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마무스메다.
우마무스메로 태어났으면 살면서 경주는 한 번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우마무스메가 경주를 나서려면, 뭘 해야 하지?


인터넷을 이용해 각종 대회들의 규정을 살펴보자, 묘한 규정이 하나 보인다.


"트레이너?"


바로, 트레이너가 없으면 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뭐, 이전 세계에서도 각 선수마다 매니저들이 붙었으니 그것과 비슷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그렇다면 대회에 출전하려면 개인 매니저를 구해야 한다는 건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정신이 똑바로 있는 사람이라면 내 트레이너가 되어주겠단 소리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막 병원에서 퇴원한, 희귀병을 앓던 우마무스메의 뭘 보고 데뷔시킨단 말인가?
당연한 거지만 지금의 내 몸은 다른 우마무스메들과 경쟁하기엔 너무 빈약하다.
일단 최소한의 경쟁을 할 수 있을 수준까진 내 몸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게 몸을 끌어올린 뒤에, 거리로 나가서 트레이너를 구해?
아무리 생각해도 묘한 장소로 끌려가서 자기소개를 하게 되는 미래만 떠오른다.
결국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트레센 학원."


정식 명칭 우마무스메 트레이닝 센터 학원. 
그곳에 입학해서 트레이너를 구하는 수 밖에 없다.


다른 학원들도 존재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시설도 그리 좋지 않고 성적도 좋지 않다.
그냥 동네 헬스장이나 체육관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레이스에 나가고 싶다면 나는 반드시 트레센 학원에 입학해야 한다.


트레센 학원은 매년 2월마다 입학 테스트를 하는데, 당연하게도 최소 커트라인이란 것이 존재한다.
지금부터 나의 목표는 내년 2월이 될 때까지 트레센 학원의 커트라인에 맞춰서 몸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어디보자, 지금이 8월달이니까 6개월만에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네?


6개월?
떡을 치고도 남겠군.


전생에 그와 비슷한 일은 밥 먹듯이 반복해왔던 나다.
우마무스메의 우월한 피지컬이라면 더더욱 쉽겠지.
정말, 우마무스메로 환생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무척 힘들 뻔 했잖아?


아하하.




#




그는 씹덕이다.
음, 그냥 씹덕이라는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겠다.


그러니까 카무라 마니는 중증의 우마무스메 오타쿠다.
대형 레이스를 관람하기 힘들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우마무스메 사진작가를 전업으로 삼을 정도의 씹덕이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지만, 꽤 짭짤한 금액을 벌고 있기에 다시 직장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이야... 역시 좋다니까..."


카무라는 그 날도 경주장에 다녀와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늘의 수확물을 담은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히죽히죽 웃던 카무라.
같은 여자가 뭐가 좋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우마무스메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이 소녀들의 사진을 봐라.
진심으로 달리는 것이 좋고, 경주가 좋아서 나오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우마무스메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달린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뭐, 다른 오타쿠들은 위닝 라이브에 푹 빠진 경우가 많지만 카무라는 조금 달랐다.
위닝 라이브의 모습도 물론 무척이나 좋지만, 카무라는 그녀들이 달리는 모습이 더욱 좋았다.
흐뭇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던 카무라는 문득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카무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산책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창백한 피부와 하얀 머리카락이 합쳐져 마치 유령 같은 모습이었지만, 첫 인상과는 정반대로 그녀의 모습에는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달리는 것이 정말 즐겁다는 듯,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달리는 그녀의 모습은-


그래, 마치 우마무스메를 닮아있었다.


그래서일까?
카무라는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어 올려서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저 모습을 기록하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찰칵, 하는 소리가 고요한 공원에 울려퍼진다.
그러자 누군가 자신을 촬영한 것을 눈치챘는지 소녀가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셔터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카무라는 한창 달리고 있을 때의 생기가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진 것을 보곤 속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사진. 찍으셨어요?"
"네, 네?"


그런 감상에 빠져서인지 카무라는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 때까지 멍하니 아까의 광경을 뇌리에서 반복할 뿐이었다.
소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걸 깨달은 카무라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아, 죄송합니다! 몰래 촬영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달리는 모습이 너무 멋져서 저도 모르게..."
"달리는 모습이 멋졌다고요?"
"네, 네. 마치 우마무스메처럼요."


다행히 소녀는 카무라의 변명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우마무스메처럼 멋진 건 당연하죠. 저도 우마무스메인걸요?"
"우, 우마무스메시라고요?"
"네. 우마무스메."


카무라는 소녀의 폭탄선언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혔다.
이 소녀가 우마무스메라고?
카무라는 자신이 놓친 것이 있나 다시금 소녀의 몸을 흝어 보지만, 우마무스메의 특징인 길쭉한 귀와 꼬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자기가 우마무스메라고 할 이유는 없으니, 정말 우마무스메가 맞는 걸까?


"농담... 이신가요?"
"아뇨. 진짠데요?"


그래, 우마무스메라고 꼭 귀와 꼬리가 진하게 발현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이 소녀는 비교적 귀와 꼬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아, 그럼 지금 훈련하고 계시던 건가요?"
"그렇죠. 목표는 트레센 학원."
"트레센 학원! 대단하시네요."


긴가민가하던 카무라의 의혹은 소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의해 완벽히 자취를 감췄다.
그 어떤 인간이 트레센 학원에 입학하려고 이렇게 자율 훈련을 하겠는가?
애초에 인간은 입학이 불가능하고, 인간이 트레센 학원을 나와봤자 뭘 하려고?


"흠흠, 아무튼. 아까 사진 찍으신 거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저도 좀 궁금하거든요."
"아, 네. 불편하시다면 바로 삭제해드리겠습니다!"


카무라에게서 사진기를 넘겨받은 소녀는 자신을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무언가 고민하는 듯 보였다.
어찌나 집중해서 사진을 보는지, 중얼중얼 혼잣말을 중얼거릴 지경이었으니까.


"으음... 자세를 좀 더 교정해야겠네. 역시, 너무 오래 누워있던 게 문젠가?"
"음, 저기..."
"아, 네. 사진은 지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쁘게 잘 찍으셨으니까요!"
"괘, 괜찮나요?"
"어차피 전 세계 최고의 우마무스메가 될 테니까, 사진은 앞으로 잔뜩 찍힐 테니까요."
"그, 그렇군요..."
"그럼, 전 이만."


포부 하나 당찬 소녀다.
카무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달리기 시작한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트레센 학원이 목표라 했던가?
그렇다면 2월달에 열리는 트레센 학원의 시험에 모습을 반드시 드러낼 터.
원래 입학 시험장을 구경하러 갈 생각은 없었지만, 저런 아이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래도 자신은 저 아이의 1호 팬이 된 것 같다.


"아, 맞다. 이름."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
하지만 괜찮다.
분명, 저 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볼 기회는 더 있을 테니까.




#


마침내 2월.
트레센 학원의 입학 시험날이 밝았다.
그동안 먹고 자는 것도, 입학 시험료도 모두 부모님의 유산이 해결해줬다.
고마워요, 누군지 모를 부모님.


입학 시험 접수를 하는 날, 늦잠을 자서 늦을 뻔 했지만 다행히 새로 사귄 착한 친구 덕분에  늦지 않고 무사히 접수할 수 있었다.
답례로 그 아이에겐 맛있는 걸 마구마구 사줬다.
음, 어디보자, 접수 카드에 내 이름이 뭐라 쓰여 있더라?


"화, 와이트?"


순간 화이트인 줄 알았네.
와이트는 또 무슨 뜻이야?
아무튼, 내 이름은 와이트다.


컨디션은 완벽.
오늘을 위해 준비한 승부복도 완벽하다.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몸 단장이 잘 되어있는지 거울 앞에 서서 확인한다.


흠흠, 언제처럼 귀여운 얼굴이네. 합격.
피부는 언제처럼 창백하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합격.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를 되찾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마무스메여서 그런가 아무리 태양을 쐬어도 피부색이 변하질 않는다.


그리고 꼬리!
며칠 전에 미용실에 갔다가 사고가 터져서 많이 짧아졌지만, 그래도 미용실에서 받아온 가모 덕분에 우스꽝스럽게 보이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귀!
아직 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달릴 때마다 귀가 시려 사온 귀마개를 덮으면 완벽하다!


흠, 좋아.
누가 봐도 단번에 시험에 합격할 우마무스메다.


"출발!"


자, 세계 최고의 우마무스메가 되기 위한 첫걸음.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