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째서... 내가 황제가 되기를 바라며 간담상조 하던 지기지우인 그대가..."


심볼리 루돌프는 학생회실의 회장석에 엎드려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구깃구깃한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고,


그 종이의 제일 위에는 '유언장'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



"트레이너, 미안하군. 잠깐 일이 있어서... 응? 아무도 없는건가?"


심볼리 루돌프, 트레센 학원의 학생회장인 그녀가 학생회장실에 갔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G1 중장거리 레이스란 레이스, 그리고 URA 잔디-중장거리 대회에서 우승한 그녀는 명실상부한 황제로써 불리는 자가 되었다.


그런 그녀는 신학기를 맞은 트레센 학원에서 길을 잃은 신입생에게 길을 알려주다가 원래 모이는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것이다.


"뭐, 그런 날도 있는 거겠지."


하지만 막상 기다리고 있어야 할 트레이너가 없는 상황,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참에 미뤄두었던 학생회 업무 관련 서류를 꺼내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오후의 학생회실에서 홀로 심볼리 루돌프는 일을 하고 또 했다.


문이 열렸다.


"어라? 회장~ 오늘은 트레이닝 안해?"


"아아, 테이오인가. 트레이너가 오늘은 무슨 일이 있는지 늦어서 미뤄뒀던 일을 하고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트레이너가 아니라 토카이 테이오였다.


"연락은 해본거야? 아니면 이 토카이 테이오님이 쌩~ 달려서 끌고올까?"


"전화기가 꺼져있긴 한데 별 일 아니겠지. 그렇게 신경쓸 필요는 없을거다."


"그럼 오랜만에 나랑 한번 달리자 회장~"


"트레이너가 언제 올지 모르니 그럴수는 없지. 그리고 신학기라 처리해야할 일이 많아서 그건 안되겠는걸. 그러고보니 오늘 학교 앞 카페에서 신메뉴인 벌꿀을 넣은 커피 시음회를 해본다는데 그쪽에 가보는건 어떨까?"


"정말? 그럼 난 가볼게~ 하찌미 하찌미 하찌미~"


벌꿀이라는 말에 토카이 테이오는 노래를 부르며 학생회실을 나갔다.


잠시 뒤,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응? 회장, 오늘은 트레이닝을 하는 날 아니었나?"


"아아, 브라이언인가? 원래 트레이너와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그가 오지 않아서 말이야."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트레이너가 아니라 나리타 브라이언이었다.


"그러고보니 브라이언, 오늘은 학생회 일이 따로 없었을텐데 무슨일로 온거지?"


"그루브가 빨리 해야할 말이 있다고, 전화로 하긴 그러니 여기 모이라고 해서 온건데?"


"흐음?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혹시 학생회의 일이 아닌건가?"


"나야 모르지. 다른 학생회 임원에게는 따로 연락하지 않은 것 같으니 개인적인 일일지도 모르겠네."


"뭐, 조금 이따 오면 들어보도록 하지."


"그런데 회장의 트레이너는 아무말도 한 것이 없어? 이제 거의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게 아냐?"


"무슨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연락을 했을테니 말이야. 애초에 트레센 근처에서 사건이 일어났으면 내가 모를리가 없을거다."


"하긴, 과로때매 하루정도 기절해 있을지도 모르겠네. 최근에 학생회 일도 많이 도와줬으니 말이야."


"그리 말하니 내가 부려먹은 것 같군. 설마 '황제'가 '강제'로 일을 시켰다고 생각하는건가?"


"... 나 어디서 웃으면 되는거야?"


그런 시덥잖은 대화를 하던 중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브라이언! 비상사태다! 회장의 트레이너가..."


"에어 그루브, 트레이너가 어떻다는거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트레이너가 아니라 에어 그루브였다.


그녀는 뒤늦게 심볼리 루돌프가 학생회실에 있다는 것을 깨닿고 말을 더듬었다.


"회... 회장! 계셨던겁니까..."


"그루브,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을 해줄 수 있을까?"



***



심볼리 루돌프의 담당 트레이너는 죽었다.


사건 당일에 에어 그루브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지 언론을 통제하였고, 이에 대해 대책을 세우려고 했으나 그녀의 노력은 허무하게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심볼리 루돌프의 담당 트레이너의 사인은 약물중독으로 인한 자살, 그의 자택에서는 다량의 수면제가 들어있었을 약통과 여러 사람에게 쓴 유언장이 있었다.


그 심볼리 루돌프의 담당 트레이너인 만큼 다각도로 이 사태를 확인하고자 아키카와 이사장의 압력이 들어가 과학수사대가 투입되었지만 그 어떤 침입 흔적도, 협박을 받은 정황도, 삶을 비관하는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특이한 점으로 그의 유서를 받는 사람의 대다수는 심볼리 루돌프가 이겼던 레이스에 출주했던 우마무스메였고, 내용은 자신 때문에 그녀들의 인생을 바꿔버렸다는 장황한 이야기 뿐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그 이외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유서를 받는 우마무스메가 그 레이스에서 순위권에 들어있었다면 납득이라도 될 것이지만 해당 레이스에서 순위권 밖으로 들어온 우마무스메에게도 이러한 유서가 보내졌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의 유언장에는 다른 내용이 작성되어 있었고, 심볼리 루돌프가 받은 유언장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너의 길을 위해 죄를 짊어지고자 했으나 나는 이 이상의 죄를 짊어질 수 없다.]

[황제가 된 너를 더 이상 볼 수 없겠지만 너는 내가 없어도 황제로써 살아가길 바란다.]

[나의 자랑이자, 위업이자, 숭배하고 사랑하는 루나에게.]


"죄라니... 대체 어떤 죄를 말하는 것인거냐... 트레이너, 당신은 대체 무엇 때문에..."


장장 5페이지에 달하는 유언장을 기숙사 통금시간을 넘어 날이 밝은 때 까지 수 없이 읽고 또 읽은 심볼리 루돌프의 한탄만이 학생회실에 나돌았다.



***



사건 이후 일주일, 심볼리 루돌프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황제'였다.


"아아, 그 문제는 내가 다 처리해뒀으니 제군들은 먼저 들어가도록. 나는 조금만 더 확인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저희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다른 학생들을 모두 내보낸 학생회실에서 심볼리 루돌프는 불을 끄고 남몰래 트레이너의 사진을 달빛에 비춰 꺼내보며 자문자답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너, 그대가 짊어진 죄는 내가 '황제'가 되는 여정에서 짊어진 죄라는 것인가? 내가 이 길을 걷고자 할 때, 모든 우마무스메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할 때 쌓인 죄는 대체 무엇인가? 내가 승리한 레이스에서 1착을 하지 못한 우마무스메의 원한이라도 되는 것인가?"


밑도끝도 없는 선문답과 같은 행위, 이는 그녀의 트레이너가 없어진 이후 그녀의 일과가 되었다.


물론, 이 행위를 하기 위해 기존에 하던 트레이닝'따위'는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트레이너가 삶을 포기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없다는 것 마냥.


문이 열렸다.


"역시 미쿠가 말한대로 상태가 영 아니네요."


그 말에 고개를 들은 심볼리 루돌프는 자신만의 학생회실에 들어온 침입자를 보았다.


"키류인 아오이? 그대는 여기에 대체 무슨일이지?"


"저의 라이벌로 여겼던 트레이너, 그가 없어지자 미쿠의 라이벌이 아닌 그저 껍데기만 남은 트레센 학원 학생회장에게 이걸 주려고요."


키류인 아오이는 한 손에 들고있던 물건을 책상위에 툭 놓았다.


그것은 트레센 학원에서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작은 알람시계였다.


약간 다른점이라고 한다면 여기저기가 찌그러지고, 그을린 것 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멀쩡히 움직인다는 점일까.


"그가 그 일이 있기 전날에 저에게 와서 밑도 끝도 없이 저에게 미안하다고만 연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이 알람시계를 맡겼어요. 이걸 적당히 아무도 모를만한 곳에 묻어버리던, 바다에 던져버리던 해달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니 알람시계 여기저기에 흙이 끼어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트레이너의 말에 따라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루돌프, 당신이 이런꼴이 되니 도저히 잊어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니, 그의 유품이라 생각하고 이건 당신이 가져가세요."


키류인 아오이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람시계를 양손으로 소중한 물건인 마냥 감싸잡고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 상황이 되서야 말하는 거지만, 저는 그를 좋아했었나봐요. 아뇨, 좋아했던게 틀림 없어요."


심볼리 루돌프를 쳐다보는 키류인 아오이의 눈빛은 동정심, 적대심이 섞인 묘한 빛을 띄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선망하고 사랑했기에 항상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던 루돌프, 당신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되요. '황제'를 자칭하려면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요. 그게 아니라면 저도, 미쿠도 납득할 수 없어요."


말을 쏟아낸 뒤 한숨을 한 번 내쉰 키류인 아오이는 말 없이 몸을 돌려 학생회실을 나갔다.


적막만이 남은 학생회실, 그곳에서 그저 멍하니 있는 심볼리 루돌프는 자책하듯이 혼잣말을 했다.


"나는... 나는 트레이너, 그대를 사랑했었나보군... 왜 이 마음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일까."


평소 트레이너와 미래를 같이 그려나가고, 같이 웃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던 나날들을 반추하는 심볼리 루돌프의 마음에 넘쳐나는 것은 회한 뿐이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마무스메는 '황제'가 아닌, 그저 후회하는 '도망자'일 뿐이다.


그녀의 얼굴이 구겨지며 눈물이 흐르는 것 따위는 알아채지도 못한채 그저 중얼거렸다.


"회자정리, 하지만 이럴거면... 이렇게 헤어질 거라면 차라리 그대를 만나지 말았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말한 심볼리 루돌프가 눈을 한번 깜빡이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단순히 조명이 켜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 뒷편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방 안에 퍼져있는 것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심볼리 루돌프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 회장, 오늘 선발 레이스 출주일 아니었어? 왜 여기 있는거야?"


눈을 껌뻑이며 상황을 이해하려고 생각하는 사이에 분명 몇 시간 전에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학생회실을 일찍 나갔던 나리타 브라이언의 말이 들렸다.


"회장님? 어... 어어? 회장님이 왜 여기... 아니, 그 보다도 왜 울고계신겁니까? 혹시 과로로 몸상태가 좋지 않은건..."


일주일 전 부터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서 가능한 혼자서 학생회의 일을 처리하여 피곤에 절어있던 에어 그루브는 몇 달 전 처럼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회장 혹시 여기있어? 아! 회장~ 오늘 회장의 선발 레이스를 보려고 했는데 아직도 안와서 내가 직접 데리러 왔지롱~ 자! 가자~ 가자!"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던 것인지 최근에는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던 토카이 테이오가 예전과 같이 말을 걸어주었다.


"잠시, 선발 레이스라고? 그럴리가. 나는 분명히 트윙클 시리즈의 3년을 끝마치고..."


심볼리 루돌프의 그 말 한마디에 학생회실은 뒤집어졌다.



***



"이번 레이스를 기대하던 내가 황제가 되는 꿈을 꿔서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났을 뿐이다. 호접지몽, 순간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해서 걱정을 끼친것에 대해 사죄하지. 아무래도 요즘 피로가 남아있던 모양이야."


어찌저찌 상황을 정리한 심볼리 루돌프는 그 말을 끝으로 선발 레이스가 치뤄질 경기장을 향해 뛰었다.


그녀는 좀 전에 꿈이라고 말했지만 그녀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손 안에 들려있는 볼품없는 알람시계, 그 것의 존재가 지난 3년이라는 시간이 꿈이 아님을 상기시켜 주었으니까.


"아아, 늦어서 미안하군 트레이너 제군. 심볼리 루돌프다. 잠시 일이 있어서 늦은 점에는 사죄하도록 하지."


심볼리 루돌프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면면들을 살펴보다 그녀가 찾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3년 전, 자신의 길을 같이 발맞춰 나아가겠다고 했던 그, 어수룩한 신입 트레이너였지만 자신이 모든 레이스에서 1착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었던 그다.


"그럼, 지금 바로 보여주도록 하지. 황제의 달리기를 말이야."


그녀는 이 경기장에 오는 동안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보니 3년간의 훈련을 하기 전, 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각종 기술들, 그리고 레이스 지식과 경험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그녀의 달리기는 그야말로 파죽지세, 그 모습은 평소의 광명정대한 학생회장인 심볼리 루돌프와 합쳐져 그녀야말로 '황제'를 칭할 수 있는 자임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있었다.


황제의 신위를 보인 심볼리 루돌프는 성큼성큼, 자신을 영입하려는 트레이너들이 모인 패덕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


"그곳에 있는 당신, 당신을 내 담당 트레이너로 하고 싶다."


그녀가 오른손 검지로 지목한 것은 아무 경력이 없는 신입 트레이너,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트레이너 사이에서 술렁임이 퍼져갔다.


"미안하지만 한가지 물어볼 수 있을까? 원래 트레이너가 영입을 한다는 점은 제쳐두고 왜 그를 지목한거지? 그와 무슨 접점이라도 있는건가?"


그렇게 말한 것은 과거에 루돌프의 트레이너 후보중 한 명이었던 베테랑 트레이너였다. 분명 충실한 트레이닝 계획을 제안했던 트레이너였지.


"전혀 아무런 접점이 없다. 그저 내 직감이 말하더군. 내가 가고싶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그가 최선이라고 말이야."


그녀의 대답에 그녀가 지목한 트레이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자리를 떴다.


심볼리 루돌프는 그만한 위치도, 능력도 보여주었기에 그녀의 의견에 납득은 하지 못하더라도 존중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 그대는 담당 트레이너가 되었는데 소감은 어떠한가?"


심볼리 루돌프는 조금 전 부터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신입 트레이너를 향해 물었다.


그는 잠깐 곰곰이 생각하고서는 대답했다.


"저는 심볼리 루돌프, 당신의 트레이너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심볼리 루돌프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



온 몸이 물 먹은듯, 실제로는 정신적인 충격 때문이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심볼리 루돌프는 항상 그래왔듯,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회장, 선발 레이스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겁니까?"


"에어 그루브? 왜 이 시간까지 여기에 있는거지?"


아무도 없어야 할 늦은 오후의 학생회실, 그 곳에는 에어 그루브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오후부터 상태가 그러시니 신경이 쓰일 수 밖에요."


"그런가... 내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아 보였던건가?"


"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간단히 말해서 내가 트레이너 권유를 했고, 거절당했다. 그냥 그런 일일 뿐이지."


"네? 회장의 권유를 무시했다는 말입니까? 대체 어떤..."


"그냥 신입 트레이너다. 그냥 내 '직감'에 권유했지만 '땡감'을 권유받은 마냥 거절하더군. 자신은 나를 담당으로 하기엔 너무 보잘것 없다고 말이야."


"... 아, 네... 그런 일이라면야 다른 트레이너들에게 권유를 해보시면 되겠군요. 저는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에어 그루브는 뭔가 의욕이 뚝 떨어진 얼굴로 학생회실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 앉은 심볼리 루돌프는 허탈한 마음에 자리에 앉아 조금 전에 서랍에 넣어두었던 알람시계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고 말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지? 저번과 뭐가 달라진 것이지? 아니, 달라진건 나 하나뿐인건가?"


알람시계를 눈앞에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 따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심볼리 루돌프는 재차 질문했다.


"트레이너, 나는 왜 여기 있는걸까? 사실은 이게 다 꿈이 아닐까?"


그녀는 알람시계를 양 손으로 집어들고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 때 다른 트레이너를 담당으로 삼았어야 했었을지도..."


그렇게 말한 심볼리 루돌프가 눈을 한번 깜빡이는 순간, 조명빛 대신 뒷편의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오는게 느껴졌다.


또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심볼리 루돌프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 회장, 오늘 선발 레이스 출주일 아니었어? 왜 여기 있는거야? 그 박살난 알람시계는 뭐고?"


또 다시 들려오는 나리타 브라이언의 목소리.


"회장님? 어? 회장님, 지금 늦으신거 아닙니까?"


또 다시 들려오는 에어 그루브의 목소리.


"회장 혹시 여기있어? 아! 회장~ 오늘 회장의 선발 레이스를 보려고 했는데 아직도 안와서 내가 직접 데리러 왔지롱~ 자! 가자~ 가자!"


또 다시 들려오는 토카이 테이오의 목소리.


이 말도 안되는 현상을 다시 겪은 심볼리 루돌프는 깨달았다.


자신은 다시 이 시간으로 돌아왔노라고.



***



다시 돌아온 심볼리 루돌프는 자신이 왜 다시 이 시간으로 돌아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는 정말 말도 안되는 결론이 나왔다.


자신이 학생회실에서 고장난 알람시계를 들고있는 상태에서 어느 시간대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 그것 이외에는 공통점이 없으니 해당 상황이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심볼리 루돌프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녀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내렸다.


"그곳에 있는 당신, 당신을 내 담당 트레이너로 하고 싶다."


그녀는 똑같이 선발 레이스를 뛰고난 뒤, 한 사람을 지목했다.


다만, 그녀의 입장에서 몇시간 전과는 다르다.


심볼리 루돌프가 지목한 사람은 3년간 같이 황제의 길을 닦았던 신참 트레이너가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을 했던 베테랑 트레이너였으니까.


그렇게 1달이 지났다.



***



"일어나라 서든어택! 너는 심볼리 루돌프의 발끝에도 못미친다면 그만큼 근성을 키워야지!"


심볼리 루돌프는 자신이 고른 트레이너가 다른 우마무스메에게 윽박을 지르는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 아니다.


"피콜로 리듬! 너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부끄럽지도 않냐! ... 아, 벌써 훈련을 마쳤나 루돌프. 오늘 트레이닝 일정은 끝났으니 들어가 봐도 돼."


"잠시, 한가지만 물어보도록 하지. 그대는 우마무스메에게 너무 엄격하게 대하는 것 같은데 이건 좀 너무한 처사 아닌가?"


"그럴리가. 능력이 있는 자만이 살아간다. 약육강식, 그것이 트레센 학원에 입학해 트윙클 시리즈를 시작한 학생에게 적용되는 법칙인 것은 학생회장님도 알고 있으면서 새삼스럽게 무슨 말이지?"


"아아, 그렇지. 최근 머릿속이 좀 복잡해서 말이야. 실언을 했군."


"그럼 먼저 들어가서 일을 빨리 끝내고 일찍 쉬도록 해. 너의 가치를 낼 호프풀 스테이크스는 1년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야."


심볼리 루돌프는 고개만 까딱하여 인사를 하고는 학생회실로 돌아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는 다른 학생회 임원이 모두 기숙사로 돌아가 홀로 학생회실에 남아 문제의 알람시계를 꺼냈다.


"그대, 그대는 내 길에 회한을 느낄 때 나의 길을 전적으로 긍정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나는 내가 정한 이 '황제'라는 길은 대체 무엇일까..."


1달간 강압적인 트레이너 아래에 있으면서 휘하의 우마무스메를 보고 있자니 그녀들은 행복과 거리가 멀어보였다.


지금의 트레이너의 비교 대상으로 쓰이면서 오히려 심볼리 루돌프를 일종의 증오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정도라 마음의 짐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대의 손길이 이렇게나 그리워질줄은..."


심볼리 루돌프는 몇년 전, 아니, 몇년 후의 일이 떠올랐다.


한 때 자신의 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무렵, 자신을 긍정해준 트레이너와 단 둘이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나는 루나, 네가 여지껏 걸어온 길을 부정할 수 없어. 너의 길은 나의 길이고, 이 길을 가기 위해 우리 둘은 여지껏 노력해 왔으니까. 너의 길을 부정하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잖아?"


그렇게 말했던 트레이너는 심볼리 루돌프의 얼굴을 감싸 품 안에 안아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 때 그녀는 복받친 감정에 한참을 울었던 것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트레이너의 눈에는 무언가의 결의가 보였던 것 같았다.


잠시 회상을 끝낸 심볼리 루돌프는 결심을 하고는 회중시계를 양 손으로 잡고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내 길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나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겠나 그대여?"


말을 끝내고 눈을 한참동안 감고 다시 뜬 심볼리 루돌프는 웃었다.


생각한 대로, 시간을 되돌렸다.



***



심볼리 루돌프는 시간을 되돌렸다.


그리고 새로운 트레이너를 정했다.


그 혹은 그녀는 심볼리 루돌프의 트레이너가 된다는 것에 기뻐했고,


심볼리 루돌프는 후회했다.


새로이 만난 트레이너들은 심볼리 루돌프의 능력을, 지위를, 재능을 보았다.


달리 말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전혀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심볼리 루돌프는 시간을 되돌렸다.


되돌리고, 후회하고, 미래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되돌리고, 되돌리고, 되돌리고...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는 아키카와 이사장에게 부탁했다.


자신은 트레이너 없이, 자기 혼자서 트윙클 시리즈에 출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선발 레이스는 했지만 트레이너는 정하지 않은, 홀로 트윙클 시리즈에 참전하는 우마무스메가 등장했다.



***



[사우디아라비아 로열컵의 승자는 심볼리 루돌프! 홀로 이자리에 선 그녀의 능력을 보여준 압도적인 레이스였습니다!]


그런 그녀는 사우디아라비아 로열컵에 나갔다.


사실상 이런 G3 레이스, 나가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의 과거에서 황제의 길을 가기 위한 시작이라며 말했던 어떤 남자가 떠올라 나선 레이스였다.


레이스가 끝난 뒤, 여러 기자들에게 둘러쌓인 심볼리 루돌프는 한 남자가 관중석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를 박차 그 남자를 향해 달려 그의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트레센의 트레이너로군, 경기 연구를 위해 관람한건가?"


그 말에 남자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내가 트레센에 신입 트레이너로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나보네요. 저는 트레이너가 아니라 그저 관람객으로 온 거에요."


심볼리 루돌프의 첫 트레이너의 대답에 심볼리 루돌프는 순간 어떤 말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심볼리 루돌프의 앞에 저 남성은 뭐죠? 숨겨진 트레이너? 잠시 취재할 수..."


그 모습에 악성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심볼리 루돌프는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남자의 팔목을 잡고 달렸다.


하지만 이내 우마무스메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아예 공주님 안기를 하고 경기장을 뒤로했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품 안에 있는 남자가 아무 말이나 저항 없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하며 심볼리 루돌프는 달리고 달렸다.


달리고 달려, 부르마 차림인 자신이 성인 남성을 품에 안고 달리는 것을 볼 사람이 없는 하천부지에 도달하고 나서야 발을 멈춰 그를 내려주었다.


"트레이너로 있었다고? 그럼 지금은..."


"구직활동 중이죠."


"담당 우마무스메를 정하지 못했던건가? 그래도 담당 트레이너를 찾는 우마무스메의 수를 생각해보면 찾지 못하는건 불가능할텐데?"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쑥스러운듯 살짝 웃더니 말했다.


"사실... 선발 레이스 때 그쪽의 달리기를 보고 다른 우마무스메의 담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거든요."


"뭐?"


그 말을 들은 심볼리 루돌프는 심정이 복잡해졌다.


애초에 처음 시간을 돌렸을 때, 담당 트레이너를 해달라고 했더니 그 자리를 뻥 차버린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게 말이 되는가?


그렇기에 그녀는 침착하게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만약에, 만약에 내가 선발 레이스가 끝나고 그대를 담당 트레이너로 지명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


"시간을 되돌리는게 아닌 이상 불가능 하겠지만 아마 수락해서 그대로 트레이너 생활을 했을 것 같네요."


그 대답을 들은 심볼리 루돌프는 화가나 눈 앞의 남자를 째려보며 양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그대는 이미 나를 거절했었으면서!"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점점 들어가 어깨가 짓눌리는 와중에 남자는 말했다.


"저는 그런 권유를 받지도 못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겠네요."


남자는 걱정하는 얼굴로 심볼리 루돌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심볼리 루돌프, 당신의 달리기는 완벽 그 자체였지만 무언가 결핍된 것 같았으니 담당 트레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그 말에 그녀의 양 손아귀 힘이 빠지자 그는 저릿거리는 어깨를 무시하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냈다.


"지금도 계속 울고 있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좀 해줄 수 있을까요?"


시간을 달리고 달렸던 심볼리 루돌프는 시간을 돌리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울었다.



***



아무 사람도 없는 학생회실, 장장 1시간에 걸친 심볼리 루돌프의 이야기가 끝났다.


"... 그렇게 된거다. 그야말로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다기망양한 여정 끝에 그대를 다시 만난거지."


"지어낸 이야기 같네요."


"그냥 지어낸 이야기라고 이해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만... 이걸 그대가 가져갔으면 좋겠군."


심볼리 루돌프는 서랍 안에 넣어뒀던 알람시계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어... 네? 이게 있어야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지 않았나요? 오늘 일 때문에라도 시간을 돌려야..."


"아니, 이것도 우연지사. 아마 이 물건도 그대에게 가는게 맞을 것 같으니 말이야.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서 외부인을 트레센 학원 내부, 그것도 학생회실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는건가."


그 말을 들은 남자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그슬렸음에도 시간이 계속해서 가는 알람시계를 받았다.


"이걸로 나는 내가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런 자네도 자네만의 길을 가도록."


자신을 구속하던 물건을 처분한 심볼리 루돌프는 후련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



다음날 아침, 심볼리 루돌프는 아침잠을 겨우 이겨내고 학생회실로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학원 정문이 소란스러워 슬쩍 보니 에어 그루브가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슨일이지 에어 그루브? 어? 이 자는..."


"아, 회장, 다름 아니라 이 남자가 반드시 회장을 만나야 한다며 고집을 부려서... 혹시 회장이 아는 사람입니까?"


정문에 붙잡혀 있는 사람은 어제 만났던 남자였다. 그것도 밤을 지샜는지 매우 피곤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왜 이 남자가 여기 있는거지? 어제 말하지 않았던가? 서로의 길을 가기로...


"아니, 모르는..."


"루나!"


그 남자의 말에 모르는 척 하고 가려던 심볼리 루돌프의 발이 멈춰섰다.


"다른건 몰라도, 너는, 너만이 이 것을 봐야해!"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케이스에 들어있는 SD카드가 들려 있었다.


"에어 그루브, 저걸 받아서 내 책상에 올려두도록. 나는 먼저 들어가보도록 하지."


심볼리 루돌프는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듯 한 과거, 아니, 미래의 그가 사용하던 애칭에 마음이 복잡해져 이 자리에 더 이상은 있을 수 없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날 저녁, 심볼리 루돌프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SD카드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심볼리 루돌프는 이 것을 먼저 읽을 것' 이라 적힌 텍스트 파일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SD카드가 알람시계의 배터리 부분에 들어 있었다는 것, 10시에 공원에서 기다린다는 것, 그 외에 자잘한 자신의 신변잡기적인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알람시계를 얻은 사람에게' 라고 적힌 워드파일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알람시계를 파괴할 수 있다면 파괴해 달라는 말, 만약 사용하고 싶다면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 과거의 트레이너가 했던 일들이었다.



***



사우디아라비아 로열컵 당일날, 트레이너는 학원 기념품이자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트레이너가 된 기념으로 받았던 알람시계의 소리에 일어났다.


오늘은 담당 우마무스메인 심볼리 루돌프의 기념적인 첫 실전 레이스날, 그런 날에 늦잠을 자버린 것에 허겁지겁 옷을 입던 트레이너는 순간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다.


데자뷰라고도 불리는, 이 상황을 몇 번이고 겪은 듯 한 느낌에 트레이너는 본능적으로 크기가 작아 자그마한 서류가방에도 들어가는 알람시계를 넣어 그녀의 레이스를 보러 갔다.


그리고 그녀는 황제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14착, 흔히 마군사라고 불리는 상황으로 일어난 운이 없는 경우였다.


그것을 본 트레이너는 마일 적성이 그리 좋지 않은 그녀를 이곳에 끌고온 자신을 탓하며 패덕에서 서류가방을 끌어안고 조용히 울었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 이 레이스를 다시 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던 트레이너는 경기가 끝나 조용하던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며 각 우마무스메가 게이트에 들어간다는 해설의 소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트레이너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그 곳에는 3번 자리였던 심볼리 루돌프가 1번 자리에서 게이트를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당당히 1착, 황제의 첫 걸음을 내딪을 수 있었다.


트레이너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는 것을.


트레이너는 심볼리 루돌프가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려고 할 때, 황제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마다 알람시계의 힘을 빌렸다.


알람시계를 한 번 사용할 때 마다 레이스의 결과가 소소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3번 사용할 때 마다 자신이 트레이너를 시작한 이래의 주변 상황이 조금씩 바뀌었다.


심볼리 루돌프와 병합훈련을 하던 우마무스메가 달라진다던지, 이사장 비서인 하야카와 타즈나와 친분을 쌓고 있었는데 어느새인가 동기 트레이너인 키류인 아오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던지, 상점가 뽑기를 했던 결과물이 바뀌었다던지.


그런 그는 이 알람시계의 힘을 썼기에 생긴 사소한 일이라 치부하고 심볼리 루돌프가 황제가 되는 길을 꿋꿋이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무너지는 계기는 사소한 소문 하나였다.


URA에서 심볼리 루돌프가 우승한 후, 드림 레이스를 준비하던 와중에 들렸던 사소한 소문.


'그거 들었어? 폭풍전야의 서든어택, 이번에 자살하려고 했다가 간신히 살았다더라.'


'회장이 나간 레이스에 겁도 없이 출주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러고보니 그쪽 트레이너 아래에 있던 피콜로 리듬? 걔는 자퇴하고 고향에 내려갔잖아.'


'임페리얼 탈리스는 2착만 하다가 자퇴하고서는 우마도둑이 되었다던데? 발이 빨라서 우마경찰도 못잡고 있다고 하더라고.'


평소라면 우마무스메가 있는 이 트레센 학원의 평범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소문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들은 모두 시간을 되돌리기 전, 심볼리 루돌프를 이겨본 적이 있는 우마무스메였으니까.


그 때 부터 트레이너는 자신이 시간을 되돌렸던 내역을 하나씩 떠올려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리기 전, 1착을 했었던 우마무스메가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평범하게 트레센 학원을 다니고 있는 우마무스메는 분명 많았다.


하지만 일부의 우마무스메들은 학교를 자퇴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나마 고향에 내려갔다로 끝날 이야기면 다행이지만 일부는 범죄에 연루된 우마무스메들도 보였다.


트레이너는 생각했다.


모든 우마무스메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심볼리 루돌프가 세운 황제의 길, 그리고 그 길을 강제로 만들어낸 자신, 그 때문에 어그러진 미래를 얻은 우마무스메,


이 무슨 자기모순적인 꼬라지인가.


남자는 이렇게 추한 자신을 더 이상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 이 죄는 모두 자기 자신만이 사라지면 된다.


그 것 만으로 황제는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우선 알람시계를 파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저주받은 알람시계는 어떻게 해도 부서지지 않았다.


혹시하는 마음에 학원 기념품 상점에서 똑같은 시계를 사 보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이 알람시계만이 망가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알람시계를 가장 확실하게 처리해 줄 것 같았던 키류인 아오이에게 맡겼다.


다만, 만의 하나라도 이 시계를 손에 넣을 사람에게 이 시계의 사용법과 그 결과, 자신의 행적과 최후를 설명하는 SD카드 하나를 넣어두었다.


이 것이 누군가가 시간을 다시 돌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은 마음인지, 이 알람시계를 쓸 사람에 대한 경고인지는 그 인간만이 알 것이다.



***



심볼리 루돌프는 자신이 모르는 자신이 패배한 흔적들을 읽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레이스에 1착을 하지 못했던 수십의 우마무스메들,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들을 읽었다.


"하... 하하... 내가 걸으려고 했던 황제의 길은... 이렇게나 이율배반적인 길이었던가."


심볼리 루돌프는 갑자기 모든 목표가 사라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허탈했다. 자신의 공허한 꿈에 의해 희생된 우마무스메가 있다는 것이.


미안했다. 그와 함께했던 3년간이 그에게 계속해서 짐을 지우고 있었다는 것이.


서러웠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같이 있었으면서 이런 것을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대체... 하하... 참, '눈물'을 흘리는 '괴물'이라니."


텅 빈 학생회실에서 기억도 흐려진 과거의 어리광쟁이 루나로 돌아간 그녀는 거대한 학생회실을 울음소리로 채웠다.


...


문이 열렸다.


"회장, 10시까지 이제 겨우 30분 남았습니다. 빨리 준비하고 가시죠."


에어 그루브가 학생회실에 들어와 말했다.


심볼리 루돌프는 애써 울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아, 미안하다 에어 그루브, 기숙사 통금시간을 까먹을 뻔..."


"아뇨, 공원에 가셔야하지 않습니까."


"..."


공원, 그 단어에 심볼리 루돌프의 입이 다물어졌다.


"혹시 내용물을 본건가?"


"네, 회장과 관계된 인물로 보이지만 묘한 관계라 생각해서 만의 하나를 대비해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여기에 나타나서 그런 말을 하는거지?"


"그야 회장을 위해서는 이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심볼리 루돌프는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외쳤다.


"그렇다면 알 것이 아니냐! 나는 '황제'라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어! 내가 생각하던 모든 우마무스메가 행복해지는 세상따위는 허상이야! 그런 나를 왜 위해 주는거지? 이 이기적인 황제를!"


그 말에 에어 그루브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저는 '황제'를 위한게 아니라 회장을 위해 말한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밖에서 다른 우마무스메가 들어와 말했다.


"회장,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회장이 무언가 실책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회장의 편이야. 회장이 말한 '황제'가 되지 않더라도 말이야."


나리타 브라이언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는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런... 너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면서 무슨 말을..."


한 우마무스메의 목소리가 여기에 더해졌다.


"회장! 회장이 울고있다고 해서 왔는데 괜찮아? 회장이 뭐 잘못했다고 하던데 이 토카이 테이오님이 짜잔 하고 나와서 해결해 줄테니 걱정 하지 말아!"


"너희들..."


"회장, 그러니 지금 당장 가시죠. 지금 출발한다면 우마무스메 속도 제한을 고려해도 늦지 않을겁니다."


그 말에 심볼리 루돌프는 애써 훔친 눈물을 다시 흘렸다.



***



"아, 왔구나?"


"부른건 그쪽이면서 뭔가 반응이 적다고 생각되지 않나? 공원 산책의 '호스트'가 '호숫터'에 불렀으면 오리보트 정도는 준비해 줘야지?"


"이번 개그는 오리보트를 띄울 수 있는 시간대가 넘었으니 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아무튼, 그래서 읽어본 소감은 어땠어, 루나?"


"엉망이다. 내가 이제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그대, 그대는 내가 알고있는 '그'가 아니니 루나라고 부르지 말도록."


"하긴, 나는 네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을 만나서 모든걸 해결하자."


"그런 또 무슨..."


남자는 알람시계를 꺼내 심볼리 루돌프를 껴안으며 그와 그녀 사이에 알람시계를 끼워넣고 말했다.


"그날 모든게 끝나기 전으로 갈 수 있기를."



***



오후의 학생회실에서 홀로 심볼리 루돌프는 수 많은 서류 앞에 앉아있었다.


문이 열렸다.


"어라? 회장~ 오늘은 트레이닝 안해?"


토카이 테이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이 크게 떠진 심볼리 루돌프는 책상을 박차 그녀가 말하던 우마무스메 속도 제한을 무시하고 달렸다.



***



어느 한 트레이너가 살고 있는 아파트, 심볼리 루돌프는 힘으로 문짝을 뜯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 너는, 그대는, 당신은, 트레이너는... 누구냐."


방 안에 들어가 책상 위에 올려진 수 많은 수면제를 손으로 날려 바닥에 흩뿌린 심볼리 루돌프가 물었다.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10분 전에 너를 보고있던 취업준비생이자..."


트레이너는 심볼리 루돌프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너에게 상처를 준 트레이너야 루나."


최근, 아니, 과거에 울었던 심볼리 루돌프가 울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 자리에 있는 루나는 엉엉 울면서 트레이너를 껴안았다.


이제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


고개를 살짝 올린 심볼리 루돌프가 부어버린 눈으로 트레이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그대,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 줄 수 있을까?"


"일단 내가 처한 상황은 사고와 우연이 겹쳐서 원래는 알 수 없던 것을 알아버린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트레이너는 책상 위에 놓인, 처참한 상태임에도 동작하는 알람시계를 보며 말했다.


"하야카와 타즈나, 그녀에게 받은 알람시계는 수많은 가능성을 보기 위해 우마무스메가 자신의 목표를 이뤘을 때 나오는 빛나는 꿈을 소량 사용해서 만든 물건이라고 하더라고."


트레이너는 허탈한 듯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의 나는 그쪽에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해서 몰랐지만, 과거의 나는 너에게 이걸 받자마자 어떻게든 이사장과 통화를 해서 알아냈지. 참 웃긴 이야기야, 트레센 학원의 최중요 관계자일 때는 모르고, 그저 취업준비생이 된 백수가 되서야 알고 말이야."


트레이너는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런데... 루나? 이제 슬 떨어지면 안 될까? 너무 이렇게 붙어있는 것도 좀..."


트레이너는 아파트에 들어온 이래로 계속 자신을 껴안고서는 꼬리로 다리마저 칭칭 감아놓은 심볼리 루돌프가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그도 그럴것이 아파트 문짝을 힘으로 뜯어버린지라 조금만 더 있으면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상당히 난감하니까.


"그대가 또 어디론가 떠나버릴까 무서우니 그건 절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헤메이다 원하는 것을 다시 찾은 심볼리 루돌프의 독점력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상관 없다는 양 붙어있을 뿐이다.


"... 그럼 빨리 끝내는게 좋겠네. 단적으로 말해서, 이번에는 너와 나, 우리 둘 모두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 선발 레이스의 그 때로."


"왜 그 때로 돌아가려는거지? 그래봤자 종두득두,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올게 뻔할텐데 말이야."


"그 때에 이 알람시계는 타즈나씨에게 돌려주려고. 그리고 이 모든걸 이야기 하고, 완전 처음부터 정정당당히 승부하려고 해."


그 말을 들은 심볼리 루돌프는 꼬리만은 계속 트레이너에게 감아둔 채 품에서 빠져나와 알람시계를 집어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한 것이 더 나을 것 같군."


"응? 어떻게 할 생각인데?"


"그대는 그저 내가 가고싶은 시간대로 갈 수 있도록 빌기만 하도록."


심볼리 루돌프는 활짝 웃으며 둘 사이에 알람시계를 두고는 트레이너를 껴안으며 입술을 포갰다.



***



"뭔가... 참 말도 안되는 이야기네요."


"그렇게 말하는 타즈나씨가 준 시계에서 시작된 이야기인데 믿어줘야죠."


"그건 그렇네요. 그래서, 이 시계를 뜯어서 회중시계로 만들어 드리면 되는거죠? 분명 원래의 기능은 트레이너도 모르게 다른 가능성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것 참 말도 안되는 물건이 되어버렸네요."


"저 때문에 그렇게 되긴 했지만 저도 엄연한 피해자거든요?"


"그래서 이 시계는 어떻게 할건가요?"


"트레센 학원에서 꿈을 보고 싶은 트레이너에게 빌려줄겁니다. 물론, 악용하지 못하게 레이스 시작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해줘야죠."


"그렇게 하시게요? 심볼리 루돌프, 그녀가 학원에서 떠날 때에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하야카와 타즈나의 그 질문에 심볼리 루돌프의 트레이너는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 학원에서 시간을 반복할 거라서 문제 없습니다."


심볼리 루돌프의 선택, 그것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황제가 되는 길.


수많은 우마무스메가 꿈을 위해 들어오는 트레센 학원, 그 정점인 학생회장의 자리를 영원불멸하게 유지하며 불행해질 우마무스메를 구원하고 등을 밀어주는 것.


그 끝없는 시간선에서 그녀가 계속해서 학생회장으로 군림하는 것에 그 누구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며, 수 많은 우마무스메의 가능성을 보며 행복으로 삼으리라.


"[황제의 신위]를 모든 우마무스메가 보며 동경하고, 칭송하고, 우상으로 삼게 되겠죠."


물론, 그 옆에는 한 트레이너가 같이 있을 것이지만.


그런 그와 함께 있을 때 만큼은 어리광쟁이가 되는 루나가 되어버리는 황제는,


끝없는 황제의 길(로드 오브 엠페러)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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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쓴 것

사쿠라, 끝을 향해 나아가라!
증명할 필요가 없는 tach-nology


필력 딸리고 오탈자 분명 있을 겁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시작은 짤막하게 적으려고 했는데 적다보니 1.9만자... 회장 아재개그는 분위기로 어느정도 봉인했는데 사자성어는 답이 없어서 한자 3급 딸 때 보다 많이 본 느낌...

소재 삼은건 '영원한 학생회장 + 알람시계'였는데 하다보니 엣지 오브 투모로우인지 리제로인지 모를게 나와버림

이전에 쓴 것 처럼 인게임 요소도 조금 넣어보기도 했는데 분위기 애매하게 만들길래 그냥 다 쳐내버려서 지금과 같은 글이 나왔음

마찬가지로 우마뾰이를 간략하게라도 넣으려고 했었는데 중반까지 쓰고나니 우마뾰이 넣으면 안될 것 같아서 넣지도 못함

대충 머릿속으로는 시간을 돌려서 인자오버플로우-우마뾰이하는 회장님이 떠오르는데 이거 다 쓰고나니 쓸 생각이 안듬...

다음으로는 스탠드(시계)의 힘을 얻은 얀데레 다스카가 쟈와르도! 하고는 화면 밖으로 나와서 현실 트레이너 속박강제우마뾰이하는 글 쓰는 상상만 함


마지막까지 읽었으면 눈치챘겠지만 전에 적었던 타키온은 시계 안쓰고 아리마 1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