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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니 거짓말처럼 눈은 그쳐 있었다.


어, 하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 하고 소리치며 시계를 확인했더니 아침 7시. 


아직 미숙한 젊은 주인. 하지만 소바 가게를 맡으며 배워왔던 습관은 어디가질 않는 걸까.


간신히 밑준비 시간에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여유.








다급하게 밑준비를 마치고 오전 서비스 타임을 기다린다.


오전은 내점하는 고객들이 몇몇 있다.


상점가를 들리는 중장년의 단골들. 혹은 이 주변을 지나던 직장인들이다. 오피스 가와는 거리가 꽤 있지만 양복을 입고 지나는 사람이 있는 걸로 봐서는 아마 반차를 쓰고 집에 가거나 출근하는 사람이 아닐까. 직업 특성상, 내점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이건 중요하다. 주로 누가 찾아오는지, 나이, 직업, 등등을 분간해야 한다.


분석해서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좀 더 나은 레이스를 하기 위...


아니지 레이스가 아니지. 아직도 꿈결에 빠져 있다.

그러니 그 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케르나양도 그런 말을 한 거겠지.




'방금 오신 샐러리맨은 의외로 근육질 같아. 보폭이 특히나 그렇게 보였어. 근처에 혹시 헬스장이라도 있는거야 케르나양?'


‘우와 사장님 변태 같아요.’


‘변태가 아니라 오는 손님을 잘 파악하는 건 장사의 기본이고, 헬스장이 있다면 저칼로리...'



‘아, 사장님! 저 배달용 외투 새로 사주시면 안되나요?’




뭐 언제나처럼 흘러갔지만.

그나저나 어제 케르나양이 혼자 치우느라 고생한 것 같던데.

오늘은 뭔가 맛있는 거라도 대접해야지. 아, 그러고보니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케르나양이 연락이 없네.

뭐지. 지금이라도 연락을...






"장사 지금 하죠?"



"네. 어서오세요."


















.

.

.









장사란 그렇다.

언제든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특히나 이런 상점가의 소바집은 언제 붐빌지 알 수가 없다.

붐비다가도, 금새 사라져버리는 것이 지역 상점가의 애환이라면 애환.



겨우 오전서비스를 끝마치고서, 한숨을 돌린다.

케르나양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하고 생각이 찾아든 걸 보면 여유가 생겼다고 해도 되겠지.

시간은 벌써 오후 1시. 케르나양은 오질 않는다. 혹시나 모를까 보낸 라인에도 답은 없다.



오피스가였다면 아직도 손님이 얼마든지 들어오겠지만 여기는 주택가 너머의 상점가다.

지금 시간대는 꽤나 한적해진다. 오히려 여기서부터는 케르나양의 독무대. 그러니까 배달 주문이 간간히 들어올 때지.

신기하게도, 화는 나지 않았다.


그렇지. 일반적인 경영자라면 갑자기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화를 내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웅.



겨우 틈이 나서, 나는 손을 씻은 후에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받아든다.

케르나양인가.




"케르나양?"



"삼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혀 다른 앳된 목소리.



"그래, 메메. 삼촌이야."



목소리의 주인은 고쥬우 메메.


나의 외사촌인 핫포비 진의 딸. 진이랑은 고교시절 까지는 친했었다. 내가 진학해서 도중에 그만두고, 트레센의 트레이너로 가기 전까지는 집이 가깝거니와 서로 우마무스메에 대해서 이야기할 좋은 친척이었기에 특히나. 고교 시절 이후로 연락한 적은 적지만, 트레센을 그만두고서 진이 근처에 신혼집을 차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종종 만나곤 했었다. 진이 고교 졸업 이후 사고를 쳤다는 건 듣고서 잠시 놀라긴 했지만 뭐 그려려니 했다. 그야, 그 자식 잘 생겼고.



진네 친가나 우리 외가나 남자 형제가 없는 탓에, 우리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하나.

그런 탓에 삼촌도 몇 없다. 아마, 내가 알기로 메메에게 삼촌은 나 혼자 밖에 없을 것이다.




"삼춘 나 꿈에서 공룡 세계 갔어."


"꿈에서 공룡세계 가서 티아노 봤는데 완전 커!"


"그래 티라노사우르스가 왜?"


메메는 이제 5살이 되어간다.

공룡이라. 여자아이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공룡은.

메메는 아직 어려서 그런가. 티라노를 티아노라고 자주 부른다.




"그래. 얼마만큼 컸는데? 나무? 아니면 아파트?"


"그건 모르겠고, 엄청 커!!!"


"그리고 이빨도 다섯 개나 있었어!"




뭐라는건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주방에서 멀어진 직원실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푸훗하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


"이빨이 다섯 개나 되는거야?"


"응!!! 완전 커!!! 티아노!!! 이빨 다섯 개!!!"


"메메도 이빨 다섯 개잖아."


메메는 아직 이가 덜 자랐다. 갈 때마다 진은 메메의 이빨이나 성장을 자랑하곤 했었다.

우리 가게에도 몇 번 왔었지. 소바를 앞접시에 꺼내어서 툭툭 끊어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네?!"


"삼춘 나 티아노!!!"


수화기 너머로도 훤히 그려지는 움직임.

과장 된 움직임으로 넘어지면서 양팔을 휘젓는 모습은 누구한테 배운걸까.

진이겠지. 그 녀석이 마루젠스키의 레이스를 보고서 '와~ 죽이지 않냐?'하고 양팔을 벌리며 넘어지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메메 티아노야! 티아노 사우르스!"



"그러네?"


"메메 공룡이니까 그럼 전화 끊어!"



어?




뚝, 하고 끊긴 전화.



"푸흡..."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온다.

푸흐흡, 하고 코로 웃는 내 모습은 손님들이 보면 이상할까 싶어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내점한 고객들은 자신들의 소바에 머리를 박거나, 혹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을 뿐.

아, 뭐랄까. 엄청 따뜻해졌다.




고마워 메메.

하고서, 케르나양의 전화가 아닌 점을 겨우 깨닫는다.
















그 때 찾아드는 라인.








사장님 통화중이시네요.

죄송합니다.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지금 막 일어났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좀 이따 병원 가볼건데.

혹시 진료명세서 제출해야 내일 출근 할 수 있나요?



"..."



몸이 안 좋았다라.




스치는 기억들.

그러네. 안좋을 수도 있다.

눈발을 헤치면서 구태여 여기까지 와서 뒷정리를 했으니.

감기에 걸릴 수도 있어. 








'죄송해요 트레이너씨.'


'알고 있는데, 자꾸 무리하게 되서...'







"아니...!"



훽훽, 하고 고개를 돌려서 예전 기억을 털어낸다.

나 때문이다.

내가 좀 더 강하게 오지 말고 그대로 퇴근하라고 일렀어야 했다.

아니지. 갑자기 눈발이 세질 거 같았으면 케르나양에게 배달을 맡기지 말았어야 했다.


직원실 앞의 옷걸이.

그 앞에 걸린 외투가 눈에 들어온다.


쭈글쭈글.

내피가 들어차 있지 않은 바람막이 수준의 외투.

오른손을 뻗는다. 



얇구나.



내피가 없어서 얇다. 우마무스메가 인간에 비하면 튼튼하다고 해도, 이런 옷을 입고 5곳이나 맨션 거리를 뛰어다녔다.

눈을 맞으면서, 감기에 걸려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동시에 미안함에 나는 라인을 보낸다.



'괜찮아 케르나양. 우선은 병원 꼭 가보고.

 진찰 받고 명세서 보내주라.

 혹시, 내일도 몸 안 좋으면 말하고'



좋아. 오늘은 배달 주문은 못 받는 걸로.

정리하자. 이렇게 정리하자.

로스가 조금 생기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몸이 아프면 어쩔 수 없지.

이건 그저 작은역경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괜찮아.




부디, 케르나양이 아무 일 없이 낫기를.



거기엔 어느정도 내 잘못도 있으니까.






















.


.


.












"젊은 사장이 와주다니 청년위원회장은 이렇게 기쁘다니까~"



"하하, 아니에요. 오히려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점가의 밤.


배달도 없겠다, 오늘은 일찍 마무리 하려던 차에 들린 청년위원회의 회장. 청년이라고 했지만 결국 상점가다.


나보다는 5살은 더 많은 아저씨. 라고 하면 조금 표현이 적나라할지 모르겠다. 회장은 내가 있는 가게에서 왼쪽으로 4번째 점포인 마다라메 포목점의 사장이다. 벌써 8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포목점. 그런 전통을 비추면 조금 고고할 것 같았지만, 막상 일은 그쪽의 여동생분이 도맡아 하는 모양이고.

회장님은 상점가 위원회의 담당. 내쳐진 사장이라 이거다. 수완에서 밀려서, 상점가내에서 골칫거리들을 처리하는 입장.



즉, 굉장히 귀찮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설움이 많다.



그래서 이러한 모임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해도 같은 상점가에 있는 한은 어쩔 수 없다.



회장인 마다라메씨는 이제 겨우 서른 다섯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동안.

하지만 어째 볼 때마다 점점 다크서클이 짙어지고, 미간쪽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는 느낌인 것은 그런 내력 때문이겠지.


그건 어떤 의미로 당연할지도 모른다. 청년회라고 해도 동년배는 나 정도. 이외에 이 나카무라바시 상점가에 가게를 여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낡았고, 그만큼 오래 되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상점가의 청년회 같은 거에 구태여 참가하려 들지 않을거다.

물론 나도, 아버지의 연이 없는채로 소바집을 열었다면 그랬겠지.


그래서 그 마음을 안다. 늙은이들 사이에서 치이는 청년회장도, 외로운 한 사내도, 거기에 구태여 고개를 들이밀고 싶어하지 않는 젊은 사장들도.  둘 다 이해한다. 하지만 귀찮다.



"크으... 선대땐 말이지? 로망. 응? 그게 있었어. 여기 상점가도 지금보다 더...!"



로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낭만만으로 세상을 굴러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돈 앞에서 아무래도 좋은 게 된다.

이코노믹한 세상 속에서, 고리타분한 것들은 으레 뒷전이기 마련.




소바집을 하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하하.




"딱~ 딱 한 잔만 더 하자. 젊은사장. 응?"


"괜찮으세요? 내일은 점내회의가 있으시다고..."


"에? 어?! 뭐야. 내가 회장인데. 점장인데. 미치루보다 못하다는 거야 뭐야?!"




회장이 말하는 미치루라는 현재 마다라메 포목점의 안주인.

그의 여동생. 달아오른 취기에 그 자신의 열등감이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이 자리에서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내가 왠지 싫어져서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러면 딱 한 잔만 더 마시는겁니다. 회장님?"



"어어어, 그래그래. 딱 한 잔만~ 한 잔..."


"내가 바틀을 모셔다 뒀걸랑... 내가..."






.

.

.






"..."



몸이 굳는다.

어깨에 올린채 반쯤 부축해서 걸어오던 회장의 손을 놓고. 그에게 맞춰서 숙였던 허리를 세운다.

독한 술은 마시지도 않았건만, 입 안쪽이 바싹바싹 마르고 목이 탄다.



"오오~ 미사에씨. 나 왔어~"


눈 앞에는 우리를 반기는 여성이 셋.

마담이니 주인이니 뭐니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


반겨주는 여자 뒤로 술을 나르던 두 명의 여자가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좋아.



그러고선 고개를 들어 올린다.



"흐...흐흐...흐..."



망가진 증기기관처럼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회장이나 마담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자기네들끼리 떠들라지.




왜. 왜...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나를 바라보는 푸른색 눈동자 하나.

그 때처럼 머리 위로 땋아내린 머리칼. 그 때와 다른 거라곤 그 때처럼 길지 않은 것.

어깨 끝에 겨우 닿는 머리칼.


그 어깨가 그 때와 다르게 완전히 드러났다.

새하얀 어깨. 얇은 피부는 만지면 뭉개질 것 같은데, 이 주황빛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생동감 넘치게 눈에 쏟아진다.

그리고 강조하듯이 내밀어진 젖가슴. 그녀의 어깨를 매달리듯 달린 어깨끈은 젖가슴조차 보듬어주지 못하고, 겨우 앞만 가릴 정도의 



그런 천이었다.


슬리브 재질의 드레스.




누구는 싸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왜..."



왜 니가 여기에 있는거냐.

아까까지만 해도...





"어서오세요..."




그렇게 말한 뒤에 떨리는 푸른색 눈동자에 취기는 단숨에 달아난다.

아니 어쩌면 스퍼트를 위해 속도를 낮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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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안 올렸었네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