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털, 푸른색의 컬러링

특징은 경이적인 스태미너, 장래유망한 [신참 트레이너를 한사람 몫으로 키우는 것] 이 취미인 모성 캐릭터

천재를 천재로 만든 말. 슈퍼크릭이다


비와하야히데와 함께 말의 머리크기 = 가슴사이즈라는 루머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

원본 일러스트에서 나오는 옷은 예전에 유행했던 동정 죽이는 스웨터

어른의 사정으로 디자인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등이 드러나는 전 / 후 의 온도 차가 큰 옷인건 변함이 없다




https://youtu.be/Y0Kf2LdfuZU



https://youtu.be/4VycckPw3R0



(타케 출연한 우마무스메 관련 영상들 중 일부)



슈퍼크릭을 이야기 하기전에 먼저 타케 유타카라는 기수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유명 기수이자 조교사인 타케 쿠니히코의 3남으로 테어난 그는 87년 데뷔

18년기준으로 통산 4000승으로 JRA 역대 최다 승리 및 승마 수 기록, 더비 6승에 빛나는 천재 그 자체를 보여주는 인물


아버지는 잔디의 마술사라고 불릴정도로 전설적인 기수

할아버지는 경마협회 전 회장, 당시 홋카이도 경마협회 중진

백부는 목장주

일본 경마계의 로열계층이라고 할수있는 빵빵한 집안에서 이 천재기수는 태어났고 그만큼 기대를 많이 받았었다.


이러한 집안이다보니 철들 무렵에는 이미 "기수가 된다" 라는 것이 꿈이자 목표가 되고 있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승마를 시작. 유전자까지 각인된 말에 관한 본능일까, 말을 점 찍을줄 알고, 말들에게 사랑받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1987년 경마학교를 졸업. 슈퍼크릭을 만나기 전까지 G1 우승은 없지만

( 재능이 뛰어나도 신인기수에게 G1을 맡기는 짓은 아무래도 힘들었고, 또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선배들이 텃세를 부리던 시기였다 )

최종적으로는 연말에는 69승을 올리며 신인 최다 승수 기록을 27년만에 경신, JRA 최다 승리 신인 기수를 수상하였다






신데렐라 그레이에서는 나세 후미노라는 이름으로 등장

타케는 50음도에서 1음도씩 내려서 나세

(타치츠테토 > 나니누네노) (카키쿠케코 > 사시스세소)


유타카라고 읽는 豊 는 분노(ぶんの) 라고 읽으므로 文乃 와 동일 발음이 된다

이를 이름으로 치환하면 후미노


어찌되었든 타케 기수는 슈퍼크릭을 타고 첫 G1 등반에 성공하여 최연소 클래식 우승에 성공하였다.





물론 슈퍼크릭이 처음부터 될 성 좋은 말은 아니었다

혈통은 프랑스 중장거리에서 활약한 스테이어(장거리 경주마) 노 어텐션

극단적인 장거리 혈통으로 태어난 슈퍼 크릭은 국제화의 흐름에 따라 이미 중거리 노선으로 전환되고 있던 일본 경마계에서는 한세대 뒤쳐진 혈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인맥을 거듭하여 낙찰된 가격은 헐값인 810만엔

마주는 이 말에게 "지금은 개울물(Creek) 이지만 흘러흘러 큰 강이 되었으면 한다" 라는 뜻으로 슈퍼크릭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한편으로는 마주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골프를 하다가 개울물(Creek)에 공이 떨어져서, 혹은 당시 쥐고있던 클럽이 5번 우드클럽(크릭) 이었기 때문에 등등의 이야기도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본래는 3살 여름 데뷔를 목표로 했지만, 출주 당일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경기를 취소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겨울로 미뤄지게 되었다. 첫 신마전에서는 사행을 하면서도 2착, 두번째 신마전에서는 여유롭게 1착을 거두면서 당시 기수였던 

타바라 기수는 "어쩌면 거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크릭을 띄워주었다.


슈퍼크릭이 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키사라기상에서 3착을 한 이후 타케 기수를 만나고부터라고 볼수 있다.

타케로 기수가 바뀐 이후 그간의 부진이 거짓말 같이 스미레상을 승리.

그러나 불행히도 더비를 목표로하던 도중 골절상을 입고 장기간 휴양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부상자 모임...)


그렇게 사츠키상은 트라이얼 실패로 불가, 더비는 부상으로 날려먹고

반년간의 재활끝에 출주한 고베 신문배에서는 3착


진영에서는 "휴양 끝에 복귀전에서 5착 이내면 괜찮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킷카상에 출주하기 위해 교토 신문배에 출주하였으나

직선코스 마군에 감싸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가쿠엔투비트에 기승했던 사카이 기수의 채찍에 슈퍼크릭이 휘말려 폭주하는 등의 사고가 겹겹이 쌓여서 6착에 머물어 킷카상 출주권이 사라졌다. 이 불합리에 대해서 조련사는 "이딴 병신같은 일이 다 있냐" 라면서 불만을 토로했고 타케 기수 또한  "이 정도의 부조리를 경험한 것은 인생 처음이다" 라고 코멘트하였다.


당시 킷카상은 최대 36마리가 등록 가능, 슈퍼크릭은 상금순으로 19번째에 위치했기에 보결로 남아있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말과는 다르게 타케 기수는 킷카상에 출주할 자격이 있었기때문에 마방에서 킷카상에 같이 출주한 말을 둘러보고 있는 도중

슈퍼크릭이 타케를 보더니 옷깃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에피소드


타케 기수는 그때 그간의 크릭과의 추억도 있었기때문에 크릭을 타겠다고 결심을 굳혔고, 마주와 다른 스탭들은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천재기수가 그런 일로 결정하는 것은 안될일이라며 만류했지만 타케는 "크릭이 안된다면 킷카에 못나가도 어쩔수 없죠 ㅎ" 라면서


'다른 말들을 탄다면 어쩔지는 몰라도 크릭을 탈수 있게된다면 확실하게 이길수 있다' 라는 신뢰감을 보였다.


여기에서 나온 JRA에서의 문구가 [역지명]




이때 마이넬 후릿세가 출주를 사퇴, 더불어 센슈오칸이 회피하는 것으로

이전 가쿠엔투비트의 리벤지 매치가 성립되면서 킷카상에 출주할수 있게되었다.


이 일을 바탕으로 마이넬 후릿세를 관리하던 클럽마주 오카다와 실질적으로 말을 키웠던 나카무라 조교와의 관계가 한때 악화되거나 하는 등의 일이 있었지만 그건 차차,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하도록 하고, 어찌되었건 출주


당일에는 야에노무테키와 딕터 랜드에 이어 3번인기. 물론 이 3번인기도 타케유타카 기수의 G1 무대라는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17번 외곽이라는 다소 불리한 코스를 배정





킷카상

교토 3000미터

일반적인 중거리와는 한창 동떨어진 거리

게다가 옛 지명의 이름을 빌려 사용된 요도(淀)의 언덕의 고저차는 내측 3.1m, 외측 4.3m 의 경사로

그렇기 때문에 킷카상에 붙여진 별명 " 가장 강한 말이 이긴다"

그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강인한 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스테이어로써 혈통을 말하는 듯 넉넉한 파워와 스태미나를 기반으로 꾸준하게 달리는 슈퍼크릭

타케는 마군속을 달리고 있었지만 슈퍼크릭과 함께 그 눈은 3코너 이후의 눈앞의 작은 틈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두로 달리는 말 카츠토쿠신은 이전에도 타보았던 말, 저 말의 습관은 직선에 들어서면 바깥라인으로 비껴진다.'


말을 사랑하고 습관을 기억하던 그의 예상대로 4코너를 돌자마자 직선이 비게되었고 슈퍼크릭은 그 잠시동안의 틈에서 인코스를 거침없이 파고들어 킷카상을 우승하였다.



한쪽에서는 변방에서 올라온 [괴물] 오구리캡과 [하얀 번개] 타마모 크로스와의 맞대결

한쪽에서는 [천재] 타케 유타카의 최연소 G1 우승


분명히 당시의 일본 경마는 너나 할 것 없이 열렬한 관심을 받기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연말 결산의 아리마기념

거기에서 맞붙는 시대의 호적수들

킷카에서 우승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백전연마의 괴물들 앞에서는 한 수 밀린다는 것일까


 



사커보이(딕터 스트라이커), 오구리 캡, 타마모의 기백에 눌린 것일까

첫 클래식 G1 이후의 제한없는 G1 리그의 압박감 때문일까


밀리지 않고 3착으로 입착하여 차세대의 자질을 보여준 슈퍼크릭이었지만 진로방해가 인정되어 실격.

사커보이가 3착으로 인정되면서 88년의 마지막은 쓴맛을 다셔야했다.


타케로 보면 젊은 나이로 3번째의 승마 중단 패널티




89년 헤이세이로 연호가 바뀌었지만 크릭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연초에 발병한 근육통이 빠지지 않아 상반기를 통째로 쉬게 되었다.

그렇지만 복귀후 10월 교토대상전에서 레코드를 경신, 천황상(가을)에서는 오구리 캡을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하여 G1 2승을 거두었다.

이쯤에서 새롭게 등장한 다크호스 이나리원과 함께 불려지는 이름이 헤이세이 3강이다.


(헤이세이 3강)


재밌는 점이라면 슈퍼크릭이 복귀하기 전까지 성질급한 말 이나리 원을 헤이세이 3강이라는 이름까지 올려놓은 것도 타케 기수..

역시 가슴인가..

그래도 가을시즌 슈퍼크릭이 복귀하니까 거짓말처럼 슈퍼크릭에게 돌아갔다. 조강지처가 좋다.


이어지는 재팬컵에서는 운이 없었다고 말할수 밖에-

오구리캡은 탈세문제와 연루되어 마주가 변경된 후, 그 자금을 벌충하기 위한 강행군에 있었고

마일 챔피언십에서 뱀부메모리와 격전을 치르고난후 1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

반면 수퍼크릭은 만반의 준비라고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경마에 절대란 없다



https://youtu.be/f-oDuC0zHiM




이븐베이가 뛰쳐나가면서 만든 초 하이페이스에 모두가 폭주한 가운데

전에 없던 포텐셜을 보이면서 홀릭스가 세계레코드를 경신, 오구리캡은 그간의 피로가 뭐냐는듯 투쟁심을 발휘하며 2착까지 올라갔다.

오구리는 강행군때문에 동정의 여론을 가진 상황. 오구리의 선방에 대중의 여론은 뜨겁게 불타면서 "졌지만 이긴말" 이라는 찬사를 했고

반면 만반의 준비로 기다리던 슈퍼크릭은 "결정력이 부족한 말" 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https://youtu.be/P0xAti8Zb9o




다음 리벤지 매치는 아리마기념

오구리의 모습에 팬들은 엄청나게 모여있었고, 타케기수는 그에 반해서 분한 마음도 있었는지 "오구리캡은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수없는 말" 이라고 혹평하여 오히려 타케 + 크릭은 당시 신드롬과도 같았던 열성 오구리캡 신자들에게 안티편지까지 무더기로 받은 상황


한층 가다듬은 아리마 기념에서 크릭은 드디어 오구리캡을 제치나 싶었지만 



생각치도 못했던 애인* 에게 마무리를 뺏기고 만다.

(일본에서는 사랑하는 반려는 연인, 그저 관계로 지내는 불장난 상대를 애인이라고 칭함)


기수도 뺏기고 그 이후론 쭉 부진- 천황상, 재팬컵에서 승리까지 빼앗긴 가뜩이나 성질 더러운 말의 분노를 누가 감당하기나 할까


타케는 이나리원에게 감쪽같이 G1 3승과 연도대표마까지 뺏기면서 89년도를 마무리해야했다.



https://youtu.be/sV7qcJZ3trE




슈퍼크릭의 마지막 시즌이 되는 90년

사전 준비로 오사카 월드컵을 낙승한후 봄황상에서 아리마기념의 복수를 달성한 타케는

드디어 슈퍼크릭에게 천황상 2연재패라는 칭호를 달아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타카라즈카를 근육통으로 회피, 교토대상전에 복귀하여 우승하고 다음 천황상을 준비하나 싶었지만

계인대염이 발견되어 은퇴를 발표하였다.




이래저래 느긋한 성격이며 둔감한가 싶을정도로 침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무리한 훈련이라도 내색없이 소화했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부상이나 컨디션 불량을 알아채기 힘들어서 고생했다고 한다.

선두에 서게되면 긴장을 풀어버리는 단점은 선행마 특유의 성격인걸까... 


신데그레에서는 유리구두라고 표현할 정도로 왼쪽 다리에 문제가 있었다.





역지명.


제가 데뷔 2년 차 가을의 일입니다.

킷카상을 어떤 말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한 마리씩 돌아보기로 했고, 마지막이 슈퍼 크리크였습니다.

무의식 중에 남겨 놓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때 제가 갔더니,

소매를 물고 세차게 몇 번이나 잡아당겼습니다.


「어딜 가는 거야, 이제 더 봐야 할 말은 없잖아.

나랑 같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쪽이 먼저, 한발 앞서 저를 태우기로 결정한 것 같았어요.


아무튼 저의 첫 G1 타이틀은, 슈퍼 크리크가 가져다 주었습니다.


결국, 좋을 때 나쁠 때 포함해서 12번 정도 탔던가요…….

오쿠리 캡, 이나리 원과의 3강 대결의

제100회 천황상·가을도, 슈퍼 크리크로 이겼고,


그런 의미에서 이 녀석이 최고의 짝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 타케 유타카 -




 



혹자는 말한다. 신데렐라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공주가 아니냐고

그저 운 좋게 해피엔딩을 맞이한 여자가 아니냐고


그러나 신데렐라가 감동적인 이유는 해피엔딩 이어서가 아니다

꿈을 꿈으로 남겨두지 않아서이다. 스스로 현실에서 벗어나 춤을 추러 나가려는 용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겠어." 그녀의 야망에 불을 지폈던 계기가 왕자였을 뿐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여 무엇인가를 이루어낸다.

그 얼마나 작지만 위대한 일인가?



마지막은 월광조례를 참조


꼭두각시 서커스나 요괴소년 호야로 유명한 후지타 작가의 만화

몇몇 사람들은 캐릭터에 입체성이 없고 지난 작품과 같이 대하적인 떡밥이 없다고 시시하다는 평가를 내리지만

개인적으로는 몇몇 부분은 꼭두각시 서커스나 호야보다도 더 좋아하는 작품


내용참조는 : https://arca.live/b/umamusume/25623688

일 위키피디아 : https://ja.wikipedia.org/wiki/%E3%82%B9%E3%83%BC%E3%83%91%E3%83%BC%E3%82%AF%E3%83%AA%E3%83%BC%E3%82%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