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동생은 이후 사진을 보내지 않고 있다.

이후라 해도 이제 겨우 2주 정도가 지났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보내던 것들을 생각하면 꽤 텀이 길어지긴 했다.

못해도 일주일에 하나는 보냈으니 흥미가 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동생의 몸매는 현실에선 보기 힘들고 인터넷에선 그나마 비슷하지만 뒷배경이 일그러지거나 피부에 묘한 흔적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 혹은 아예 국적이 달라져야 한다.

새삼 외할머니 댁에 가서 보았던 현역 시절 사진이 떠오른다.

외할머니도 꽤 건강미 있는 미인이셨다.

그래도 동생의 현재와 비교하면 유전자가 일한 수준이 아니라 다른 것이 개입한 느낌이다.

아빠 쪽의 혈통인가?



하여튼,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폰을 보여줄 사람이 없긴 해도 그런 사진들이 있으면 아무래도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안 그래도 그만 보내라고 할 생각에 긴장도 하고 있었는데,

"그래 너 유치원생 아니다." 라던가, "내가 실언을 했습니다, 동생님." 등등,

대충 어떻게 사과할지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대로 어물쩡 넘어가게 되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겠지,

된 걸까?

다시 생각해보니 다행인걸까?

...

아니라고 본다.

끝맺음이란 건 확실해야 한다.

애초에 그냥저냥, 흐지부지, 그렇게 넘어갔다가 지금 이 사단이 난 것이니까.

그 날 저녁에 난 동생에게 연락했다.


[야]

[너 그 사진들 이제 그만 보내]


암튼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은 질 생각이다.

설마 그 말들 때문에 그렇게 노력을 할 줄은 몰랐었으니까.

졌을 땐 졌다고 깔끔하게 인정을 해야한다.

그것도 못 하면 진짜 너무 구질구질한 오빠가 아닐까?


[설마 그걸 말 못해서 꽁해있던거야?]


그게 맞다고 하면 맞는데 또 아니라고 하면 아닌 상황이다.

계기는 그것이 맞지만 결국 우울해있던 건 더 깊은 문제였으니까.

그나저나 우마무스메는 직감이 인간과 다른 차원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당황하긴 했지만 진정하고 다시 메세지를 보냈다.


[내가 졌다]

[유치원생이다 뭐다 했던 거 다 취소할게]


메세지의 읽음 표시가 사라졌다.

그 뒤로 15분이 지나서 동생은 다시 메세지를 보냈다.


[그럼 나 좀 도와줘]


그러곤 바로 사진을 보냈다.

화장실에서 속옷 차림으로 서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전처럼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지 않고 정자세였다.


[어때?]

[보내지 말라니까]

[아니 몸매 어떠냐고 객관적으로]

[객관적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덩치가 커서 그렇지 남자들이 열광할 법한 몸매는 맞다.

당장 작년 우리 반 남자애들 반응부터 상당했다.


[좋지]

[좋아?]

[남자가 보기엔 그렇지]

[그럼 오빠가 보기엔 어떤데?]


결국 그거다.

내가 보기에 좋다는 소리가 나와야 끝난다.

동생이 원하는 대답을 해줘야 끝나는 문답이다.


[내가 보기에도 너 예뻐]

[됐냐 이제?]


동생은 이후 답장이 없었다

정답이었던 것 같다.



동생은 2월이 되어 또다시 한바탕 판을 뒤집어버렸다.

패브러리S에 출전의사를 밝히며 남겼던 인터뷰가 가관이었다.


"마일 G1이 없어서, 마침 더트도 없으니 한 번에 가져가려고 나왔다."


G1이 무슨 백화점 행사상품도 아니고 1+1 취급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인터뷰를 도발로 본 더트의 강자들은 패브러리S에 출전의사를 밝혔다.

각자 인터뷰 내용은 달랐지만 한 번씩은 동생을 언급했다.

게다가 더트에서 터프로 넘어갔던 마일러들까지 다시 더트로 돌아와 도전의사를 밝혔다.


"주니어 때 마일 좀 뛰어봤다고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서 이참에 코를 눌러주겠다."

"커리어에 흙먼지를 묻히는게 아니라 아예 흙탕물에 담궈주겠다."


출전하는 우마무스메들은 다들 동생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로지 동생만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라인업부터가 마일 통합 올스타전과 다를게 없었다.

동생의 한 마디가 판을 제대로 달궈버렸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대로 그 판을 뒤집어버렸다.


<더트에 모인 별들도 그녀를 막질 못 했다.>


동생은 시니어 시즌도 역시 대형사고를 치면서 시작했다.

몇몇은 마군으로 둘러 쌀 계획이 있었던 것 같지만 동생은 처음부터 뛰쳐나가 그대로 도망쳤다.

대도주를 펼치다못해 페이스를 계속 끌어올려서 선행, 선입라인이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기본적으로 중거리, 장거리를 뛰던 스태미너와 그것을 커버하는 폐활량,

다른 라이벌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허벅지와 엉덩이,

본인이 가진 모든 이점을 폭발시킨 질주였다.

동생이 클래식 때 중장거리를 열심히 뛰긴 했지만 시작은 마일이었다.

오버페이스로 달려서 그런지 다들 경기가 끝난 후에도 흙바닥에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그나마 추입으로 달린 둘하고 동생정도가 멀쩡히 서서 객석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마 주니어 때도 저렇게 박살을 내고 다녔을 것 같았다.

위닝라이브 이후 더트 팬덤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역대 더트 경기의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기에 팬덤 자체에 유입이 생겼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동생은 오랜만에 광고를 찍었다.

매번 찍던 브로마이드나 포스터 광고였지만 수트에 정장바지는 꽤 신선했다.

심지어 스포츠 브랜드가 아니라 스마트 워치 광고, 동생은 처음 찍어보는 광고였다. 

여자 모델들은 물론이고 남자 모델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는 박력을 보여줬다.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보이는 웃음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한편으론 와이셔츠가 어떻게 저 큰 가슴을 버티는 건지 신기하기도 했다.

혹시 저 광고 때문에 몸매를 물어본 건가?



동생의 다음 목표는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이었다.

역시나 재수없게도,


"단거리 G1이 없어서요."


라는 인터뷰를 남기고 동세대의 스프린터들에게 도전장을 냈다.

사실 도전장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동생과 같은 시니어 시즌을 보내는 스프린터들 중 몇몇은 이미 주니어 때 동생에게 박살이 났었다.

어떻게보면 그녀들의 복수전이라 부르는게 맞을 것이다.

동생도 그걸 아는지,


"장난치는 것이 아닙니다. 레이스에 대해선 언제나 진지합니다. 제 목표는 공전절후(空前絶後), 아무도 닿지 못 한 곳까지 갈겁니다."


라는 말을 덧붙이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 영상 속 미소를 짓는 동생은 굉장히 어른스러웠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과는 많이 달랐다.

여유나 자신감이 아니라 기대감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는,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조금 야했다.

그리고 나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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