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뭘 물어보고 싶길래."

오키노 트레이너는 바에 앉아, 뒷목을 긁적이며 나를 바라본다.
영업이 끝난 뒤에 대충 밥을 먹인 뒤, 조용한 바로 끌고 온 이유를 묻고 있다.
케르나양이 자기도 사달라고 졸라댔지만...

"뭔데요? 그나저나, 여기 상점가에도 제대로 된 바같은 게 있네요. 처음 알았어요."

제지하지 못했다...! 
'왜요? 뭔데요? 사주는 거면 저두요!'하고 달려드는 케르나양을 도저히 타일러서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셋이 나란히 앉은 바.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케르나양에게 잠시만 조용히 해달라고 끄덕인다.
케르나양은 녹색 눈동자를 크게 만들며 양손을 앞으로.
아 편하게 하라고?

아...아아아...

후우, 뭐 됐나.
어차피 일의 전말은 케르나양도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유즈키씨가 왜 저러는거에요? 오키노 무임승차범이라면 알고 계시죠?"

"선배! 트레이너! 어?! 오늘 유독~ 많이 얻어 먹고 있다지만 그래도!"

위스키 잔을 쥔 채로 오키노 트레이너가 소리친다.
소바. 케르나양과 내 저녁 겸해서 스키야키. 그리고 지금.
많이 얻어먹고 있으니까 말해달라고.

"응? 무전취식 아닌가요 사장님?"

"맞아! 케르나...양이라고 했지?! 그런 예리함이 좋아! 어? 보고 배우란 말이야~ 사장이 되가지고~"


오키노 트레이너는 왼손을 쭉 하고 펼쳐서, 검지로 케르나양을 가르킨다. 케르나양은 하와이안... 뭐더라.
아무튼 도수 낮은 칵테일을 홀짝이며 헤헤, 하고 내 등을 두드리고 있다.
이 사람들 저녁 때도 술을 먹여둬서 그런가 벌써 취했나.


"말 돌리지 마시구요. 도대체 제가 그만두고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유즈키씨가 저렇게..."

"...뭐에요? 그 표정...?"


오키노 트레이너는 놀란듯이, 눈을 커다랗게 만들고서 고개를 돌린다.
입에 문 장대를 재떨이 위에다가 내려 놓고서 오른손으로 뒷목을 긁고 있다.

아까 유즈키씨가 돌발행동을 할 때보다 더 당황한 듯한 표정.
이런 얼굴은 그 때, 그래. 크릭이 날 지명했던 그 날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



"아, 아니... 너... 근데 괜찮아?"

"뭐가 말입니까?"

"..."


오른쪽 뺨을 긁던 손은 수염라인을 타고 내려와서, 자연스레 턱에서 멈춘다. 고심하듯이, 혹은 이제 자라나고 있는 수염에 길을 들이듯이
몇 번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그 머뭇거림에, 나도 모르게 감질났는지 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갓 파더. 위스키의 진한 향이 코 끝을 때린 후에, 혀를 텁텁하게 만든다. 동시에 촉촉한 상한 체리향이 목을 타고 흐른다.
한 잔을 넘기고도, 오키노 트레이너는 아직 머뭇거리고 있다.

"근래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왜 또 말을 돌려요."

"아까 유즈키양한테 한 말 있잖아...? 그거 음... 그러니까... 넌 괜찮...냐고... 응?"


아까 한 말.





---"제가 트레이너를 그만둔 건 사실입니다. 그것도 시즌 중에, 담당 우마무스메를 내팽겨치다시피하고
 도망친 것도 사실이구요. 하지만..."


---"그걸 유즈키씨. 당신이 저한테 뭐라고 할 자격은 없어요."




괜찮지 않다.
내가 내뱉은 말에 일말의 감정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해.
그건 아마 유즈키씨를 향한 게 아니라. 아마도...



"괜찮아요."

"...으...으으음..."


오키노 트레이너는 괜찮다고 한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숙인다.
곧 이어지는 앓는 소리. 탁탁탁, 하고 발이 바닥의 타일을 치는 소리.


"미안. 말 못해주겠다. 역시 이런 건 본인이 말하는 게 나아."

"..."


"당사자인 제가 있는데요?"


"...단초를 만든 건 맞지만, 그 후의 당사자가 아니니까."



내가 도망치고, 무언가 있었구나.
아마 슈퍼 크릭과 관련 된.
그리고 그 후의 당사자가 아니니까라...



"..."


오키노 트레이너는 도망치듯 잔을 들어 올린다.
묘한 정적이 흐르고, 나는 그 속에서 취기가 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어째서인가, 부끄럽지도 않은데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

동시에 억울하지도 않은데, 목 안쪽이 타는 것 같은 느낌.
아까 먹은 스키야키의 향이 목구멍 아래에서 미묘하게 올라오는 느낌.



"근데, 꼭 알고 싶으시면 찾아보시면 되잖아요."


그 정적을 깬 것은 케르나양이었다.
가끔씩 회식이라고 해야할까, 단 둘뿐이니. 그래도 저녁을 먹거나 하는 사이지만.
그럼 회식인가? 아무튼, 케르나양과 술을 가볍게 마시기는 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어울리는 건 처음이다. 그러니 살짝 취기가 오른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처음.

바의 살짝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멜론소다처럼 탄산이 오르듯 반짝이는 녹색 눈동자.
그 아래의 달아오른 얼굴이 어딘가 어색하다.
그 위에서 쉴새없이 팔랑이고 있는 귀와의 조합이 어딘가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동시에, 갑자기 치고 나온 말이 뇌를 때려서 뭔가 말문이 막혀버린다.



"어, 어떻게...?"


"네? 아, 아~ 뭐~ 중앙 트레이너잖아요? 경력사항이나 이런 거 다 인터넷이나
 URA 홈페이지 들어가면 나오고..."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신세대 무서워!!!"


오키노 트레이너가 양팔을 흔들며, 케르나양의 말을 끊는다.
아, 그러네. 확실히 그런 방법도 있었지. 하하, 그러고보니 그랬어.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지 참.

굳이 관계하지 않으려고 했을 뿐.
굳이 보지 않으려고 했을 뿐.

트윙클 시리즈, 특히나 중상경주가 있는 날이면 어디든 그 이야기로 시끌벅적이고, 중계도 하니까.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굳이!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 마."

"알아요."

"어?"


"이 자식, 그럼 왜 아까부터 말하라고 한 거야~"


오키노 트레이너는 왼손으로 내 어깨를 팡하고 친다.
알고 있다. 알아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근데 물어보면 답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니까.




대략, 어렴풋이 나쁜 상상들이 스친다.
대충, 알 것 같아서 더더욱 기분 나쁘다.



"그냥, 술 마시고 싶어서요. 간만에 봤잖아요?"

"그런 말은 여자한테나 하세요 사장님? 네?"


오키노 트레이너는 재떨이 위에 올린 장대를 들어 올리고서 핑거 스냅. 손가락 위에서 핑그르르 도는 장대.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뭐든 상관 없어지는 기분이다.

기한을 못 맞춘 숙제. 벌 받을 걸 기다리다가, 숙제 검사는 다음주에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마냥.
하아, 하고 어깨가 내려앉는 기분. 아니지. 취기가 올라서 조금 풀렸을지도 모르지.
여러가지가.


"케르나양. 이 사람이 현역시절에 자기 술 마실 때 나 불러내서 무슨 이야기 했는지 알려줄까?"

"네? 네!!!"

케르나양은 벌써 한 잔을 비웠다. 잔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잠시 뒤.
한 손을 쭉 뻗어 들어올리고선, 크게 외친다.

"야야야야야야야, 이 자식 이거 완전히 그냥? 어? 사람을..."

"좋아, 오늘은 이 아저... 아니 사장님이 이 사람의 흑역사 다 이야기 해줄테니 기분이야.
 케르나양 시키고 싶은 거 다 시켜!"

"중앙! 팀 스피카의 트레이너의 취기열전 가즈아아!"

"야! 너 취했지?!"

"와, 진짜요? 그럼... 이거... 보틀로..."

"좋아!"

"야! 나도! 나도 주문하게 해주라!"








.
.
.
.

















X발.
X됐다.
X발.

이래서, 이래서... 오키노 트레이너가 싫다니까...



"으으으으...!"


"으흐흐흣~"



이른 아침.
평소보다 이르다.
정확히는 제대로 못 잔 것에 가깝다.
언제나처럼 소파.

정신을 차리니, 어머니의 잔소리가 떠오른다.
외투를 벗어던지고 곧장 잠든 탓인가 깸과 동시에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떤다.


술을 마시면 안 좋은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마시질 못 한다. 나이 때문일 수도 있다.



"후으으으..."


시계는 새벽 5시 23분.
안 좋은 기억을 잊어버리지도 못한다.

술 기운에 아주 성대하게 써버렸구만.
아는 게 독이라고 했나. 마다라메 회장이 사주는 술을 따라 마시다보니 보틀? 그거 뭐라고.
하며 술기운에 사버린 것이 떠오른다. 14만엔은 심했잖아.

어깨를 춤추게 하며, 일어서서 세면대로 향한다.
입 안에 가득 남은 싫은 향. 스키야키를 먹을 때 뒤섞인 향신료 향과 위스키의 향이 뒤섞여서 불쾌함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하하, 뭐래. 불쾌함이 조화를 이룬다니.

덜 깼어.

물을 틀고, 칫솔로 그 사이를 가볍게 스친다.
치약을 짜고, 입에 넣으니 이제 좀 살 것 같은데 머리가 아프다.

얼굴이 뜨거워서, 세면대 거울을 바라본다.

얼굴이 부어서, 눈도 제대로 못 뜬 남자가 칫솔을 입에 물고 있다.



"후우..."



알고 있었다.
대충 가늠은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달린 뒤에 화장실에서 거하게 토하던 오키노 트레이너.
그가 취한 와중에도 '난 있지? 어~? 이런 거... 싫어... 둘 다 이해 된다고~ 어?' 하며 울듯이 토하며 말하던 것.
등을 두들겨주며, 아까도 그 이야기 했어요. 어? 안다고. 알아요. 하고 대충 받아 넘긴 불과 몇 시간 전의 일들.



대충 알고 있었다.


6년이다.
나한테도 도망치고 난 뒤로 그걸로 끝나지 않고 주욱 이어져 왔다.
살아있으면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분명히 여러가지가 있었겠지.
그녀도. 그녀에게도.



알고 싶지 않았고, 알 수도 없길 바랬고, 그렇게 주욱 이어져 왔다.
하지만 점점...



"카아아아앍...!"



아니, 그런 거 생각하지 말자.
지금 나는 그 때와는 다르다. 더 이상 트레이너도 아니고, 세상물정 모르던 스무살 초반의 신입도 아니다.
그저 소바집 '키쿠라'의 사장일 뿐이다.

뻔뻔한 어른이니까.


그거까지는 모른다.



지금, 나는 지금 이대로.
그녀에게 사과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제일 낫다는 건 알고 있다.
알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아오로로로로"



가글하며, 근심이나 걱정들도 이렇게 싸악하고 씻겨내려 버릴 수 있다면하고 생각한다.
한데 뒤섞어서, 이 사이에 남았던 고깃덩이들과 술의 기분나쁜 향도 전부
뱉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뱉어낸다.




















.
.
.
.









"케르나양. 그거 배달하고 나면 곧바로 퇴근 준비 해."

"네? 아직 영업시간은 좀 남았는데요?"

점퍼를 입은 케르나양이 장갑을 끼다가 말고 나를 쳐다본다.
그래. 아직 9시. 영업을 끝마치기엔 너무 이르다.
소바 가게는 새벽 1시까지도 영업하곤 한다.

역 주변은 특히나 그 역의 최종열차 시간까지 하는 게 보통이지.
하지만 여기는 역에서 조금 떨어진 상점가고.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기분 여하에 따라서 가게를 일찍 접고 연다는 게 사장특권이긴 하지만
동시에 가게에는 엄청난 손해다. 단순히 그 날의 영업이익 뿐만이 아니라. '어라? 여기는 제멋대로 열고 닫네?'하는 인상이 남는게 크다.
그렇다면 선택지에 빠지게 될 것이고, 손님이 줄게 되겠지.

하지만 오늘은 모처럼이니까.


"..."

"왜? 사장이 닫겠다는데."

"그 때 그렇게 돈 많이 쓰셔놓고, 벌어야죠? 사장님?"

"직원이 신경 쓸 정도로 휘청휘청하는 가게는 아니거든?!"


실제로 임대료가 없는 만큼, 여유는 항상 있다.
거기다가 리모델링으로 아버지가 준 돈을 전부 써버린 것도 아니다.


"흐으으음..."


케르나양은 커다란 눈동자를 반으로 만들며 나를 째려본다.
째려본다기 보다는 의심의 눈초리겠지.

애초에 누구보다 신나서 이것저것 시킨 것은 케르나양이었잖아.


"그... 그런데요..."

"응?"


케르나양은 등을 돌린 채로, 탁탁. 하고 신발 코를 지면에 부딪힌다.
밑창이 보인다. 평범한 스니커즈. 편자는 어디있지? 하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마는 걸 보면. 아직이구나.



"그... 저... 그 날... 뭐... 실수 안 했죠...?"



케르나양이 실수....?
아...



"하하하하..."


"왜요! 왜 웃는건데요?!"



나도 모르게 코에서부터 웃음이 일어난다.


"아냐아냐, 안 했어. 오키노 트레이너한테 완전 쓰레기네~ 이 사람. 한 것 말고는 없을걸?"

"네?! 예?! 제가요?!"



성인이라고 해도, 아직 어리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랑 있으니, 그녀 나름대로 긴장 했을 수도 있겠지.
뭐, 자기가 가겠다고 떼쓴 업보라면 업보지만.

실제로 케르나양은 취하기 전에, 오키노 트레이너가 먼저 취해버렸으니까.

'케르나양! 나와 트레이닝을 하자! 중앙에서!' 하고 양손을 잡고 아주 그냥 생쑈를 하고
케르나양은 케르나양대로 '어머어머어머~ 남의 우마무스메를 빼앗으려 하는 건가요?! 이 도둑고양이 트레이너~' 하며
상황극을 만들면서 아주 잘 놀았다.

마지막에는 노래방까지 가서 'make a debut'를 부르며 '역시 우리 삼관 노릴까?' 하며 상황극.
완전히 만취한 꽐라 둘을 택시에 태워 보낸 건 나.
그 택시비를 지불 한 것도 나.

오키노 트레이너쪽은 안 냈지만.
뭐, 알아서 하겠지.


"응. 그러니까 신경...푸훕... 쓰지 마..."

"왜요왜요왜요왜요! 뭔데요?! 뭔가 했어요? 제가?"


당황했는지 빨갛게 물든 뺨을 들고, 케르나양이 가게 안 쪽으로 걸어온다.
그 모습이 어딘가 귀여워서, 그래 마치. 메메같네. 놀리면 이렇게 볼이 빵빵해져서 달려드는 모습이.


"아니아니... 히히히... 괜찮아. 아무 일 없었어. 얼른 가. 불겠다."


"아...아으...으..."


케르나양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잘 안다. 지금쯤 오키노 트레이너도 비슷한 꼴로 '하... 연락... 해야겠지? 농담이라고...?' 하며
케르나양한테 할 말을 고르고 있을테니까.


"그걸로 마지막이니까, 조심해서. 빠르게 천천히 갔다 와."

"네에..."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는지. 케르나양은 내 말에 반박도 하지 않고 천천히 걷다가 점점 스피드를 올린다.
나는 문 앞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그녀의 발걸음을 바라본다.

안정적이다. 손에 쥔 배달가방을 흔들리지 않고, 정말 안정적으로 점차 스피드를 높여서 상점가를 떠난다. 인파가 몰린 곳에서 멀찍히 떨어져서
그럼에도 속도는 줄이지 않고. 멀어진다.

뭐랄까, 조금 기분이 이상하네.
마치 딸이 학교 가는 걸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걸까.
그럴 수도 있지. 만약 내가 고교 졸업 이후 결혼했다면 케르나양 같은 딸이...

아니아니, 나이로 봐선 안 맞지.
해봐야 메메 정도이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진을 만나지 못한 게 오래 됐다.

사촌인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니까 종종 봤었지만. 결혼 한 후로는 가끔씩 밖에 만나지 못하니까.
솔직히 진보다 메메가 더 보고 싶어. 사촌 조카는 귀여우니까.


"후으읏... 춥네..."


어느새 계속해서 멀어지는 케르나양.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게 한 것은 추위였다.
그리고



"히로! 히로! 어디있나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