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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거세기지기 시작한 눈발은 멈추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몰아친다. 그 속을 뚫고, 또 이제 막 쌓이기 시작해서 미끄러운 인도를 달린다는 건 우마무스메라 해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대로 퇴근하라는 말이 있었지만 후자 케르나는 기어이 소바집의 문고리를 잡고 연다.



“하읏…!”



뿜어지는 온기. 가게 안의 주방설비는 꺼져있지만 그래도 남은 온기가 그녀의 콧잔등을 때린다. 귀까지 추욱하고 그 온기에 녹아들 것만 같다. 서둘러서 눈범벅인 몸을 가게 안쪽으로 옮기고, 미닫이 문을 닫아버린다. 




바깥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텅 빈 가게 안에서는 묘한 정적이 흐른다. 때때로 우우웅하고 울리는 주방기구. 앗, 뭐야 사장님 이것도 안 끄고 갔구나. 하고 케르나는 가게 안쪽으로 걸어들어간다. 가게 정문에서 오른쪽 편의 ㄴ자 바 안쪽으로 걸어 들어와서 후드를 끄려고 하던 찰나였다.





“… 정리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가셨네.”





불은 꺼져있지만 여전히 들어찬 육수. 오늘 사용하던 고명이나 밑재료들이 아무렇게나 주방 안에 널부러져있다.

케르나는 녹색 눈동자를 점점 더 줄이더니 핫, 하고 주방을 벗어난다. 배달용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다가 온 몸이 눈범벅인 것을 깨닫는다. 한 번 털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일단 한 번 턴 뒤, 바닥 걸레를 이용해서 닦아낸다. 그런 뒤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목덜미를 드러내며, 머리를 묶는다.




정리를 시작한지 30분째.




늦네. 라고 한 마디 던진 뒤에서야 케르나는 깨닫는다.

아차, 시프트. 하고 주방 뒷편의 직원실로 들어 가 자신의 근무시간을 마감한다.





“…”





딱히 사장을 믿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러는 편이 좋다. 이러고 싶었다. 그리고 이 눈발이다. 꽁꽁 언 몸으로 돌아와서 치우려면 아마 힘들테니까.




“뭐, 인간보다 우마무스메가 훨씬 튼튼하니까!”




선심 쓰는거다. 라며 케르나는 선명한 녹색 눈동자를 반짝인다. 그 위로 갈색 귀가 살랑인다. 정리도 곧 끝날거고

사장님만 오면 잔뜩 으스댄 뒤에 돌아갈까.

어쩌면 딴에 미안하다고 택시비를 줄지도 몰라.


살짝 목을 숙이고서, 오른손을 가져가는 그의 모습이 케르나에겐 선명하게 그려진다.




어딘가 칠칠치 못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다.





득, 득




“응?”




직원실을 나온 케르나의

귀가 가게의 정문의 소리를 포착한다. 쫑긋하고 세워진 귀의 감각을 따라 케르나의 시선도 돌아간다.


문틀 사이에 눈이 들어와 얼어붙은 걸까

둔탁한 소리를 몇 번 짧게 내더니 거칠게 밀리는

문.





“사장님…!”






케르나는 그대로 문까지 달려간다.

남자는 추위에 정신마저 얼어붙었는지 문을 열고서 바닥만을 바라보며 걸어오다 그녀의 외침에 겨우 고개를 든다.





“어… 케르나양?”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로 스키라도 탄 것처럼 얼굴 주변에 달라붙은 눈들. 땀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런 눈을 헤치다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될지도.





까만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헤매이다 눈 앞의 우마무스메에게 겨우 맺힌다.








“왜 안 돌아가고…”





씁, 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내린 콧물을 훔치는 남자.

케르나는 어깨를 들썩이고서 씨익.




“그야, 혼자서 이거 어떻게 다 정리해요. 눈도 이렇게 오는데”





“아 참, 시프트는 제가 찍었어요.”





남자는 그 말에 시선을 돌려 주방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말대로 주방은 어느정도 정리 되어 있었다.





“사장님 후드도 안 끄고 가셨더라구요. 뭐가 그리 급하셨대?”





“자, 몸 녹이시고 같이 정리 마무리하기 전에…!”






“고마워. 케르나양. 이대로 그만 퇴근 해.”






네? 하고 반문할 틈도 없었다. 케르나를 스쳐지나가는 사장.

케르나가 돌아보자 남자는 이미 주방을 지나 2층, 그러니까 자택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장님…? 이러면… 마카나이(직원식)는요…?”






케르나는 추욱하고 앞으로 늘어지는 자신의 귀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런 사장을 배웅한다. 택시비는 잘 몰라도. 잘했다고 특제 마카나이 정도는 기대했는데.

그래서 일부러 전부 다 정리 안하고 직원식 만들만큼은 내버려둔 건데.





그녀의 희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4




















2층에 올라 거실을 지난다. 추욱하고 걸을 때마다 떨어지는 눈의 잔해들. 기분 나쁜 온도의 물이 되어 바닥을 잔뜩 더럽힌다.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걸으면서 외투를 벗고 그대로 지나친다. 마치 헨델과 그레텔 같아서 돌아보려다가 관둔다.

평소였다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뭐라고 하겠지만 지금은 이 집에 아무도 없다. 상관없겠지.



그대로 방에 들어가 얼어붙은 몸을 침대에 던진다.

끼익끼익하고 낡은 침대가 짜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어설프게 흔들리고 엉망진창인 나도 조금 그 흐름에 타다가 잦아든다.





"트레이너씨... 손도 코도. 그렇게 빨갛게 하고서..."






알고 있었다. 크릭은 날 알아봤다. 그럼 왜? 어째서?

그럼 모르는체 나를 맞이 한 뒤에 왜 갑자기 거기서 나를 속이듯이…? 떠보듯이…? 아닌가 도중에 알아차린 건가?

아니야.





갑자기 그 광경이 다시 떠올라 목 구덩이 안쪽에서 불이 타오른다.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땀들이 흘러내린다. 뱀처럼 내 어깨죽지에서 겨드랑이 사이를 타고 흐른다. 기분 나쁨에 소스라치고 싶지만 





지쳤다.

케르나양 퇴근하라고 했는데





모르겠다.





그저 창밖을 때리는 이 눈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뿐.

내일이면 전부 녹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 뿐.





눈을 꼭 감고, 주사를 맞기 전의 아이처럼

이를 악문다.



왼팔을 타고 오는 따끔한 느낌은 없이


점점 흐려진다.

다만 점점 불안해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