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달려들어 껴안길래 처음엔 스피어 태클이나 수플렉스로 이어질까 겁이 났다.

근데 딱히 그런 흐름은 없었다.

오히려 가슴을 바짝 밀착시켜 꾸욱 안아주다보니 의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뭔가 어필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하던 녀석은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걸까?

새삼 얘가 키가 크고 비율이 좋아서 그렇지 오히려 '예쁘다' 보다는 '야하다'라는 감상이 어울리는 사이즈와 라인이라서 좀 부담스럽다.

요즘은 조금 끌리기도 해서 특히나 더 머리가 아프다.

다른 문제는 이외의 장난의 빈도가 사실상 없다시피 줄어든 것이다.

원래라면 좀 더 장난을 치곤 했는데, 한 번 컨디션이 진짜 나쁠 때는 오히려 아가씨 말투가 되곤 했으니 그것과 같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작정하고 그런 어필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어필을 하는 것이라면 고루시는 이런 방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내 입장에선 전에 없던 새로운 패턴이다보니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



"그래서 절 찾아오신건가요?"

"어... 그렇긴 한데, 역시 좀 그렇니?"

"뭐 모르... 아니, 트레이너도 부탁했으니까요."


그녀는 아그네스 타키온, 연수원부터 친하게 지냈던 동기의 담당 우마무스메다. 가끔 걔가 RGB컬러로 번쩍거리는 피부나 머리를 하고 나타날 때가 있는데, 아마 그녀의 작품이겠지.


"뭔가 물어보기에 민감하기도, 민망하기도 한 문제라서 난감했단 말이지."

"동료들이나 트레센 관계자분들에겐 조금 난감한 문제이긴 하네요.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물어보기에도..."

"좀 그렇지?"

"저는 괜찮으신건가요?"

"박식한 동시에 이런 상황을 순수하게 타자, 관찰자, 조언자로 봐줄 사람이 내 주변엔 너뿐인 것 같아서."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네요."


물론 타키온을 찾은 이유는 그것도 있지만 결국 그녀와 나의 거리감 때문이다. 그녀는 곧 내 제수씨가 될 것이다, 아마도 졸업 후에.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내 기억엔 동기 앞에서 보여준 태도는 지금과 달랐다. 좀 더 애교가 있었다. 말투도 달랐다. 그리고 결국 그녀석을 홀랑 잡아먹어버리기도 했지만 그건 뭐... 그녀석 잘못이지.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비슷한 수순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녀를 찾았다. 그 당시 타키온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래서, 최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죠?"

"어, 그렇지."

"그럼 그녀가 장난이 줄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상한 점은 더 없었나요?"

"어... 글쎄 잘 모르겠네."

"왜죠?"

"...왜냐고?"

"위화감은 느끼셨다면서요? 근데 왜 그 외에 차이점은 모르시겠다는거죠?"

"아, 그... 최근 부모님 장례식 때문에 조금 바빴거든."

"..."

"...아, 혹시 그 일 때문에 최근 조금 소흘해져서 우울해진걸까?"

"..."


타키온의 눈빛은 날 뚫어버릴 것 같았다.


"어... 타키온?"

"저희는 트레이너가 저희를 신경써주는 만큼 트레이너도 신경쓰이니까요."

"..."

"딱히 싫어졌다던가 그런 건 아닐테니까 출장에 다녀온 뒤 키우던 강아지가 손을 멀리하는 걸 보고 충격받은 50대 가장 같은 표정은 그만두세요."

"..."


듣기엔 꽤 이상하면서도 무슨 느낌인지는 또 알 것 같은 괴상한 비유였다.


"그냥 그녀 나름대로 거리를 재는 중일테니 흐름에 맞춰주세요."

"...그래."

"따라가려면 힘 좀 내셔야할 거에요."

"..."

"...뭐, 막상 또 그렇지만도 않을 수도 있구요."

"...응?"

"아무튼, 제 판단에는 그녀가 선생님의 우울함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선생님을 신경써서 그런 걸 수도, 아마 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녀 나름대로 선생님을 이끌어주려는 것 같으니 그냥 흐름에 올라타시면 될거에요."



*



골드 쉽의 트레이너가 연구실을 나간 이후, 타키온의 트레이너는 타키온에게 상담 내용을 들었다.


"뭔가 타키온답지 않네?"

"뭐가 말인가, 모르모트 군? 말투?"

"아니 그거 말고, 결론이 조금 두루뭉술하다고 해야하나, 조금..."

"엉터리?"

"..."

"역시 모르모트 군이네."

"엥?"


트레이너의 반응을 뒤로하고 타키온은 골드 쉽의 자료를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 들이밀었다.


"그녀의 주법은 긴 다리를 사용해 보폭을 넓게 잡고 달리는 스트라이드, 각질은 추입이지만 중반부터 스퍼트를 시작해 종반 전부를 톱스피드로 밀어붙이는, 전체적으로 타고난 하드웨어를 십분 활용해서 밀어붙이는 타입일세. 마치 맹수와도 같지. 그중에서도 따지자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부류보단 코끼리나 코뿔소 같은 부류라고 말하면 쉬우려나?"

"그래서? 그거랑 엉터리 카운슬링이 무슨 연관인데?"

"일단 설명을 끝까지 들어두게. 일단 그녀는 꽤 괴짜로 알려져있지만..."

"네가 말하는 거냐..."


트레이너는 조그맣게 중얼거렸지만 타키온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타키온은 트레이너를 노려봤다. 트레이너는 그녀의 눈을 피했다.


"...아무튼, 그녀는 꽤 괴짜로 알려져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장난을 좋아하는 걸로 보인다네. 오히려 그렇게 장난을 좋아하면서 토센 조던 외에 큰 트러블이 없는 교우관계를 보면 즐거운 장난을 좋아하는 소녀로 보였다네. 즐거운 장난이라는 부분이 중요해. 남이 싫어할만한 장난은 칠 수 있어도 남이 불행해지는 장난은 아마 절대 하지 않을걸세. 개인적으로 조사한 자료와 몇 번 없었던 만남으로도 그런 모습이 스며나오는 것 같았으니 그녀는 꽤 속이 깊은 소녀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네."

"...그러니까, 어... 그..."

"자네 동기, 그러니까 아까 오셨던 선생님의 장례는 부친상이었나?"

"아니, 그... 음... 두 분 모두 사고로..."

"그래서 부친이나 모친이 아니라 부모님이라고 하셨던 건가."

"...근데 나도 일단 걔 동기인데, 나는 왜 존대 안 해줘?"

"아마 그녀도 자신의 트레이너가 꽤 상태가 안 좋다고 느꼈을 걸세."

"이런 건 또 무시하고 넘어가냐고..."

"나 역시 그걸 알고나니 드는 역체감이 있었는데 속이 깊은 그녀가 모르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네. 방금 전에도 예전과 달리 말을 아끼게 된 것 같은, 뭔가 패기가 사라졌다고 해야하나, 장례라는 단어를 듣고나니 그런 모습이 선생님에게서 보였다네."

"하긴... 자기는 털어냈다고 하는데 그게 쉽겠냐고."


두 사람은 그러고 한동안 침묵했다. 트레이너는 팔짱을 낀 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때때로 뒷목을 긁었다.


"그거 아나 모르모트 군?"

"뭘?"

"사랑하는 사람의 약해진 모습은 연민과 애정이 동시에 작용에 평소라면 안 할 행동들을 유발하지. 그 사람을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지만 매우 충동적으로 움직이다보니 결과가 잘 풀리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 그래서 그런 행동의 대부분은 파멸로 향하는 지름길이라네. 대체로 팜므파탈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그런 것을 유발하기 쉬운 여자들로 그려지기도 하지."

"...골드 쉽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그래서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타키온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걔는 좀... 학생에 손댈 사람이 아니긴 한데..."

"자네는 손 댈 사람이었나보군?"


타키온의 트레이너는 입을 다물었다.

타키온은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그... 그... 그 모션은 하지마."

"후후후"



*



"타키온."

"왜?"

"걔 성격이면 오히려 골드 쉽한테 화내거나해서, 그... 네가 말한 파멸에 닿을 수도 있는거 아냐?"

"그렇긴 하다만, 아까 말했지? 그녀는 맹수라고."

"그랬지. 그중에서도 대형동물과 같은 맹수."

"그런데 만약 코끼리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발을 묶을 수 있는 덫을 놓고 그것에 비무장의 사람이 걸린다면, 그 사람은 코끼리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

"없겠지?"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해도 이미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뜻이구나."

"그런 셈이지.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이지만, 아마..."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행동이 아닐 수도 있네."


타키온의 트레이너는 편두통이 온 것처럼 관자놀이를 짚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나름대로 수수께끼는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어필이었다.


"맨 처음에 내가 엉터리로 카운슬링을 했다고 내게 말했었지?"

"그랬...었지?"

"원래 내가 할 말은 '그녀가 당신을 몸으로 위로하려고 들이대는 것 같은데 당신은 아마 피할 수 없을 테니 콘돔이나 한 박스 준비해놔라.' 였다네."


트레이너는 이마를 짚었다.


"아니면, '당신의 우울함이 당신 우마무스메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빨리 털어버리고 원위치로 돌아가게나.' 라고 말할 생각이었다네."


이번엔 그 손을 그대로 쓸어 한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어느 쪽이건, 학생인 내가 교육자에게 하기엔 조금 무례한 내용이지않나? 전자의 경우엔 내용자체가 문제고, 후자의 경우도 표현이 꽤 직설적이라서 나보단 자네가 해야 어울리겠지."

"나라고 안 한 건 아닌데..."

"자네의 말이 안 닿았는데 내 말이라고 닿겠는가?"


트레이너는 말을 꺼내려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떨궜다. 또다시 이마를 짚었다. 수렁에 빠져가는 친구의 상황에 입안에 있는 침이 미묘하게 쓴 것 같았다.

타키온은 심각해보이는 트레이너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얼굴을 들었다.


"말을 계속 하자면, 어차피 이쪽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방해나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네."

"방해?"

"심장의 고동은 사람에게 안심감을 주기도 한다네."

"갑자기?"

"애초에 선생님의 고민은 그녀가 장난을 치지 않고 자주 껴안아서 생긴 것이잖나?"

"음?"

"그녀는 아마 그녀 나름대로 거침없고 장난스런 방법을 택한 것이겠지. 그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로 그런 위로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골드 쉽 군의 행동패턴 자체는 평소에도 예측 불능이니까. 또 선생님의 시선에서 시작된 고민이니 그 행동들 또한 선생님의 시선으로만 바라본게 아닐까 싶기도 하더군."

"어...어?"

"아무래도 선생님도 결국 남자다 보니 신경이 쓰이겠지. 그래서 어쩌면, 그저 오해로 비롯된 상황이 아닐까 했네만?"

"우리가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거야?"

"선생님도 포함해서."



*



"그럼 결국... 우린 골드 쉽에게 일을 넘긴거네?"

"그녀는 이미 행동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우리가 끼어든 셈이 아닐까 싶네만?"

"그래, 결국 둘 문제니까 둘이서 해결하는 게 좋겠지."

"나도 역시 적어도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와의 관계는 그랬으면 한다네."

"근데, 타키온..."

"응?"

"걔한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해주는데 나도 존대 좀 해주면 안 돼."

"...여보, 우리 예물은 어떡하기로 했죠?"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쥐새끼로 지낼께요."

"어차피 졸업하면 실컷들을텐데 지금부터 적응하는게 어떤가, 모르모트 군?"

"여긴... 학교잖아..."


그래서 결국 고루시는 위로의 착정섹스를 노린걸까 다이렉트 심장고동 asmr을 노린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