 단련하면 되는 거다.
두 다리가 움직이는 한, 사람은 누구나 달릴 수 있다.


기본적인 체력을 만들기 위한 훈련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곧바로 육상 선수가 되는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계속 달리고 싶다면, 육상 선수가 되는 게 가장 편했으니까.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프로 육상 선수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육상 대회는 전부 작은 동아리나 아마추어들이 여는 소규모 대회일 뿐이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분명히 병원에선 다들 육상 경기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해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나왔다.


우마무스메.
인간의 외형을 하고, 말의 힘을 지닌 소녀들.


이 세상에서 육상 경기는 그녀들의 전유물이 되어있었다.
인간이 아무리 힘을 내도 그 누구도 우마무스메를 이길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인간이 육상 선수를 하는 일이 없어졌다.
인간끼리 모아서 대회를 열려고 해도, 우마무스메들이 달리는 것보다 박진감도 없고 재미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서서히 인간 육상 대회가 사장된 것이다.


뭐야, 그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니,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내가 다시 육상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안 날,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잔뜩 잠을 잔 덕분일까?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주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리고 말았다.
우마무스메들만 경주를 하는 세계라면, 내가 우마무스메가 되면 되는 거잖아?


사람들이 말하길, 우마무스메란 달리는 걸 좋아한다 했다.
나도 달리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말하길, 우마무스메란 미소녀라고 한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내가 봐도 나도 미소녀다.


사람들이 말하길, 우마무스메는 꿈과 희망을 전해준다고 한다.
꿈과 희망을 전하는 건, 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온갖 이유를 덧붙여 생각해봐도, 내가 우마무스메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나는 사실 우마무스메였던 거다.
단지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을 뿐.


난 우마무스메다.
히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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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 모릅니다.

경주도 모릅니다.

말딸은 애니만 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