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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

손을 뻗으며 눈을 뜬 곳은 내 집이었다. 그것도 내가 사고 이전에 살던 집이었다. 물이 다 셀 것 같은 천장과 흘러내리는 벽지, 낡아빠진 가구까지 내가 원래 살던 곳과 완전히 똑같았다.

 

 

“다 꿈이었나…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꿈이 아니었다. 내 눈 앞에 꿈이라는 것을 부정해주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다리. 역시나 없구나.”

 

나는 힘든 몸을 끌고 창문으로 기어갔다. 창문 밖에는 평소와 같은 풍경이 있었지만 사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째선지 창문이 열리지도 않았다.

 

 

 

“트레이너님, 선물은 마음에 드시나요?”

현관문 쪽에서 다이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네 짓이구나.”

 

“제 마음을 받아주시질 않으셔서 이번에도 선물을 준비했어요. 이번엔 돈 좀 썼답니다?”

 

“몇 번이고 말하는 거지만 난 너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어.”

 

“마음이 바뀌면 알려주세요.”

 

 

마음이 바뀌면 알려달라니. 마지막까지 나를 포기할 생각이 없구나.

 

이 순간, 내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다.

탈출.

 

 

 

나는 열리지 않는 창문을 의자로 가능한 최대한 세게 내리쳤다. 

 

 

‘쨍그랑.”

무게중심이 잡히질 않아 시간은 꽤 걸려도 창문을 깨는데 성공했다.

 

 

“도망.. 도망쳐야 살 수 있어.”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나무 위로 떨어졌다. 최대한으로 충격을 줄였지만 낙하의 고통은 생각보다 아팠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최대한 도망가야 해.. 다이아가 못 쫓아올 정도로..”

 

 

“어디 가시나요?”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에 다이아가 히죽거리며 서있었다.

 

 

“다..다이아..? 왜 여기에..?”

나를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도망.. 도망…. 도망가.. 도망가야 돼.. 도망가야…”

도망가야 한다. 다리로 걸을 순 없다. 기어서라도 도망가야 한다. 손톱이 갈라지고, 손의 지문이 사라지고, 아무리 아프더라도. 살고 싶어. 난 아직 살고 싶단 말이야..

 

 

 

“마치 괴물이라도 보신 것 마냥 행동하시네요.”

 

“도망 가야 해… 도망을…”

 

“안돼요. 멋진 손이 다치시게 된다고요?”

다이아는 나를 번쩍 들고서 휠체어에 앉혔다. 그러고는 손목과 허리를 벨트로 포박했다.

 

 

“다이아, 이거 풀어. 이렇게 할수록 내 마음은 너한테 멀어지는 걸 모르는 거야?”

 

“이미 알고 있어요. 트레이너님이 제게 사랑이랑 감정을 품지 않으시는 걸.”

 

다이아는 정체불명의 링거액을 꺼내서 내 팔에 강제로 꽂았다. 나는 저항하려 했지만 우마무스메인 다이아의 악력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투명한 약물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 

 

 

점점 정신이 나른해지는데…

 

 

 

 

 

 

 

 

 

 

 

 

또 약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러다간 약물과다복용으로 죽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여긴 또 어디야?”

 

“여기는 저희 집이에요. 곧 혼인할 사이이니 트레이너님도 여기에 계시는 게 당연하죠. 아 참,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요?”

 

“날 어떻게 하려는 거야?”

 

“전 트레이너님을 너무 사랑해요. 제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을 정도로 사랑해요. 하지만 제 마음을 거부하시고 자꾸 도망을 가시니, 어쩔 수 없이 ‘그런 몸’으로 만들어버린 거에요.”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이젠 알려드려도 되겠네요.”

다이아는 내가 탄 휠체어를 끌며 어떤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놀라서 기절하시면 곤란해요?”

다이아가 문을 연 방 안은 실로 충격적인 곳이었다.

 

 

“이거 설마 전부..?”
 

“네. 트레이너님이 자라오신 마을, 거주하시던 동네, 그리고 제가 드린 새 집까지 트레이너님이 있으실 만한 곳은 전부 지켜보고 있었어요. 아쉽게도 트레센은 보안 때문에 카메라를 설치하지 못했지만요.”

 

“그럼 저기 있는 GPS는 내 위치야?”

 

“네! 혹시 트레이너님이 제 통제를 벗어날 때를 대비해서 다리를 절단하면서 같이 심어놨어요!”

 

 

“읍, 우웨엑.”

구토를 하고 말았다. 역겨웠다. 다른 사람의 몸을 멋대로 훼손하면서 자유를 빼앗고는 추억을 얘기하듯이 헤실헤실 웃는 다이아의 얼굴이 너무 역겨웠다.

 

 

“언제부터 이딴 짓을 계획한 거야?”

 

“언제부터요?”

 

 

다이아는 책상 위에 올라가 있던 사진첩을 들고 와서 내 앞에서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 사진으로 도배돼있었다.

 

“이때 기억나세요? 이때쯤 저를 구해주셨죠. 얼마나 멋있으셨는지.”

다이아는 사진들을 설명하면서 사진첩을 계속 내게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의 내 사진들이 종류별로 찍혀있었다.

 

 

“아까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물으셨죠? 처음부터였어요.”

 

난 터무니 없는 것을 도와준 것 같다.

 

“트레이너씨, 학생 때 갑자기 명문학교로 전학 가시고 갑자기 트레이너시험도 합격하셨죠?”

 

“날 지원해주던 사람도 너였어?”

 

“명의는 저희 아버지의 것이었지만, 제가 하기는 했어요. 트레이너님이 계시는데 다른 사람의 담당 우마무스메는 되기가 싫더라고요.”

 

 

지금 이 상황이 현실 같지 않다.

 

난 사육 당하는 동물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에 갇혀서 누군가가 주는 먹이만 받아먹으며, 관리 받는 가축의 모습이 어리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깨달았다. 내가 다이아에게 사육 당하는 가축이었다는 것을.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다이아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내가 뭘 하던 다이아의 손바닥 안이니까.

 

“다이아, 사랑해.”

 

 

“후훗, 저도 정말로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