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 [괴문서] 아르당의 유리 날개 

전편 :  [괴문서][NTR] 아르당의 더럽혀진 유리 날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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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한낮의 트레이닝 시간.


저는 트레이너 님이 보는 앞에서 잔디 주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햇볕이 비추는 초록빛 잔디는 마음에 안정감을 주고, 달리며 맞는 바람은 상쾌함을 줍니다.


그렇기에, 달리는 순간만큼은 걱정거리를 털고 잊을 수 있습니다.


몸이 약해 침대에 누워있던 예전의 저는 이런 감정을 느끼길 기원하며 고대해왔었죠.


하지만...


분명 달리는 것만으로 털어내거나 달리는 순간이라도 잊을 수 있었던 것들이 지금까지의 제 걱정거리였다면, 지금의 저를 괴롭히는 것은 예전의 그런 것들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달리는 와중에도 털어내지 못하고 잊히지도 않아, 오히려 달리는 것조차 방해할 정도로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지금의 저는 분명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할 텐데, 머리를 붙잡은 채로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후우....후우...."


그것은 제 몸을 타고 내려가는 듯, 이내 다리에 도달해서...


달리던 다리를 무겁게 하고는, 이어서 살짝 꼬아버립니다.


"...아얏?!"


트랙 옆의 울타리를 가까스로 잡고 버티어서, 몇 걸음 더 걸으며 급하게 넘어지는 것만은 피했지만 결국 넘어져 버렸습니다.


이내 저는 넘어진 채, 시큰하게 아픔이 느껴지는 왼쪽 발목을 살짝 잡았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트레이닝을 봐주고 있으시던 트레이너 님이 놀란 채로 달려오고 계십니다.


"아르당! 괜찮아!?


"....으읏..."


운동복의 바짓단을 살짝 올려 살피면, 거기에는 살짝 불그스름하게 변한 발목이 보입니다.


살짝 삔 걸까요? 아니면 더 큰 부상?


"아르당! 다리야?!"


"괜찮아요. 트레이너 님. 그냥 살짝 삔 것 같아요.."


이윽고 트레이너 님은 제 발목을 살피시곤, 가져오신 파스를 살짝 뿌리셨습니다.


발목에서 느껴지던 시큰한 아픔이 파스의 시원한 느낌에 덮어씌워지듯 천천히 잦아들었습니다.


트레이너 님은 제 발목 말고도 다른 다친 곳은 없는지 저를 살피시며 물으셨습니다.


"발목 말고도 어디 더 아픈 곳은 없어?"


"으읏... 다른 곳들은 괜찮아요.. 발목만 살짝.."


넘어질 때 팔을 모아 땅을 디디며 넘어졌기에, 소맷자락을 살짝 잡아당겨 팔을 살폈지만 크게 느껴지는 아픔은 없었습니다.


"...그럼, 일단 양호실로 가자. 아르당, 걷기 힘들 테니까 잠깐만..."


"..죄송합니다. 부탁드릴게요.."


이윽고 트레이너 님의 팔이 저를 안듯이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오고, 저는 그 팔에 의지하며 천천히 일어섭니다.


"...읏."


일어서는 와중 파스의 느낌 아래 가라앉아 약한 아픔만 느껴지는 왼쪽 다리로 땅을 살짝 디뎌보니, 이윽고 아픔은 '자신은 사라지지 않고 그저 잠시 약해져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이 커졌습니다.


"자.. 아르당, 조심히..."


왼쪽 다리로 땅을 디디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저는 트레이너 님에게 의지하여 양호실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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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 님에게 의지해서 양호실에 도착하자, 제 얼굴을 본 양호 선생님은 기겁하시며 매우 놀라셨습니다.


예전에 트레센에 입학은 했지만, 몸이 무척 약했던 때에는 교실에 들어갔던 날보다 양호실에 누워있다가 병원으로 향했던 날이 많았으니까요.


기겁하시며 전화를 꺼내든 양호 선생님을 진정시키기 위해 저와 트레이너 님은 진땀을 빼야 했지만, 이윽고 양호 선생님께서는 저희의 이야기를 듣고 제 발목을 살피시고는 한숨을 내쉬며 '단순히 삔 것이 맞으니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대로 양호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양호실 침대에 눕자, 이윽고 양호 선생님이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얼음주머니를 트레이너 님이 이어받아 발목에 대주셨습니다.


"후우....."


침대 위에 누운 채로 한숨을 흘리며, 다친 발목만 살며시 드러낸 채로 트레이너 님이 대주고 있는 얼음주머니의 차가운 냉기를 느낍니다.


얼음주머니는 제가 직접 대겠다고 했었습니다만... 트레이너 님은 한사코 거절하시며 옆에 계십니다.


"아르당. 아픈 건 좀 진정됐어?"


"네... 걱정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제 실수 때문에 넘어진 것 때문에 트레이너 님과 양호 선생님을 걱정하게 만들어버렸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단순히 발목을 삔 것이 아니라 더 큰 부상이었을 경우를 생각하니 더더욱 마음이 불편하고 두렵습니다. 트레이너 님이나 다른 분들도 엄청나게 걱정해야 했을 테니까요.


"후우... 트레이너 님, 저는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까. 트레이너 님은 이만 다른 일을 하러가주세요.... 저 말고도 다른 할 일이 있으실 테니까요."


"너를 보는 게 내 일인걸. 그리고, 여기에 너를 혼자 놔두고 가면 걱정스러워서 다른 일도 손에 안잡힐거야."


"...여기엔 양호 선생님도 있는걸요?"


"...그건 그렇지만."


...아픔을 참으며 침대 위에 누워있으니, 예전에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때를 기억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가끔 병문안을 오는 가문의 다른 분들을 맞이하며 웃는 때도 있었지만, 병문안을 왔던 분들이 가시면 홀로 침대에 누운 채로 숨죽여 울곤했던 때의 기억.


그런 저를 구해주신, 다정한 분...


발목 위에 얹어진 얼음주머니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 얼음주머니를 잡고 있는 손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 이어서 그 손의 주인을 시선으로 쫓습니다.


트레이너 님의 다정한 얼굴에는 저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어리어 있어, 그 다정한 얼굴에 그런 감정을 어리게 한 저 자신을 책망케합니다.


"후우..."


저의 벌어진 입가에서는 계속해서 한숨만 나옵니다.


제가 계속 한숨을 내쉬면, 트레이너 님이 걱정하실 텐데. 그것을 알면서도 제 입에서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기 힘들어요....


이윽고 트레이너 님은 저의 한숨을 시선으로 쫓듯이 움직이다가, 이내 제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꺼내십니다.


"....아르당.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거야?"


"아니에요.. 그냥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트레이너 님에게 제 걱정을 말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 때문에 안고 있는 걱정이 많으신 분인데, 거기에 더 큰 걱정을 넘기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말해드릴 수 없어요. 트레이너 님... 그 남성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내 트레이너 님은 석연찮은 얼굴을 하신 채로 다시 말을 이으셨습니다.


"...아르당이 그렇다면 그렇겠지만.."


"...."


"그래도, 아르당? 무언가 걱정거리가 있다면, 혼자서 감싸지 말고 나에게도 말해줘.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나한테 의지해도 좋으니까."


저의 머리속에, 트레이너 님에게 그 남성에 대한 일을 고백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차라리 울면서라도 말해버리고, 트레이너님 에게 의지해서 털어내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릅니다.


어쩌면, 가문과 학원에 그 남성에 대한 일을 알린다면 그 남성과 만나야 하는 일 따윈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한다면, 트레이너 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이윽고 머리속에 그 남성이 했던 협박이 스칩니다. 트레이너 님이 저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려 힘들어 하신다면...


제 억지 때문에 시작된 일인데, 그 결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트레이너 님이 되어버릴 겁니다.


"...아무 걱정도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 주세요. 트레이너 님.


이내 저는 떨면서 열었던 입을 굳게 닫아걸며, 본래 말하고자 했던 말을 삼켰습니다.


제 입에서 나오는 것은 트레이너 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그리고 저 자신을 책망하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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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많이 잦아들고, 해가 질락 말락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트레이너 님은 계속 저와 함께 있으시다가, 이내 아마존 씨와 치요노 양이 양호실로 찾아와 저를 데리고 기숙사로 향할 때가 되어서야 인사해주시며 헤어졌습니다.


해 질 녘의 석양을 뒤로하고, 제 양쪽에 나란히 서서 부축해주는 두 분의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어이 다쳤다길래 걱정했다고?"


"우우... 아르당 씨.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심해요. 바보 같아요. 저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힘들어하게 했습니다.


자책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런데도 저는 계속 자책할 따름입니다.


저를 부축해주시며 따라 걷던 치요노 양의 시선이 제 얼굴로 살짝 향하더니, 이윽고 다시 말을 꺼내셨어요.


"...요즘 아르당 씨가 이상했어요. 저번에, 공원에서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힘이 없으셨는데. 그날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그때 봤던 아르당씨의 얼굴이 한참을 우셨던 것 같았는데..."


"아르당이 한참을 울었었다고? 뭔 일이 있었길래..."


아마존 씨는 치요노양의 말에 놀란 듯, 숨을 삼키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안 돼요. 최대한 숨겨야..


"...정말로 괜찮아요. 그리고, 치요노 양. 함부로 저에 대한 일을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냥 부끄러워서 그럴 뿐이에요."


"아.. 죄송해요. 아르당 씨..."


이윽고 치요노 양의 얼굴은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처럼 축 처져버렸습니다.


죄송해하실 것 없어요... 오히려 제가 죄송한걸요...


"...."


아마존 씨는 얼굴에 의구심을 띤 채, 다만 살짝 입을 떠시긴 하셨지만 그대로 말없이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이윽고 침묵한 채로 걸음을 옮기던 저희는 기숙사에 들어서서, 이내 저는 기숙사 방의 침대에 조심스레 걸터 앉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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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완전히 내리고 잠들 시간이 되어 전등이 꺼진 어두운 방.


"...후우..."


저는 제 침대에 누운 채, 옆의 침대에 누워 잠든 치요노 양이 깨지 않을까 조심스레 작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잠이 오질 않아요.."


발목의 아픔은 금방 가셨습니다.


트레이닝이나 뛰는 것은 무리더라도, 내일이면 혼자서도 걸을만 할테지요.


하지만, 발목에서 살짝 느껴지는 아픔보다 더 큰 다른 것이 제 잠자리를 방해합니다.


살짝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조심스레 듭니다. 그리고 이불로 몸을 뒤덮은 채로 휴대전화의 화면을 켭니다.


저에게 연락하겠다던 그 남성은 공원에서 만났던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마치 존재치 않았던 것과 같이요.


하지만...


"....아니에요."


그것은 제 바람일 뿐입니다.


어쩌면, 그는 제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바라곤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으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괴로워요. 힘들어요.


"트레이너 님...."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부. 그 목록 사이에 있는 트레이너 님의 전화번호를 훑으며 통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릅니다.


"으으...흐윽...."


'참기 힘들어요. 안아주세요. 그리고 위로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손끝까지 차올라, 손가락으로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


이윽고 머리속에 힘들어할 트레이너 님의 모습이 스치면, 다시금 그 손가락을 내려놓습니다.


"으으...아아...."


한참을 그렇게 휴대전화를 든 채로 신음하다가.


힘이 풀린 손에서 놓쳐서 침대에 떨어지곤, 화면이 꺼져가는 휴대폰을 집지도 못한 채.


"으흑....으으으흑..."


저는 이불을 덮은 채로 그렇게 숨죽여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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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서 비추는 햇빛에 살짝 뒤척이며 일어났습니다.


울다가 그대로 잠든 것인지, 눈이 잘 떠지지 않아요. 그리고, 불편하게 잠자리에 든 탓인지 몸이 뻐근합니다.


"으으..."


눈을 살짝 비비며 눈을 뜹니다. 옆자리 침대에서 자고 있는 치요노 양은 등을 돌린 채, 아직 꿈나라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일어나기는 이른 시간. 알람 시계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잠들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어제 다쳤던 발목에 시선이 향합니다.


"괜찮을까..."


발목에서 느껴지는 아픔은 가셨습니다. '발을 디뎌도 괜찮을까?'하며 살짝 발을 디뎌도 아픔은 느껴지지 않기에, 이내 똑바로 발을 디뎌서 서봅니다.


"으음.. 괜찮은 것 같네요..."


미약하게나마 아픔이 잔존하지만, 말 그대로 미약한 아픔입니다. 조심조심 걸어 다니면 상관없을 정도의 아픔.


"으으? 아르당 씨?"


제 혼잣말과 발소리를 들으셨는지, 등을 돌리고 있던 치요노 양의 귀가 움직이더니, 이내 치요노 양이 등을 돌리며 눈을 떴습니다.


"아. 죄송해요. 제가 깨워버렸나보네요..."


"아... 아니에요. 어차피 조금 일찍 일어날 생각이었으니까... 발은 괜찮으신 건가요?"


"네. 아주 살짝 아프긴 하지만, 걸어 다닐 만해요."


"다행이다..."


치요노 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내 말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트레이닝하실 때에는 조심하셔야 해요? 어젠 정말 걱정했었다구요."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치요노 양 앞에 사과하며 고개 숙였습니다.


이윽고 고개를 따라 내린 귓가에 치요노 양의 말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아르당 씨?"


"네?"


"어젯밤에... 우셨었죠?"


"... 들으셨나요?"


"네."


제 불찰입니다... 치요노 양은 이미 잠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치요노 양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숨기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지금도 눈가에 눈물이 말라붙어있으시니까요.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에요? 저번에 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거에요?"


"....."


"말해주세요."


"...아무 일도 없었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정말로,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에게도 숨기실 일이신가요?"


"그렇게 물으셔도... 말해드릴 수 없어요. 치요노 양. 가장 친한 상대라도, 가장 좋아하는 상대라도, 그런 상대라도 숨기고 싶은 일은 있는 거니까요."


"...아르당 씨..."


"부탁드려요. 더 이상 파고 물어오지 말아 주세요."


"...으으.."


"..정말 죄송해요. 치요노 양. 저 먼저 씻을께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듯이 살짝 붉어진 볼을 부풀리는 치요노 양을 뒤로하고, 저는 화장실로 도망치듯 들어갔습니다.


화장실에 들어서서 거울을 보자, 거기에는 눈물이 말라붙은 자국이 새겨진 제 얼굴이 보였습니다.


"...."


저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려 눈물자국을 물로 지워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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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나오자, 치요노 양은 그런 저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말없이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치요노 양이 들어선 화장실의 문이 닫히고, 저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해요 치요노 양. 하지만, 치요노 양이 알게 된다면, 저한테 실망하실 거에요.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설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휴대전화가 띠리링 착신음을 내며 울렸습니다.


"..읏!"


'그 남성의 전화일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받지도 못한 채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잡았습니다.


"....후우..."


이윽고 눈을 뜨고 화면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아닌 트레이너 님의 이름이 저장된 전화번호가 표시되어있었습니다.


저는 이내 통화버튼을 눌러, 트레이너 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트레이너 님?"


[아. 아아! 미안해, 아르당. 혹시 잠을 깨운 걸까?"]


"아니에요. 전화하시기 전에 이미 일어나 있었어요."


[다행이네... 발목은 괜찮아?]


"네. 걸을 때마다 살짝 아프긴 해도, 말 그대로 살짝 아픈 정도예요. 혼자서 걸을 수 있을 정도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으음... 그래도 조심해야 해. 저기, 나 지금 미호 기숙사 앞에 있어. 학교 수업 들으러 가는 거 데려다주러 왔거든.]


"에?"


이내 저는 얼빠진 신음을 내며 전화를 든 채로 걸음을 옮겨 창가로 향했습니다.


커튼을 살짝 걷어내고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자, 미호기숙사 앞에서 한 손에 전화를 받으며 서 있는 트레이너 님이 보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고개를 내밀자, 이윽고 트레이너 님도 저를 발견한 것인지 손을 흔들며 크게 말하셨습니다.


"아아! 여기야.아르당!"


"기숙사 앞에서 소리지르지 말아 주세요!"


[앗. 미안. 아침에 보니까 묘하게 반가워서.]


"...후우."


[밖에서 기다릴게.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금방 나갈게요. 오래 기다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휴대전화를 통화를 끊고, 창문과 커튼을 원래대로 되돌립니다.


그리고...


"트레이너 씨가 오신 건가요?"


어느샌가 화장실에서 나와, 뒤에 서 있던 치요노 양과 마주칩니다.


"...네. 데리러 오셨다고 하네요."


"...그렇군요..."


치요노 양의 얼굴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삼키듯, 불편해 보이는 얼굴입니다.


그 불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치요노 양은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듯이 입을 여셨습니다.


"저기, 아르당 씨. 저한테는 말하지 못한다고 해도, 트레이너 씨한테라도 무언가 말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


"트레이너 씨. 좋아하고 계시잖아요."


....


맞아요.


하지만...


"....치요노 양."


"...네?"


"치요노 양이 상관하실 일이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렇기에,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는 거예요.


이내 저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현관으로 향해 신발을 신기 시작했습니다.


"에? 잠깐만요! 같이 가요!"


"혼자서 갈게요. 저... 죄송합니다."


황급하게 신발을 신고 문을 열어, 뒤따라오려는 치요노 양을 뿌리치고 뛰듯이 걸음을 옮겼습니다.


시큰한 아픔이 발목에서 느껴지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후우... 후우..."


숨이 거칩니다. 아픈 것 때문일까요. 아니면 걸음을 세차게 옮긴 것 때문일까요.


아니면, 저를 도와주려는 사람을 외면하고 상처 주듯이 말해서 그런 것 때문일까요.


기숙사의 유리 현관문을 열고 지나자, 그 앞에서는 트레이너 님이 보였습니다.


"아르당?! 왜 그렇게 뛰어오는 거야?!"


"후우...후우우.."


트레이너 님의 물음에 답하지도 않고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자, 치요노 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르당..?"


"죄송해요.. 그냥 트레이너 님이 기다리신다기에... 조금 급하게 나와버렸어요."


유리 현관문에는 저와 트레이너 님의 모습만이 비친 채, 내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죄송해요 치요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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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 님과 등굣길을 함께 걷습니다.


일찍 나온 탓인지, 등굣길은 한산해서 널찍한 길을 단둘이서 걷고 있어요.


"...아까 전처럼 급하게 뛰면 안 돼. 발목을 삔 건 금방 낫긴 하지만, 그만큼 낫는 도중에는 쉽게 다시 다쳐버리니까. 나는 좀 더 기다려도 상관없었으니까, 조금 더 여유롭게 나와도 좋았어."


"면목이 없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로, 트레이너 님에게 몸을 살짝 붙어서 걸음을 옮깁니다.


옆에서 느껴지는 트레이너 님의 따듯한 온기가 의지가 되어서 더 따라붙고 싶어요...


이따가, 치요노 양을 보게된다면 사과를 건네야겠습니다. 저를 걱정해준 사람을 무시하고 외면했으니, 당연히 사과해야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와중, 트레이너 님이 갑작스레 입을 여셨습니다.


"으음.. 아르당?"


"...네?"


"너무 붙어버렸는데.. 발목이 많이 아픈 거야?"


"아아..! 죄송해요!"


트레이너 님은 저를 부축하듯 걷고 계시지만, 저도 모르게 트레이너 님의 걸음을 방해할 정도로 몸을 붙여버렸습니다.


황급히 원래 부축받던 몸으로 되돌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음. 저기, 아르당."


"네?"


혹시 '무언가 또 잘못된 것이 있나.'하는 마음에 살폈지만, 딱히 이상한 것은 없었습니다. 트레이너 님도 무언가 제 행동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셨던 듯이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오늘 방과 후에 잠시 외출하지 않을래? 요즘 아르당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다만 발목을 다쳤으니까. 가까운 곳을 조심조심 차를 타고 다니면서 말이야."


"..네. 좋아요."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남성에 대한 걱정이 머리에 스치지만. 적어도, 트레이너 님과의 시간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싶습니다.


걸음을 옮기던 저희는 어느새 수업이 진행될 본교 건물 입구 앞에 도착했습니다.


"응. 그러면 이따가 방과 후에 보자.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네. 감사합니다. 트레이너 님."


트레이너 룸이 위치한 건물로 향해 걸음을 되돌아가는 트레이너 님을 배웅하고, 저는 본교 건물의 현관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무언가, 마음이 다시 차오르는 고양감과도 같은 감정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좋아요... 치요노 양한테 사과도 하고, 이따가는 트레이너 님과..."


그래서, 그 고양감에 한순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갑자기,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띠리링 착신음을 내며 울렸습니다.


"아? 트레이너 님? 아니면 치요노..."


아마 제가 아는 누군가의 통화일 거라고 생각하며,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전화에는...


"...으으으...."


모르는 전화번호. 하지만, 알 것만 같은 전화번호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휴대전화를 꺼낸 손이 떨리며, 실수로 통화버튼이 눌리었고.


[....안녕? 잘 지냈냐?]


비웃는 듯한 말소리가 제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왔습니다.




한순간, 날아올라 떠오르던 기분이 저 바닥없는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봐? 왜 말이 없어?]


그 목소리가 들린 순간, 전 제 손에 들린 휴대 전화를 그냥 놓아버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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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쓰다가 말았던 아르당 NTR 시리즈를 다시 이어서 써보기.


오타나 이상한 것 있으면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