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 나는 단번에 호루라기를 집어넣고 뒤돌아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야베!"


"...보고 싶었어."


"나도."




어드마이어 베가는 졸업 후 나와 사귀게 된 연인이다.


서로의 등을 꽉 껴안자 즐거운 일체감이 느껴졌다. 서로가 사랑하는 연인끼리의 정신적 교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상의 따뜻함. 트레이너로서의 고뇌와 피로가 약간이나마 완화되는 느낌이다.


어느 정도 만끽한 나는 조심스레 아야베를 떼어냈다. 아야베는 아쉬운 얼굴을 하며 내 가슴에 손을 올렸지만, 이 이상의 애정행각은 트레센에서 민폐였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누구와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야베의 등 뒤로 믿을 수 없는 걸 봤다는 표정으로 눈을 한계까지 열어젖히고 동공을 세차게 진동시키며 우리를 바라보는 키타산 블랙이 보였다.




나는 지금-


방금 전 내게 사랑을 고백한 담당 우마무스메 앞에서, 다른 여자를 껴안았다.








어드마이어 베가는 간만에 재회하게 된 자신의 연인을 껴안음으로서 이제까지의 모든 불안을 날려보낼 수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원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사람의 자존감을 채우고 정신을 강화시킨다.




그렇기에 그녀는 트레이너가 좋았다. 곁에 있으면 고민들이 신기루처럼 증발하고, 바보처럼 되어버린다. 여동생이 떠났음에도 더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따뜻하고 충만한 연인의 품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보고 싶었어... 그, 매일 당신 얼굴이 떠올라서. 혹시 여름 합숙 중에 어딘가 다치지는 않았을까. 나쁜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을까. 밥은 잘 먹었을까. 걱정이 끊이질 않았어. 당신은 너무 착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그녀의 곁에 있었고, 그녀는 그의 곁에 있었으니까.


트레이너도 자신만큼이나 그리워 했을까?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의 품속에서 고개만을 들어올려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절부절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동자를 진동시키는 트레이너. 그리고 그의 품 어딘가에서 맡아지는 향유 냄새. 그 위화감에 아야베는 무언가 촉이 오는 것을 느꼈다.




이 남자가 나에게 잘못을 했다는 여자들만의 직감.




레이스와 푹신함 외에는 알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남자에 대해서 눈치가 빠른 한 명의 여자가 되었다.


그이의 시선을 빼앗고 있는 곳을 확인하고자 몸을 돌리려 하지만, 트레이너는 마치 무성 영화의 마임처럼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것에 약간의 짜증을 느끼며 아야베는 자신의 연인에게 항의했다.




"왜 그러는거야? 뒤에 뭐가 있어?"


"그... 키타산 블랙이 있어. 내 담당 말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음, 내 담당이 널 별로 안좋아해서."




만난 적도 없는 그이의 담당이 나를 싫어해?


왜?


뭔가 이상했다. 여자의 촉이 꺼림직한 상황을 파헤쳐야만 한다며 미친듯이 경고를 보낸다. 아야베는 무슨 일이 있어도 키타산의 얼굴을 봐야 겠다고 결론지었다.




"괜찮아 트레이너. 내가 잘 이야기할 수 있어."


"아니... 키타산은 내가 잘 달래볼테니까. 그러니 먼저 트레이너실로 올라가줘 아야베. 내가 찾아갈테니까-"




갑자기 자리를 옮기라 권유하는 연인. 의심에 확신을 더하는 행동에 더는 참지 못한 아야베가 트레이너의 손길을 내치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야베는 처음으로 키타산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구긴 채 손톱을 물어뜯으며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흑발의 우마무스메가 있었다. 동공은 세차게 흔들렸지만 결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오직 하나, 자신만을 노려보는 증오어린 눈빛.


키타산은 평소부터 아야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야베 역시 당황스러웠다. 연인도 아니면서, 무슨 남편을 빼앗긴 새댁 정도의 한 서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야베가 천천히 키타산에게 다가간다. 트레이너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안절부절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둘을 지켜보았다.


어느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아야베의 귓가에 키타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어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목소리. 아야베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가 뭐라고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그러한 생각에, 아야베는 평소라면 절대로 내뱉지 않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처음 보는 사이지? 인사할게. 그이의 전 담당 우마무스메이자 여자친구. 어드마이어 베가야. 날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을까? 잠시 남자친구랑 회포를 풀고 싶어서 말이지."


"......"




키타산은 여전히 무어라 중얼거리며 아야베를 노려보기만 했다.


꺼림직하고 기분나쁘다.


하지만 자신의 연인이 담당하는 우마무스메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천천히 말을 건냈다.




"나랑 트레이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거든. 요 며칠 네 여름 합숙 때문에 만나지 못해서 쌓인 이야기가 많아. 그러니까-"




'꽁냥거리게 좀 꺼져라.'는 의미를 담아 키타산에게 축객령을 내리는 아야베. 그녀는 유독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단어에 힘을 실어 말했다.


애정행위를 방해받은 아야베는 평소 이상으로 까칠했다. 그것도 모자라 여자로서의 감이 본능적으로 키타산을 적대하게 만들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타산은 여전히 입술을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시선은 여전히 아야베에게 고정되어 있다. 문득 아야베는 그녀가 대체 어떤 말을 중얼거리는지 궁금했다. 조금 더 다가가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인 트레이너는 듣지 못하고, 우마무스메인 자신은 들릴만한 소리.




그 중얼거림은.




"감히트레이너님을창녀처럼몸으로유혹하다니트레이너님은제구원자이자반려인데당신따위가몸을비빌수있는남자가아니야내가사랑하는사람을건드리지마더러운년온갖가식으로그의눈을더럽히고창녀처럼트레이너님을유혹하다니지옥에나떨어져버려개같은년그더러운손으로트레이너님을만지지마트레이너님과말도섞지마트레이너님과같은하늘에서있지마뒤져버려너같은창녀는뒷골목에서몸이나파는게어울리는데어딜감히..."




철저한 원망과 저주.




아야베는 그 소리에 굉장히 놀라고 불쾌했지만, 가슴 한 구석에 올라오는 진득하고 뜨거운 쾌감도 느껴졌다.


아, 이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일본 더비에서 라이벌들을 제치고 1착을 차지한 쾌감?


아니, 아니다. 이건 조금 더 저열하고 진득한 감정이다. 


나보다 명백히 뒤쳐진 사람을 내려다보며 느끼는 쾌감.




여자로서의 우월감이다.




평소의 고결한 어드마이어 베가라면 경계하며 꺼렸을 감정.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의 연적, 그것도 한참이나 모자른 키타산 블랙이라는 소녀.


이상하게 자신과 키타산을 만나게 하는 걸 꺼리던 트레이너. 미친듯이 얼굴을 구기며 자신을 증오하는 키타산. 그와 연인임을 과시하고 싶은 이 감정까지.


그 모든 것을 가득 담아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키타산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키타산과 비슷한 성량으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트레이너에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키타산 블랙이 가장 광분할만한 내용으로.




"저기... 그거 알아?"




어드마이어 베가, 그녀는 키타산 이전에 냉혹한 트레센에서 살아남은 프로였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트레이너 담당이었거든."




적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런데 너는, 그이가 두 번째 트레이너지?"




그런 주제에 감히 내 남자를 넘봐?




'이 걸레년아.'




어드마이어 베가는 화사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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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5편 안에 완결냄


다 읽었으면 속이 다 시원한 스티븐 제라드 중거리 슈팅도 보고 가셈