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문서] 트레이너 따먹으려는 키타산 이야기(上) 

[괴문서] 트레이너 따먹으려는 키타산 이야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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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끝마친 후. 


타올 하나를 허리춤에 두른 채로 욕탕에서 나와 다시금 옷을 입으려고 아까 옷을 벗어 두었던 옷 바구니를 찾았다.


"어... 내 옷...?"


그런데 어째서일까.


아까 옷을 벗어 두었던 옷 바구니를 다시 살펴보니, 내가 벗어 둔 옷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회색빛의 전통적인 복색으로 보이는 옷이 입으라는 듯이 떡하니 놓여있었다.


"....?"


옷 바구니에 있던 옷을 꺼내어 내 몸에 대어 맞춰보니, 그런대로 내가 입기에 대략 치수가 맞아 보였다. 



그러니까....


"입으라는 거... 맞겠지?" 


"네. 그 옷을 착용하여 주시면 되겠습니다."


"엇-?!"


어이없어서 흘리고 있었던 혼잣말을 갑작스레 옆에서 답해오는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놀라 비명을 지르듯이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홱 돌리니, 조금 전에 나를 목욕탕으로 데려왔던 여성 중 한 명이 눈을 감고 살짝 고개 숙인 채로 내 옆에 서 있었다.


"왜 여기 계십니까?!"


"그 옷은 혼자서 착용하기에 조금 품이 듭니다. 그래서 착용하시는 것을 도와드리기 위해 들어왔습니다만..."


"아니, 그래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부끄러움이 많으신 분인 것 같아서 그나마 다른 아이들도 같이 들어오겠다고 하는 것을 제가 말리고 홀로 들어왔습니다."


"...."


할 말이 없어진 내가 침묵하자. 이윽고 눈앞의 여성은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실눈을 뜨고는 마치 가늠하듯이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저 실눈으로 작게 뜬 시선이 나에게 향하는 것에 불과한데, 마치 큰 뱀 하나가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든다.


살짝 미소 짓고 있는 입가에 실눈으로 바라보는 눈이 너무 무서운 나머지. 나는 어느새 그 뱀 앞에 놓인 생쥐처럼 움츠러들다가, 이내 들고 있던 옷을 가림막 삼아 숨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큰 뱀이 다가오는 듯한 기세는 단지 기세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었던 듯. 이내 여성은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이윽고 여성은 마치 가림막을 치워내듯, 옷을 들고 있던 내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내 손에 들려있던 옷을 자기 손으로 하나하나 옮겨갔다.


"...잠시만 맡겨주십시오. 금방 입혀드리겠습니다."


"그냥 제가 혼자서 입으면 안 될까요?"


"후후..."


이윽고 여성은 마치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실소를 흘렸다. 



그러더니 돌연 웃음소리가 멈추고 입가에서 손을 치워내자, 조금 전까지 웃음을 흘렸을 살짝 다물어진 입가가 드러났다.


이윽고 그 입가가 벌려지더니...


"안 됩니다."


단호하게, 아주 단호하게 나의 물음에 대한 부정의 답을 내놓았다.


"안 되는 겁니까?"


"네. 그냥 맡겨주시지요. 아까 말해드렸듯이 착용하시는 분 혼자서는 입지 못하시는 옷입니다."


"앗- 적어도 속옷이라도- 앗-?!"


이윽고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타올이 그녀의 손에 의해 벗겨지더니, 이내 이런 일이 무척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는 여성에게 몸을 희롱당하듯이 옷이 갈아입혀졌다.



나의 중요한 곳을 가리고 있던 타올이 그녀의 손에 벗겨지며, 내가 떠올린 생각은 한 가지였다.


'나 이제 장가 못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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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바닥 복도를 혼이 빠진 듯이 터덜터덜 걷는다. 


내 앞에는 내 옷을 (강제로) 갈아입힌 여성이 앞서 걸으며, 아까 나를 욕탕에 (강제로) 데려왔던 여성들이 나를 둘러싸듯 양옆에서 걷고 있다.


갈아입혀진 전통복이 살에 맞닿는 감촉이 새삼스럽게도 새롭다. 살짝 시원하기도 하고, 살짝 거칠면서도 때때로 부드러운 감촉이 나쁘지 않다.


단지...


'강제로 갈아입혀지지만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옷을 갈아입혀지던 와중에 여성에게 물어보니, 내가 벗어둔 옷은 따로 챙겨서 내가 머무를 객실에 잘 보관 중이라고 한다. 


'객실이라니... 나 여기서 자고 가야 하는 거야?'


뭐 때문에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지도 물어보았더니. '이 저택에서는 어울리는 복색을 갖춰주셔야 하며, 이후 아버님과 독대하실 예정이므로 더더욱 그에 어울리는 복색을 갖춰주셔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그 아버님이 누구의 아버님인지는 딱히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 여성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아버님'일 테고, 키타산에게는 진짜 '아버님'인 사람.



'그냥 파티라고 했잖아. 키타쨩!!'


물론 파티라고는 하지만 담당마의 집에 방문하는 일종의 가정방문인 셈이고, 집안에 부모님이나 여타 다른 가족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가족'들이 이런 의미의 '가족'이라는 건 생각도 못 했다고! 아버님과 독대는 또 무슨 말이야!'


가족이 아니라 어두운 의미로 가족 같은 아저씨와 언니들이 아닌가. 평소 키타산의 집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무척이나 큰일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숨긴 걸까. 저번에 키타산에게 물어보니 그때 키타산이 답하기에는 '저희 아버지는 훌륭한 엔카 가수셔요!'라고 하셨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전혀 아니잖아.


속이 안 좋다고 하고 그냥 도망가고 싶다. 


지금이라도 속이 안 좋다고 하고 도망칠까?


생각해보니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뭐 어디 묶이거나 잡혀서 되돌아올 것 같으니까...



생각하는 와중에도 복도를 걷던 걸음은 멈추지 않고 다른 이들의 발걸음과 맞추어 걷다가, 이내 다른 이들의 발걸음이 멈춤에 따라 같이 어느 방 앞에서 멈추어 섰다.


이윽고 문 앞에 선 여성이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더니, 이내 널찍한 다다미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방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여기는...?"


"아가씨의 트레이너 분이 머무르실 객실입니다. 아까 받았던 가방과 옷가지는 방 안의 옷장에 놓아져 있으니 혹시 없는 물건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모든 준비가 끝나는 대로 다시 데리러 오겠습니다."


고즈넉한 다다미방 한쪽에는 미리 펴놓은 것인지 이부자리가 놓여있었고, 낮은 탁자 위로 무언가의 녹차가 담겨있는 듯한 도기로 된 병과 잔이 놓여있었다.


방의 풍경을 살짝 바라보고 있었더니, 퍼뜩 키타산에 대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저기, 키타... 음. 아가씨는 지금 어떻게?"


"아가씨에 대해서는 그냥 편하신 대로 불러주셔도 됩니다. 아가씨의 소중하신 분이시니까요. 지금 아가씨께서는 따로 손님맞이를 할 준비를 하시고 계십니다.


"손님맞이라니..."


"아가씨가 스스로 원하셔서 하고 계신 일이니,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잠시 편히 쉬어주시길."


이윽고 말을 끝낸 여성은 다른 이들과 함께 부담스러울 정도로 공손한 인사를 취하더니, 나 홀로 방에 놔둔 채로 문을 닫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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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앞에 가만히 앉아, 도기 병에 담긴 차를 잔에 따라 마시며 조금 기다렸을까.


살짝 열린 창문의 밖에서 비쳐오는 햇빛에 창문 옆 화병의 그림자가 아주 살짝 움직였을 때쯤.


가벼운 발소리 몇몇이 방의 미닫이문 앞으로 다가와 이윽고 멈춰서더니, 방의 미닫이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말을 꺼낸 것은 아까 나를 데리고 왔던 여성이었다. 앉아있던 탁자 앞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 이내 나는 또다시 무리의 한가운데에 놓인 채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복도의 열린 미닫이문들을 넘어 보이는 정원의 한적한 풍경에 살짝 눈을 돌리며 걸었을까. 


이윽고 다른 건물로 향하는 듯이 양옆이 뚫려 주변 정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는 복도를 지나더니, 이내 낡았는지 조금 색조가 변한 건물에 들어섰다.


낡아 보였음에도, 그렇기에 더욱 무언가 화려하다고 느낌을 주는 복도를 계속 걸었다.



이윽고 그렇게 걷던 걸음은 응접실이라고 글이 써진 미닫이 문짝 앞에서 멈춰 섰다.


"-이곳입니다. 아버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시오니, 아무쪼록 좋은 대화를 나누시길 기원합니다."


"...알겠습니다. 저기, 키타쨩은...?"


"일단은 아버님과의 만남이 우선입니다. 이만 들어가시지요."


"아. 예-"


"...."


나와 대화를 나누던 여성은 무언가의 말을 더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고개 숙였기에,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말을 삼키며 납득하지 못했으나 납득했다는 듯이 답했다.


여성은 이번에는 나에게 직접 열라는 듯이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저 가만히 고개 숙인 채로 기다리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소리 나지 않도록 미닫이문을 열며 방에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미닫이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자, 내 앞에 보인 풍경은...


'뭔데! 이 분위기!'


바깥에서는 비치는 햇빛 때문에 몰랐으나, 바깥의 빛이 전혀 비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창호지 때문에 방의 내부는 조금 어두웠다. 단지 천장의 조명이 살짝 어둠을 가시게 할 정도의 빛을 아래로 비추고 있었다.


그나마 창호지의 틈새로 비쳐 들어오려는 빛은 붉거나 검은 글씨로 무언가의 한자가 새겨진 병풍들이 벽을 둘러싸 가리고 있었다. 


방의 정중앙에는 큰 탁자와 그 위에 먹음직스러운 음식, 술과 술잔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한 남성이 제일 큰 병풍 앞에서 앉아있었다.


누가 봐도 자신이 이 집안...조직의 오야붕이라는 위압감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노년의 한 남자.


"...어서 오게. 이리 와서 앉게나."


겉모습은 노인이되, 강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는 남자. 


그가 한 손을 들어 자신이 앉은 자리 너머 탁자 반대편에 놓인 방석을 가리키며 나를 불렀다.


"...우리 딸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참 많을 것 같으니."


무언가 저항은커녕 따르지 않기도 힘든 위압감에, 나는 천천히 그가 가리킨 자리로 향했다.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어, 나는 이내 그가 가리킨 방석 위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무슨 이야기신지는 몰라도 살려주세요!'


속으로는 비명을 내질렀지만, 입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