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건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 그대로더라.
당연한 반응, 좋은 의도. 그것 전부 다 통틀어서 그런 사람이니까. 결점, 나쁜 점도 잘 보이지가 않더라.
있어도 쉽게 가려버리는게 사람 마음이라서 그런가.


그걸 극대화 해 놓은 듯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겨울인데도 얇은 코트 한 장. 그 아래의 복장은 안 봐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약간 빛이 바랜 황색 셔츠에, 고동색 베스트. 재킷은 아마, 세탁을 잘못 맡겨서 상해서 못 입는다고 했었나.

뭐, 대충 어딘가 처박아뒀다가 잊어버렸겠지. 

점내의 조명 때문에 유난히도 갈색 빛이 도는 머리칼. 
한쪽만 투 블럭으로 짧게 친 머리가 눈에 띈다. 그와 동시에 짧게 묶은 머리칼도 살짝 추웠는지 점내의 공기에 파르르하고 몸을 떤다.



"이제는 완전히 폼이 사장님이네. 크으~"

"..."



오키노 트레이너.

연수원 시절부터, 그리고 짧지만 현역에 있을 시절부터 유일하게 존경할 만한 선배.
존경... 했나? 거기까진 아닌 거 같은데. 하고 웃어넘기고 싶지만, 그래도 가장 떠오르는 친근한 사람.
언제나처럼 황색 셔츠를 입은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떠오른다.



"어서오세요!"



케르나양이 활기차게 대답하지만, 나는 훗 하고 웃어버린다.
점내에 들어서자마자 양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고서 나를 향해서 허리를 내리는 오키노 트레이너.
그립고도, 또 친한 친구 같아서 앞치마 뒷섬에 묶어 둔 수건을 만지작거리며 물기를 닦아 낸다.



"간만이네요. 오키노 트레이너."

"야, 손님인데 어서오세요라고 말이라도 해라."

"글쎄요. 단 한번도 계산을 안 한 사람이 손님입니까?"

"..."



오키노 트레이너를 칫, 하고 곤란한 듯 고개를 돌린다. 쫌생이가, 하고 입에 문 장대를 질겅질겅 씹으며, 걸어 온다.
테이블이 아닌 바, 정면의 자리에 앉으며 뒤로 손짓 하는 오키노 트레이너.

그랬지. 오키노 트레이너는 나를 신입 때부터 지켜 봐준 이른바, 선배다.
행실은 좀...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사람은 나쁘지 않다. 트레이너 실적은 훌륭한 편이다. 기복이 심해서 그렇지.
그것만 봐도 이 사람을 대강 알 수 있다. 나쁜 사람은 아니다. 트레이너란 것은 단순히 가르치고, 트레이닝만 해서 될 것이 아니다.
우마무스메는 기본적으로 어린 아이다.

성인이 아니다.

그 아이들의 꿈을 향한 길의 토대를 쌓고, 걸어나갈 계단을 알려 준다.
동시에 멘탈 관리도 해야 한다. 그런 걸 지금도 계속 해나가고 있다.


사람이 나쁘면 해나 갈 수 없는 업종이다.


그렇기에 최악의 형태로 중앙을 떠난 나에게 이렇게 종종 찾아오곤 하는거고.
이런 나랑도 관계를 맺고 있는 거겠지.


다만, 급여를 가르치는 아이들의 케어에 쏟다보니... 늘 돈이 없다.
후배에게 얻어 먹는 선배는 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그래, 이 사람. 드문드문 들르는 건 좋은데... 돈을 안 내!



"또또또, 사장님? 그렇게 쫌스럽게 굴 면 돈 못 벌어~"



능청스럽게, 바 좌석에 앉아서, 장대를 내려 놓는다. 꼬치구이의 꼬치처럼 아무 특색 없는 나무 장대가 재떨이 위를 뒹군다.



"..."


일행도 그 옆을 걸어서 앉는다.
어깨까지 오는 푸른색 머리칼. 그걸 뒷머리만 짧게 묶어서 단정히 정리한 양복 차림의 여성.
보는 건 6년만이다.



"유즈키씨도 오셨네요?"


"...네"


"뭐야, 동기라며? 왜 이렇게 데면데면해?"


오키노 트레이너가, 바 위에서 오른팔을 늘어 뜨리며 넘어진다. 그러면서 우리를 서로 번갈아 본다.
유즈키 앤. 연수원 시절의 동기다. 서로 중앙에서 활동할 시절에는 보지 못 했다.
아니지, 종종 보긴 했지만. 그렇잖아. 중앙의 트레이너는 특히 신입은 자기의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전력투구하느라 시선을 돌릴 틈이 없는 걸.

그러니, 거의 6년 만.
연수원 때 남자 동기들이 수군거리던 그 말처럼. 그녀는 조각상처럼 자리에 앉아있다.

블루블랙의 깔끔한 머리칼은 단정히 묶여 있다.
그 아래의 푸른색 눈동자가 반짝인다. 언제 봐도 정갈한 사람이야.
인상만 봐서는, 좀 날카로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느긋하게 풀어진 눈썹 라인. 살짝 올라갔지만, 곡선이 완만히 떨어지는 눈매. 올이 굵어서 짙게 보이는 속눈썹.
동시에 아담하게 솟은 코. 작은 입술.

곧은 자세. 양복을 입은 허리가 빳빳하게 세워져서 뒤가 뜬다는 걸 나도 알 정도, 곧은 그 모습.



예전 그대로구나.
하고 하하. 하며, 데워진 우롱차. 바 손님용으로 준비한 따뜻한 오시보리(물수건)을 쟁반 위에 담아 건넨다.
런치에는 어지간해서 하지 않지만, 디너라면 아무래도 더 쌀쌀하니까. 그리고 우롱차.



"유즈키씨는... 음... 연수원 시절 이후로 처음인가요?"

"..."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유즈키씨는 찻잔을 붙잡더니, 고개를 숙인다. 뭐지?



"...? 뭐야~ 모처럼 동기 식당에 온 건데."'


오키노 트레이너는 하이고~ 하며 뒤로 늘어지며 양 손을 들어 어쩌라고~. 하며, 젖혔다가 돌아 온다.
저 사람은 참...


"동기 식당이라니, 여기 그런 이름 아닌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 그래서, 사장님?"

"왜요?"

"말이 짧다?"


오키노 트레이너가 찌릿하고 째려본다.
현역이었을 당시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별개의 업종. 

음... 아니야. 그런게 아니라.
접객업이라도, 친근한 상대로는 이렇게 능청 맞게 대해주는 게 맞아.



아니, 사실은 그게 아니라.
이 사람한테만큼은...




"그럼, 뭐 주문하실 건데요."


"그러네. 뭐 추천 없어?"



오키노 트레이너는 장대를 집어 들고서, 메뉴판에 눈을 쏟는다.
흐음, 하고 양 팔을 바 테이블 위로 올려서 내려다 보고 있다.
유즈키 트레이너도 마찬가지.


"그거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시지 않았어요?"


저번이라고 말했지만 2년 전. 하지만 오키노 트레이너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허리춤에 손을 대며 말한다.


"...이봐요 소바집 사장님. 그러다가 손님들 다 도망간다?
 장사 잘 할 생각이 없구만?"


오키노 트레이너는 나를 올려다 보며, 장대를 쭙쭙하고 빤 뒤에 내려 놓는다.
저럴 바에야 액상담배라도 피지. 하고 생각이 들지만, 그 나름대로의 고집이자, 결심이다. 학생을 상대하는 일이니까.

나는 웃으며, 단 한 번도 값을 치룬 적 없는 고객에게 웃음과 함께
농담을 늘어 놓는다.



"손님 같은 손님이면 안 오는 게 이득이죠."


"모처럼 와 줬더니. 여기 별점 쓰레기라고 등록 해 줘. 유즈키양!"


"그러네요.  쓰레기네요."



읏, 하고 멈춰선다.
오키노 트레이너의 농담은 괜찮지만, 유즈키씨의 말에는 어딘가 뼈가 있다고 해야하나.
갑자기 사장님 모드가 켜진다.


"그럼 따뜻한 거랑, 차가운 거 어느 것이 좋으세요?"

"난 따뜻한 거! 유즈키양은?"

"저는...음..."









"그러네요. 차가운..."

"자루 소바로 준비 해드릴까요?"

"아뇨, 됐어요."

"네?"




유즈키씨의 눈동자가 번쩍인다.
푸른색 눈동자가 바 위의 조명에 비춰져 더 강렬하게. 색이 번진다. 하늘.
금방이라도 번개가 내리 꽃힐 것 같은 하늘색으로 번진다.




"당신은 죄책감이라던가... 그런 거 조금도 없나요?"


시선이 비껴나간다.
내 뒤에서 밑준비를 돕던 케르나양의 뒤통수를 향하고 있다. 그러고선 슥, 하고 내게 되돌아온다.

...뭐지.


속에서 나도 모르게 욱하고, 뭔가가 들끓는 기분.






/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중앙 트레이너 연수원 시절이다.
스쳐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금발. 플래티나 블론드의 금발. 트레이너 연수원들이 사열 해 있으면 그 조명 아래에서
반짝이듯이 빛난다. 그 아래에 광해로 어지럽혀진 밤의 색을 가진 눈동자. 커다란 눈동자. 오똑한 코.
눈 앞에 있는 장애물이 무엇이든지 베어내겠다고, 그런 결의를 담은 푸른 눈동자. 보석은 잘 모르지만 그러한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연수원에 들어 왔을 때의 그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색은 바랜다.
그야... 그렇지. 선배라던가. 교관이라던가. 여기는 중앙 트레이너의 연수원실.
눈에 찍히면 그런 거겠지.


차분한 검은색으로 염색한 그녀를 본 기억이 난다.
처음 본 기억이 반짝였기에, 색이 죽은 그녀가 더더욱 선명하다.

그럼에도 그 빛깔. 눈동자는 죽지 않고, 살짝 푸르다. 그건 여전히 사열 한 상태로도 반짝이고 있었다.



"진짜, 트레이너가 왜 훈련까지 받는데?!"

"자기가 잘 알아야,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으니까 그런 거 아냐?"


흐아아아, 하고 연수실 기숙사. 로비에 있는 소파에 늘어지는 땀범벅의 타케우치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
나는 그 때, URA 레이스 규칙의 레포트를 작성 하느라, 아마 대충 대답했을 것이다.


"알다니, 우마무스메를 어떻게 안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타케우치한테 그렇게 말한다고 알아 들을 것 같애?"


나스가 커피와 태블릿을 가져 오며 이야기에 끼어든다.
나스는 타케우치와 달리 조금 유약한 인상이다. 고집스러워보이는 갈색 곱슬머리에 안경.
타케우치가 "흐헤헤"하고 웃는 곰이라면, 나스는 인상을 찌푸린 늑대같은 인상이다.


"야! 무시 하지 마! 나도 주법은...."

"그 주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얼마냐 아느냐, 감각적으로 아느냐. 그걸 어떻게 알려 줄 거냐에 대한 훈련이라고. 타케우치."


둘의 스타일은 정반대지만, 어째서인지 죽만큼은 잘 맞는다. 물론 나스가 타케우치의 개소리를 끊어내는 형태로.
때때로, 타케우치의 바보짓에 나스가 끌려나오는 형태로.

음, 재미있었지. 종종 연수실을 빠져나가서 트윙클 시리즈의 경기를 보러간 건.



"그렇다고 하네요~"

"아, 나스. 그러고보니 재활 관련 수업은 어때?"

"야, 너... 하... 그러니까... 됐어, 됐다고. 나스랑 둘이서 죽이 딱딱 맞아서... 아주 그냥 게이냐?"


타케우치는 질린다는 듯이 늘어지고, 나스가 커피를 내려 놓으며 웃는다.

중앙 트레이너는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서 곧바로 면허가 나오지 않는다.
지방 트레이너와 달리, 시험은 어디까지나 1차 관문. 연수원에서 각종 레이스관련 규칙과 트레이닝 방법론.
재활, 좀 더 딥하게 들어가자면 우마무스메 관련 의학까지도 공부해야 한다.

아차, 까먹을 뻔 했네.
위닝라이브에 대한 것도 배운다.

춤도, 춘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 우마무스메. 그것도 트윙클 시리즈의 정점. 중앙에서의 아이들을 맡게 될 것 트레이너가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건 곧 그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른이니까. 좀 더 혹독하게 배우는 것 뿐.
한 사람의 스타. 그 스타 밑에 갖은 노력들이 있듯이.

우리는 결국 한 사람의 미래를 짊어지게 될 그런 사람이 될 테니.
가르친다는 건 그런 거라고. 심지어 가르치는 동안 성과를 내야하는 건 더더욱.
위험하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 유즈키다."

"타케우치. 너 우마무스메용 편자 자료조사는 언제 줄 건데?"

"아, 나스. 그거 나 전에 조사한 거 있어. 각질 별로 나눈 다음에 메이커로 구분한 건데..."

"아니, 이 게이새끼들아. 그거 말고 저기 너네 동기 지나가는데 말이라도 걸어 봐!!!"


타케우치의 말에 소파 뒤로 시선을 돌리니 트레이닝복 차림의 유즈키씨가 보였다.
타케우치가 시끄러워서 그래. 이쪽을 쳐다보더니 성큼성큼 걸어 온다.
눈동자는 처음 봤을 때처럼 변함없이 푸르다. 그만큼 뭔가 차가워보였다.


"...뭐에요?"

"아니~ 그 뭐야. 그래도 동기고 하니까... 말이라도 트고 지내자고~
 나스가..."

"니가 불렀잖아. 이 자식아!"

"..."


손에는 와삭와삭군 포도맛. 아이스바라. 의외네. 하겐다즈 같은 걸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하긴 뭐... 처음에 금발 이었던 걸 생각하면... 



"할 말 없으면 갈게요."


타케우치와 나스가 서로 멱살을 붙잡고 있는 꼴을 보더니 유즈키씨는 발을 돌린다.
나머지 한 손에는...


"아, 그거..."

"교본이 왜요?"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가버렸다.
그야, 저건...


"그거 개장 전 판본이야. 유즈키씨 2반이었지? 그거 말고 신장판으로 공부하는 게 나을걸."

"네? 서고에서는 이걸 건네주던데요?"


주법과 신체역학.
아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자식 자기 혼자만 개장 전 판본으로 시험 쳤다가 왜 틀리냐고 엄청 따져댔거든 흐흐흐."


타케우치가 내 목에 팔을 걸어들며 한 손으로 쿡쿡 찔러댄다.


"야, 나도 속은거야. 서고 담당자가...!"

"동기들이 다른 표지 들고 있으면 수상하게 생각 들지않냐?"

나스가 커피를 호로롭. 다리를 꼬고서 반대편 소파에 상체를 젖힌다.

"너도 일주일 전에 알았다면서!"

"..."

"아, 아무튼. 그거 당장 따져서 신장판으로 달라고 하는 게 좋아.
 그 왜 그렇잖아? 우리는 우마무스메를 담당하니까... 아이들한테 잘못 된 걸 가르칠 수는..."



"푸훕..."

"응?"



"네. 그러네요. 고마워요."



유즈키씨는 웃고 있었다.







/










"죄책감...?"


뭘 말하는지는 대충 안다.
하지만, 그건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니다. 같이 일했던 동료로써의 비난이라면 달게 받을 수 있다.
그래 예를 들면 지금 당황해서 입을 쩍 벌리고 유즈키씨를 바라보고 있는 오키노 트레이너라면.

하지만,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제 입으로 말해요?"

"야, 유즈키. 6년만에 만났는데 대뜸..."

"슈퍼 크릭. 그 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은퇴 한 거 아냐?"


나는 그녀의 말을 끊는다. 유즈키씨는 찻잔을 든 손을 파르르 떨고 있다.



"아... 알고 있었어? 당신 알고 있었으면서...!"

"아~ 아니야. 유즈키양. 얘는 그 때 이후로 트윙클 시리즈랑..."


부들부들, 어깨가 떨리고 있다. 푸른색 눈동자 속에 하늘은 계속해서 비구름이 드리워져간다.
그 옆에서 오키노 트레이너가 유즈키씨의 어깨를 붙잡고 진정하라 타이르고 있는 모습.



"제가 트레이너를 그만두고 난 뒤의 사정은..."

"전 모릅니다."



"몰라? 그럼 재는 뭔데?!"

유즈키씨가 손을 뻗는다.
그 곳에는 갈색. 귀여운 두 개의 귀가 쫑긋하고, 움직이고 케르나양이 일어서서 이쪽을 바라본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케르나양에게 사인을 보낸다.
상대하지 말아 줘.



"직원입니다. 직원."

"...읏...!"

"진정 해. 왜 이럴까? 응? 이럼 데리고 온 내가 이상해지잖아. 이 사람들아!"



오키노 트레이너는 유즈키씨의 어깨를 짓누르다가, 나를 향해 소리친다.
아니, 우리 모두인가.
하지만...

이 부글거림은 뭘까.
항상 그랬다. 이 응어리진, 목 안 쪽에서 가래가 끼인 것처럼 끓어오르고 있는 감각.
어릴 적, 어머니한테 혼났을 때 그랬고. 중학교 때 아버지가 기타를 부쉈을 때도 그랬다.


"제가 트레이너를 그만둔 건 사실입니다. 그것도 시즌 중에, 담당 우마무스메를 내팽겨치다시피하고
 도망친 것도 사실이구요. 하지만..."



"그걸 유즈키씨. 당신이 저한테 뭐라고 할 자격은 없어요."


담담히 말을 잇는다.
그야 사실이니까.



"뭐? 자격이 없어?!"



손이 뻗어져 온다. 그 여파로 유즈키씨 앞에 있던 컵이 바 위를 뒹굴고, 차가 쏟아진다.
갑작스러운 유즈키씨의 돌발행동에 나도 모르게 양손을 하늘로 들고 만다.
눈 앞에는 유즈키씨의 얼굴.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
그럼에도 여전히 푸른 눈동자.


"야야야야, 뭐 하는거야?!"

"뭐하시는거에요? 지금?!"


소리를 듣고 케르나양이 뛰어 오고, 오키노 트레이너가 일어서서 내 멱살을 붙잡은 팔을 붙잡는다.
하지만 여전히 푸른 눈동자는 나만을 노려보고 있다. 떨리고 있다.
조금씩 번진다. 반짝이듯이, 젖어든다.
아 저건...


"유즈키씨...?"


한쪽 입술을 꽉 깨물고서, 눈을 내리깐다. 그 다음 다시 올린다.
붉어지는 얼굴. 거센 콧김. 예쁜 얼굴이 무색하게 피부 곳곳에 날이 선 주름들.
파르르르 떨리는 입술이 겨우 멈추고, 떼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거에요? 정말...?"

"뭘 말하는건데요?"

"...진짜, 진짜... 너무하네. 너무해요. 당신."

"그러니까 뭘..."


유즈키씨의 얼굴이 멀어진다.
내 멱살을 붙잡은 손이 멀어지고, 바 너머로 기울었던 상체를 다시 되돌린다.

무슨 말을 하는거지.


"오늘은 이만 갈게요. 혹시나...해서 왔는데...
 오키노 선배님 죄송합니다."


"어? 어어어어? 야, 잠깐만...! 유즈키양...!"



그녀는 이 난장판 속에서 얼굴조차 들지 않고 사라진다.
그 꼴이 정말, 누군가를 닮아서. 욕할 마음조차 사라져버리는게 웃기네.

그래, 마치 누군가를 닮아서.


"괜찮으세요 사장님?"

"어...어어어... 고마워... 근데, 신경 쓰지 말라니까..."

케르나양은 녹색 눈동자를 껌벅이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가게 입구까지 걸어갔던 오키노 트레이너가 하, 하며 머리를 헤집는게 눈에 들어 온다.

"무슨 소리래? 갑자기 사장님 멱살을 잡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쓴대요?"

"하하하..."

"야, 미안하다. 하... 진짜, 미안...!"

오키노 트레이너가 곤란하다는 듯이 내게 걸어와, 양손을 마주하고 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키노 트레이너랑 엮이면 이렇게 되는게 한 두번이던가요."

"...야, 미안한데 한 마디 해도 되냐?"

"그러네요. 오늘은 분위기도 이러니까 그냥 가실래요?"

"..."



오키노 트레이너가 바 좌석에 앉는다. 그런 다음 엎질러진 유즈키씨의 컵을 세우고, 그녀의 물수건으로 슥슥.
이 사람 설마... 이 분위기 속에서...


"아니. 빨리 줘. 배고파. 새우튀김 많이 얹어서."

"아깐 뭐가 맛있냐면서요?"

"아, 글쎄~! 달라고! 아키텐 기념 회식으로 2달치 급여가 사라졌다고!"

"..."



이 사람. 그래서 시즌 중에, 후추시에서 여기까지 온 건가.
아니, 설마 그럴리가. 교통비가 더 많이 든다.




"근데, 유즈키씨 저렇게 가버리게 둬도 되는거에요?"

"응? 뭐... 얘도 아니고. 메일 보내두면 되겠지. 다음에 올 때 사과시킬게."


이 사람은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메일인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


잠깐.

나는 소바를 준비하던 손을 멈추고, 오키노 트레이너를 바라본다.


"아, 맞다. 오키노 무전취식범."

"윽...! 네...?"


내심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바를 먹는다는 게 찔렸는지, 오키노 트레이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끝나고 저랑 좀 봐요."

"저 시즌 중인데요...? 여기 진짜 일 생겨서 지나가는 길에..."

"뭐에요? 뭐하시게요 사장님?"

"보자구요. 사줄테니까."

"진짜... 안 되는데요?"




"케르나양. 경찰에 전화 해 줘. 여기 무전취식에다가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다고."

"네?"

"야야야야, 알았어. 알았다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